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장마당의 진화
북한 장마당의 진화
  • 미래한국
  • 승인 2015.12.21 1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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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애란 평양별곡]

소수의 충성파들에게 해외 파견이나 무역허가 같은 특혜를 베풀고, 주민 단속과 통제 강화

이애란 자유통일문화원장·미래한국 편집위원  

국가가 국민의 의식주(衣食住)를 완전하게 책임진다고 하면서 사소한 상적(商的) 행위는 물론이고 개인들 간의 물물교환과 선물거래까지도 통제했던 김일성 시대가 막을 내린 후 북한 주민들은 식량은 물론, 생명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물과 땔감까지도 모두 차단당한 상태에서 300만 명이 굶어죽는 비참한 상황을 눈뜨고 지켜봐야 했다. 

가까운 이웃들이 굶어죽고, 관에 넣어 장사하는 것마저 사치가 되어 누더기에 둘둘 말아 시체를 내다 버려야 하는 상황에서 오로지 ‘굶어죽지 않기 위해’ 자구책으로 생겨난 장마당은 북한 주민들의 마지막 생명줄이었다. 

장마당은 피도 눈물도 없는 치열한 생존경쟁을 요구했고, 배급에 의존해서 살아가던 착한 북한 주민들의 눈망울에 살기가 번득이게 만들었다. 게다가 비(非)사회주의 요소의 척결을 내세운 북한의 당, 사법, 안전(경찰)권력의 횡포와 단속, 공개처형까지도 불사하는 숙청과 장사 물건 몰수, 폭력은 인간으로서 견뎌내기 어려운 시련이자 고통이었다. 

장사를 해본 경험도 전무하고, 상품을 만들어본 경험도, 시장도, 아무 것도 없는 상황에서 중국 상품을 몰래 들여다 약간의 이익을 붙여 팔고, 간헐적으로 상품의 제조도 해오던 북한 주민들은 지난 20여 년 간 목숨을 담보로 한 경험을 바탕으로 이제는 어느덧 전문적인 규모를 갖춘 시장을 만들어내는 데 성공했다. 

북한의 장마당이 제조업, 유통시장, 노동시장, 금융시장으로 세분화되고, 각자의 역할에 따라 일정한 원칙을 가지고 운영된다는 측면에서 발전적이라고 평가할 수 있는 부분도 있고, 1990년대에는 공산품의 거의 100%를 중국에서 수입했던 것에 비해 현재는 중국산 공산품에 비해 훨씬 품질이 훌륭한 상품을 생산한다는 것은 고무적인 현상으로 보인다. 

또 북한 주민들이 1990년대에 비해 장마당에 의지해서 장사를 해야만 살아갈 수 있다는 의식 개선이 되었다는 것 또한 배급제도에 의지하고 있다가 속절없이 굶어죽었던 시기에 비하면 훨씬 발전적이라고 평가할 수 있겠다. 

로열 패밀리들이 권력과 富 독차지 

그러나 북한은 지하시장경제를 약간의 합법적인 시장으로 인정하면서 배급제를 완전히 포기함으로써, 주민들의 생계에 대한 책임을 주민들에게 떠넘기고 오히려 새로운 형태의 경제체제를 만들어가고 있다. 

배급제를 포기하고 소수의 충성파 그룹들을 통한 해외 파견이나 무역허가 같은 특혜를 베풀고, 주민들에 대한 단속과 통제를 더 강화했다. 이것은 호리병 형식의 개혁개방으로 사회주의 배급체제 형태에서 완벽한 조선왕조 형태로 전환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때문에 북한의 시장화 진전은 모든 사람에게 고루 혜택이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북한 지배계층이 또다시 로열 패밀리를 중심으로 권력과 부를 독차지하게 하고 있다. 이러한 권력과 부의 재편성이 김정은 세습체제의 안정에 기여한다는 진단이 나오고 있어 크게 우려된다.

중요한 것은 권력층을 중심으로 한 부(富)의 집중화 현상 속에서도 북한은 사유재산을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김정은 외에는 북한의 어느 누구도 재산과 권력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것이다. 

▲ 북한의 장마당은 전문성과 규모를 갖출 정도로 성장하고 북한 주민들의 생활에 영향을 주고 있지만, 북한 체제가 사유재산을 인정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언제든 모든 것을 빼앗길 수 있다.

북한의 장마당에서 물건을 사고판다고 해서 자유시장경제로 평가할 수는 없다.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 체제를 갖추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장마당에서 물건을 사고팔아서 생기는 이익을 개인 소유로 인정받아야 한다. 또 물건을 만들고, 상품을 사고파는 모든 행위가 합법적인 지위를 얻어 정당화되어야 한다. 

현재 북한에서는 주민들이 장마당에서 물건을 사고파는 행위 자체는 눈감아 주고 있지만, 법적으로는 명확하게 불법이고, 개인 소유가 인정되지 않는다. 때문에 정부가 언제든지 마음만 먹으면 주민의 모든 돈과 재산, 상품을 몰수할 수 있다. 이익을 위한 상행위는 반당, 반혁명, 반정부 행위가 되어 장성택 처럼 공개처형을 당하든지, 아니면 감옥행으로 이어질 수 있는 위험천만한 일이 되기도 한다. 

현재 북한에서 돈을 가장 많이 주무르고, 호화판 사치 행각을 일삼는 최룡해, 김원홍, 황병서 등 고위관리의 자녀들을 ‘붉은 자본가’라고 부르기도 하지만, 이들 최고위층들은 예전이나 지금이나 국가의 권력과 외화를 이용해서 개인의 향락을 누리는 데는 부족함이 전혀 없다.

오히려 장사가 활성화되고 장마당이 확장되면서 그들은 돈주인(錢主)으로 자리 잡고 있고, 중국과의 무역 특허권을 통해 사회주의 시기보다 훨씬 더 많은 돈을 벌어들이고 있다. 

하지만 그것은 그들이 공식적으로 국가로부터 인정받을 성질의 것이 아니다. 사용권은 있으나, 소유권은 모두 김정은 개인에게 집중되어 있다. 때문에 김정은이 어느 날 마음만 먹으면 측근에서 제거되는 동시에 모든 것이 제로 상태가 되고, 때로는 고사포 기관총 앞에 목숨까지 내놓아야 하는 상황이 되기도 한다. 

자본주의 시장경제는 경제 주체들의 자유를 기반으로 해야 하고, 수요와 공급이라는 자발적인 시스템이어야 하며, 그래서 자유시장경제에는 엄격하고 공정한 원칙과 법치가 구현되어야 한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북한의 장마당 경제는, 시장경제와는 너무도 거리가 먼 ‘박제된 시장’이다. 

현재 대부분의 북한 주민들은 국가의 배급시스템이 아니라 개별적인 상행위를 자본주의로 생각하고, 도둑질을 하든, 사기를 치든, 돈을 많이 버는 것을 자본주의로 착각하고 있다.

그래서 북한 주민들은 배급제 붕괴 후에 장사를 하면서 일확천금을 꿈꾸고, 돈이 되는 일이면, 들통 나지만 않으면 무슨 일이든 해서 돈을 많이 끌어 모으는 것을 능력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행태는 정상적인 자유시장경제에서는 용납될 수 없는 행위들이다.  

북한 정권이 진정한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 체제로 하루빨리 전환되도록 하고, 북한 주민들이 사적 소유를 인정받을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한다. 내 것, 내 소유가 없는 사회는 지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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