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리 : 박주연 미래한국 기자
사진 : 백요셉 미래한국 기자
취임 4개월을 맞는 김대식 여의도연구원 원장은 휴대전화에 전화번호 4만 개를 담고 다니는 ‘전설적 인맥왕’으로 통한다. 하루 걸려오는 전화만 해도 300통 이상, 문자는 200통에 달한다. 회신하는 시간만 따져도 3시간이 훌쩍 넘을 때도 있다.
‘사람이 부족한 삶이야말로 결핍된 인생’이라고 믿는 그가 인재를 발굴하는 ‘보수 네트워크 허브’의 수장이 됐다. 보수정당을 사람이 넘치는 ‘사람부자 정당’으로 키우고 싶다는 김대식 여의도연구원 원장을 만났다.
- 이른바 보수와 보수당 자유한국당이 바닥을 헤매고 있던 지난 7월 여의도연구원 원장에 취임하셨는데, 어떤 목표와 비전을 갖고 오셨는지요.
미국에는 헤리티지재단이라는 세계적인 싱크탱크가 있습니다. 독일에는 아데나워재단, 일본에는 마쓰시다가 있지요. 한국에는 보수주의 싱크탱크로서 여의도연구원이 있습니다. 한국 최초의 정당 싱크탱크입니다.
그러나 그동안 보수정당의 싱크탱크로서 제 역할을 해왔는지 반성할 시점이 아닌가 싶어요. 특히 한국 사회는 대통령 선거 때마다 교수들의 집단화, 집중화 현상을 보입니다.
그렇게 모인 집단에서 급조된 정체불명의 정책들이 나옵니다. 가령 문재인 대통령의 특보인 모 교수는 외국에서 교수 자격으로 발언한다면서 정책적 혼선을 주지 않습니까. 이런 현상은 곤란하죠. 여의도연구원은 앞으로 100년을 바라보고 보수정당의 가치를 구현하고 걸맞는 정책을 개발해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 여의도연구원이 나름의 독립적 위상을 갖고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은 분명해 보입니다. 하지만 헤리티지재단과 같이 보수이념 싱크탱크로서의 역할은 부족하다는 아쉬움도 있습니다.
자유한국당은 116명의 국회의원이 소속돼 있습니다. 또 253개 당협위원장과 300만 명이 넘는 당원을 확보하고 있어요. 여의도연구원이 현안에 맞는 정책을 개발해 의원들과 당원들을 서포트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말씀하신 대로 보수정당으로서, 보수의 가치와 이념을 교육할 수 있는 프로그램도 만들어 병행해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특히 자기희생 정신이 현 시대 보수정치에 반드시 필요합니다.
“여의도연구원이 천하의 인재들 모을 것”
- 원장님은 일본학 전문가이기도 하시지요. 최근 홍준표 대표가 자신의 SNS에서 일본의 사카모토 료마를 언급해 뉴스가 되기도 했는데, 어떤 정신과 시대적 역할을 말하고자 했다고 보십니까.
홍준표 대표께서 페이스북에서 메이지 유신의 설계자인 사카모토 료마(坂本 龍馬)를 언급했습니다. 료마는 앙숙처럼 지내던 사쓰마(현 가고시마현)와 조슈번(현 야마구치현) 동맹을 이끌어 낸 인물이죠. 1867년 봉건시대를 종식하고 메이지 유신을 통한 중앙집권적 근대국가로 전환한 계기가 됐던 ‘대정봉환’을 구상한 일본의 위대한 정치인입니다. 일본인들이 가장 존경하는 인물로 알려져 있어요.
료마는 동맹을 성사시킨 이듬해 나이 32세에 결국 암살당하고 맙니다만, 그의 희생정신은 일본 국민에게 역사를 바꾼 위대한 정치인으로 남아 있습니다. 저는 우리 보수가 가져야 할 정신이 바로 이런 책임감과 희생정신이라고 생각해요. 제가 여의도연구원장으로 일하는 동안 그런 정신을 정책으로 승화시켜 우리 국민에게 알려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 취임 일성으로 인재 네트워크 허브를 구축해 보수의 구심점이 되겠다는 말씀을 한 것으로 기억합니다. ‘인맥왕’으로 알려진 원장님의 말이어서 설득력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짧은 4개월 동안이지만 어떤 성과가 있었는지요?
자유한국당은 청년 보수층이 약합니다. 그 점에서 제가 의욕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것이 전국 220여개 4년제 대학을 중심으로, 한 대학에 한 명 이상의 청년정책자문위원을 위촉하는 일입니다. 현재 굉장한 성과를 내고 있습니다. 또 정책자문위원 300명을 위촉했습니다.
천하의 인재를 여의도연구원으로 초빙해 그분들의 역량과 지혜를 얻어 정책에 반영하겠다는 목표로 추진 중입니다. 보수우파 ‘싱크넷’ 구축 일환입니다. 거의 95% 정도 위촉이 됐습니다. 공간을 남겨 더 좋은 분들, 유능한 분들을 영입하고 당이 적극 추천해서 중앙과 지방자치 선거에 적극 추천하려는 게 보수정책 네트워크입니다.
또 하나 청년센터를 만들어 젊은층이 모이는 홍대와 같은 지역으로 옮기려고 합니다. 청년이라면 누구든지 함께 토론하고 미래를 설계하고 정치인과도 소통하면서 젊음과 생활 속에서 정치를 구현하려고 합니다. 보수정치도 결국 생활정치로 가야 하는데, 그런 정치로 접근하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 하는지 긴 호흡으로 가려고 해요. 이것도 설계가 끝났습니다.
또 하나 덧붙이고 싶은 것은 그동안 보수우파 진영 내 갈등이 많았다는 겁니다. 남북갈등 뿐 아니라 남남갈등 그리고 이념갈등, 계층갈등, 세대 간 갈등 등 다양한 갈등이 중첩돼 있습니다. 당에서도 계파 갈등이 심하죠. 국가와 사회적으로 갈등의 폭이 너무 깊고 골이 깊어요. 이 갈등을 해소해야 합니다. 이걸 해결하지 못하면 우리는 한발자국도 더 갈 수 없는 지경입니다. 과거를 생각하면 모두 원수고 적이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미래를 생각한다면 친구가 될 수 있어요. 멀리 내다보고 가기 위해서는 함께 해야 합니다.
- 여의도연구원 안에 들어와 보니 막상 밖에서 보던 것과 다른 점은 없던가요. 가장 어려운 점이나 아쉬운 점은 무엇인가요.
아쉬운 점이라면 많은 당원들이나 지지자들이 아직까지 우리가 여당인 줄 착각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이미 시대는 바뀌었어요. 우리는 야당입니다. 남 탓만 하고 있기에는 시간이 아깝습니다. 보수우파가 잘못했기 때문에 국민이 회초리를 든 것이라는 점을 깨닫고 잘못한 부분은 석고대죄하고 다시 일어설 수 있는 발판을 만들어야 합니다. 그 힘은 국민이 주시는 것이지요.
우리 당은 이런 절박감이 아직까지 부족합니다. 시간이 흐를수록 환경은 시베리아 벌판이 될 것이 분명한데 말이죠. 국민의 사랑을 회복하지 못하면 보수정치는 영원히 내동댕이쳐질 겁니다. 여의도연구원은 그걸 위해 역할을 하고 뒷받침해야 합니다.
- 최우선 당면 과제 중 하나가 보수의 시험대가 될 내년 지방선거일텐데요, 어떻게 준비하며 전망하고 있습니까.
홍준표 대표께서 “나는 원수지간이라도 당선이 된다고 판단이 되면 반드시 당을 위해 공천한다”, “아무리 내 측근이라도 당선이 안 될 것 같으면 절대 공천하지 않는다”는 말을 했습니다. 이 말 속에 다 들어 있다고 봅니다. 아무리 측근이라고 해도 경쟁력이 떨어지면 공천을 줄 수 없다는 겁니다. 사천은 있을 수 없다는 이야기지요.
야당인 우리 당은 말하자면 도전자 입장에서 챔피언을 이겨야 하는 상황입니다. 경쟁력이 뛰어나고 우수한 인재를 발굴해 선거에 내보내야 합니다. 제가 옆에서 이걸 조언하고 있어요. 지역과 환경, 인물, 표의 확장성 등 골고루 봐야 합니다. 또 지역에서 좋은 평가도 받아야 하고요.
- 문재인 정부의 독주에도 보수 자유한국당의 역할이 제한적이고 지지율도 상당히 낮은 것으로 보입니다. 여의도연구원은 여론조사로 정평이 있는데 어떻게 여론 추이를 보고 있습니까.
여론조사를 발표하면 선거법 위반이 되기 때문에 공표할 수는 없지만, 최근 자유한국당의 지지율은 상당한 상승곡선을 타고 있습니다. 한번 해볼 만하다는 자신감을 얻었다고 할까요? 이 점은 믿어도 좋습니다.
- 반대로 일부 조사에서 문재인 대통령 지지율이 80%대 까지 나오는 등 고공행진입니다. 보수층 일각에서는 여론조사 방법과 결과에 의구심도 갖는데 이런 현상은 어떻게 보십니까.
문재인 정부 지지율은 지금 평가하기 이릅니다. 아직까지 조각을 다 완성하지 못했잖습니까. 홍종학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후보자가 아직 진행 중이죠. 허니문 기간이란 게 있습니다. 문 대통령을 찍은 국민이 백일 만에 돌아서지 않아요.
최소한 6개월 정도는 지켜보고 대통령이 잘하고 있는지 아닌지, 가는 방향은 맞는지 아닌지를 평가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대통령 지지율이 70%니, 80%니 하는 결과에 별로 의미를 두지 않습니다. 6개월이 되는 시점 즈음해서 여의도연구원이 자체적으로 대통령 국정수행 지지도를 분석해볼 생각입니다.
▲ 김범수 미래한국 발행인의 질문에 열정적으로 답변하고 있는 김대식 원장(右). |
‘무수저’ 출신 인맥왕, ‘내 인생의 사람들’
- 정치도 결국 사람을 위한 것이라는 점에서 원장님의 역할이 주목되기도 합니다. 저서 <사람을 남기는 관계의 비밀>에 나오는 인맥 관리의 비결을 좀 소개해 주시지요.
쑥스럽지만 제 과거부터 조금 소개할까 합니다. 요새 흙수저라는 말이 유행하지요? 저는 흙수저도 안 되는 무수저로 태어나 자랐습니다. 중학교를 졸업한 뒤 막노동을 시작했어요. 이후 부모로부터 단돈 1원도 받아본 적이 없지요.
막노동으로 고학을 하면서 소위 하꼬방 같은 작은 방 하나 겨우 얻어 살았는데 어느 날이었습니다. 무지막지하게 추운 날이었어요. 연탄 한 장 뗄 돈이 없어 냉방에서 잠을 청하는데 중학생이던 주인집 딸이 방문을 두드리면서 이런 말을 하는 겁니다.
“오빠 이렇게 추운데 그냥 자면 큰일 나요, 죽을지 몰라요” 그러면서 연탄 한 장을 아궁이에 넣어줬습니다. 그날 밤 전 얼마나 따뜻하게 잔 줄 모릅니다. 그런데 다음 날 아침 일어나서 보니, 그 아이 아버지가 몽둥이를 들고 자기 딸을 때리는 겁니다. 그날로 그 집을 나왔습니다. 그 장면은 평생 잊지 못할 겁니다.
그때 그 집을 나오면서 그 소녀를 위해서라도 공부를 열심히 해야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그리고 그 경험은 제가 사람의 소중함을 느끼게 된 계기가 되기도 했지요. 한 사람으로 인해 도전의식을 느끼고, 그 한 사람으로 인해 제가 인생의 목표를 설정하게 되었습니다. 그 여학생은 제 인생의 중요한 계기가 되었지요.
그 후 주경야독 하면서 고등학교를 마쳤습니다. 하지만 대학에 갈 엄두는 안 나더군요. 부둣가에서 일을 시작했습니다. 그때 상사들 구두도 닦아주고 폐품을 모으면 팔기도 하고 기억이 아련합니다. 6개월 동안 라면을 먹어봤는데, 사람이 하루 한 끼 라면만 먹으면 어떻게 되는 줄 아세요? 폐병 환자처럼 마릅디다. 하하하. 그렇게 허기진 배를 채우며 고생하면서도 저는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세상이 왜 이렇게 어렵나”, “세상이 왜 이렇게 나를 힘들게 하나” 이런 생각을 해 본 적이 없습니다. 그 고마운 여학생 때문입니다.
- 혹시 그 여학생을 찾을 생각은 안 해 보셨습니까.
그 여학생을 찾기 위해 TV에도 몇 번 출연했습니다. 잠실 실내체육관에서 1만 6000명을 모아 놓고 9분 동안 이 여학생 이야기를 한 적도 있어요. 아직도 그 소녀를 찾지 못했지만 저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그때 이야기를 합니다. 정치는 이 여학생처럼 해야 한다고 강조하지요.
어려운 사람을 위해 연탄 한 장 갈아줄 수 있는 그런 마음을 가지고 국민을 위한 정치를 해야 한다는 겁니다. 저는 어떤 직을 맡더라도 가장 먼저 다가가 인사하는 분들이 청소하시는 아주머니들, 경비하시는 아저씨들입니다. 제가 밑바닥에서부터 여기까지 왔기 때문에 그래요.
- 연탄 한 장으로 인생을 바꿔준 여학생 스토리 이후 김대식 원장의 삶은 어떻게 펼쳐지게 됩니까.
하하하 기다려 보세요. 부둣가 막노동부터 다시 시작합니다. 그때 직장 상사가 어느 날 제게 이런 말을 하더군요. “미스터 김, 청춘이 구만리인데 야간 대학이라도 가라” 마침 부둣가에서 일을 하니 일본어를 배워야 한다는 조언을 들었습니다. 그래서 일본어과가 있는 대학에 진학하게 됩니다.
사전 8권을 달달 외웠습니다. 국비유학생 시험을 쳤는데 합격자 2명에 들었습니다. 일본으로 유학을 떠나 거기서 박사학위를 받게 됩니다. 그 이후로 소위 제 팔자가 피게 되지요. 부둣가 막노동 시절 직장 상사가 제 인생 두 번째 사람입니다. 첫 번째는 여학생이고요.
세 번째 사람은 젊은 나이인 저를 대학 교수로 채용해준 지금 장제원 의원의 아버지인 고 장성만 전 국회부의장입니다. 이분이 제 교육 멘토입니다. 그 대학(부산 동서대)에서 교수 생활을 22년째 하고 있어요. 이후 전국 대학교 학생처장협의회 회장도 하고 대한일어일문학회 회장도 하는 등 시절을 거쳐 오면서 제 인생에 있어 또 한 분을 만나게 됩니다.
이명박 대통령입니다. 이 대통령 인수위원회에 발탁이 되어 사회문화교육분과 인수위원을 하게 되지요. 이 대통령은 제 행정의 멘토이지요. 이명박 정부에서 민주평통사무처장(차관급), 국민권익위원회 부위원장(차관)도 하게 됩니다.
이후 학교에 복귀한 뒤 또 돌고 돌다 드디어 정치의 멘토를 만나게 됩니다. 바로 홍준표 대표이지요. 제 인생에 있어 이런 일련의 만남들을 뒤돌아보면 하나님은 믿고 있는 저로선 우연이 아닌 듯 느낍니다. 내 의지로 억지로 만들려고 해도 안 되는 하나님의 뜻으로 여깁니다.
제가 사람의 소중함을 느끼고 만나 교류한 분이 4만 명이 됩니다. 저는 4만 명이 된 줄도 몰랐어요. 단지 살아오면서 사람에게 가장 큰 힘이 되는 존재가 바로 사람이라는 걸 배우고 깨달았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제가 경험했던 걸 한번 담아내보자 해서 펴낸 게 <사람을 남기는 관계의 비밀>이란 책인데, 세상살이의 가장 큰 힘은 권력이나 배경, 돈이 아닌 ‘사람’이라는 걸 말하고 싶었습니다.
- 미래한국 독자이기도 하시지요. 마지막으로 우리 독자들에게 한 말씀 해주시죠.
미래라는 단어는 참 좋은 단어입니다. 과거를 생각하면 모두가 원수이지만, 미래를 생각하면 모두 친구입니다. 현재 대한민국에 가장 절실한 단어가 미래가 아닐까 싶어요. 이제는 분열의 시대를 뛰어넘어야 합니다.
더 큰 대한민국을 만들기 위해 국민 모두가 통합의 운동을 시작해야 합니다. 계속된 반목과 과거지향은 우리 미래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대한민국 미래를 위한 통합의 운동에 미래한국 독자 여러분들이 지혜를 모아 동참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저도 역시 적극 동참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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