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급좌담] 자유 민주주의 위기 (상)
[긴급좌담] 자유 민주주의 위기 (상)
  • 박주연 미래한국 기자
  • 승인 2018.05.24 1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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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민주주의에서 자유는 수식어가 아닌 요체
북한 인민민주주의와 한국 자유민주주의는 양립 불가능


바야흐로 민주주의 만능시대에 민주주의란 무엇인가에 대한 근원적 질문이 새삼 제기되는 시절로 접어들었다. 마치 늘 공기를 마시면서도 공기가 무엇인지 모르는 것과 같은 이치 아닐까? 수년 전 지난 정부에서 논란이 됐던 역사교과서 자유민주주의 논쟁과 개헌을 둘러싼 자유의 삭제 논란까지. 자유민주주의에서 자유를 뺀다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 그리고 그것은 우리 삶과 국가의 미래에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될까?

<미래한국>은 이 같은 근원적 의문에 대한 답을 찾고자 제성호 중앙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와 장영수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두 분을 모시고 긴급좌담회를 열었다. 좌담회 진행은 한정석 미래한국 편집위원이 맡았다. (편집자 注)

참석자│제성호 중앙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장영수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사  회│ 한정석 미래한국 편집위원
정  리│ 박주연 미래한국 기자 
사  진│ 백요셉 미래한국 기자

사회자  오늘 이 자리에 헌법 전문가 장영수 고려대 교수님과 제성호 중앙대 교수님 두 분을 어렵게 모셨습니다. <미래한국>이 이런 자리를 마련하게 된 계기는 자유민주주의와 ‘자유’가 빠진 민주주의를 놓고 사회적 대립과 갈등이 심화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역사교과서에서 자유민주주의 대신 자유를 삭제한 민주주의로 바뀌어 여전히 논쟁중이고, 특히 최근엔 헌법 개정에서도 자유를 뺀 개정 논란이 일었습니다. 자유민주주의가 무엇인지에 대해 두 분 교수님의 자유로운 의견 개진과 말씀을 듣고 싶습니다.

제성호  저는 자유민주주의를 자유주의와 민주주의의 결합으로 봅니다. 자유주의라고 하는 건 인간의 존엄과 가치, 개인의 자유와 인권을 최고 가치로 삼는 이념이죠. 저는 이걸 내용이라고 봅니다. 민주주의는 민(民)이 주인이 되는 것이기 때문에 다수의 지배라고나 할까요? 여기서 다수결의 원칙이 나오고 의회제도가 나오고요. 형식적 절차적 이념이라고 봅니다.

자유민주주의라고 할 때 자유를 빼면 앙꼬 없는 찐빵이 되는 것이죠. 민주주의 앞에는 여러 수식어가 붙습니다. 인민민주주의, 민중민주주의, 숙의민주주의, 교도민주주의, 참여민주주의, 한국적 민주주의 등, 북한을 포함한 공산주의자나 사회주의자들도 자신들이 민주주의를 한다고 말합니다.

자유가 바탕이냐 아니면 집단의 가치를 우선시 하느냐 이 기준에 따라 민주주의가 달라지는 것이죠. 따라서 자유민주주의와 민주주의가 같은 것이라고 주장하는 건 말이 안 된다는 겁니다. 자유민주주의에서 자유를 뺀다는 것은 국가 정체성을 흔드는 것이지요.

70년 이상 역사를 가진 우리 헌법은 헌법학계에서 이론도 발전해오고 학문적 내용도 깊어졌습니다. 제가 이해하기로는 대한민국이 1948년 헌법을 만들었을 때 당시 창고에 있던 헌법은 미국식 헌법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대한민국 건국을 주도한 이승만 대통령은 미국적 가치와 자유민주주의를 보고 나라를 만드셨죠.

물론 다른 나라의 예도 참고했겠지만 미국의 자유민주주의를 우리의 좋은 모델로서 우리나라에 이식한 것이죠. 헌법 전문을 보면 그때는 자유가 빠진 민주주의란 단어를 썼어요. 그 이후로 자유민주주의를 헌법에 넣은 것인데요, 그렇다고 해서 대한민국 건국 때 자유민주주의가 아닌 민중이나 인민이 들어간 민주주의인가, 그건 아니라는 겁니다. 우리나라의 역사 발전은 자유민주주의 발전의 역사로 봐야 합니다. 물론 그 안에 모순과 부조리도 있었지만 우리 스스로 그걸 극복해온 과정이었어요.

자유민주주의에서 자유를 떼려는 이유

2011년에 교육과학기술부에서 2013년 중·고등학교 역사교육 과정을 어떻게 할 것이냐를 놓고 논란이 있었습니다. 저는 그때 민주주의란 표현을 자유민주주의로 원래 헌법 정신에 맞춰 돌리는 정상화 노력을 했었는데요, 소위 진보좌파 세력이 “안 된다”고 해서 논란이 된 것이죠. 그 이후 박근혜 정부 때까지는 큰 문제가 안 됐는데 문재인 정권으로 바뀌자 다시 자유민주주의에서 자유를 빼겠다고 해서 지금 논란이 재점화 되고 있는 겁니다.

대한민국 역사는 순수하게 역사에 맡겨야 하는데 자꾸 이념이나 정치적 논란으로 삼는 건 적절하지 않다고 봅니다. 저는 우리나라 역사학계를 진보좌파 세력이 장악하고 있다고 봐요. 이 이야기는 나중에 다시 언급하기로 하고요. 본 이야기로 돌아가서 이야기하면, 자유민주주의와 민주주의는 동일한 게 아니고 우리 건국이념은 애초 개인의 인권과 자유를 밑에 깔고 있는 자유민주주의가 우리 헌법 정신이라는 점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장영수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장영수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장영수  민주주의에 대한 이해는 다양할 수 있다고 봅니다. 실제 정치학자 뿐 아니라 다른 분야의 학자들도 ‘내가 생각하는 민주주의는 이런 것’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지요. 또 그 중에서 어떤 논리가 절대적이라고 말하기도 어렵고요. 문제는 법적으로 전혀 그렇지 않다는 겁니다. 특히 헌법상 민주주의를 이야기할 때, 민주주의가 하나의 기본원리로 헌법에 들어 있고, 거기에 따라 합헌과 위헌을 가르는 기준이 됩니다. 관점에 따라 달라지지 않습니다.

헌법상 민주주의는 분명해야 합니다. 따라서 이런 문제들에 있어 1차 기준은 헌법이 민주주의를 어떻게 이해하고 있느냐이지요. 과거 통진당의 경우도 위헌적 정당이라고 해산하지 않았습니까? 헌법상 민주주의를 이해하는 게 출발점이 되어야 합니다. 그 바탕 위에서 볼 때 민주주의 이념 속에 자유와 평등이 동시에 들어가는 것이죠.

우리 헌법은 민주주의 안에 자유와 평등, 인권을 모두 담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구체화하기 위해 다수결이나 복수정당제나 이런 제도를 필수적 요소로 인정합니다. 이러한 헌법적 관점에서 볼 때, 헌법에서 말하는 민주주의는 우리가 말하는 자유민주주의는 같다는 겁니다. 그러면 굳이 자유란 단어를 떼어내도 민주주의는 민주주의고 헌법상 민주주의가 달라지지 않는다는 것이죠. 그러면 저는 그 주장에 거꾸로 묻습니다.

헌법상 민주주의라면 자유를 떼나 안 떼나 다르지 않다면 왜 굳이 떼어 내려고 하느냐는 겁니다. 그랬을 때 자유를 떼자는 쪽의 의도가 문제가 되는 것이죠. 우리가 그동안 헌법상 민주주의를 이야기했을 때 자유통일이 다 들어간다는 것은 제헌헌법부터 지금까지 70년 동안 일관되게 인정해왔던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유민주주의를 계속 써왔던 것은 북한과의 차별화 때문이지요. 북한이 인민민주주의를 이야기할 때 북한이 주장하는 것과 우리가 체제로서 주장하는 것은 다르다는 겁니다. 민주주의라는 것이 마치 정당성의 도구처럼 좋은 정부를 말할 때 민주주의를 빼고 이야기하면 안 되는 것처럼 돼 버리다 보니, 우리 역사상 최악의 독재정부라 했던 유신체제도 한국적 민주주의라고 스스로 이야기했었고, 북한도 인민민주주의 혹은 진보적 민주주의란 이야기를 하고 있고요. 그게 우리가 말하는 진정한 민주주의는 아니거든요.

사회자   민주주의에 대한 개념이 다양할 수 있다면 대한민국의 자유민주주의와 북한의 인민민주주의는 어떤 점에서 다를 수 있겠습니까? 주권재민의 원칙에서 보자면 결국 ‘권력은 인민으로부터 나오는 것’일 테니까요.

제성호 중앙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제성호 중앙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제성호   우리는 공화국으로 출범했습니다. 반만년의 역사에서 군주국가에서 주권재민의 역사와 함께 공화국으로 발전하면서, 각 개인의 인권과 자유를 존중하는 이념을 토대로 한국 민주주의가 발전해온 역사로 보는 게 맞습니다. 물론 우리 내부 안의 갈등과 모순도 있었지만, 슬기롭게 극복해서 민주주의를 발전시키고 경제 발전을 이룩하는 토대가 된 것입니다.

북한은 소위 인민주권 혹은 인민민주주의로, 남(南)의 자유민주주의와 북(北)의 인민민주주의 결과물이 어떤 것인지 지금 보여주고 있잖습니까? 북의 인권 탄압과 3대 부자세습 체제와 독재, 유일사상에 비해 우리는 정권의 교체와 민주주의 발전, 사상의 다양성 등에서 극명하게 대비됩니다.

자유민주주의와 민주주의가 같다고 말하는 사람들은 민주주의라는 이름하에 자유민주주의가 아닌 다른 이념을 끌고 들어와 대한민국의 국가 정체성을 바꾸려는 의도가 있다고 봅니다. 개인적인 에피소드를 하나 소개하겠습니다.

조국 민정수석과 제가 2006년인가 2007년 초에 토론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그때 우리 보수우파 진영은 자유민주주의 국가 이념과 정체성을 수호한다는 입장을 갖고 있다고 하니 그 사람들은 국가 정체성의 재구성을 이야기했어요. 대한민국의 자유민주주의 건국이념을 바꾸겠다는 것이죠. 또 문재인 대통령은 대한민국 주도세력을 교체하는 것이 자기 평생의 꿈이라고 했어요.

그 분 밑바탕의 철학과 생각이 그렇습니다. 혁명적인 생각이죠. 이 사람들은 대한민국 보수우파를 적대시하면서 대한민국 자유민주주의 세력을 앙시앙 레짐으로 보고 혁명을 한다고 말하고 있어요.

과거 2002년에 노무현 대통령도 시민혁명을 이야기했잖아요? 프랑스대혁명 시대의 프랑스와 오늘날 대한민국이 전혀 다른데도 등치시키는 위험한 인식을 갖고 있는 겁니다. 상당히 위험한 생각입니다. 국가 정체성의 재구성과 국가 정체성 수호, 우리 사회 진보와 보수가 이 두 가지를 놓고 이념적으로 싸우고 있다는 게 건국 70년 현재 우리의 자화상입니다.

장영수   우리가 구분해야 할 건 헌법적, 규범적 관점에서 봤을 때 막연한 정당성 논리가 아니라 명확한 기준으로 볼 때 그것이 민주주의인지, 수용할 수 있는지 없는지 여부를 따질 수 있다는 겁니다. 매우 중요한 비교 대상이 될 수 있는 것이 독일 나치입니다. 나치는 민주적 절차에 따라 다수의 지지를 얻어 집권해 민주주의를 파괴했습니다.

주목할 부분은 당시 히틀러 세력, 나치당은 공공연히 자신들은 민주적 수단으로 권력을 쥐어 낡은 민주주의를 없앨 것이고, 그리하여 독일 국민 전체가 하나가 되는 전체주의 국가를 만들 것이라고 말했다는 겁니다. 나치가 그런 주장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독일 국민은 ‘그게 뭐가 문제냐’는 태도였고, 결국 다수결이란 민주적 절차에 따라 집권하여 직접 민주주의를 파괴한 겁니다. 그게 과연 민주주의의 올바른 태도인가 라는 측면에서 ‘민주주의의 자살’이라는 반성이 있었습니다.

결국 나치가 붕괴된 이후 같은 역사를 반복하지 말아야 한다는 반성이 있었습니다. 그때 나온 것이 방어적 민주주의로 2차 세계대전 이후 서독기본법에 최초로 등장했는데요. 그 핵심은 민주주의는 다양한 사람의 생각과 다양한 가치, 의견을 수용할 수 있어야 하지만 한계를 둬야 한다는 것입니다. 결국 인권과 다수결 등을 인류 보편 가치를 부정할 경우 민주주의는 스스로를 방어해야 한다는 것이지요. 민주주의 근본 핵심 가치를 정해놓고 어떤 경우라도, 설령 다수라도 침해하지 못한다고 정해놓은 겁니다.

자유와 기본권이 민주주의의 핵심

그 전제를 바탕으로 ‘이건 민주주의가 맞다’, ‘이걸 부정하는 것은 민주주의의 카테고리가 아니니 제거해야 한다’ 판단하는 것입니다. 나치 잔당을 위헌정당으로 해산시킨 것도 그런 판단에서 나온 것이고요. 그런 맥락 속에서 볼 때 북한의 민주주의는 민주주의가 아닙니다.

또 우리 헌법도 그런 전제에서 서 있고요. 주목할 건 우리가 인민민주주의와 자유민주주의를 대립관계로 볼 때, 마치 영국식 민주주의가 있고 독일식 민주주의가 있는 것처럼 민주주의라는 하나의 뿌리에서 나온 것처럼 보는 경향이 있는데 그래선 안 된다는 겁니다.

우리의 자유민주주의와 북한 인민민주주의는 민주주의 카테고리 안에 들어가느냐, 안 들어가느냐의 문제이지 접점을 찾아 그 중간쯤에서 통일하자의 문제가 전혀 아니라는 겁니다. 헌법 4조에 통일조항이 있습니다.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입각한 평화적 통일을 지향해야 한다’고 돼 있는데, 인민민주주의 통일은 그런 통일이 아니기 때문에 그 자체로 위헌입니다. 결국 단순한 용어만의 문제가 아니라 인민민주주의를 수용하기 위한 전제로서 자유를 떼는 것 자체가 위헌입니다.

제성호   제가 추가로 좀 더 설명하고 싶습니다. 남북한의 관계를 옛날 1950~1960년대에는 단순히 민주주의와 공산주의 대립으로 설명한 적 있습니다. 그때는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이라고 했지만 공산주의자들도 스스로 사회주의, 공산주의란 단어로 이야기했지 인민민주주의를 말하지 않았어요. 북한에서 인민민주주의 혁명단계는 1948년부터 1972년 이전까지입니다.

1972년부터 사회주의로 들어갔지요. 민주주의 역사는 자유와 인권 신장의 역사, 자유민주주의 발전의 역사입니다. 그렇게 여겨왔는데 그 후 몇 십 년이 지나다보니 민주주의에도 앞에 온갖 수식어를 많이 쓰는 흐름이 나온 겁니다.

사회주의자의 최종 지향점은 전 세계의 적화이고 혁명인데 자기들이 그런 지향점을 확대해 가는 데 있어서 소위 레드콤플렉스가 있다 보니 ‘우리는 사회주의, 공산주의를 한다’ 이렇게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민주주의를 하자면서 통일전선으로 나간 겁니다.

그러니 지금이야말로 우리가 발전시켜온 자유민주주의 내용을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아까 제가 자유민주주의를 자유주의와 민주주의의 결합이라고 한 것은, 정치학자들은 마땅히 그렇게 설명하는데 헌법교과서에는 그렇게 설명하는 게 많지 않아서 그렇습니다.

개헌 정파적 계산으로 이뤄지면 안 돼

사회자   두 가지 정도로 요약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장 교수님은 헌법적 민주주의에 이미 자유 평등과 같은 자유민주주의 요소가 다 들어 있기 때문에 구별할 필요가 없다, 헌법에서 말하는 민주주의란 개인의 기본권, 자유 이것을 보장하려는 것이기 때문으로 이해하면 될 것 같습니다. 궁금한 건 우리가 사회적이란 말을 많이 쓰는데요, 독일은 개인의 기본권을 강화한다고 하면서 한편으로는 소셜이라고 사회주의적 법철학도 녹아 있는 것 같은데 어떻습니까?

장영수   사회주의 안에 막시즘만 있는 게 아니라 스펙트럼이 상당히 넓습니다. 사회주의는 생시몽 등 초기 공산적 사회주의로부터 시작해 온건한 사회주의에서 급진적 사회주의까지 다양한 형태로 있습니다. 독일은 헌법을 구성하는 원리인 민주주의가 첫째고, 둘째는 법치주의, 셋째는 사회국가입니다. 사회국가는 말하자면 온건한 사회주의예요. 그리고 이것은 민주주의 틀 안에서 민주주의와 결합할 수 있을 정도이지 사회주의 혁명을 추구하는 것과는 양립할 수 없는 것입니다. 사회적 약자의 인권을 존중하고 돕는 범위로 생각하면 됩니다.

현재는 과거 자본주의 경제체제를 그대로 유지하기 어려우니 최소한 약자들이 인간다운 삶을 살도록 보장해줘야 한다는 것이지요. 그것은 바이마르 헌법에서 시작돼 이어져 오면서 오늘날 세계적으로 확산됐고, 서구 영미식에서도 오바마 케어 등에서 볼 수 있듯 부분적으로 수용하고 필요하다고 인정하는 정도입니다. 그런 맥락에서 봐야지 사회주의를 곧 공산주의로 이해하면 곤란합니다.
 

사회자   개헌을 하자는 쪽이 있고, 한국당은 안 하겠다는 입장입니다. 87년 헌법 이후로 현재 상태가 계속되는 게 좋다고 보시는지 궁금합니다.

장영수   전제부터 다시 봐야 합니다. 정부 여당이 하자고 지금까지 이야기를 했는데 저는 진정성을 의심합니다. 대선 후 국회 1년 동안 개헌안을 못 낸 건 문제입니다. 저도 개헌특위자문위원을 지냈지만 야당 탓에 개헌이 안 됐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여당도 그 못지않게 소극적이었어요. 여야 모두의 공동 책임입니다. 3월 26일 대통령 개헌안이 나왔고, 개헌을 정말 하고 싶었다는 말을 했는데요, 저는 진심이 아니라고 봅니다.

현재 국회 구성으로 보면 야당이 반대하는 상태에서 개헌이 안 된다는 것은 뻔합니다. 정부 여당이 모를 리가 없지요. 진짜 개헌할 의도가 있었으면 발의부터 할 일이 아니었습니다. 개헌안을 공개하고 야당과 협상해 접점을 찾은 뒤 발의해야 하는데, 그렇지 않았어요. 개헌안은 발의하면 수정이 불가능합니다. 발의하면 폐기하거나 통과시키거나 둘 중 하나만 남는 거예요. 수정이 불가능한데 발의부터 하고서 안을 받으라고 하는 건 말이 안 되지요. 그래서 진정성이 없다고 보는 겁니다.

심지어 이런 이야기들까지 나와요. 정부 여당이 개헌을 선거용으로 이용해왔지만 선거 끝난 뒤 과연 개헌하려고 할까 하는 문제지요. ‘야당 때문에 못했으니까 우리는 모른다’ 이렇게 발을 빼려는 게 아닌가 의심한다는 겁니다. 야당은 야당대로 국민과 약속한 게 있기 때문에 이번 선거에서 크게 승리한다면 모를까, 야당이 할 수 있는 건 결국 개헌을 가지고 다시 드라이브를 걸어 정국 주도권을 가지려는 노력입니다. 저는 야당이 개헌 안하겠다고 나올 것으로 보진 않습니다.

제성호   야당이 개헌 안 하겠다고 하면 ‘무슨 소리냐’고 반론을 받을 겁니다. 왜냐하면 야당은 이번 지방선거와 같은 시기에 개헌을 하면 모든 게 그 논의에 빨려 들어가게 되고 따라서 모든 선거를 망칠 것이라는 판단 하에 반대했던 것이니까요. 자기들의 개헌안도 준비돼 있지 않던 상황 아닙니까. 그 후에 정종섭 의원 중심으로 개헌안을 하나 만든 것 같습니다.

아직 공개는 안 한 것 같은데 그 안에는 분권형 대통령제를 이야기하고 있어요. 정종섭 의원은 옛날부터 내각책임제에 좀 기울어진 사람이지요. 박근혜 대통령 탄핵을 비롯해 역대 대통령들이 감옥에 가는 등, 제왕적 대통령제의 폐해를 반면교사로 실질적으로 협업하듯 분권형으로 권력을 분산하겠다는 것이 골자입니다.

하지만 여당이 받을 의사가 없다면 개헌은 현실화될 수 없는 것이죠. 야당 의원들 대부분이 분권형 대통령제를 지지하는 것으로 저는 알고 있는데요, 현 집권당만 현행 헌법만으로도 자기들의 제왕적 권력을 유지할 수 있다고 생각해 개헌 현실화 가능성은 낮아질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야당이 개헌안을 들고 나오면 공세와 수세 입장이 바뀔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봅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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