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진당 해산에 앞장서다
통진당 해산에 앞장서다
  • 미래한국
  • 승인 2015.12.26 08:4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권말특집] 나는 대한민국의 아스팔트 우파다 / 엄마부대 봉사단

엄마들의 힘을 모아 우리 사회의 풍요와 자유로움을 저해하는 세력과 끝까지 맞서 싸운다

한 가정의 살림살이도 엄마가 바로 서면 기울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나라의 운명도 지도자가 올바르면 반드시 제 길을 갈 수 있다. 미국에서 최초의 흑인 대통령이 나왔을 때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은 열광했다.

▲ 주옥순 엄마부대봉사단 대표

나는 박근혜 대통령이 신라시대 진성여왕 이후 최초로 한반도의 여성 지도자로 당선되었을 때 감성과 지혜로 무장한 ‘엄마들의 힘’을 떠올렸다. 

난 1987년부터 경실련 초기 멤버로서 그 동안 교회의 봉사활동과 시민운동을 해왔다. 지금은 국민들의 화합과 통합을 위해 애국우파의 새로운 모습을 보이겠다는 뜻으로 엄마부대봉사단을 이끌어가고 있다. 

2013년 4월 친목을 다지며 시민 봉사활동에 전념하던 엄마들이 모였다. 엄마들도 나라를 사랑하고,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수호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엄마부대봉사단을 결성하게 되었다.

이렇게 전국의 680여 명 회원들이 모였다. 대한민국 최초의 여성 대통령을 지지하기 위해 보다 적극적인 의사를 표현하는 여성과 엄마들의 힘이 필요했다. 보수와 진보 논리 이전에 국가라는 테두리가 있어야 국민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화합하는 대한민국을 위해 적극적인 목소리를 내기로 했다. 

이 무렵 서울시청 광장을 지나가다가 야당 천막당사 앞에서 야당 국회의원들이 시위하는 것을 보게 됐다. 그때 “아, 이건 아니다. 국회의원들이 나라를 걱정한다면 국회 안에서 해결할 문제를 시청 광장에서 시위를 한다니”라고 생각했다. 그때 엄마들 20명이 모여 처음으로 아스팔트에서 기자회견을 했다. 

통진당 해산 위해 憲裁 재판관들에게 호소문 전달 

이념적 갈등이 심한 우리나라에서 애국우파를 표방하며 엄마의 강한 의지로 세상을 바꿀 결심을 실행에 옮겼다. 무엇보다 국회에서 애국가 완창과 국기에 대한 경례를 거부하는 좌파 세력이 있다는 것은 국가 정체성을 부정하고 자유민주주의에 대한 도전이라는 심각한 위협을 느꼈다. 그래서 나라를 바로 지키는 것이 시급하다는 생각에 종북(從北) 세력들이 활동하는 통합진보당 해산을 위해 길거리 서명에 돌입했다. 

당시 황교안 법무부 장관이 헌법재판소에 통진당 위헌(違憲) 소송을 낸 상태였기 때문에 엄마부대봉사단은 1년 1개월 간 56차례의 광화문 거리 서명으로 얻은 3만5000명의 동의서를 헌법재판소에 제출했다. 우리는 또 헌재 앞에서 상복(喪服)을 입고 통진당 해산을 눈물로 호소했다. 

매주 수요일 상복을 입고 “대한민국이 사느냐 죽느냐는 헌법재판소의 재판관 손에 달려있다”는 호소문을 아홉 명의 헌재(憲裁) 재판관에게 전달했다. 통진당 해산 결정 후에는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해 결단을 내린 헌재 재판관들에게 감사와 함께 꽃을 전달했다. 

▲ 헌법재판소의 통합진보당 해산을 촉구하며 거리에 나선 엄마부대 봉사단.

하지만 좌편향 세력은 우리 사회에서 여전히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나는 같은 여성으로서 신은미, 황선 이런 여성들에게 묻고 싶다. “전 세계에 하나밖에 없는 불량국가를 그렇게 지지한다고 해서 누가 그런 말에 현혹이나 되겠는가” 하고 말이다. 

이번 북한의 DMZ 지뢰 도발 사건으로 인한 남북 대결 국면은 우리에게 많은 교훈을 줬다.  젊은이들이 자발적으로 전역을 연기하고 조국의 부름에 기꺼이 싸우겠다고 할 정도였다. 신은미나 황선은 개인의 출세와 영웅심에 눈이 멀어 더 이상 대한민국을 이용하지 말았으면 한다. 

우리는 세월호 참사를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좌파의 선동을 막는 데도 앞장섰다. 사실 세월호 참사를 통해 우리나라의 안전망이 허술했다는 것은 잘 알게 됐다. 망해가는 기업에 특혜를 주고 독점 운항의 편의를 제공한 지난 정부의 책임도 크다고 본다. 

그러나 이 사고는 엄연히 해상 사고였다. 때문에 우리는 세월호 문제가 나라를 들끓게 할 때 끊임없이 사회 갈등과 분열을 조장하는 유족들, 그리고 나라 전체를 수장(水葬)시키려고 하는 좌파 세력들을 대상으로 싸울 수밖에 없었다. 당시에는 정치권과 정부 관계자는 물론이고 그 누구도 유가족들의 말을 거스를 수가 없었다. 

그때 누군가는 올바른 지적을 해야 되겠다고 생각했다. 부모가 죽어도 백일 탈상(脫喪)을 하면 모두 일상으로 돌아간다. 그런데 유족들이라 행세하는 일부 세력들이 국가에 지나친 요구를 하고 있었다. 

자영업을 하는 우리 엄마부대 회원 가운데는 몇 달 씩 임대료도 못 내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래서 광화문 광장 세월호 천막 앞에서 이런 내용의 기자회견을 했고, 나는 좌파 매체를 통해 ‘세월호 유가족에게 비수를 꽂았다’며 일방적으로 매도당했다. 

입원한 리퍼트 대사에게 매일 꽃다발 보내 

리퍼트 주한 미국 대사가 피습 당했을 때는 대한민국 안보에 중요한 한미관계에 균열이 생기지 않을까 걱정됐다. 눈물이 핑 돌고 눈앞이 캄캄했다. 나는 많은 국민들이 리퍼트 대사를 지지한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 곧바로 세브란스 병원으로 달려가서 기자회견을 했다.

그리고 매일 꽃다발을 보내 대사를 위로했고, 퇴원하는 날 영하 13도의 날씨에도 불구하고 엄마부대 회원 100여 명과 함께 태극기와 성조기를 들고 기자회견을 했다. CNN, BBC, NHK 등 세계적인 언론 매체들이 우리 모습을 담아갔다. 난 리퍼트 대사가 우리를 보고 손을 흔들어 주던 순간의 감동을 잊을 수 없다. 우리는 민간 외교 역할에 총력을 기울인 것이다. 

엄마부대는 현재 30대부터 70대까지 다양한 연령의 여성들로 구성되어 있다. 모두가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 대한민국의 가치에 대한 고민을 갖고 하나로 뭉쳤다. 우리 여성, 그리고 엄마들이 국민들의 정서를 조정하고 화합할 수 있는 역할을 하면 갈등의 수위가 좀 낮아지지 않을까 기대했다. 지금도 남성 위주의 갈등 구조에서 여성의 부드러움과 조화로움이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으로 믿는다. 

우리 엄마부대가 보수 진영 인사들에게 드리는 부탁이 있다. 우리는 현안이 있을 때마다 자발적으로 참여하지만, 기자회견이나 집회 때 참석자가 부족한 편이다. 그래서 많은 지지와 참여를 부탁드린다.

하지만 현재 엄마부대의 사기는 충천해 있다. 우리 회원들은 여성들이지만 국가적 난제를 우리 손으로 해결할 수 있다는 자부심이 가득하다. 그리고 우리 사회의 가치 운동에 동참하는 우리 엄마부대 전국 회원들에게 진심으로 감사드리는 마음이다. 

엄마부대는 앞으로도 현장 제일주의, 나라사랑, 그리고 봉사로 엄마들의 힘을 보여줄 것이다. 나는 우리 사회의 풍요와 자유로움을 저해하는 세력과 끝까지 맞서 싸울 것이다. 

본 기사는 시사주간지 <미래한국>의 고유 콘텐츠입니다.
외부게재시 개인은 출처와 링크를 밝혀주시고, 언론사는 전문게재의 경우 본사와 협의 바랍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