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통신위원회가 지난 2주간 KBS 이사회와 MBC 방송문화진흥회 이사 후보자를 공모한 결과 KBS 이사에 49명, 방문진 이사에 27명이 지원했다. 과거 공모 사례로 볼 때 지원자수가 대폭 감소한 것이 눈에 들어온다. 2009년에 KBS 이사에 114명, 방문진 이사에 119명이 지원했고, 2015년에는 KBS 이사에 97명, 방문진 이사에 54명이 지원했다고 하니 시간이 갈수록 확실히 이사 지원자 수는 줄어드는 추세다. 차기 공영방송 이사회 이사 지원자가 감소한 이유는 아무래도 방통위가 이번 공모에서 중복지원을 금지하고 지원자 명단을 공개하기로 해 검증이 부담이 된 것이 주요 원인이 아닌가 싶다. 다른 이유도 추측해 볼 수 있다. KBS와 방문진 이사 자리가 과거처럼 더 이상 매력적인 자리만은 아니라는 것이다. 언론노조와 그 연계단체 세력이 갈수록 활개를 치면서 자리가 주는 이익만 평안하게 누리기 어렵게 되었기 때문이다.
언론노조 세력 뜻을 거스르거나 방해가 된다면 그 연계단체와 좌파매체들의 표적이 되기 십상이고, 언제 어디서든지 공개망신을 당할 수 있다. 온갖 소송을 걸어오는 것은 물론이고 필요에 따라 수단 방법을 안 가리는 공격에 심신이 피폐해지는 경우도 있다. 특히나 지난 보수정권 아래 공영방송 이사들이 당한 여러 수모들을 지켜보면서, 지킬 것이 많은 명망가들이나 심약한 인사들은 선뜻 지원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어찌됐든 이번 방통위 공모를 지켜보면서 필자는 몇 가지 이해하기 어려운 문제점을 지적하고자 한다. 방통위가 이번에 채택한 소위 국민의견수렴형 이사 선임방식은 이사 선임 과정의 투명성을 높이라는 국민적 요구와 거리가 먼 일종의 꼼수에 불과하다. 특히 이사 지원자가 추천을 받은 경우 추천인이나 추천단체, 추천 사유를 공개해야 하는데, 그저 지원자 신상정보만 홈페이지에 던져 놓는 것으로 마치 할 일 다했다는 식의 태도를 보이고 있다.
방통위는 추천자 공개해야
그러나 방통위의 이러한 행태는 정치권의 그야말로 나눠먹기 밀실추천을 정당화하는 것 밖에 되지 않는다. 정당 추천이란 기존 관행이 나쁘다는 얘기가 결코 아니다. 다만 정당 추천일 경우 오히려 더 투명하고 당당해야한다는 것이다. 자유한국당이 추천한 김석진 방통위 상임위원은 미래한국과 인터뷰에서 이사 공모와 관련해서 매우 중요한 말을 했다. “정파적으로 대립하는 여야 간 비율을 정해 균형을 맞추는 것 자체가 국민을 대표하는 국회가 민심을 반영하는 것” “국민의 대표기관인 정당 추천은 야당의 목소리를 반영할 수 있는 통로”란 것이다. 이 말을 풀이하면, 정당 추천을 받은 인물이라면 민의를 반영할 수 있는 확실히 검증된 인물이어야 한다는 얘기다. 그러나 그동안 정당 추천을 받았던 공영방송 이사들은 어떠했나. 민주당 추천은 별개로 보수야당 추천 이사들 사례만 보면, 그중에는 자질이 부족한 낙하산 인사들이 많았다. 그들 대부분은 공영방송과 언론현실에 대한 문제의식이 없거나, 정체성이 오락가락한 인물로 운 좋게 줄을 잘 타 한 자리 차지한 언론무식자들이었다.
예를 한번 들어보자. 언론노조를 비판하는 자유한국당이 만일 과거 언론노조 진영에서 활동한 경력자를, 언론노조를 견제하고 공정보도를 주문해야 할 공영방송 이사로 추천한다면, 이게 제정신에서 나온 추천이라고 할 수 있을까? 상식 있는 사람들이라면 고개를 저을 것이다. 그런데 방통위는 추천인, 추천단체, 추천 사유 공개는 막아놓아 정당이 내부 밀실에서 권력자 몇몇이 짜고 황당한 낙하산 인사를 할 수 있도록 사실상 길을 터주었다. 이게 이번에 공영방송 이사 선임에 있어서 필자가 가장 우려하는 일이다. 이런 식이 허용된다면 정당 추천이야말로 국민 뜻과는 무관한 그야말로 밀실야합, 나눠먹기 인사라는 최악의 추천제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 국민 의견을 수렴한다는 방통위가 지원자들 신상털이는 허용하면서 정작 국민 뜻을 거스르는 이런 밀실추천은 가능하도록 조치한다는 게 말이나 되나. 방통위는 지원자들 신상공개 시 추천인, 추천단체, 추천 사유까지 전면적으로 공개하길 바란다.
진정한 국민의견 수렴에 실패한 공모제
또 다른 문제로 소위 시민의견 수렴이라는 명분을 내세운 공영방송 이사 지원자 명단 홈페이지 공개가 있다. 이건 국민검증, 혹은 시민검증이라는 명분으로 언론노조와 좌파세력의 일방적인 여론몰이를 허용하자는 것이나 다름없다. 그들이 입맛에 맞는 이사들을 선임하기 위해 이 제도를 어떻게 악용할지는 안 봐도 훤하다. 방통위는 인신비방과 명예훼손을 막겠다고 하지만 어떻게 막을지 구체적인 대안을 내놓지도 않았다. 일단 신상공개가 되면 특정 지원자를 찍어내기 위해 시민단체와 언론, 정당이 총동원해 무차별 여론몰이 마녀사냥을 벌여도 방통위가 딱히 막을 방법이 없다. 법적 대응을 한다지만, 물이 엎질러진 마당에 뒤늦게 나선다고 무슨 소용이 있겠나. 김환균 언론노조 위원장이 공동대표인 ‘방송독립시민행동’이란 단체가 제보센터를 운영하고 공개적으로 이사 후보자들을 검증하겠다고 나섰으니 광풍을 피해갈 도리가 없을 것이다.
문제는 또 있다. 국민의견수렴용 지원서에 담긴 직무수행계획도 공개하도록 하는 것이다. 공영방송 이사들은 방송법과 방문진법, 이사회 내부 운영 규칙에 따라 각각 직무를 수행하면 될 일이다. 그런데도 굳이 불필요한 정보까지 공개 해 비전문가인 일반 시민들로 하여금 이사들이 수행해야 할 구체적인 직무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평가하도록 한다는 게 논리적으로 타당한 일인가. 그렇기에 직무수행계획 공개가 일반 시민이 아닌 공영방송을 노리는 특정 세력을 위한 것이라는 의심을 할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방통위가 아무런 타당성이 없는 데도 공개를 밀어붙이는 건 한 가지 목적으로 밖에 이해할 수 없다. 여론몰이와 마녀사냥을 위한 목적 말이다. 결론적으로 방통위의 이번 공영방송 이사 공모제는 진정한 의미에서 국민의견 수렴에서 완벽히 실패했다는 게 필자의 평가다. 정치권의 밀실추천이 여전히 가능하도록 했고, 좌편향 세력의 광적 여론몰이 가능성을 활짝 열어주었기 때문이다. 이런 엉터리 공모제를 통해 방통위가 배출할 차기 이사진이 공영방송을 어떻게 말아먹을지 앞날이 캄캄하다.
박한명 언론인·미디어비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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