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희롱 파문이 문화예술계를 뒤흔들고 있다. 논란에 오른 인물들의 면면은 각자의 분야에서 상당한 경력과 관록을 가진 경우라는 점에서 어쩌다 삐져나오는 사례들과는 주변에서 받아들이는 충격감이 크게 다르다.
미국을 중심으로 바람이 불기 시작한 성희롱·폭력 사건 고발은 ‘나도 그렇게 당했다’는 뜻의 ‘미 투’(me too) 운동으로 번졌다.
최근 우리 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성범죄 논란이 미국 ‘미 투’ 운동의 영향을 얼마나 받았는지는 가늠하기 어렵지만 계기가 되었다는 점은 부인하기 어렵다. 하지만 각 분야별로 폐쇄적 구조를 형성하면서 폭력적 권위를 휘두르며 군림하고 있었다는 사실은 뚜렷하게 드러나고 있다.
왜곡된 권위 앞에 대부분 편입되어 고개를 숙이거나 모른 척 외면하며 나눠 받을 떡을 챙기고 있었던 것은 아닌가 싶기도 하다.
그동안 문화예술계는 진영논리에 빠진 채 이념적 편가르기가 극심했던 분야로 인식되고 있다. 이른바 좌파 진영에 속한 개인이나 단체는 무슨 일이 있을 때마다 ‘표현의 자유’를 외치거나 우파의 비문화적 행동을 비난해왔다.
최근의 사태는 그들이 ‘문화정의’를 부르짖는 와중에도 음험한 권위적 폭력은 그 내부에서 공공연히 자행되고 있었다는 것을 생각하면 얼마나 심각하게 가면을 쓰고 있었는지를 드러낸다. 피해자들이 전하는 격분은 ‘이러고도 어떻게 살았나’ 싶을 정도다.
관련하여 궁금증이 생기는 부분은 그 많은 여성단체, 인권을 다룬다는 기관이나 단체에서는 별 말이 없는가라는 것이다. 내편이 아닌 경우에는 가차 없이 달려들어 물어뜯다시피 하던 경우가 한 두 번이 아니었지만, 이상할 정도로 조용하다.
‘우리 편’을 건드리면 건드릴수록 피해를 보는 것은 ‘우리’라는 생각을 하고 것은 아닌가? 여자 단원들이 연출자에게 성폭력을 당하고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계속 수발을 들도록 종용하고, 문제가 생겨도 이런저런 이유를 앞세우며 없던 일로 무마하려한 것으로 의심되는 극단 대표와 뭐가 다른가?
최근 부산국제영화제는 조직위원장에 이용관, 집행위원장에 전양준을 각각 선임했다. 두 사람은 영화제 운영과 관련하여 비리 혐의로 형사처벌을 받았다. 주변에서는 그것이 마치 우파 정부 시절의 부당한 압력의 결과였다는 식으로 우물거리지만, 이념과 상관없이 팩트를 덮어버리는 꼴이다.
공영방송 이사들의 행적에 대해서는 10원짜리 하나까지 뒤져 시비를 했던 무리들이, 엄연한 사실로 드러난 일까지 무시한 채 ‘명예 회복’ 운운하며 그 자리에 다시 박는 행위는 안하무인, 후안무치의 극치다.
성희롱 논란의 당사자들이 이런 저런 변명으로 당장의 상황을 모면하려 하거나 아예 피해버리려는 듯 회피하는 행태를 보이고 있는 부분, 비리행위자들이 보란 듯이 영화제에 복귀하는 행태가 이어지고 있는데도 ‘침묵의 카르텔’이 가동되고 있는 것이라면 대한민국의 문화예술계는 흑사병 시절의 유럽이나 다름없다.
그렇게 견고해 보이던 좌파의 문화권력이 안에서부터 무너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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