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위자연, 꾸밈없이 사는 지혜
무위자연, 꾸밈없이 사는 지혜
  • 미래한국
  • 승인 2015.01.13 0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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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귀의 고전 읽기] <장자(莊子)>
   
 

장자의 사상을 이해하려면 먼저 노자를 알 필요가 있다. 흔히 ‘노장(老莊)사상’이라 일컫는 것처럼 이 두 사람의 사상의 근간이 매우 밀접하게 상통(相通)하기 때문이다. 아니 오히려 장자의 사상이 ‘무위(無爲)’의 개념에 더 충실하고 명쾌하기도 한듯하다.

유가(儒家)의 관점을 깨뜨리는 데 있어 장자가 더 과감하다. 노자는 배움을 중시하지 않았다. 그가 강조한 도(道)는 학습으로 취득되는 것이 아니라 ‘있는 그 자체’, ‘꾸밈이 없는 사물과 인간의 본성’에서 우러나오는 것이라고 봤기 때문이다. 노자는 일체의 인위적 노력을 극도로 경계했다.

장자의 인생관 역시 확고하게 ‘무위자연(無爲自然)’을 궁극적인 목적으로 삼았다. 자연의 만물이 모두 같은 본체에서 발원한다는 생각에서 볼 때 인간과 자연의 동화는 자연스런 상호 회귀에 의해 이뤄진다. 여기에 ‘인위(人爲)’가 개입되면 인간은 자연의 본성과 어긋나게 된다.

장자는 인간의 처세에서 각자의 분수를 깨닫고 그에 맞게 처신하는 것이 보신(保身)의 제일철학이 돼야 함을 강조한다. 세상의 일반적 가치 기준과 명분을 따르기 위해 쓸데없는 노력으로 자신을 수고롭게 하기보다 자유롭게 살기를 권고한다.

‘쓸데가 없는 무용(無用)’이 가장 크게 쓰일 수 있다는 역설의 인생철학은, 늘 경쟁에 내몰려 무언가 더 많은 것을 성취하려 애쓰고 있는 현대인에겐 당혹스럽게 다가온다.

장자에게는 재능이 뛰어난 사람이나 부족한 사람이나 차별이 없다. 심지어 사람과 자연과의 사이에도 구별이 없다. 그가 나비 꿈을 꾸면서 나비가 자신의 꿈을 꾸는 것인지, 자신이 나비가 돼 꿈을 꾸는 것인지 분별하기 어렵다고 토로하는 이유도 같은 맥락이다.

자연과 인간, 현실과 꿈이 일체가 되는 경지가 그가 설정한 ‘도(道)’의 경지다. 어떻게 해야 장자의 도에 다가갈 수 있을까? 그가 제시하는 방법론은 ‘본성대로 살라’는 것이다. 개인의 지나친 욕망과 감정을 모두 내려놓고 자연의 모습으로 돌아가라는 것이다. 자신을 의식하지 않고 자연과 일체가 돼 살아가는 것이 인간의 참된 본성에 부합한다는 것이다.

장자는 공자가 설파한 인의(仁義)와 예(禮)를 강력하게 비판했다. 유가의 교훈은 모두 인위적인 노력을 요구하는 것으로 인간의 참된 본성의 발로와 배치된다고 봤기 때문이다.

마음을 고요히 비우고 욕망을 버리는 것, 거기서 출발할 때 사람 사이의 예와 인은 저절로 이뤄진다는 생각이다. ‘무심(無心)’과 ‘무위(無爲)’에서 나오는 생각과 행동이 가장 자연스런 본성이라는 의미다.

현대인에게 '무위자연(無爲自然)'이란 어떤 의미일까? 장자의 '무위(無爲)'가 아무것도 하지 않고 빈둥거리는 게으름과 나태를 의미하는 것은 분명 아니다. 무위가 무위도식(無爲徒食)을 뜻하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자연(自然) 역시 만물의 터전인 대자연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사물과 인간이 갖고 있는 본성적 요소를 간직한 상태, 순진무구한 맑은 마음의 바탕을 ‘자연’으로 이해해야 하지 않을까? 현대인은 유위(有爲)의 삶 속에서 무위를 실천하는 지혜를 찾아야 한다.

갖가지 요구받는 소임에 자신의 분수와 능력에 맞게 충실히 임하는 것, 자신의 직무에 꾸밈이 아닌 정성을 다하는 것, 그 자체가 무위자연을 실천하는 길이 아닐까?


박경귀 한국정책평가연구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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