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14 새누리당 전당대회와 7·30 재보궐선거가 지나간 지금 새누리당은 잠시 멈춰서 숨고르기를 하는 중일까. ‘변화와 혁신’을 외치던 수많은 목소리들은 더 이상 잘 들리지 않는다. ‘벼락치기를 한 것 치고는 꽤 잘 나온 성적표’를 들고서 마음 놓고 드러누워 있는 것은 아닌가.
모범생이라면, 혹은 정신없던 벼락치기 이후 철이든 학생이라면 진짜 공부는 시험 이후부터라는 것을 알고 있을 터. 정치권의 진정한 변화와 미래의 준비도 이제부터라는 생각에 지난 선거 당시 새누리당 사무총장 겸 공천관리위원장으로서 당의 승리를 실질적으로 이끌었던 윤상현 의원을 지난 13일 만나 지난 선거의 뒷이야기와 교훈, 향후 당과 정치권의 개혁 방향 등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미래한국은 앞으로도 여야 정치권의 진정한 변화를 촉구하고 모니터 한다는 의미에서 주요 정치인들의 인터뷰를 지속할 예정이다.
- 7·30 재보선에서 새누리당은 11:4로 대승을 거뒀는데요. 그 중심에 사무총장이었던 의원님이 계셨습니다. ‘변화와 혁신’이 슬로건이었습니다만 구체적으로 어떤 변화와 혁신을 염두에 두셨나요.
정당 차원에서 생각할 수 있는 변화와 혁신은 ‘공천권’ 개혁이었죠. 공천권을 국민들에게 돌려드린다는 것을 최고의 변화이자 혁신으로 봤습니다. 보통 재보궐선거에서는 ‘전략공천’이라는 이름으로 중앙당에서 후보를 지정해 버리잖아요. 이번 7·30 재보선의 경우처럼 공천권을 국민들에게 돌려준 적은 없었어요. 이번에 새누리당은 공천권을 철저히 국민들에게 돌려주기로 결정했습니다. 출마 후보가 없었던 서울 동작을(나경원 공천) 지역이나 수원정(임태희 공천) 지역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지역에서 당원참여 경선, 여론조사 경선 등 국민이 참여하는 경선방식을 택했어요.
권은희 추켜세운 야당, 패배할 수밖에
- 그 방식이 승리에 직접적인 요인이 됐다고 보시는 건가요.
그렇습니다. 공천권을 내려놓는다는 것은 곧 당과 당 지도부가 가진 기득권을 내려놓는다는 의미인데요. 이 지점이 정치권의 변화와 혁신의 바람을 일으키는 첫걸음이었다고 생각합니다. 7·30 재보선 승리의 요인이었다고도 생각하고요.
- 그렇다면, 새정치민주연합(새민련)의 패인은 어디에 있었다고 보십니까.
광주 광산을 지역에 출마하려고 예비후보로 선거운동하던 기동민 후보를 서울 동작을 지역에 전략공천해버린 사례가 있지 않았습니까. 이것은 국민을 무시한 거예요. 새민련 지도부가 오만했던 거고, 그러다보니 악수(惡手)를 두게 된 것이죠. 오히려 광주 광산을 지역에서 경선을 통해 광주시민과 광주 당원들이 후보를 선택하게 했다면 서울 동작을 지역에서 결과가 달라졌을 수도 있어요. 결국 권은희 의원이 광주 광산을 지역에서 당선되긴 했지만 권 후보 공천 당시 여러 가지 문제점들이 도출됐죠.
2004년 청주에서 변호사로 활동할 시절의 위증교사 의혹, 작년 2월 연세대 법대 대학원 석사논문의 1/3 분량에 대한 무더기 표절 의혹, 2011년 7월부터 2013년 2월까지 남편이 19개월 동안 소득세를 한 푼도 안냈는데 상가 14채를 매입했다든가 하는 의혹 등이죠. 김한길-안철수 대표는 이런 사람을 시대의 양심, 정의의 사도라고 했어요. 어떻게 그렇습니까?
- 7·30 선거 이후에 정치권은 숨고르기라도 하는 듯 조용한 분위기입니다. 좋게 말하면 그런거고 벼락치기 시험공부 이후 마음껏 놀고 있는 학생 같기도 한데요(웃음), 지금부터가 새누리당이 변화하는 본격적인 시작점일 것 같습니다. 진정한 변화를 위한 우선 과제로 무엇을 생각하고 계십니까.
우선 새누리당은 기득권을 내려놓아야 합니다. 새바위(새누리당을 바꾸는 혁신위원회)를 통해 주장한 것이 주요 당직을 맡을 때 당 스스로 검증을 하자는 거였잖아요? 예를 들어 당 대표 최고위원 후보 등 주요 당직을 맡게 될 사람, 국회의원에 출마하려는 사람 등에 대해서 철저한 검증을 하는 거죠. 우리 스스로가 검증을 통해 자격 요건을 강화해 나가는 것이 주요 혁신과제 중 하나입니다. 또한 각계각층에 새누리당의 가치를 실행할 인재 풀을 만들고 인재들을 미리 검증하는 절차를 갖출 필요가 있습니다. 이것 역시 혁신의 방향이며 당 지도부가 할 일 이겠죠.
- 보수진영에서는 새누리당이 여전히 ‘웰빙 이미지’를 갖고 있다는 것, 그리고 보수로서의 정체성을 강화시키지 않고 있다는 것에 대해 불만이 있습니다. 새누리당의 가야 할 방향이 국민의 눈높이에 맞춰 중도층까지 포괄하고 저변을 확대하는 방향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원내에서 야당 의원들은 운동권 출신이 많아 투쟁성이 강합니다. 그런데 새누리당은 그렇지 않아요. 투쟁성이 약하고 스스로 웰빙에 젖어 있지요. 그 부분은 인정합니다. 개인적으로 비례대표 후보들을 선발함에 있어서 선거 직전에 ‘급조’되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비례대표만큼은 보수의 가치를 확실히 지킬 사람을 선별하는 작업을 꾸준히 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야당과 협상을 하거나 정치투쟁을 하려면 투쟁성을 갖추고 추진력 있는 사람이 필요하죠. 당의 입장에서 전체적인 그림을 그려 본다면 보수의 가치를 강화시킬 수 있는 사람도 필요하고 중도성향의 사람도 필요해요.
가장 중요한 건 새누리당이 현재 ‘이념적 좌표 설정’이 안 돼 있다는 거예요. 여의도연구원이 그 역할을 잘 못해주고 있어요. 제가 만약 당 대표라면 대한민국의 중도보수 이념가치를 실행할 수 있는 사람을 여의도연구원 원장으로 모셔올 겁니다. 여의도연구원은 새누리당의 실질적인 정책 집행을 뒷받침해야 하기 때문에 실행력 있는 분이 원장이 돼야 합니다.
- 2017년 19대 대선까지 아직 3년여가 남긴 했습니다만, 현 시점에서 야권의 대선 후보는 박원순 서울시장이 독보적입니다. 반면 여권에는 박 시장을 능가할 만한 후보는 없어 보이는데요. 이에 대한 문제의식은 갖고 계십니까?
지난 6·4지방선거 때 광화문 광장에서 새누리당 의원들이 릴레이 1인 캠페인을 했어요. 저도 1인 캠페인을 마치고 식사하러 광화문 뒷골목의 식당가를 찾았는데, 그 당시 서울시장 후보였던 박원순 시장이 운동화 신고 가방 메고 혼자 돌아다니면서 유세를 하고 있더라고요. 정몽준 후보가 지지자들 모아두고 선거 유세를 하는 것과는 차원이 달랐죠.
비례대표만이라도 투쟁성 갖춰야, 여의도연구원 인선 중요
지지자들을 모아서 선거 유세를 하는 건 ‘우리만의 잔치’가 될 뿐이거든요. 이제는 이정현 의원이 7·30 재보선에서 하셨던 것처럼 밑바닥부터 훑는 것이 필요해요. 한국의 정치 환경에서 보여주지 못했던 탈(脫) 정치적인 모습을 국민들에게 보여줬을 때 지지를 얻을 수 있어요. 지금도 여권에서는 다음 대선 후보로 여겨지는 여러 인물들이 계십니다만, 2016년 20대 총선이 끝나면 대선 후보군이 좀 더 다양화될 거예요. 이때 합의를 거쳐서 야권의 박원순 시장, 안철수 의원 등에 대항할 수 있는 후보를 낼 수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 윤 의원님은 박근혜 대통령과 가장 가깝고 소통이 되는 분으로 알려져 있는데요. 최근에 대통령은 어떤 생각을 하고 계신가요. 박근혜 정부의 최우선 과제가 무엇이라고 보시는지요.
대통령의 국정운영 의제는 크게 두 가지가 있어요. 하나는 어느 날 갑자기 올 수 있는 통일을 준비하는 것, 또 다른 하나는 규제를 혁파하고 경제를 활성화하는 것입니다. 박근혜 대통령은 대한민국과 결혼했다고 할 정도로 밥을 먹으면서도 대한민국의 발전만을 생각하는 분이에요. 그런데 대통령 뜻대로 국정운영이 잘 되지 않아서 안타깝죠.
대통령이 제대로 일할 수 있도록 야당이 대승적 차원에서 협조해 줘야 하는데 지금의 정치권은 ‘직무유기’라고 할 정도로 비협조적이에요. 특히 야당이 국회에 계류 중인 투자활성화, 부동산 정상화, 민생안정 법안 등 각종 경제 활성화 관련 법안들을 세월호특별법과 연계해서 통과시키지 않고 있어요. 복지비용은 막대한데 그걸 다 어떻게 마련합니까. 세수가 창출이 돼야 해요. 그러려면 경제 활성화가 선행돼야 하고요. 정말 새 정치를 하려는 야당이라면 매번 발목을 잡을 것이 아니라 협조할 것은 협조해 줘야 해요. 정말 답답합니다.
- 그렇다면 박근혜 대통령이 이 국면을 어떻게 타개해야 할까요?
대통령도 여당도 정치력을 보여줘야 합니다. 여러 가지로 상대하기 힘든 야당이지만 야당과 대화와 소통을 통해서 정치력을 보여줘야 해요. 특히 규제를 혁파하고 경제를 활성화시키기 위해서는 국회에서뿐만 아니라 지방의회에서도 함께 노력해줘야 합니다. 지방의회는 당이나 중앙 정부에서 나서지 않으면 힘들거든요. 그런데 당에서는 그런 생각을 하는 사람이 없어요. 당에 규제개혁위원회가 있지만 직접 발로 뛰는 사람이 없다는 게 문제에요.
이석기 체포동의안 주도하며 ‘역사의 아픔’ 실감
- 대통령의 최측근으로 손꼽히는 분으로서 윤 의원님 본인의 당내 역할이 있다고 보시나요.
제가 앞으로 대통령을 도우면서 해야 할 일은 지방의회를 찾아가 규제개혁 간담회를 개최하고 지방에서도 규제개혁을 실행할 수 있도록 독려하는 일이라고 봅니다. 새누리당이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대구, 경상도 지역부터 시작해 나가는 거죠. 저는 2012년 대선 때부터 대선공보단장을 시작으로 총괄수행단장, 원내수석, 사무총장 등을 역임하면서 2년 반을 박근혜 정부의 성공을 위해 달려왔어요. 대통령이 잘해야 대한민국이 발전하고 국민들도 잘 살 수 있다는 신념으로 뛰고 있습니다.
- 정치인으로서 윤 의원님의 계획과 비전에 대해 말씀해 주세요.
단기적인 것부터 말씀드리자면 책을 한 권 준비하고 있습니다. ‘원내수석, 일요일의 남자’라는 제목이에요. 제가 52주(1년) 동안 원내수석을 했는데 그 중 27주를 일요일 3시에 주요 현안들에 대한 간담회를 하는 것으로 썼거든요. 그 내용들과 저의 정치철학에 대한 내용을 담았습니다.
책에도 쓴 내용이지만 정사 정(政)에 길 도(道), 그러니까 ‘정도’라는 건 반드시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 정치의 길은 결국 인(人), 그러니까 사람으로 통한다고 봅니다. 제가 정치학 공부도 해보고 현실정치에서 활동하면서 느끼는 점은 ‘이해관계가 없는 정치란 없다’는 거거든요. 그런데 한국적 상황에서 최고의 정치는 가장 인간적일 때, 가장 탈(脫) 정치화될 때 나오는 것 같아요.
좀 다른 얘기가 될 수도 있지만 제가 작년 이석기 체포동의안을 주도해서 처리했거든요. 그런데 제가 비록 투쟁의 선봉에 서 있었지만, 이석기 의원에게 먼저 다가갔습니다. 처음 그 사람 봤을 때에는 아주 당당했어요. 그에게 아무도 악수를 청하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는데, 저는 먼저 다가가서 “역사의 아픔은 시대의 아픔이다”라고 말을 건네며 악수를 청했습니다. 동시대를 살아오면서 한 사람은 대한민국 체제를 전복시키고 사회주의 혁명을 하겠다고 하고, 나는 대한민국 체제를 수호하려고 하고…. 결국 이것은 우리 시대 역사의 아픔이 아니겠습니까.
- 끝으로 개인적인 질문 하나 던지겠습니다. 기독교 신앙생활을 하시는 걸로 알고 있는데 정치와 신앙의 관계는 어떻게 풀고 계신가요.
투철한 신앙인이자 정치인으로서 영국의 노예해방을 주도했던 윌리엄 윌버포스 의원을 자주 떠올립니다. 신앙과 정치는 조화시키기가 참 힘들어요. 신앙에 중점을 두다보면 신앙인은 될 수 있어도 ‘정치가’로 서기가 어려워지는 게 사실입니다. 얼마 전 문창극 총리 후보 사건의 경우도 그렇습니다.
저는 문창극 후보의 온누리교회 강연 영상을 처음부터 끝까지 다 보면서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성경적 역사관과 가치관을 가지고 그 영상의 맥락을 보면 아무런 문제가 없었어요. 그런데 낙마를 시키려고 KBS에서 왜곡 편집된 방송을 내보낸 거죠. 방송 직후 새누리당 비대위에서 저 혼자만 문제가 없다고 발언을 했었어요. 여론 눈치보고, 피상적으로만 알면서 아무도 얘길 안 하더라고요. 당시 문 후보 사퇴요구 기자회견을 주도했던 의원들도 기독교인이었습니다. 당시 여론조사에서 70%가 문 후보의 사퇴를 바랐어요. 보궐선거가 없었으면 그 일은 다르게 전개됐을 겁니다. 이런 게 참 문제죠.
인터뷰/김범수 편집위원 www.kimbumsoo.net
정리/한은희 기자 snail_no1@naver.com
사진/이재현 객원기자 lgrlgh@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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