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간 의료보험의 함정
민간 의료보험의 함정
  • 미래한국
  • 승인 2014.11.06 1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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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환규의 청진기] 민간 의료보험을 드셨습니까? 든든하십니까?

“민간 의료보험을 드셨습니까? 든든하십니까?”
그 보험은 믿음직한 안전망일 수도 있지만 치명적인 함정일 수도 있다. 보험의 세계를 함께 살펴보자.

OECD가 발표한 보건통계를 살펴보면 34개 OECD국가 중에서 지난 50년간 평균수명이 가장 크게 늘어난 나라는 우리나라다. 뿐만 아니라 대다수 건강의 지표가 우수하다.

그런데 우리나라 국민은 OECD 평균에 비해 약 3배 더 많이 병원을 방문해서 외래진료를 받고 연간 입원하는 기간은 OECD 평균의 약 2배에 이른다. 아픈 사람이 더 많다고 할 수도 있지만 국민이 병원을 더 자주 이용해서 건강한 것이라고 말할 수도 있다.

이제 돈 이야기를 해 보자. 의료이용률이 2배가 넘기 때문에 단순 계산으로 따진다면 우리나라 국민이 사용하는 의료비는 OECD 평균의 2배는 족히 넘어야 한다.

그런데 의외로 우리나라 국민이 연간 사용하는 의료비(2198달러)는 OECD 평균(3312달러)의 2/3에도 못 미친다.

진료는 2배나 더 많이 받는데 우리나라 국민이 의료비를 덜 쓰는 이유는 뭘까? 그것은 우리나라 의료비(건강보험수가)가 낮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병원의 건강보험수가는 OECD 평균의 1/4 수준이다.

   
 

‘지출’은 적은데 ‘부담’은 큰 현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있다. 이렇게 국민의 의료비 지출이 OECD 평균의 2/3에 불과하다면 의료비 부담이 적어야 한다.

그러나 의료비를 내느라 가정이 재정파탄에 빠지는 가구의 발생비율(재난적 의료비 발생비율)은 우리나라가 OECD 1위다. 의료비를 내느라고 재정파탄에 빠지다니, 왜 이런 일이 일어날까?

그것은 바로 의료비의 본인부담률이 지나치게 크기 때문이다. 다른 나라는 의료비의 정부 부담률이 크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그렇지 않다.

특히 동네 의원을 방문할 때는 커피 한 잔 값에도 못 미치는 진료비를 내면 되지만 중병에 걸려 대학병원에 가는 일이 생기면 선택 진료비에, 비싼 병실료에, 로봇수술 등 각종 보험이 안 되는 높은 진료비가 청구된다. 그래서 의료비 부담이 큰 것이다.

병원에서 각종 비급여(비보험) 진료를 많이 하는 이유는 보험진료비가 너무 낮아 손실이 발생하기 때문에 보험이 안 되는 진료나 병실비 등으로 그 손실을 보상하려 하기 때문이다.

큰 병이 하나 생기면 적게는 수백만원에서 수천만원씩 돈이 들어가는 일이 허다하게 발생하다보니 사람들은 불안해졌다. 그래서 본인부담금을 대신 지급하거나 진단자금 혹은 수술자금을 지급하는 민간의료보험상품에 사람들은 많이 가입을 했다.

   
 

현재 민간의료보험상품에 가입한 국민은 5000만명의 국민 중에서 3000만명이 넘었다. 민간의료보험의 규모는 공(公)보험의 절반을 훌쩍 넘어섰으며 일부에서는 공보험의 규모에 근접했다는 주장하는 이도 있다.

민간의료보험 시장이 무척 커진 것이다. 그런데 일각에서는 ‘민간의료보험이 생각보다 도움이 안 된다’고 주장을 하기도 한다. 어떤 영문일까.

의료보험에는 정액형과 실손형이 있다. 정액형이란 정해진 금액을 지불하는 것을 말한다. 암 진단을 받으면 진단자금으로 3000만원을 지급하는 것 등의 암보험이 대표적인 정액형 보험이다.

실손형은 실제 손해가 나는 만큼 보상해 주는 보험을 말한다. 외래 진료를 받을 때에 하루 10만원까지 보상한다거나, 입원하는 경우 3일째 되는 날부터 보상을 해준다는 등의 내용이다. 그런데 실제로 민간의료보험이 생각보다 도움이 안 되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보자.

실손형 민간의료보험에 가입한 50대 박모 씨가 며칠 동안 머리가 심하게 아파 동네 의원을 거쳐 대학병원을 방문했다. 대학병원 신경과 교수는 뇌 MRI를 찍어보자고 했다. 수납창구에 갔더니 뇌 MRI촬영 비용이 127만원이라고 한다. 어지간한 사람 한 달 월급에 육박하는 금액이다.


민간의료보험은 도움이 안 된다?

건강보험이 해당 안 되느냐고 물었더니 “MRI를 찍어서 이상이 발견되면 보험이 될 수 있지만 결과가 정상이면 보험이 안 됩니다”라는 대답이 들려온다. 일단 카드로 계산하고 MRI를 찍었다. 결과는 다행히(?) 꽝이었다. 즉 건강보험 혜택을 못 받는다는 얘기다.

그래도 민간의료보험에 가입했으니 혜택이 있으리라 기대했다. 그러나 민간의료보험사에서는 외래진료의 경우 10만원까지만 보상한다는 규정에 의해 127만원의 치료비 중 10만원만 지급할 수 있다고 했다.

그마저도 진단서 등 까다로운 서류들이 필요하다. 이 경우 민간의료보험은 박 씨에게 ‘도움’이 됐다고 말할 수 있을까?
민간의료보험이 생각보다 도움이 안 되는 이유는 뭘까.

첫째, 회사의 이윤을 보장하는 상품의 설계 때문이다. 본격적인 논의를 시작하기 전에 건강보험공단부터 살펴보자.

국가보험인 건강보험을 운영하는 건강보험공단조차도 방만한 운영으로 자주 도마에 오른다. 1만2000명이 넘는 직원 중 무려 80% 이상의 직급이 과장 이상일 뿐더러 40여개가 넘는 전국 지사들이 거의 예외 없이 지난 수년 이내 최소 수십억원씩을 들여 신축 및 증축공사를 진행했다.

2007년부터 2013년 8월 기간 동안 38개 지사의 신축과 증축에 들어간 예산만 2389억원이었다. 뿐만 아니라 국민건강보험공단의 원주 신사옥과 청풍 연수원 건립에 2416억 원이 투입되는 공사가 진행 중이다. 모두 국민이 납부한 건강보험료다.

그런데 이렇게 방만한 운영을 하는 건강보험공단의 관리운영비는 전체 건강보험료 납부액의 4% 내외로 우리나라와 유사한 건강보험체계를 운영하는 대만의 1.5%의 2배가 넘는 수준이다.

그렇다면 민간보험사는 어떨까? 보험을 모집하는 사람에게 모집수당을 줘야 하고, 방송을 통한 광고비도 지출해야 하고, 기업의 적정 이윤도 확보해야 하는 민간의료보험사의 사업비는 전체 보험료 납부액의 약 17~30%로 방만한 운영을 하는 건강보험공단의 5배가 넘는 수준이다.

따라서 민간보험은 보험 상품을 기획할 최초 단계에서부터 회사의 위험부담률을 낮추는 보험상품을 개발한다.

   
 

몇 가지 이유들

둘째, 늘어나는 건강보험의 급여항목 때문이다. 대다수 실손형 민간의료보험상품은 국민건강보험을 보조하는 보험으로서 보험 중 본인부담금을 대신 내주거나 보험이 안 되는 비급여 진료를 부담하는 상품이다.

그런데 건강보험에서 보험적용을 해주는 항목이 점차로 늘어나 민간의료보험사의 부담이 크게 줄고 있다. 이것은 곧 민간의료보험 상품이 별다른 도움이 안 된다는 뜻이다. 예를 들어 일반 질환의 경우 입원치료비 중 보험이 되는 항목에 대해서는 환자부담이 20%다.

그런데 2005년부터 암환자의 경우 10%만 부담하게 됐고 2009년 12월부터는 5%만 부담하면 된다. 금년부터는 초음파도 보험이 된다.

민간의료보험사가 부담하던 비급여 항목들이 점차로 건강보험의 부담으로 넘어가고 있는 것이다. 그만큼 민간의료보험의 효용성이 떨어질 수 밖에 없다.

셋째, 악성 보험고객이 선량한 보험가입자에게 손해를 끼치는 문제도 관련이 있다. 민간의료보험에 가입하는 사람 중에는 고의적으로 보험료를 타낼 목적으로 가입하는 이들이 있다.

약 2년 전 여름방학을 이용해 서류상 병원에 입원한 것으로 꾸며놓고 해외여행을 다녀온 교사들이 대거 단속에 걸린 것이 그 사례다. 보험사는 이런 불온한 악성 보험고객들이 타내는 보험사기에 대한 위험부담까지 모두 보험료 인상에 반영한다.

넷째, 보험료를 타기 어렵도록 설계한 까닭도 있다. 보험에 가입하는 사람들은 보통 설계사의 권유를 받아 보험에 가입하게 된다. 그런데 보험설계사의 설명과 실제 약관과는 큰 차이가 있는 경우가 많다.

더욱이 약관에는 보험전문용어들과 의학전문용어들이 뒤섞여 있어 전문가가 아니면 이해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그런데도 약관에 동의하지 않으면 보험가입 자체가 안 되기 때문에 약관에 대한 이해가 부족해도 어쩔 수 없이 동의하는 것이 대부분이다.

그렇다면 보험의 약관에는 어떤 함정들이 들어 있을까? 이 문제에 대해서는 다음 호에서 상세히 다뤄보도록 하겠다. 


노환규 편집위원·전 대한의사협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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