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의 자유가 허용되지 않는 북한과 같은 독 재 국가에서의 삶은 단순하다. 국가와 당이 명령하고 지시하는 대로, 수령이 시키는 대로 살아가야 하기 때문이다. 위에서 시키는 대로 살아가야 하는 삶은 사육장에서 길러지는 가축의 삶과 다르지 않다.
이는 곧 노예의 삶을 의미한다. 오늘날 북한 인민은 노예의 삶을 살고 있다. 우리와 함께 살아가고 있는 3만 5000여 명에 달하는 탈북 동포가 이를 증언해 주고 있다.
수령이 왕이고 인민이 노예인 사회가 북한이다. 그 곳에서는 인간의 존엄성이나 인민의 존귀함이라는 단 어는 사전에서만 존재한다. 주체 사회주의라는 갑옷을 입고 대남적화통일용 핵과 미사일을 양손에 틀어쥐고 있는 한 명의 독재자, 수령이 신과 같은 존재로 군림하 고 있는 곳이 북한이다. 이것이 우리가 북 한 체제를 반대하고 그들의 위협으로부터 자유 대한민국 체제를 지키려는 이유다.
북한과 달리 개인의 자유 의지에 따라 판단하고 선택하면서 살아가야만 하는 남한과 같은 자유 국가에서의 삶은 다양하다. 삶에 있어서 성공과 실패 여부는 오직 개인의 결정과 노력여하에 달려있고 성패에 대한 책임 역시 개인에게 있다.
이와 같은 삶을 통해 독립적이고 자립적인 인간의 존엄성이 확인되고 각자 노력에 합당한 보상을 받게 되는 것을 국민 모두가 당연하게 생각하며, 국가는 법의 이름으로 그러한 국민의 삶을 보호한다. 이것이 자유국가에서의 삶이다. 정상적 자유국가에서 국민은 왕이고 국가는 신하다. 자유 대한민국에서의 삶은 이와 같은 삶을 추구하는 삶이다.
불가사의한 현상
한반도에서 역사의 순리가 제대로 작용하 고 있다면 북한 체제는 벌써 무너졌을 것이고 남한 체제가 승승장구하고 있어야 하지만 현실은 그 반대이다. 그야말로 불가사의한 현상이다. 거지공화국이라고 할 수 있는 독재국가 북한이 기세등등하게 떵떵거리며 자유 대한민국을 위협하고 농락하는 가운데 남한의 종북좌파세력들이 민주시민, 평화시민, 통일시민이라는 가면을 쓰고 곳곳을 장악하고 누비면서 언어, 문자, 행동을 통해 파시스트적 폭력을 자행해도 수사기관은 외면하고 있다.
탈북자 영화감독 정성산씨가 운영하던 냉면집이 집요한 ‘좌표 찍기’ 폭력에 시달리다 결국 문을 닫아야 했고, 집권 여당 국회의원 12명의 이름으로 북한 측이 듣기 싫어한다는 이유로 ‘납북자’라는 단어를 ‘실종자’라는 단어로 바꾸자는 법안이 발의된 것이 최근의 일이다.
이러한 현상이 벌어지게 된 궁극적 책임은 누구에게 있는 것일까? 주사파를 비롯한 종북좌파들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자유대한민국의 주체인 우파의 책임이 더 크다고 할 수 있다. 남한 체제를 변혁하려는 좌파들에게 온상을 만들어준 책임, 그들의 실체를 폭로 하고 고립시키기는 커녕 오히려 기만당하고 이용당한 책임이 있다.
김영삼 정부를 비롯한 이명박 정부, 박근혜 정부 책임이 종북좌파들의 책임보다 더 크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궁극적 책임은 그러한 정부를 탄생시킨 주권자인 국민, 즉 시민에게 있다. 따라서 남을 탓하기 이전에 자신을 뒤돌아봐 야 한다.
자유시민의 조건
자신을 뒤돌아본다는 것은 자신이 시민덕목을 갖추고 살아가고 있 는가를 확인해보는 것을 의미한다. 자유주의 체제에서 시민 덕목은 매우 중요하다. 국가 공동체 구 성원 개개인, 즉 시민 개개인이 견고한 시민 덕목을 갖추고 있을 때 그 사회는 안정되고 발전할 수 있으며, 어떠한 위협에도 자신을 지켜낼 수 있으나 그렇지 못하면 낭패를 면할 수 없게 된다. 시민 덕목이란 시민으로서 반드 시 알고 있어야만 하는 최소한의 기본 상식을 말한다.
이것은 강요에 의해서 갖춰지기보다 자발적으로 갖춰지는 것이 바람직하다. 선진국 시민의 경우 이것은 일상화되어 있으나 정치 후진국 시민의 경우는 그렇지 못하다. 우리는 후자의 경우에 속한다. 우리의 경우 시민의 덕목이란 사상을 아는 것, 시대 성격을 아는 것, 국가 최대 과제를 아는 것, 사회 모순을 아는 것을 말한다.
사상을 안다는 것은 인간답게 산다는 것, 체제를 지켜낼 수 있다는 것, 발전을 도모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사상이란 무엇이며, 좋은 사상과 나쁜 사상을 구분할 줄 알고, 나의 사상과 상대방의 사상을 비교할 줄 알고 사상의 힘이 얼마나 위대한가를 이해할 수 있을 때 사상을 안다고 할 수 있다.
사상을 안다는 것은 자유 시민의 첫 번째 가는 덕목이다. 사상은 문화와 문명을 만들어내고 국가 운영 원리가 되며 개인의 삶을 좌우하는 기준이 되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 역사에 기록된 상징적 사건은 20세기 일본의 패망과 부활이다.
태평양 전쟁이 끝난 후 1945년 9월 1일, 미 해군 미주리함 상에서 승자를 대표한 맥아더 (MacArthur, 1880-1964) 원수와 패자를 대표한 일본 대표단이 항복 조인식을 끝내고 맥아더 원수는 짧지만 역사에 남는 연설을 했다. 그는 승자의 오만함을 드러내거나 패자에 대한 보복과 응징을 다짐하거나 가혹한 배상을 요구하지 않고 인류의 숭고한 이상과 희망을 달성하기 위해 자유(freedom), 관용(tolerance), 정의(justice)를 함 께 추구해 나아갈 것을 호소했다.
그는 일본 점령군 최고사령관으로서 일본으로 하여금 자유주의 체제 국가로 부활시키고 문명국가로 개변하는 안내자 역할에 성공했다. 그의 연설이 링컨 대통령의 재선 취임 연설 냄새를 풍기는 것은 결코 우연일 수 없다. 건국 조상 이래 미국인의 사상이 면면히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는 흔적이기도 하다.
맥아더 원수는 미국 건국 조상 이래 지켜온 미국인의 가치, 미국인의 사상에 바탕을 둔 자신의 소망을 역설함으로써 패배감에 젖어 있던 일본 국민을 다시 일으켜 세웠고, 훗날 일본으로 하여금 아시아 국가 중 유일한 G-7 선진국 대열에 합류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줬다.
당시 현장에 참석 했던 일본 외교관 카세 토시카즈(加瀨俊 一)는 인상적인 기록을 남겼다. 그는 맥아더 원수 모습을 빛과 같은 존재로 묘사하면서 1945년 9월 1일을 일본 역사상 가장 빛나는 날로 기억될 것이라고 예언하면서 다음과 같은 명언을 남겼다.
“결국 우리는 전쟁터에서 미국의 우세 한 군사력에 패배한 것이 아니라 그들의 고귀한 사상, 정신적 경쟁에서 패배하였다.”
19세기 일본 근대화는 미국의 군사력이 촉발시켰다면, 20세기 일본의 선진화는 미국의 사상이 작용한 결과이다. 우리가 어떤 시대에 살아가고 있는가를 알고 있어야만 개인은 물론 국가와 국민이 올바른 길로 나아갈 수 있고, 국가적 역량을 집중적으로 발휘할 수 있다. 우리가 살아가는 시대는 글로벌 시대, 지식산업 시대, 무한경쟁 시대이다. 글로벌 시대는 인간의 활동 범위가 글로벌(global, 지구)임을 뜻한다.
따라서 인간은 열린 시각, 열린 사고를 필요로 하고 배타적 민족주의는 독소로 작용한다. 지식산업 시대는 최고의 지식을 요구하는 시대이므로 최고 수준의 교육환경을 조성하고 최고 수준의 인재 양성에 투자를 아끼지 말아야 한다.
따라서 평등주의 교육 정책은 지식산업 시대를 역행하는 최악의 정책이다. 무한 경쟁 시대는 최고 수준의 기술과 정보를 필요로 하는 시대이므로 개인과 기업과 정부의 유기적 협력 체제가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하게 된다.
우리나라는 사상 분단 국가, 정치 후진 국가이다. 따라서 사상 분단 극복과 정치 발전은 국가가 직면하고 있는 제일가는 과업이다. 사상 분단 극복과 정치 발전 없이 통일과 선진국 도약은 불가능하다. 남한의 자유주의 체제가 북한과 남한의 종북 주체 사회주의자들로부터 심각한 위협을 받고 있고 권력정치와 민중민주주의가 대의민주주의 정치를 위협하고 있음을 직시하지 않으면 안 된다.
우리는 갈등사회, 불신사회, 좌경화가 심화되어 가고 있는 사회에서 살아가고 있으면서 국가 에너지를 소진하고 있다. 갈등 양상은 다양하고 깊다. 사상적 갈등, 계층간 갈등, 지역 갈등이 시간이 경과할수록 깊어지고 있다.
이러한 갈등이 약화 되고 해소되지 않는 한 성숙한 사회 발전은 불가능하다. 특히 사상적 갈등과 충돌로 인해 정치에서 관용과 타협은 찾아볼 수 없고 증오와 보복 정치가 정상적 현상인 것처럼 굳어져 가고 있다.
사회 갈등은 필연적으로 불신사회를 조장한다. 정치인, 관료, 법조인, 언론인, 지식인을 신뢰할 수 없는 사회만큼 불행하고 암울한 사회는 없다. 불신 사회란 희망보다 거짓과 좌절이 지배하는 사회다. 한국 사회는 갈등과 불신이 깊어지면서 급속도로 좌경화 되어가고 있음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현대사 70년은 짧지 않은 세월이다. 그러나 자유주의 역사 300여 년에 비하면 이제 시작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난 300여 년에 걸쳐 전개된 세계사는 자유주의 체제 발전과 승리의 역사였음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자유 대한민국을 지키고 자유 통일을 바라는 모든 국민과 시민 역시 그 연장선상에 있음을 확신하면서 자신있게 나아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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