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이 자유무역의 리더가 될 수 있을까
중국이 자유무역의 리더가 될 수 있을까
  • 김이석 시장경제제도연구소 소장
  • 승인 2017.02.17 1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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높아지는 美·中 무역 갈등, 한국에도 영향

자발적인 거래는 서로 이익이 될 것으로 판단할 때 성사된다는 의미에서 윈-윈 게임이다.  국가간 거래인 자유무역도 마찬가지다. 자유무역으로 두 나라 국민들은 모두 혜택을 보지만, 높은 관세와 비관세 장벽 덕분에 비교우위가 없었음에도 과도하게 팽창했던 산업들은 상대적으로 축소되는 조정 과정을 겪을 수밖에 없다.

과도하게 위축되었던 비교우위가 있는 산업은 이제 팽창할 것이고 자본과 노동도 비교우위가 없던 곳에서 풀려나와 비교우위가 있는 산업 쪽으로 옮겨오게 된다.

TPP 탈퇴와 환율조작국 지정에 나선 트럼프

그런 이전 과정은 일시적인 실업 등의 어려움을 동반하는 게 보통이다. 경우에 따라서는 세계화 등에 따라 비교우위의 변화가 급격하고 과거 습득했던 것들이 새로이 이전하는 곳에서는 필요 없게 되거나 새로운 기술을 습득해야 한다면 실업은 생각보다 장기화할 수도 있다.

미국의 이른바 ‘러스트 벨트’(rust belt, 디트로이트, 피츠버그 등 철강, 자동차 등의 산업으로 호황을 누렸던 미국 중서부와 북동부 지역을 아우르는 말)의 백인 실업자들도 비슷한 처지다.

제조업의 비교우위가 중국과 동남아 등 다른 나라들로 넘어갔지만 여기서 일하던 백인 노동자들이 쉽게 다른 직업을 찾지 못하고 있는 것이 그런 사례일 것이다. 이들은 글로벌화나 자유무역에 적대적이다.

트럼프 미 대통령은 후보 시절, ‘미국 우선주의’(America First)의 기치 아래 이들의 마음을 사기 위해 중국, 일본, 독일 등의 부당한 환율 조작으로 미국 제조업이 위축되었다며 중국 환율조작국 지정, TPP  탈퇴, NAFTA 재협상 등을 공약으로 내세웠다.

대통령으로 취임하면 강성 공약들이 현실을 반영해서 일부 수정될 것이라는 전망도 있었지만 트럼프는 TPP 탈퇴를 선언하는 등 곧바로 실제 행동에 나섰다. 그는 중국을 환율조작국으로 선언했는데 향후 환율조작을 상쇄하기 위해 중국산 제품에 대해 고율의 관세를 정말 적용할 것인지 세계가 주목하고 있다.

이런 트럼프 신임 미 대통령의 자국 산업 보호주의로 인해 이제 전 세계적으로 새로운 중상주의의 시대가 등장했다고 보는 학자들도 있다. 일정 정도 보호주의적 색채가 더 강해질 것이라는 사실은 부인하기 어렵다.

그렇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미국의 이런 국부손실을 감수하는 채찍질이 잘 활용되기만 한다면, 역설적이기는 하지만 중국 등의 나라들이 좀 더 국제적인 규범에 맞게 행동하도록 만들어 자유주의적인 질서가 강화될 수도 있다.

▲ 미국의 보호주의가 강화되면 세계의 공장으로서 성장을 지속해 온 중국으로서는 치명타가 아닐 수 없다. 그래서 중국은 미국의 이런 흐름을 차단하려는 동기가 매우 강하다.

보호주의를 하겠다고 미국이 협박함으로써 역설적이게도 다른 나라들이 좀 더 자유무역의 원리에 맞게 행동하도록 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물론 과연 그렇게 될 것인지는 두고 봐야 할 문제다.

보호주의가 강화되면 세계의 공장으로서 성장을 지속해온 중국으로서는 치명타가 아닐 수 없다. 그래서 중국으로서는 미국의 이런 흐름을 차단하려는 동기가 매우 강하다. 1월 17일(현지시간) 스위스 다보스에서 열린 세계경제포럼(WEF)에서 행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포럼 기조연설은 그런 중국의 동기가 잘 표출되어 있다.

 시진핑의 자유무역 옹호

이날 그는 트럼프의 보호무역주의를 “마치 어두운 방에 스스로를 가두는 것과 같다”고 비유하면서 맹비난했다. 쇄국주의적인 정책을 취하면 바깥의 비바람은 피할 수 있겠지만 “어두운 방 밖은 비바람도 불지만 햇볕과 공기도 있다.”면서 자유무역을 옹호했다.

특히 그는 “빈곤, 실업, 소득격차, 지역 내 충돌, 테러, 난민 등 많은 문제들의 책임을 경제 세계화 때문으로 보는 시각이 많지만 그렇지 않다”면서 정부의 적절한 개입으로 각종 부작용을 줄일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런 그의 비유와 강조는 분명 겉보기에는 트럼프의 보호무역주의와 대척적인 태도이다. 그런 점에서 오바마 대통령이 TPP를 추진하면서 중국이 국제교역의 룰을 쓰게 만들 수 없다고 했는데 마치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그런 룰을 쓰려고 하는 것 같은 인상을 주는 것도 사실이다.

버그스턴 전 피터슨국제경제연구소 소장이 말했듯이 “미국이 과거 100년간 유지하던 글로벌 리더십을 스스로 포기하는 것 같고 … 지금이 (미국이 포기한) 글로벌 리더십을 향해 중국이 나서는 터닝 포인트가 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트럼프의 과도한 쇄국정책은 부메랑으로 돌아올 공산이 높다. 그렇지만 중국이 과연 시진핑 주석의 기조연설이 암시하는 것처럼 자유무역을 주도할 수 있을 것인지는 아직 알 수 없다.

중국이 자유무역의 옹호자로 나서게 된 것은 트럼프가 TPP 탈퇴 선언을 통해 만들어준 공백 덕분이기는 하지만 스스로도 자유무역 환경이 중국의 성장에 필수적인 수단임을 체득하고 있기 때문이지 자유무역주의 혹은 자유주의에 대한 이념적 헌신 때문은 아니다.

▲ 미국 우선주의에 따른 트럼프의 압박이 중국인들의 민족주의 감정을 상하게 하고 이것이 다시 중국이 미국인들의 민족주의적 감정을 자극하는 행동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여기에 더해 유럽의 선진국들을 비롯해서 일본 등이 중국을 그런 자유무역주의의 리더로 여기는 것 같지도 않다. 무엇보다 중국 정부의 행동이 시진핑 주석의 연설에서 한 멋진 비유들을 충분히 뒷받침해주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중국이 미국을 대신해 전세계 자유무역 질서를 주도하는 국가로 등장하기에는 중국 정부가 미국 등의 국가에 비해 정치적 이유만으로 별 어려움 없이 너무나 쉽게 경제에 개입할 수 있고 실제로 개입했다.

시진핑 주석이 강조한 것처럼 “무역전쟁에서는 아무도 승자가 될 수 없다”는 게 진실이다. 중국 정부가 다양한 방식으로 경제에 개입함으로써 보호무역주의적인 규제를 가하고 있음을 암시하는 증거는 많이 있다.

자유무역주의에 대한 헌신? --말보다 행동으로 증명하라는 서방국가들

예를 들어, 지속적인 무역불균형은 보통 자본시장에 대한 규제나 개입이 없는 상태에서는 오래갈 수 없다. 미국이 중국 제품에 대한 수입을 계속하면 중국은 달러화 외환보유고가 늘어나고 위안화 대비 달러화의 가치는 하락한다.

따라서 그 달러로 미국의 달러화 표시 제품들을 구매할 유인이 발생한다. 다시 말해 수입은 수출을 자극함으로써 장기적인 무역불균형이 시정되는 경향성이 시장에서 나타나게 되기 때문이다.

미국이 중국을 환율조작국으로 지정하려고 하는 것은 한편으로는 보호주의 무역으로 가려는 성향이 발현된 측면도 있지만, 중국 정부가 자유시장에 어울리도록 ‘공정하게’ 행동하지 않는다는 불만에서 비롯된 측면도 많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앞에서 말한 것처럼 트럼프 미 대통령이 ‘미국 우선주의’(America First)를 내세워 중국에 요구하는 것은 무조건적인 자국산업 보호주의라기보다는 오히려 환율조작국 지정 등으로 중국을 압박해 중국의 개입주의적 정책으로 인해 자국산업이 불리해지는 것을 막겠다는 정책적 의지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이것은 자유무역주의의 전면적 폐기나 보호무역주의의 전면적 채택과는 거리가 있다.

시진핑 주석은 다보스 포럼 연설에서 그냥 세계화가 아니라 ‘경제적 세계화’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국내 언론들이 보도했듯이, 이는 정치적 문제를 최우선적으로 고려해서 인터넷 개방으로 인해 보편적인 인권, 자유선거 등의 이념이 중국에서 퍼지는 것을 막겠다는 의지를 표현하기 위한 것일 수 있다. 사실 중국은 구글과 유튜브 같은 IT 기업이 중국시장에 들어오지 못하도록 하고 있는데 뉴욕타임스도 이를 꼬집은 바 있다.

중국이 우리나라에 대해 사드 배치에 대한 보복으로 한한령(限韓令)을 발동하고 사드 부지를 제공하기로 한 롯데에 대해 위협을 가하기도 했다. 중국내 롯데 사업장에 대해 각종 조사를 하고 영업 규제를 하겠다는 식으로 행동하는 것 자체가 시진핑 주석의 자유무역 옹호 발언과는 거리가 한참 먼 것으로 볼 수 있다.

사실 어떻게 보면 트럼프 대통령은 바로 이런 중국에 대해 “점잖은 태도”로 대응하는 게 아니라 중국이 하는 방식과 비슷한 방식으로 대응하겠다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앞에서 말했듯이 트럼프 대통령의 위협이 중국을 과거와는 다르게 그리고 시진핑 주석의 발언에 부합하는 방향으로 자유무역의 옹호자로서 행동하도록 만든다면, 그리고 중국의 요구에 의해 미국도 더 이상 중국식으로 자유무역에 어긋나는 정부 개입을 하지 않는다면, 생각보다는 나쁘지 않는 결과를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트럼프의 당선 이후 전개되는 미중간의 경제 문제에 관한 갈등이 좋은 방향으로 귀결되는 경우, 장기적으로 중국이 자유무역주의에 어울리게 행동하도록 만들 수 있다면, 우리의 기업들과 중국 기업들은 중국에서 서로 윈윈할 수 있는 분야를 더 넓혀갈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중국과 미국간 무역분쟁이 과도기적으로 벌어진다면 단기적으로 우리 경제에 좋을 것은 없다. 중국이 우리 부품의 중요한 수출시장이기 때문에 간접적으로 피해를 입을 것이다. 말하자면 미중 무역전쟁이 벌어지면 우리가 벌인 전쟁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그 유탄들을 우리가 맞을 수 있다는 게 유감이라면 유감이다.

그렇다면 중국은 트럼프의 ‘중국 때리기’에 맞서 강하게 미국에 대항하려고 할 것인가? 일단 전문가들의 발언들을 볼 때 중국이 섣불리 미국에 대항할 만큼 ‘어리석지는 않을 것’으로 판단된다.

시진핑의 다보스 연설에서 보듯이 자유무역과 같은 우호적인 분위기가 중국의 발전에 필수적임을 체득하고 있기 때문에 미국과 무역 ‘전쟁’이라고 불릴 수준의 갈등을 빚어서는 중국에 결코 좋지 않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으로서는 지금 경제적으로 매우 중요한 전환기적 시점이다. 성장을 포기할 수도 없지만 동시에 소위 연착륙을 해야 하는 시점이다. 중국 정부는 성장세 유지, 부동산 시장의 버블 붕괴 문제, 부실 관영 기업들의 구조조정, 도농간 격차 등 무수한 문제들을 풀어가야 한다. 만약 미국과의 마찰로 중국의 수출에 급격한 타격이 온다면 이런 문제들의 해결은 더 어려워질 것임은 물론이다. 이 점을 중국 지도자들은 잘 알고 있다.

그렇지만 실제 미중 갈등의 양상이 어떻게 흘러갈 것인지는 장담할 수 없다. 중국인들은 아직도 민족주의적 정서가 매우 강하다고 한다. 일본과 중국 간에는 센카쿠 열도의 영유권에 대한 분쟁이 있어 왔는데 일본이 이 열도의 3개 섬을 국유화하자 대도시를 중심으로 일본인 상점을 부수는 등 난동이 벌어졌다고 한다. 물론 중국 정부는 어떤 정부보다 이런 종류의 소요를 막을 능력과 의지를 가지고 있지만 사태는 언제나 악순환에 빠질 가능성이 있다.

중국은 미국과 무역전쟁을 벌일 처지가 아니다

미국 우선주의에 따른 트럼프의 압박이 중국인들의 민족주의 감정을 상하게 하고 이것이 다시 중국이 미국인들의 ‘민족주의적 감정’을 자극하는 행동으로 이어질 수 있다.

지금 미국인들은 ‘미국 우선주의’(America First)라는 상당히 민족주의 혹은 국가주의적인 색채의 감정에 노출되어 있다. 다행인 것은 정치 지도자들과 학자들 사이에 이런 가능성들까지도 이미 고려되고 있다는 점이다.

여기에 더해 더 결정적인 점은 미중 갈등이 격화되면 둘 다 손해지만 미국보다 특히 중국이 잃을 게 훨씬 더 많다는 것을 중국 지도자들이 명확하게 인식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들은 결코 우매하지 않다.

중국이 과거와는 다르게 미국의 압박에 대해 같은 방식의 보복을 하려고 하기보다는 미국을 ‘설득’하려고 온갖 노력을 하는 것을 보면, 중국이 미국의 요구가 너무 과격하지 않는 한 어느 정도는 수용하려는 자세를 취할 것으로 예상된다.

실제로 그런 중국의 속내를 보여주는 사례는 많이 있다. 중국산 타이어에 미국이 고율의 관세를 부과하는 등 행동에 나섰지만, 중국은 미국산 제품에 보복관세로 대응하지 않고 WTO(세계무역기구)에 제소하는 방식으로 ‘중국답지 않게’ 행동하고 있다. 언제까지 중국이 이런 태도를 유지할 것인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중국이 최대한 인내심을 가지고 미국의 트럼프의 공세에 대응하려고 할 것임은 분명하다.

앞에서 언급했지만, 우리로서는 미중 무역분쟁이 격화될수록 부정적 파급효과를 고스란히 떠안아야 할 처지다. 미중 갈등이 자유무역로부터의 후퇴로 귀결될 수도 있지만 중국의 행동을 자유(무역)주의에 부합하는 방향으로 바꾸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후자로 귀결된다면 중국과의 경제적 협력의 가능성은 미국뿐만 아니라 우리에게도 더 넓게 열릴 것이다. 우리로서는 미중 갈등의 문제는 우리의 문제인 측면도 있기 때문에 그 전개 양상을 예의주시하면서 좋은 방향으로의 전개에 힘을 보탤 것이 있다면 보태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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