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지는 지난 466호 커버스토리 ‘문화체육관광부의 수상한 교양도서 목록’ 기사 이후 아이들이 어떤 책들을 접하고 있는지를 지속적으로 보도하고 있다.
그 과정에서 대한민국의 건국을 폄하하고 김일성을 띄워주는 책들이 조직적으로 추천되고 있는 정황을 포착한 바 있다. 2012년 10월 개관한 서울도서관에도 비중은 낮지만 “김정일 위원장의 서거를 애도한다”는 메시지가 포함된 종북서적들이 유통되고 있음을 밝혔다.
한편 조형곤 21C미래교육연합 대표는 전국 학교도서관들의 장서를 분석하는 작업을 오랫동안 진행해 왔다. 80개 초·중·고등학교 124만권의 도서 실태를 분석한 결과 전태일에 대한 책의 비중이 비정상적으로 높다는 사실을 밝힌 것도 조형곤 대표가 최초였다.
최근 그는 분석 샘플을 대폭 늘려 16개 시도의 68개 초등학교, 134개 중학교, 53개 고등학교를 대상으로 학교 도서관의 도서목록을 분석했다. 조 대표의 분석 결과를 요약해 정리한다.
전국 1만1000개 초·중·고등학교들은 매년 학교운영 예산의 일정부분(3%)을 도서구입 예산으로 활용한다. 그 비용은 대략 학교별로 연간 800만원에 이르며 전국적으로 계산하면 880억 원이 도서구입 예산으로 활용되고 있다.
학교 도서구입과 비치의 문제점
도서구입 과정은 다음과 같다. ①학년별 교과별 구입희망도서 목록 접수 ②도서선정위원회에서 최종 구입도서목록 작성 ③학교장 결제 후 행정실을 경유해 도서구입(수의계약 혹은 전자입찰).
일련의 과정에서 교육청이나 교육부의 역할은 크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권장도서를 선정해 발표하는 정도이고 학교도서관 도서 실태에 관한 담당 부서는 존재하지 않는 실정이다. 도서관에 대해서는 학교가 자율적으로 운영할 수 있는 권한이 충분히 부여돼 있는 셈이다.
학교도서관의 도서 구입에는 일반 도서관과는 다른 특성이 있다. 교육과정의 연장선상에서 특정도서를 학급 전체 학생들이 동시에 빌려 볼 수 있도록 도서관에 40권 정도의 수량이 비치돼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즉, 학교들이 도서관 운영에 부여된 자율(自律)을 어떤 방식으로 활용하느냐에 따라 그 학교도서관의 성향은 극단적으로 달라질 수 있다.
조형곤 대표의 세부 분석 결과 학교마다 차이는 있으나 구입도서 중 고전도서의 비중은 상당히 낮은 것으로 드러났다. 덧붙여 교총(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과 전교조(전국교직원노동조합) 교사 분포가 높은 학교에서는 다음과 같은 문제점들이 노출됐다.
‧ 인문고전도서 비율이 낮음.
‧ 교사용 또는 성인용 도서가 차지하는 비중이 지나치게 큰 학교가 있음.
‧ 현대적 관점과 시사분야의 도서 및 소설류의 비중이 지나치게 큰 학교가 있음. (주로 전교조 학교)
‧ 특정 저자의 단일 도서가 30~40권씩 집중적으로 구입. (주로 전교조 학교)
‧ 특정 출판사의 도서가 차지하는 비중이 큼. (주로 전교조 학교)
조형곤 대표가 말하는 ‘특정 출판사’에는 창작과비평사, 나라말 출판사 등이 있다. 이 중 나라말 출판사는 전교조 성향의 전국국어교사모임이 설립·운영한 회사다. 조사대상 134개 중학교에 보급된 나라말 도서는 학교당 많게는 805권부터 적게는 3권까지 그 편차가 매우 컸다.
전교조 교사의 비중과 나라말 출판사 도서 보유 비중은 비례하는 패턴을 보였다. 결국 “전교조 회원(전국국어교사모임)을 중심으로 출판사를 만들고 그 출판사에서 만든 책을 다시 전교조 회원이 많은 학교가 대량 구매해 주는 정황이 드러났다”고 조 대표는 주장했다.
현대사와 관련된 편중성 극심
학교도서관의 이념적 편중은 책들이 다루고 있는 현대사 인물들을 참고했을 때 가장 극단적으로 드러났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역시 전태일에 대한 학교도서관들의 ‘기이한 강조’다. 전태일과 관련된 책은 백범 김구를 제외하면 이승만, 김대중, 박정희, 정주영, 이병철 등 현대사를 상징하는 그 어떤 인물보다 많이 보급돼 있었다(1820권).
특히 중학교 도서관에는 전태일에 관한 책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조 대표는 “중학교 교육과정상에 문제는 없는 것인지 의문이 꼬리를 문다”고 주장했다. 현재 사용되고 있는 모든 출판사의 역사교과서들은 빠짐없이 그의 분신 자살을 다루고 있다.
천재교육이 발간한 ‘고교한국사’ 교과서 341페이지에는 “전태일의 죽음이 한국 사회에 미친 영향을 조사하여 발표해 보자”는 활동 과제가 제시돼 있기도 하다.
삼성그룹 창업자인 이병철을 검색어로 도서를 찾아보니 266권의 책이 있었고, 현대그룹 창업자인 정주영은 436권이었다. 한국 현대사의 중요 인물이라 할 이병철 정주영 두 기업인에 관한 책이 모두 702권임을 볼 때 1820권의 전태일에 대한 강조가 얼마나 노골적으로 진행되고 있는지를 확인할 수 있다.
이와 같은 분포에는 2005년부터 시행되고 있는 전태일문학상 청소년문학상의 영향도 작지 않을 것으로 추정된다. 전태일 청소년 문학상은 시상 내역에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상을 포함하고 있다.
대한민국 건국에 대해서도 일선 학교도서관은 그다지 관심이 없는 것으로 드러났다. 검색어를 ‘건국’으로 입력했을 때 대한민국 건국에 관한 책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대신 조선이나 고려의 건국에 대한 책들만 나열돼 나왔다. 이는 이승만 대통령이 학교도서관에서 대접을 받지 못하고 있는 흐름과 일치한다.
이승만에 관한 책들은 350만 권의 초중고 도서 중에서 96권에 불과했다. 반면 김일성에 관한 책은 83권이며 김정일 김정은에 관련된 책들까지 합하면 김일성 3부자에 관한 책은 230권이나 되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원우 기자 m_bishop@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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