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핵화를 위한 새로운 길 4월 27일 역사적인 남북 정상회담이 판문점에서 개최되었다. 남북관계의 진전, 군사적 긴장상태 완화, 그리고 평화체제 구축이라는 3개의 큰 틀 속에 13개항의 합의가 있었다. 비핵화 분야의 핵심적인 내용은 “완전한 비핵화를 위해 핵 없는 한반도를 실현한다”는 것이었다.
한반도 비핵화 부분이 구체적이지 못했다는 아쉬움은 있으나 ‘완전한 비핵화’라는 단어가 판문점 선언에 명시되었다는 점은 나름의 의미가 있다. 미국이 주장하는 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되돌이킬 수 없는 비핵화(CVID: complete, verifiable, irreversible, dismantlement/denuclearization)라는 모든 단어가 충족된 것은 아니지만 그 중에서 한반도 비핵화의 목표인 완전한 비핵화(complete denuclearization)가 포함되었기 때문이다.
검증가능하고 되돌이킬 수 없는(verifiable, irreversible) 것은 비핵화의 목표가 아니라 방법론이며 또 이것은 미북 회담에서 결정될 내용이기에 남북 정상회담에서 이를 논하기에 한계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남북 정상회담이 마무리되면서 미북회담이 세계의 관심으로 부상하고 있다. 5월 중에 판문점에서 열릴 가능성이 높아졌다.
만일 판문점에서 미북 정상회담이 개최된다면 미북 정상회담 직후 판문점에서 곧바로 남북미 정상회담도 개최될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되면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체제라는 전대미문의 길이 열리게 될 것이다. 과연 그럴까? 정말 중국도 미국이 원하는 한반도 비핵화에 적극 협조할까?
오바마 대통령이 ‘핵 없는 세계’를 지향하면서 북한 핵에 대해선 전략적 인내(Strategic Patience) 정책으로 일관했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전혀 달랐다. 트럼프 대통령은 최대한의 압박과 관여(Maximum Pressure and Engagement)를 대북정책으로 내세웠다. 최대한의 압박은 경제 제재, 군사적 옵션, 대북 고립정책 등을 통해 북한을 대화의 장으로 나오게 하는 것이며 관여는 대화를 통해 핵문제를 해결한다는 것이다.
북한이 핵미사일 무력을 고도화할 때마다 트럼프 행정부는 유엔 안보리를 통해 대북 경제 제재를 강화하는 결의안을 채택했다. 이런 제재를 통해 북한 전체 수출의 90%를 차단할 수 있었고 북한으로 들어가는 물자도 제한할 수 있었다. 정유제품과 원유 공급 상한선도 제한했으며 추가 도발시 유류 수출을 제한한다는 것도 트리거 조항도 명문화했다.
북한의 해외 노동자 제한, 북한과 합작사업 금지 등도 시행되었다. 미국의 독자적인 대북제재도 한층 강화되었다. 각종 제재 법안이 만들어졌고 심지어 사실상의 ‘세컨더리 보이콧(제3자 제재)’을 가능하게 하는 법도 제정했다. 북한을 테러지원국으로 재지정하기도 했으며 북한을 국제사회와 고립시키는 고립작전도 시행했다. 2017년 9월부터는 매월 1회씩 군사적 옵션을 위한 훈련을 공개하기도 했다.
미 항공모함 3척이 동시에 한국작전구역(KTO)에 진입해 한국 해군과 함께 연합훈련을 진행하기도 했고 미국 스텔스 전투기 등 한미 항공기 250대가 참여하는 역대급 훈련도 선보였다. 심지어 족집게식 타격을 의미하는 코피(bloody nose) 전략을 노출하기도 했다. 트럼프 행정부의 최대한 압박정책이 효과를 나타내기 시작했다.
김정은 등장 이후 줄곧 플러스(+) 성장을 유지해 오던 북한의 경제성장이 2018년에는 최대 마이너스(-) 5%로 떨어질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무역이 급격히 감소함에 따라 장마당이라는 시장이 쪼그라들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북한의 송출 인력마저 복귀함에 따라 김정은의 통치자금마저 말라가고 있다.
외환 보유고도 바닥을 드러내고 있다. 이런 정세 속에서 김정은은 앉아서 굶어 죽을 것인가? 그렇지 않으면 다른 방책을 강구할 것인가? 김정은은 후자를 선택했다.
미국의 비핵화 정책은 최근에 빠른 시간 내에 해체를 의미하는 즉시(instant)라는 용어가 더해져 CVIID라고 불리기도 한다. 미국의 비핵화 목표는 현재핵과 미래핵은 물론 이미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과거 핵에 대해서도 완전한 비핵화를 이루는 것이다. 비핵화 방법은 검증가능하고 되돌이킬 수 없게(verifiable, irreversible)하는 것이다.
국제원자력기구(IAEA) 등 국제적 신뢰성을 가진 기구가 북한 지역에 들어가 사찰 활동을 하고 또 관련 시설이나 물자를 폐기, 폐쇄, 또는 제3국으로 이전함으로써 완전한 비핵화를 달성하는 것이다. 또한 미국은 완전한 비핵화 과정(process)이 길어지면 수많은 변수가 생길 수 있기 때문에 최대한 빠른 시간 내에(instant) 이를 종료시킨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빠르면 6개월, 늦어도 2년을 생각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북한 비핵화에 대한 보상은 리비아 방식이 회자되었다. 리비아 방식이란 완전한 비핵화 이후에 체제 보장, 미북 수교, 경제제재 해제, 경제 지원 등을 하겠다는 것이다. 일종의 비핵화 조건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현재까지 북한이 밝힌 비핵화의 목표와 방법 및 조건은 미국과 상당히 다르다.
최근에 북한이 결정한 문서와 발언에서 북한 비핵화의 단초를 찾을 수 있다. 북한은 2018년 4월 20일, 노동당 중앙위원회 7기 3차 전원회의를 통해 결정서를 채택했다. 결정서 내용은 북한이 핵무기 병기화를 실현했다는 것, 핵시험과 ICBM 시험발사를 중지하고 북부 핵실험장을 폐기하겠다는 것, 북한이 이를 중지한 것은 세계적인 핵군축을 위한 것, 그리고 북한에 대해 핵위협과 핵도발을 하지 않는 한 핵무기를 사용하지 않을 것이며, 그 어떤 경우에도 핵무기와 핵기술 이전을 하지 않겠다는 것이었다.
결국 북한은 사실상의 핵보유국으로서 핵군축에 동참하며 핵보유국이 지녀야 할 국제적 의무를 다하겠다고 결정한 셈이다. 판문점 선언에서 남북은 “완전한 비핵화를 통해 핵 없는 한반도를 실현”할 것을 약속했고 “한반도 비핵화를 위해... 각기 자기의 책임과 역할을 다하기로”했다.
여기에 대북 특사단 방북시 김정은이 “북한에 대한 군사적 위협이 없고 체제 안전이 보장된다면 비핵화 하겠다”고 밝힌 점과 김정은의 중국 방문시 밝힌 비핵화 방법 등을 종합해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다. 북한의 비핵화 목표는 과거 핵은 그대로 두고 현재 및 미래핵에 대해서만 비핵화 하겠다는 것이다. 비핵화는 단계적이고 동시적인 방법으로 진행하고자 한다.
단계적이란 비핵화의 단계가 크게 동결·불능화-폐기의 과정을 거치게 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고 동시적이란 비핵화의 단계마다 미국과 국제사회가 이에 상응하는 조치를 취해야 한다는 것이다. 비핵화 과정에서 비핵화 관련 목록서 제출, 사찰단에 의한 검증 및 사찰 실시, 관련 시설 및 물질의 폐기, 폐쇄, 제3국 이동 등이 이뤄지게 될 것인데 이에 대해 언급한 내용은 없다.
그러나 비핵화의 조건에 대해서는 북한이 2016년 7월 ‘정부 대변인 성명’이라는 형식으로 밝힌 5대 조건이 있다. 즉, 남한 내 미국의 핵무기 공개, 남한 내 핵무기 검증, 한반도에 핵 타격 수단 전개 금지, 대북 핵 불사용 천명, 미군 철수 등이다. 즉, 북한이 주장하는 한반도 비핵화의 최소 조건은 대북 불가침 약속, 미 전략자산의 한반도 전개 불가, 한미 연합훈련 중단, 미북 수교, 평화협정 체결 등일 수 있으나 최대 조건은 유엔사 해체, 한미동맹 해체, 주한미군 철수 등이라고 할 수 있다. 비핵화의 목표, 방법, 조건을 중심으로 양국의 차이점을 비교해보자.
먼저 목표면에서 미국은 과거·현재·미래 핵에 대한 완전한 비핵화이고 북한은 과거 핵은 그대로 둔 채 현재 및 미래 핵에 대한 완전한 비핵화이다. 방법면에서 미국은 검증가능하고 되돌이킬 수 없도록 하되 신속하게 비핵화한다는 것인데 반해, 북한은 단계별 비핵화에 상응하는 조치가 동시적으로 진행되어야 한다는 입장이다.
조건면에서 미국은 비핵화 후에 체제 보장, 경제 지원 등을 고려할 수 있다는 입장인 데 반해, 북한은 최대의 조건으로 주한미군의 철수를 고려하고 있다는 점이다. 최대 조건이 조금 완화될 수 있다는 가능성이 있다면 그것은 폼페이오 당시 CIA 국장이 부활절 때 북한 김정은을 만났을 때 주한미군의 철수를 요구하지 않았다는 점일 것이다.
북한 비핵화에 대한 트럼프 대통령의 최초 생각은 중국 역할론이었다. 중국이 적극적인 역할을 해준다면 북한의 비핵화는 달성 가능하리라 판단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은 중국의 어린아이다” “중국은 우리를 도와주지 않는다”고 하면서 중국을 독려했다. 그러나 중국은 북한의 폭주를 막지 못하자 트럼프 대통령은 “시진핑 주석과 중국의 노력에 감사하지만 그 동안 큰 효과가 없었다”는 트윗을 날리면서 “중국이 북핵 문제 해결하지 않는다면 우리가 하겠다”는 의지를 피력했다.
중국 역할론을 접은 트럼프 대통령은 중국을 때리기 시작했다. 미국은 중국을 최악의 인권 침해 국가의 하나로 규정한 ‘2018년 인신매매 실태 보고서’를 발표했으며, 미 상원은 미국 함정의 대만 방문이 가능하도록 한 ‘2018년 국방수권법안 수정안’을 통과시켰다. 또한 미 국무부는 13억 달러 규모의 대 대만 무기 판매를 승인했고 미 재무부는 중국의 단둥은행을 돈세탁 우려 기관으로 지정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국은 북한의 핵미사일 개발과 한미 연합훈련을 동시에 중단하자는 쌍중단(雙中斷)과 비핵화 프로세스와 평화체제 협상을 병행해서 추진하자는 쌍궤병행(雙軌竝行) 주장만을 되풀이 했다. 미국은 2018년 새해를 전후해 본격적인 대 중국 견제 정책을 추진하기 시작했다.
미국은 새로 발표한 국가안보전략서(NSS), 국가국방전략보고서(NDS), 국가핵태세검토보고서(NPR) 등을 통해 중국을 수정주의 국가, 전략적 경쟁자, 그리고 위협 국가로 묘사했다. 또한 중국의 경제적 군사적 팽창을 견제하기 위해 미국-일본-호주-인도를 연결하는 인도 태평양 전략(Indo-Pacific Strategy)을 발표하기도 했다.
또한 미국은 ‘대만 여행법’을 제정해(2018.3.6 발효) 미국과 대만의 고위 공무원들이 상호방문할 수 있도록 했다. 4월에 접어들면서 미국과 중국의 통상 분쟁이 수면 위로 부상해 미중간 경제 전쟁의 우려까지 낳기도 했다. 미중간 갈등이 지속되는 가운데 판문점에서 남북 정상회담이 열리고 또 5월 중으로 미북 정상회담이 계획되자 중국이 당황하기 시작했다.
한반도 비핵화를 위해 남북 대화와 미북 대화를 강조하던 중국의 모습은 자취를 감췄다. 중국은 3월 말 김정은 위원장을 중국으로 초대해 융성한 대접을 했다. 종전선언에 3국 또는 4국 정상이 참여할 수 있다는 판문점 선언이 나오자 중국은 왕이 외교부장을 급히 북한에 보냈다. 중국은 한국과 미국이 원하는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를 지지할까?
아니면 중국이 북한과 북한 핵을 미국과의 협상 칩으로 삼으면서 이를 방해하려 할까? 후자의 가능성이 더 높을 것 같다. 중국은 미국의 취하고 있는 대중 견제 정책을 우려하고 있다.
중국은 미국이 발표한 각종 보고서, 인도-태평양 전략, 미국 함정의 대만 방문을 허용한 2018 국방 수권법, 대만에 대한 미국산 무기 판매, 양국의 고위 공직자들이 상호 방문할 수 있는 대만 여행법, 그리고 일련의 통상 분쟁 등을 겪으면서 미국의 대중국 견제 정책이 점점 강화되고 있다는 점을 인식하고 있다.
중국도 미국의 이런 대중 견제 정책을 재견제하려면 북한 및 북한 핵을 대미 협상용으로 이용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미 이런 징후들은 포착되고 있다. 김정은의 방중 이후 단둥 당국은 4월 15일부터 북한산 수산물 수입 재개를 비밀 지침으로 하달했고, 중국 내 북한 근로자들의 철수가 중단되었으며, 북한 여성 근로자들이 비자 대신 도강증을 이용해 중국에서 불법으로 근로하고 있고, 한산했던 단둥과 신의주를 연결하는 북중 우의교가 현재는 교통 체증이 일어나고 있으며 북한에 가는 유조열차가 늘어났다.
중국이 대북제재에 구멍을 내고 있는 것이다. 중국은 폼페이오-김정은과의 회담에서 김정은이 주한미군 철수를 요구하지 않은 데 대해 강한 불만을 제기하기도 했다. 이에 따라 북한을 방문한 왕이 외교부장도 김정은에게 비핵화의 반대급부로 주한미군 철수를 강력하게 요구할 것이다. 사실 주한미군 철수는 북한의 비핵화와 바꿀 수 있는 거래가 아니다.
만일 북한이 중국의 의지에 따라 주한미군 철수를 요구한다면 이는 한국의 정치, 외교, 경제, 군사 문제를 송두리째 흔들게 될 것이고 한반도 비핵화는 물 건너가게 될 것이다. 미국과 중국이 갈등 관계로 빠져들수록 CVIID는 더 어려워질 것이다. 중국이 북한을 대미 협상의 칩으로 이용하고자 하는 유혹을 떨쳐버릴 수 없기 때문이다. 미국의 대 중국 설득이 CVIID의 또 다른 관건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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