송갑석 더불어민주당 의원(광주서구갑)은 지난 6·13재보궐선거로 국회에 입성한 후 제1호 법안으로 ‘한반도 평화시대 남북7법’을 발의했다. 법안 세트 제6호에서 ‘납북자’를 ‘실종자’로 바꾸자는 개정안이 포함되어 사회적 논란이 되고 있다.
송 의원은 제안 이유에서 “ ‘납북자’라는 표현은 북한 측에서 강한 거부감을 보이고 있는 단어”이며, 이에 “‘납북자’의 표현을 ‘전시실종자’로 변경함으로써 법률상의 용어로 인한 남북관계에서의 충돌을 완화하기 위한 법적인 근거를 마련하려는 것”이라고 스스로 밝히고 있다.
대한민국 국회의원이 대한민국 국민인 납북자와 그 유가족들보다 납북 범죄의 가해자인 북한의 입장을 더 헤아리는 것은 상식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는다. 송 의원의 주장은 납북 범죄가 발행한 6·25 당시부터 현재까지 ‘납북자는 없고 실종자만 있다’는 북한의 입장과 유사해 가히 충격적이다.
더구나 대한민국 국회에서 제정한 특별법을 통해 정부 차원의 진상규명이 끝난 ‘납북자’의 존재를 대한민국 국회의원이 부인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법안의 취지가 한반도 평화체제를 대비하는 차원이라고 하나 한반도 평화체제를 위해서는 이런 법안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북한의 비핵화와 전시납북자, 국군포로 등 6·25남침으로 인한 문제를 먼저 해결하는 것이다.
‘납북자’를 ‘실종자’로 바꾸자?
6·25전쟁 당시 북한은 비전투 남한 민간인 10만여 명을 강제로 납치했다. 이는 단순한 주장이 아니라 당시 정부 공식 기록에 나와 있는 내용이다. 10만 납북자 중에는 정치인, 법조인, 학자, 종교인, 언론인, 의료인 등 전문지식인, 예술문화인 등 사회 지도층들도 다수 포함되었다.
북한이 이들을 납치한 이유는 명백했다. 일제 식민지에서 해방된 후, 북한은 소련의 지령에 의해 1946년 2월 공산정권을 수립했다. 북한 공산당은 이른바 ‘민주개혁’의 일환으로 토지몰수, 주요 산업 국유화, 농업 현물 세제, 노동법령 시행 등의 정책을 실시했다. 동시에 북한 전역에서 일제 잔재의 청산, 반공 인사 및 지주계급 등 유산계급의 숙청을 단행했다. 공산체제 수립 과정에서 기독교 등 종교계 인사는 숙청 대상 제1순위였다. 친일파, 반공인사, 지주, 종교인, 지식인들에 대한 공격과 처형이 이뤄졌고, 무고한 양민들까지 탄압했다.
전시납북자는 실종자가 아니다
북한 주민들과 학생들은 공산당에 저항해 봉기했으나 곧 진압되었고, 지식인을 포함한 북한 주민들은 대거 남하했다. 북한은 이로 인해 인재 부족에 시달렸으며, 남한의 인텔리 납치로 인재부족 공백을 메꾸려 했다. 이러한 사실은 여러 북한 문서에서 확인되는데, 1946년 7월 김일성의 담화 ‘남조선에서 인테리들을 데려올데 대하여’(1946. 7. 31.)가 대표적이다.
북한의 남한 민간인 납치는 6·25 남침 직후인 1950년 7월부터 9월까지의 3개월 동안에 집중적으로 발생했고, 납북자의 대부분은 남성이었다. 지역별로는 서울을 비롯해 수도권과 강원도 지역이 타 지역보다 납북 피해가 많았으며 사실상 전국에 걸쳐 발생했다.
납북사건 발생 당시 전쟁 중이지만 납북피해가족은 즉시 단체를 결성해 납북자를 구출하려 다방면으로 노력했지만 성과는 미진했다. 정부 차원의 납북사건 해결 노력도 무효했다. 1960년대 초반까지 납북 문제는 세간의 주목을 끌었지만 납북사건 해결에 가시적인 성과가 없자 납북자 문제는 자연스럽게 일반 국민들의 관심에서 사라졌다.
그러다가 2000년 전시납북자의 존재를 축소 발표한 당시 정부의 통계를 바로 잡고자 6·25 전쟁 당시 부친이 납북당한 현 가족회 이미일 이사장은 신문에 광고를 내며 가족회를 재결성했다. 이로써 잊혀진 10만 납북자의 존재와 납북 범죄를 세상에 알리고, 납북자와 그 유가족들의 명예를 회복하기 위한 기나긴 여정이 시작되었다. 유가족의 끈질긴 노력으로 2010년 국회에서 ‘6·25전쟁 납북피해 진상규명 및 납북피해자 명예회복에 관한 법률안’이 통과되었다.
이 법을 근거로 국무총리산하 전시납북진상규명위원회가 설립되어 7년여 간의 활동을 통해 북한의 전시민간인 납치 범죄에 관한 정부 차원의 진상을 규명을 완료했다. 위원회는 납북 범죄 재발 방지, 후세에 대한 교육 등 후속 조치의 일환으로 임진각 일대에 전시납북기념관을 설립한 후 활동을 종료했다.
북한이 ‘납북자’ 극구 부인하는 이유
6·25전쟁 납북피해 사건은 6·25전쟁 중 발생한 다른 민간인 희생사건에 비해 진실 규명이 용이했다. 그 이유는 당시 공식적인 기록이 국내는 물론이고 해외에서도 다수 발견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북한은 6·25 당시부터 현재까지 납북 범죄를 단호히 부인하고 있다. 납북사건 발생 이후 북한과 직접적으로 납북 문제에 대해 논의할 수 있는 기회가 1951년 휴전협상에서 있었다. 휴전협상 제4의제인 포로 문제를 다루는 분과에서 유엔 측은 공산 측인 북한에 전시납북자 문제를 제기했다.
예상대로 북한은 단호하게 전시납북자의 존재를 부인했다. 자진 월북자나 실종자는 있을지언정 납북자는 없다는 것이다. 오히려 유엔군이 북한 민간인을 납치했다며 적반하장격의 억지 주장을 했다. 유엔 측은 북한의 단호한 부인과 민간인 관련 사항은 휴전협상의 본 의제가 아니기 때문이 더 이상의 납북자 협상의 진전을 이루지 못했다.
북한은 휴전협상에서 납북자 문제에 대해 극도로 민감한 반응을 보인 것과 마찬가지로 이후 민간단체인 납북피해 유가족의 활동 및 성과에 대해서도 노동신문 등을 통해 통렬한 비난을 퍼부었다. 일례로 지난 2006년 8월, 국내 일간지에서 전시납북자 문제를 1면, 3면 특종으로 실었다. 북한은 바로 노동신문에 “용납할 수 없는 반공화국모략소동(2006.9.5.)”이라는 제하의 논평을 내고, “6·25전쟁납북자는 남한 극우 보수세력의 날조로 인간의 존엄과 권리를 가장 귀중히 여기는 북한에 납북자 문제란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북한의 반응은 전시납북자 문제가 다시 수면위로 드러나고 국제적인 공감대를 얻을 경우 북한은 1864년부터 1949년까지 4차례에 걸쳐 채택된 제네바 협약, 즉, 전시민간인 보호에 관한 사항을 위반함으로써 전쟁 범죄의 책임을 피할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북한은 납북자 문제가 대두될 때마다 단호하고 일관되게 부인을 해 왔던 것이다.
미 의회, 위안부 결의안 10여년 만에, 납북자 결의안은 1년 만에 통과
전시납북피해 가족회는 납북사건의 국제적 해결을 위한 방편으로 2011년 초부터 본격적으로 미 하원에 전시납북송환결의안을 통과시키기 위한 활동을 펼쳤다. 필자는 결의안을 위해 당시 미국 현지에서 활동했었다. 교포들과 일부 미 의회 관계자들은 국제적으로 잘 알려진 위안부 결의안 통과에 10년이 걸렸는데 ‘잊혀진 전쟁의 잊혀진 희생자’인 납북자 송환에 대한 결의안 통과는 그 시일을 장담할 수 없다고 전망했다.
그러나 당시 박선영 자유선진당 의원의 협조로 6·25전쟁 참전용사였던 미 하원 찰스 랭겔 의원이 전시납북자, 전쟁포로(POW)와 전시실종자(MIA) 문제를 한꺼번에 촉구하는 골자의 결의안을 발의했다.
이후 결의안을 지지하는 의원들의 숫자는 증가했으며 결의안은 하원 아태소위를 무난히 통과했고, 인도주의사안이라 신속승인절차(Fast Track)을 통해 본회의에 상정되어 2011년 12월 13일 밤 10시 경 공화당, 민주당의 만장일치로 통과되었다. 미 하원 본회의 갤러리석에서 결의안 통과 과정을 지켜본 가족회 구성원들은 감격의 눈물을 흘릴 수 밖에 없었다. 결의안을 본격적으로 준비한 지 1년도 되지 않은 시점에 미 의회에서 전시납북송환을 위해 힘을 보태준 것이다.
종전선언 전제조건에 북한 비핵화, 납북자, 국군포로 문제 등 포함시켜야
전시납북결의안(H.Res.376)은 인권에 대한 미국인들의 고귀한 의식을 엿볼 수 있는 소중한 성취였다. 미 의회 결의안 통과 즈음에 발생한 김정일 사망이라는 특대형 뉴스에 밀려나 결의안 통과 뉴스는 세간의 관심은 적게 받았지만 여전히 소중한 성과로 기록되었다. 미국 NGO인 북한인권위원회 발표에 의하면 북한은 6·25전쟁 이후에도 일본, 태국, 미국 등 전 세계 12개국으로부터 민간인 18만여 명을 납치했다고 한다. 이렇듯 북한에 의한 납치 범죄는 여전히 진행 중인 것이다.
최근 정부는 2차례에 걸친 남북회담과 미북 싱가포르회담 등을 계기로 남북관계가 경색국면에서 완화되었다며 대대적인 평화 분위기 조성에 열중하며, 이참에 종전선언까지 밀어붙이려 외교적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그러나 종전선언이 문서를 통해 규범적으로 이뤄진다고 하더라도 핵을 가진 북한과 공존하는 한반도에 진정한 평화도 종전도 있을 수 없다. 종전선언을 위해서는 북한 핵폐기는 물론이며 전쟁으로 인한 미해결과제인 납북자, 국군포로, 전시실종자 문제 등 인도주의적 사안의 해결이 선행되어야 한다. 평화를 위한 실질적인 조치들이 완료되면 한반도에 종전과 평화는 자동으로 실현된다.
정부는 인위적 평화공세 보다는 근대 주권국가라면 기본적으로 져야 할 국민 보호 의무를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할 것이다.
이옥남 바른사회시민회의 정치실장
외부게재시 개인은 출처와 링크를 밝혀주시고, 언론사는 전문게재의 경우 본사와 협의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