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한의 완전 닮은꼴 ‘난장판 정치’
남북한의 완전 닮은꼴 ‘난장판 정치’
  • 이애란 미래한국 편집위원
  • 승인 2015.07.30 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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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애란의 평양별곡]

北에 ‘맞다구 제의서 정치’가 있다면 南에는 ‘묻지마 입법 정치’가 있다

한국에 와서 살면서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는 뉴스 중의 하나가 입법 로비 뉴스다. 한때 민주 투사 출신 정치인들도 국회의원만 되면 입법 로비에 휘말려 미디어를 장식하는 것을 가끔 본다.

탈북민들의 남한 사회 정착을 위해 개선이 필요한 제안이 있어서 관계부처를 찾아가면 “관계법령이 없으니 국회의원들에게 알려서 입법부터 먼저 해야 한다”는 권고를 수도 없이 들었다.

그러나 실제로는 선거에 영향력 있는 단체가 없는 탈북민들이 국회의원들에게 입법 로비를 하는 것은 상당히 어렵다는 것을 깨달았다.

違憲 소지 법 양산하는 남한의 입법 로비

지난 총선에서 탈북민 출신 국회의원이 배출돼 탈북민들의 한국 사회 정착에 필요한 제도적 문제들을 입법으로 해결할 수 있을 것으로 큰 기대를 했다.

그러나 이런 간절한 기대와 열망에도 불구하고 국회의원 임기가 1년 정도 밖에 남지 않은 현재까지 이런 법이 만들어졌다는 소식은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는 것이 현실이다.

탈북민 지원 단체인 남북하나재단을 찾아가 탈북민들이 일할 수 있도록 취업 기준을 낮추고, 탈북민 커뮤니티를 형성하여 탈북민 정착에 관련된 일이라도 하게 기회를 달라고 아무리 사정해도 직원들로부터 들었던 가장 많은 대답은 “관련법이 없다”는 것이었다.

이를 개선해보려고 남북하나재단의 개혁을 위해 탈북민 단체들이 힘겨운 투쟁을 했지만 좌절됐다.

남북하나재단의 예산을 진정으로 탈북민들 정착 지원을 위해 쓰게 해달라고, 국가의 세금이 바르게, 효율적으로 쓰이게 해달라고 바른 소리를 했던 탈북민 단체장은 남북하나재단 이사장에게 고발됐다.

그는 심한 스트레스와 경제적 어려움에 시달리다 간암 진단을 받고 임대아파트에서 홀로 투병하다가 40을 갓 넘긴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일부 단체장들은 지금도 남북하나재단 이사장의 고소 고발로 어려움을 당하고 있다. 결국 탈북민들의 한국 사회 정착을 위한 현실적이고 효율적인 제안과 구조개혁이 입법 로비를 할 줄 모르는 탈북민 단체들의 무능력 때문에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

반면에 뛰어난 입법 로비 능력을 갖춘 한국의 민간단체들은 국회의원들을 통해 자기 단체의 권익과 관련된 엄청난 입법을 한다.

이렇게 탄생한 법 가운데는 대한민국 헌법에 위배되고, 자유민주주의 가치를 훼손하며, 상식적인 도덕의 범주를 넘어서는 법들까지 통과되는 ‘묻지마 입법’이 자행되고 있다.

이런 현상을 보면서 오늘날 북한이 피폐한 사회가 되는 데 상당한 역할을 한 김정일의 ‘제의서 정치’를 떠올려 본다.

북한 주민들이 가장 풍요를 누리던 때인 김일성이 홀로 정치를 했던 1960년 중반까지는 현장의 실태가 반영된 정책들이 실행되었고, 북한 주민들은 그나마 밥이라도 먹고 살 수 있었다.

그러나 김정일이 김일성의 후계자로 등장하고 김일성에게 현장의 목소리와 실태가 직접 전달되지 않고 왜곡되기 시작하면서 북한 경제는 추락하기 시작했다.

김정일의 ‘제의서 정치’는 현장 실태가 그대로 김일성에게 전달되면 너무 문제가 많아 김일성의 걱정이 많아지고 건강을 잃을 수 있다는 명목을 내세워, 꼭 필요한 것만 김일성에게 보고하게 하는 것이다.

김정일에게 제의서를 올려서 해결하는 것이 김일성에게 충성하는 길이라며 실제로는 김일성의 권력을 무력화시킨 것이다.

‘제의서 정치’로 경제 파탄 초래

김정일이 김일성의 권력을 총소리 한번 내지 않고 완전하게 빼앗을 수 있었던 비장의 무기가 바로 제의서 정치체제다.

현장에서 일어나는 많은 문제는 김정일에게 집중되고, 김정일이 직접 체크해서 김일성이 꼭 알아야 하는 문제만 보고하고, 나머지는 김정일이 해결하는 통치전략이다.

김정일은 제의서 정치를 통해 김일성을 ‘이름만 있고 실권이 없는 형식적인 지도자’로 전락시키고 실질적인 권력은 자기에게 집중될 수 있도록 했다.

그러다보니 김정일은 현실을 은폐해야 할 때가 많았고, 현장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문제 중에는 서로 상충되는 제의서들도 많았다.

김정일의 책상에 쌓인 제의서들은 현실과 원칙에 근거하기 보다는 그때 그때 김정일의 기분이나 간부들의 아첨, 상황에 따라 친필 사인이 떨어져 현장에서는 엄청난 혼란이 일어났다.

간부들은 사업을 추진해나갈 때 감당하기 어려운 문제가 생기면 무조건 김정일에게 제의서를 올려 친필 사인을 받아놓는 것으로 땜질을 하곤 했다.

예를 들면 한 부서가 전력 부족으로 정전(停電)을 할 수 있게 해 달라고 제의서를 올려 김정일이 친필 사인을 내려 보냈다.

그런데 다른 부서가 김정일이 학생들에게 주는 선물을 생산하는 공장이 계속되는 정전으로 선물 생산이 어렵다고 제의서를 올리는 경우가 있었다.

김정일은 예전에 했던 친필 사인은 생각하지도 않고(아니면 너무 바빠 그런 사인을 했는지 기억하지도 못하고) 전기를 보장해주라는 친필 사인을 내려보내 간부들 사이에 분쟁이 생겼다.

이처럼 현실을 고려하지 않고, 원칙도 없이 무조건 시행하라고 지시하는 행태를 북한 주민들은 “맞다구”라는 유행어를 통해 풍자했는데, 이것이 북한판 코미디극인 경희극의 주제가 되기도 했다.

다시 말하면 한 사람이 어떤 문제를 제기해 그것이 맞다고 했는데, 다른 사람이 먼저 그 제안에 대해 문제점을 제기하면 그 사람에게도 맞다고 하는 현상을 말한다.

지도자의 현실 인식 부족과 인기영합주의적인 ‘맞다구 제의서 정치’는 결국 북한 경제를 파탄 상태로 몰아가는 데 지대한 역할을 했다.

북한 경제가 파탄 나서 전시(戰時)도 아닌 평시(平時)에 3년 동안 북한 인구의 12%가 굶어죽는 참사가 일어난 것은 사회주의 경제 체제 문제이기도 하지만, 김정일의 인기영합주의적인 맞다구 제의서 정치가 가속도를 붙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애란 북한전통음식문화원장 · 미래한국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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