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국제시장> 초반, 6·25 전쟁의 일부인 ‘흥남철수’ 피난 장면으로 스크린을 꽉 채운다. 어린 주인공 덕수는 아버지, 어머니를 따라 동생 막순이의 손을 꼭 잡고 뛴다.
미군 선박에 타기 위해 온 가족이 매달렸지만, 결국 막순이의 손을 놓고 말았고 아버지와도 생이별을 한다. 아버지가 “이제 니가 가장이다”라며 이별을 고하는 장면에서 이 영화는 본격적인 시작도 하기 전에 묵직한 감동의 카운터 펀치를 날린다.
뻔한 전쟁 장면 아니냐는 핀잔을 줄 수도 있지만, 눈앞에 펼쳐진 한 가족의 피난 여정은 영화이기 이전에 한국 현대사의 살아 있는 현장이었다.
이후 120분의 러닝 타임 동안 ‘울어야만 하는’ 감동의 펀치를 수없이 날린다. 과하다 싶은 감정의 홍수 속에서도 그것은 분명한 우리의 지난 60년이었고, 대한민국 1세대, 2세대가 겪은 삶의 현장이기에 충분한 감동으로 채워졌다.
1960~70년대 파독 광부와 간호사들, 베트남 파병과 기업의 베트남 진출을 담은 장면은 당시 근대화와 산업화의 빛과 그늘을 온전히 겪어낸 대한민국 1세대의 거울이었다.
주인공 덕수는 꽃 청춘 나이에 가족들 먹여 살리려고 파독 광부로, 베트남 기술자로 떠난다. 실제 그것은 이제 막 경제발전에 시동을 건 대한민국에 종자돈 마련을 위한 일이기도 했다. 베트남 파병은 값비싼 희생을 치렀지만 피할 수 없는 선택이었다.
대한민국 1세대의 ‘격동의 현대사’
더욱이 파병과 함께 이뤄진 기업 진출은 경제발전에 순기능을 했다. 베트남에서 급성장한 기업들은 건설 붐을 타고 중동으로 대거 건너갔다.
그 흐름은 오일쇼크를 반전시키며 80년대까지 ‘한강의 기적’이라는 대한민국의 경제성장을 이끈다. 영화는 이 역사의 현장에서 굳건히 버텨온 대한민국의 숨은 영웅들을 ‘아버지’란 이름으로 재조명한다.
“내는 그래 생각한다. 이 힘든 세월에 태어나가 이 힘든 세상 풍파를 우리 자식이 아니라 우리가 겪은 기 참 다행이라꼬”라는 주인공 덕수의 대사는 이 영화가 이야기하는 바를 함축적으로 알려준다.
우리는 대한민국 1세대가 겪어야만 했던 ‘이 힘든 세월에, 이 힘든 세상 풍파’를 얼마나 알고 있을까. 할아버지, 할머니에게도 쉽게 들을 수 있는 이야기지만, 굳이 들으려 하지 않았던 이야기이기도 했다.
언젠가부터 우리는 현재 가진 이의 여유와 풍족함이 원래 있었던 것처럼 살아가고 있다. 그래 봤자 불과 몇 십 년 전이다. 대한민국 1세대가 격동의 현대사를 피와 땀으로 적셔왔기에 가능한 일이다. 그래서 우리는 이 땅에 두 발을 붙이고 꿈을 꾸며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
영화 <국제시장>에 담긴 현대사를 불편하게 바라보는 눈도 적지 않다. 영화적인 완성도나, 기호에 따른 평가는 얼마든지 다를 수 있다. 다만 특정 사건(특히 베트남 파병)에 대해 우리가 잘 못한 부분을 다루지 않았다고 해서 이 영화가 던지는 메시지까지 손상될 필요는 없다고 본다.
문화평론가 허지웅은 “더 이상 아무것도 책임지지 않는 시니어들의 문제가 다뤄져야 마땅한 시점에 아버지 세대의 희생을 강조하는 <국제시장>의 등장은 반동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영화는 현실의 문제만을 담아야 하는가. 현대사에도 다뤄도 되는 주제가 있고, 다루면 안 되는 주제가 있는가. 우리가 지나온 현대사는, 그것이 좋은 것이든 별로인 것이든 언제나 이야기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 아닌지 되묻고 싶다.
젊은 세대에게 추천하고 싶은 영화
영화 속 가족들에게 고집 센 노인네 취급받는 2014년의 덕수에게서 대한민국 1세대의 뒷모습을 본다. 이제 삶의 마지막을 준비하는 할아버지 세대, 퇴직을 앞둔 아버지 세대의 작은 어깨를 통해 보이는 그 뒷모습의 쓸쓸함이 눈에 밟힌다.
희극도 있고 비극도 있었지만 누구보다 역동적인 한국 현대사 속의 주인공이 아니었나 생각한다. 그들은 남부럽지 않은 대한민국을 만들어 냈다.
불과 60여 년 전 시작된 이 이야기의 다음 주인공은 우리다. 우리가 가장 먼저 한 일은 전임자들에 대한 위로와 격려를 보내는 것에서부터 시작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이 영화는 이야기한다.
<국제시장>은 그때 그 시절 함께 했던 중·장년 관객이 주요 타깃이나, 수능 끝난 수험생은 물론 가족, 친구 모두가 충분히 공감할 수 있는 영화다. 오히려 그때 그 시절을 살아보지 않은 젊은 세대에게 더 추천하고 싶은 영화다.
그들에게는 잠시나마 격동의 현대사를 가슴으로 이해할 수 있는 더 없이 좋은 기회로, 대한민국 1세대의 숨은 영웅들에게는 그동안 전하지 못한 감사의 의미를 담는 기회로 다가갔으면 한다. 이 영화를 선택하게 만드는 이유다.
백경훈 미래를여는청년포럼 조직운영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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