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민주화(김종인 표) 상법개정안 투기자본에 날개를 달다
경제민주화(김종인 표) 상법개정안 투기자본에 날개를 달다
  • 조동근 미래한국 편집위원
  • 승인 2016.10.27 0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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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층분석] 경제민주화와 헤지펀드의 상관관계

집중투표제, 감사위원 분리 선출, 다중대표소송제 등의 상법 개정안은 헤지펀드에게 ‘창’을 하나 더 주는 것이나 마찬가지. 경제민주화를 표방한 상법개정안은 자승자박 격으로 국가적 손실을 자초할 뿐 재벌 개혁과도 무관 

엘리엇의 절묘한 재등장 

엘리엇(Elliot Management)이 한국에 모습을 드러낸 때는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의 합병이 발표된 지난해 6월이었다. 엘리엇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7월 17일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의 합병은 예정대로 성사됐다. 8월 초 삼성물산 지분 4.95%를 매각하고 퇴장하면서 일반인의 기억에서 엘리엇은 사라져갔다. 

▲ 조동근 명지대 경제학과 교수·미래한국 편집위원

그런 엘리엇이 삼성전자 지분 0.62%를 보유, 주주제안서를 삼성전자에 제출하면서 재등장했다. 10월 27일 임시주총에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삼성전자 등기이사 선임이 예정돼 있는 만큼 재등장의 시점은 절묘하다. 

엘리엇의 주주 제안 사항은 4가지로 요약된다. ▲삼성전자의 인적분할 등을 통한 지주회사로의 전환 ▲30조 원(주당 24만5000원)의 현금 배당과 잉여현금흐름의 75% 주주 환원 ▲삼성전자사업회사의 나스닥(Nasdaq) 상장 ▲3명의 외국인 사외이사 추가 선임 등이 그것이다. 

엘리엇의 접근방식이 달라졌다. 작년엔 여느 헤지펀드처럼 공격적이고 거칠었다. 목적 달성을 위해 주주들을 규합하고 법정소송까지 벌였지만 이번엔 다르다. 유화의 손짓을 하고 있다. 삼성의 지배구조 개편에 힘을 실어주겠다는 것이다. 엘리엇의 제안이 배당의 대폭 확대와 주가 상승을 겨냥한 것인 만큼 일반 투자자에겐 아주 매력적이다. 역으로 삼성전자에겐 여간 부담스런 일이 아닐 수 없다. 

엘리엇이 달라진 이유는 무엇인가? 작년의 1차 실패를 반면교사로 삼았기 때문일 것이다. 따라서 엘리엇의 삼성전자에 대한 유화적 태도의 이면(裏面)을 잘 봐야 한다. 삼성전자를 지주회사화 해 미국 나스닥 시장에 상장시키자는 제안은 일종의 당근전략이다.

그러면서 엘리엇은 삼성전자 지배구조 개편 관련해 외국인 사외이사 3명의 추가 선임을 요구했다. 엘리엇의 복심(腹心)은 여기에 있다. 사외이사 3명 진출을 삼성전자에 대한 ‘교두보’로 삼겠다는 것이다. 

엘리엇은 30조 원의 배당을 요구하고 있다. 이 같은 요구는 타당한가. 삼성전자 경쟁력의 원천 중 하나는 선제적인 시설 투자이다. 반도체는 기본적으로 시장점유율 게임으로 상대를 밀어내지 못하면 자기가 밀리는 구조이다. 일종의 치킨게임(chicken game)이기 때문에 투자선점이 중요하다. 한편으론 적극적으로 디지털 관련 신생기업을 인수합병(M&A)해야 한다. 

최근 삼성전자는 모바일 간편결제 솔루션 업체 루프페이 등을 인수했다. 조(兆) 단위의 설비투자와 연구개발(R&D) 투자 그리고 신규기업의 인수합병 필요성 등을 감안할 때 현금 30조 원 배당은 현실적으로 어렵고 또한 현명한 선택이 아니다. 

더욱이 삼성전자의 외국인 지분율이 50.72%인 상황에서 배당 확대는 ‘국부 유출’로 연결된다. 삼성전자 주가가 고공행진을 하는 이유는 역설적으로 삼성전자가 배당에 소극적이었기 때문이다. 배당 전략은 그 기업이 속한 업종에 따라 판이하게 다르다.

예컨대 내수산업 그중에서 식음료산업에 속한 기업이 배당을 줄이겠다고 하면 그 순간 그 기업의 주가는 곤두박질칠 것이다. 만약 삼성전자가 고배당을 유지하는 것이 맞다면, 엘리엇은 애플 주식을 취득한 후 애플에게도 동일한 주주제안을 해야 할 것이다. 

엘리엇은 본질적으로 헤지펀드이다. 일정한 의결권을 확보하고 자산 매각, 구조조정, 지배구조 개선 등을 요구해 단기간에 수익을 내려는 전략적 투자자가 출자한 일종의 사모(私募)펀드인 것이다. 

지배구조 개편은 표방하는 명분에 지나지 않는다. 엘리엇의 과거 행태를 되새겨볼 필요가 있다. 2001년 아르헨티나의 디폴트 선언 후 채무의 71~75%를 탕감해 준다는 합의안에 다수의 국제 채권단이 합의했지만 엘리엇은 합의를 거부하고 미국 법원에 소송을 냈다. 

엘리엇은 액면가 13억3000만 달러의 국채를 4800만 달러에 사들여 소송에서 액면가 전액 상환을 요구했고 미국 법원은 엘리엇의 손을 들어줬다. 그 과정에서 아르헨티나는 기술적 디폴트를 맞을 수밖에 없었다. 

▲ 경제민주화 상법개정안은 해외 투기자본이 국내에서 활개치도록 하고 있다. 사진은 헤지펀드의 표적이 되고 있는 삼성전자의 2012년 3월 열린 제43기 정기 주주총회.

경제민주화 상법개정안의 문제점

앞에서 엘리엇의 등장이 절묘하다고 기술한 이유는, 주주제안을 가능하게 한 0.62%(0.5%넘으면 주주제안 가능)의 지분을 언제부터 매집했느냐와 무관하지 않다. 엘리엇이 삼성전자 지분을 매입하기 시작한 것으로 알려진 올해 6월은 소위 경제민주화를 위한 상법개정안이 발의(2016. 7. 4.)되기 직전이었다.

그렇다면 엘리엇은 한국 정치권의 입법 움직임까지 정확하게 꿰고 있었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더 나아가 20대 국회가 여소야대로 재편된 것까지 엘리엇은 염두에 뒀을 거란 해석도 가능하다. 그들의 재등장은 철저하게 계산된 것이다. 

김종인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경제민주화 차원에서 “집중투표제 의무화, 다중대표소송제 도입, 감사위원회 이사 분리 선출, 사외이사추천위에 사주조합 추천 위원 포함”을 골자로 하는 상법개정안을 7월 4일 대표발의했다.

그는 개정안을 통해 ‘근로자와 소액 주주의 경영 감시와 감독권’을 보장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하에서는 상법 개정안의 주요 내용을 적기(摘記)하고, 사전적 의도와 관계없이 상법개정안이 왜 투기자본에 날개를 달아줄 수 있는지를 논의하고자 한다. 

- 주주 평등주의에 반(反)하는 집중투표제 
집중투표제(cumulative voting)는 주주총회 이사 선임 시 1주당 1표를 주는 것이 아니라 선임되는 이사 수만큼 의결권을 주는 제도다. 예컨대 통상적으로 A, B, C 3명의 임원을 뽑는 주주총회에서 한 주주가 100주를 갖고 있을 경우 3명에게 각각 100주의 찬반(贊反)권을 행사한다. 

하지만 집중투표제가 도입되면 A임원에게 찬성 또는 반대 300표를 던지고 B, C임원 선임에 대해서는 의결권을 포기할 수 있다. 이 제도가 도입되면, “소액주주들이 자신을 대표하는 사람을 이사로 선임하거나, 대주주가 내세운 후보 중 자신이 반대하는 사람이 이사로 선임되는 것을 저지”할 수 있게 된다. 집중투표제 도입 취지는 ‘소액주주의 권리강화’이다. 이를 뒤집어 보면 소액주주가 아닌 주주를 차등하는 것이 된다. 

특정 주주의 의결권을 우대하는 것은 ‘주주평등 원칙’에 어긋난다. 그러면 “소액주주는 경제적 약자인가”라는 질문을 던질 수 있다. 김종인 의원은 소액주주를 경제적 약자로 착각하고 있다. 주주에 약자는 없다. 자신의 지분만큼 의결권을 행사하면 된다. 

상법개정안의 또 다른 인식 오류는 소액주주는 ‘내국인’이라는 암묵적 가정이다. 하지만 글로벌 대기업의 경우 소액주주는 대부분 외국인이다. 집중투표제가 도입되면 헤지펀드들은 자신이 원하는 후보에게 몰표를 줄 수 있다. 실제로 2006년 미국의 기업 사냥꾼 칼 아이컨은 KT&G 정관상의 집중투표제를 활용해 이사회 진입에 성공한 적이 있다. 

상법 개정안이 통과돼 모든 기업이 집중투표제를 도입해야 한다면 엘리엇으로서는 삼성전자 이사회 진입을 위한 ‘천군만마’를 얻게 되는 셈이다. 

- 소송대란 부를 다중대표소송제 
이중주주대표소송은 자회사 임원 등의 부정행위로 손해를 입었을 때 모회사의 주주가 자회사를 대신해 대표소송을 내는 것을 말한다. 다중대표소송제는 이중대표소송제를 더욱 넓힌 것이다. 즉 모회사 주주가 불법 행위를 한 자회사 혹은 손자회사 임원들을 상대로 손해배상소송을 낼 수 있게 한 제도이다. 

다중대표소송제도는 이례적이다.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 등 영미계 국가 일부에서 다중대표소송이 인정되지만 법원의 결정이 있어야만 가능하기 때문에 실제 제기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독일 프랑스 중국 등은 다중대표소송제를 도입하지 않고 있으며, 판례에서도 이를 인정하지 않는다. 예외적으로 일본은 다중대표소송제를 의무화하고 있지만, 경영권 침해와 자회사 주주의 권리 침해 등을 이유로 다중대표소송 대상을 ‘100% 자회사’로 한정하고 있다. 

다중대표소송제를 도입하려는 이유는 무엇인가? 재벌 총수의 2세, 3세가 경영하는 자회사, 손자회사를 감독하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국내 상장사 지분을 가진 글로벌 경쟁사나 투기자본이 다중대표소송제를 악용할 경우 사정은 달라진다.

다중대표소송제는 국내 기업들의 자회사, 손자회사의 빗장을 풀어주는 격이기 때문에 외국계 기업과 투기자본이 이익을 보고 국내 기업들이 손해를 볼 가능성이 농후하다. 다중대표소송제는 ‘교각살우’의 우를 범하는 것이다. 

- 감사위원 분리 선임 및 사외이사 추천위 사주조합 추천권 보장 
통상적으로 주주총회에서 복수의 이사를 먼저 선임하고 그 중의 한 명을 감사위원으로 선임한다. 하지만 상법개정안에 따르면 감사위원은 처음부터 다른 이사와 분리해서 선출하겠다는 것이다. 

문제가 되는 것은 대주주의 감사 선임 의결권을 일정 수준 이하로 제한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 아무리 많은 지분을 갖고 있어도 지배주주는 지배주주란 이유만으로 주주권을 행사할 수 없게 된다. 

경영의 투명성을 높이는 것과 대주주의 경영권에 족쇄를 채우는 것은 별개이다. 전자를 위해 후자를 희생한다면 이는 법치를 어긴 것이다. 주식시장에 상장하는 것 이상의 경영투명성 강화장치는 없다. 많은 사람들이 이해관계자로서 경영진의 일거수일투족을 관찰하기 때문이다. 

감사위원을 분리선임하고 대주주 및 특수관계인의 의결권을 제한한다면(3%) 소액주주들이 추천하는 인물이 감사위원에 선임될 수 길을 열어 놓는 것이다. 엘리엇을 포함한 해외 투기자본이 이 틈을 파고들 가능성이 크다. 

또한 상법개정안은 사외이사 추천위원회 위원으로 사주조합이 추천하는 인사 한 명을 의무적으로 포함시키도록 하고 있다. 노사 간의 역학관계에서 노동자의 힘이 자본가(경영진)에 비해 약하다면 이러한 시도는 공감을 받을 수도 있다. 하지만 현실은 정반대다. 

노동조합관련법은 귀족노조에게 힘을 실어주는 쪽으로 이미 경도되어 있다. 이는 기울어진 것을 더욱 기울게 하는 처사가 아닐 수 없다. 전체 근로자의 10%도 안 되는 대기업 정규직 노조가 나머지 90% 근로자의 이익을 침탈해 온 것이 현실이다. 귀족노조는 협력업체의 희생을 담보로 파업을 연례화했다. 지금 필요한 것은 정규직의 과보호를 걷어내는 노동개혁이다. 상법 개정안은 시대를 역행하고 있다. 

- 김종인 의원의 인식 오류 
김종인 의원의 경제민주화 철학은 “경제 권력이 비대해져 정치세력이 경제 권력을 통제하지 못 하기 때문에 제약을 가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참여정부의 경제관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다. 경제 권력이 무엇인가? 

기업은 소비자와 투자자의 신뢰를 얻지 못하면 ‘계속기업’(going concern)이 될 수 없다. 즉 소비자가 물건을 사줘야 생산비를 회수할 수 있고, 투자자가 회사채 또는 주식을 사줘야 자본을 조달해 공장을 세울 수 있다. 

따라서 경제 권력은 ‘기업 경쟁력’의 다른 표현이다. 하지만 경제 권력은 경쟁을 통해 스스로를 견제한다. 과거 초일류 기업이었던 노키아, 코닥, 소니 등이 몰락했다. 이는 기업 경쟁력, 즉 경제 권력이 ‘상수(常數)’가 아님을 보여준 것이다. 

김종인 의원은 “경제 권력이 정치 권력을 압도한다”고 덧붙인다. 하지만 정치 권력에 의해 기업이 부침을 겪지만 기업이 정권을 부침시키는 것은 아니다. 이는 과장된 현실 인식이 아닐 수 없다. 과장된 현실 인식은 입법 오류를 낳는다. 상법개정안은 글로벌 경쟁 환경 하에서 국내 기업들의 ‘경영권 방어 약화’로 직결된다. 

엘리엇의 향후 행보 전망 

엘리엇은 한국의 정치지형과 입법동향을 꿰뚫고 삼성전자 지분 0.62%를 확보함으로써 절묘한 시점에 주주제안권을 행사했다. 주총 안건은 소집 6주 전까지 제안해야 한다는 상법 조항 때문에 엘리엇이 당장 27일 삼성전자 임시 주주총회에서 새로운 이사 선임을 추진할 수는 없다. 하지만 엘리엇이 어떤 행보를 취할 것인가를 암시하고 있다. 

엘리엇은 삼성전자가 자신들의 제안을 거부할 경우 이를 빌미로 전면 공격 태세로 전환할 가능성이 높다. 엘리엇의 제안이 공개된 이후 0.12%를 소유한 핸더슨글로벌인베스터, 0.8%를 보유한 네덜란드 APG펀드도 찬성 의견을 표시했다. 

엘리엇과 이들 보유지분을 모두 합치면 1.54%다. 1.5% 초과 지분을 6개월 이상 보유하면 임시 주주총회 소집도 가능하다. 3개의 펀드가 동맹을 맺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이를 감안하면 내년에 임시주총 또는 정기주총에서 삼성전자 인적 분할안이 정식으로 의제화될 가능성이 높다. 엘리엇의 궁극적인 관심은 자신이 제안한 주주 제안의 실현이 아닐 수 있다. 노리는 것은 결국 수익이다. 이미 주가가 올랐지만 앞으로도 계속 오를 것이고 어느 시점쯤 되었을 때, 엘리엇은 슬그머니 차익을 실현하고 빠질 수 있다. 

‘무기대등의 원칙’(equal footing)은 경영권 방어와 공격에도 적용돼야 된다. 우리나라는 경영권 방어를 위한 마땅한 장치가 없다. 차등의결권 등 경영권 방어를 위한 방패는 엄두도 내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집중투표제, 감사위원 분리 선출, 다중대표소송제 등을 요체로 하는 상법 개정안은 헤지펀드에게 우리 기업을 공격할 수 있는 ‘창’을 하나 더 주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이는 국가적 손실을 자초할 뿐 재벌 개혁과도 무관하다. 소액주주 보호와 근로자 경영권 감시는 1997년 IMF 외환위기 때 나온 화두이다. 20년 전에 정책시계가 멈춘 것이 아니라면,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경제민주화를 표방한 상법개정안은 자승자박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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