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습의 편견 깨고 모두의 교회 만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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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래한국
  • 승인 2014.07.29 1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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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만나교회 김병삼 목사
 

‘큰 교회 목사가 아닌 좋은 목사가 되고 싶다. 비신앙인들이 편하게 드나드는 친숙한 교회를 만들고 싶다.’

2004년 만나교회 담임목사로 부임할 당시 김병삼 목사의 각오다. 그는 방법을 찾기 위해 교인들과 비신앙인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했다.

“진리를 벗어나는 것만 아니라면 교인들 마음에 드는 리더가 되고 싶었어요.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만나교회의 이미지에 대해 물었을 때 그저 분당에 있는 큰 교회, 선한목자상 그림이 있는 교회라는 정도였어요.”

당시 만나교회의 당면 과제는 ‘세습’에 관한 부정적 이미지를 벗는 것이었다. 아버지 김우영 목사가 2002년 뇌경색으로 쓰러진 이후 사임 의사를 밝히자 2003년 만나교회는 차기 담임목사 선출을 위해 무기명 투표를 2번 실시했다. 투표 결과 김병삼 목사가 만장일치로 2대 담임목사에 선출됐다. 곧바로 세습이라는 소리가 들려왔다.

“당시 교인들에게 외부에서 우리 교회에 대해 부정적으로 얘기하면 아니라는 말을 하지 말라고 당부했어요. 교회 이미지를 어떻게 바꿀 것인가를 위해 노력하자는 결심을 했습니다.”

2004년 ‘부정적 혹은 아무런 이미지도 없는 교회’에서 출발한 만나교회의 현재 이미지는 어떻게 변했을까. 올해 초 만나교회는 컨설팅 전문가에게 의뢰해 교회 평가를 실시했다. 이미 결과 분석이 끝나고 ‘M-Vision 면담결과보고서’가 작성된 상태이다. 모든 통계는 내년 초 ‘만나교회 10년 후 비전’을 외부에 공표할 때 함께 발표할 예정이다.

면담 결과 보고서에서 ‘10년간 만나교회의 변화’에 대한 항목을 살펴봤을 때 긍정적 92%, 부정적 5%, 기타 의견 3%를 차지했다. ‘리모델링과 같은 물리적 변화, 프로그램과 사회를 위한 다양한 활동, 말씀과 영적인 부분’에서 높은 점수가 나왔다. ‘담임목사의 리더십’에 관한 질문에 긍정적 평가 76%, 대체로 긍정적 14%, 유보적 10%라는 결과가 나왔다. ‘리더십이 탁월하고 추진력이 강하다, 설교가 좋다, 디테일이 살아 있다, 솔직하고 용기 있다’는 것이 긍정적 평가의 이유다.

“10년 전과 비교했을 때 우리 교인들의 평가와 외부 평가가 다 좋아졌어요. 부임할 때 좋은 목사가 되고 싶었는데 결과가 좋아서 기쁩니다. 10년간 도덕성을 갖추려고 노력했습니다. 만나교회 담임으로 있는 동안 돈 모으지 않고 집 사지 않겠다고 결심했습니다. 외부 집회 사례비와 주례 사례비를 전부 헌금했어요. 그렇다고 청빈하게만 산다는 건 아니에요. 분당에 살고 있는 제 나이 또래의 중산층 수준 정도로 살고 있죠.”

스트레스로 공황장애 앓기도

김병삼 목사는 좋은 목사가 되기 위해 끊임없이 달리다가 2007년 공황장애를 앓기도 했다. 3개월간 설교를 못했고 그후로도 2년6개월 동안 설교를 하고 나면 앓아누워야 했다. 2012년까지 5년이 지나서야 서서히 치료가 됐다.

“공황장애의 원인은 정신적인 부분보다 육체적인 부분이 더 커요. 과로와 스트레스로 몸의 밸런스가 깨지면서 오는 병입니다. 외부에서 ‘세습한 교회’로 바라보는 시각 때문에 잘해야겠다는 압박이 컸어요. 제 스스로 스트레스를 많이 받고 긴장해서 너무 열심히 뛰다보니 병이 난 거죠. 교회가 정말정말 잘 될 때 아팠어요. 제 체력이 다 한 거죠. 옆에서 컨트롤해 주는 사람이 필요해 1년 동안 정신과 의사와 정기적으로 만났어요. 의사가 스케줄까지 검토해서 조절해줬어요. 지금은 제가 알아서 쉬지만요. 어느 정도 무리하면 공황장애가 온다는 걸 알아채죠.”

김병삼 목사의 아버지 김우영 목사는 2002년 감리교 감독회장 선출 직전에 쓰러져 2006년에 소천했다. 당시 만나교회의 출석교인은 3000여명 규모였다. 김우영 목사는 담임목사직을 사임하고 1981년 잠실 천막교회에서 개척을 시작한 녹록지 않은 이력의 소유자다. 송파성전을 거쳐 1993년에 분당으로 이전했다.

김병삼 목사는 아버지의 강권에 의해 신학교에 진학해 갈등을 많이 느꼈다. 그러던 중 군목 시절 집회에서 은혜를 받고 제대 후 미국으로 유학을 떠났다. 빨리 목회하고 싶어 4년반 만에 박사과정을 마치고 귀국했다.

“1998년 IMF 사태 때였어요. 교회를 짓고 나서 탈진하신 아버지가 도와줬으면 좋겠다고 하셨어요. 세습 문제로 사회가 시끄러울 때라 파트타임 목사로 일하면서 대학에서 강의를 했죠. 절대 만나교회에 있을 생각이 없었어요. 2002년에 한동대 교수로 가기 위해 교회에 사임 의사를 밝혔는데 갑자기 아버지가 쓰러지신 겁니다.”

40세에 담임목사가 됐을 때 48명의 장로들이 모두 연장자였다. 부임하자마자 강단을 바꾸고 수요 저녁예배 대신 수요 낮예배를 신설했다. 교회 내에서 반대의 목소리도 있었지만 교육과 설득으로 이겨나갔다.

“개척교회를 하기 위해 ‘우리가 꿈꾸는 교회’라는 책을 냈었어요. 부임하자마자 ‘우리가 꿈꾸는 교회’ ‘우리가 꿈꾸는 사역’이라는 주제로 12주씩 설교를 했고요. 워크숍도 열면서 계속적으로 설득해나갔죠. 남을 설득하려면 자기 관리에 철저해야 합니다. 목사가 바로 서면 반대는 얼마든지 이겨낼 수 있어요.

신학적으로, 교회 미래를 위해 왜 변화가 필요한지 끊임없이 설명해야 합니다. 그래도 안 바뀌는 사람들이 있지만 그런 사람들 때문에 일을 못하면 발전이 없겠죠. 비전 작업도 하고 리서치도 해가며 객관적인 증거를 마련하면 설득이 쉽습니다. 워크숍을 통해 의견을 만들어 가는 것이 즐거웠습니다. 민중을 따라가는 게 반드시 옳은 건 아닙니다. 대다수의 의견이 옳은 쪽으로 가도록 이끄는 게 중요합니다.”

김병삼 목사는 리더십 훈련의 필요성에 대해 피력했다.

“설교를 잘하는 것과 리더십이 있는 건 다릅니다. 담임목사는 선한 영향력을 갖고 사람들을 이끌어 가는 능력이 있어야 합니다. 리더십은 타고 나는 부분이 있지만 노력도 해야 합니다. 저는 리더십에 관심이 많아 경영, 마케팅, 리더십 관련 책을 많이 봤어요.”

김병삼 목사가 꿈꾼 목회는 ‘다음 세대를 위해 준비하는 교회, 교회를 다니지 않는 사람들에게 친숙한 교회’가 되는 것이었다. 그래서 건물을 리모델링할 때 모든 공간을 아이들 중심으로 꾸몄다. 만나교회 카페 ‘파구스’는 교회 로비를 통하지 않고 들어와서 차를 마실 수 있도록 따로 문을 만들었다. 카페에서 찬송가를 틀지 않고 십자가도 걸지 않았다. 그런 노력으로 일반인들이 더 많이 드나들고 있다. 교회를 리모델링한 후 성남시에 교회를 ‘사랑방 1호’로 등록했다. 동호인들에게 교회 공간을 제공하기 위해서였다. 현재 실내체육관을 비롯한 교회 내 여러 공간을 시민들이 사용하고 있다. 카페를 외부에 계속 개설해나가고 있으며 수익금은 모두 공익을 위해 사용한다.

“미국에서 공부할 때 좋은 교회들을 다녀봤는데 대부분 커뮤니티 처치(community church)였어요. ‘교회가 세상 안에서 어떻게 설 수 있나’를 늘 생각했고, 10년이 지난 지금 지역민들에게 친숙한 교회가 됐습니다.”

 

NGO 활동과 미자립교회 돕기에 열심

교회는 초기부터 안정이 됐다. 하지만 외부에서 계속 “그 교회 어렵다더라, 시끄럽다더라”라는 소리가 들려왔다.

“개척을 꼭 하고 싶었어요. 개척을 하고 나서 나중에 ‘한국 사회가 세습을 부정적으로 생각하는데 저는 아버님에 이어 담임이 된 걸 감사한다. 전통적인 목회를 하셨던 아버님과 다른 목회를 하지만 믿음의 유산을 받은 게 큰 축복이다. 큰 교회를 부의 세습으로 보면 부정적이지만 믿음의 영성과 믿음의 유산을 이어받아 목회를 한다는 건 훌륭한 일이다.’ 이런 말을 하고 싶었습니다. 대부분의 교단에서 세습을 법으로 막아놓았는데 그거야말로 우리 사회의 편협성과 폐쇄성을 드러내는 일이죠. 자정 능력이 있는 사회가 돼야 합니다. 부작용이 있어서 법을 제정했지만 안타까운 일이죠.”

만나교회 장로의 아들이 장로가 됐을 때 무척 기뻤다는 김 목사는 믿음의 전통을 이어가는 것은 대단히 중요하다고 말했다.

“우리 교회 설교 중에 올드 앤 뉴(old & new) 편이 있어요. 아버님이 개척해서 목회하실 때 했던 옛날 설교 10편을 뽑았어요. 아버님이 하신 설교를 요약한 뒤 이제 저의 해석을 추가로 전했을 때 교인들이 아주 좋아했죠.”

만나교회는 10년간 다양한 사역을 해왔다. 앞으로는 이번 리서치 결과에서 교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것으로 나타난 2가지 사역에 주력할 예정이라고 한다. 첫 번째가 5년 전 시작한 NGO 월드휴먼브리지 사역이고 두 번째가 MMP(만나미션플랜) 프로그램이다. 아프리카 우물 파기, 미혼모 돕기 등 국내외에서 구호사업을 하는 월드휴먼브리지는 사단법인으로 출발했다.

작은 교회 돕기에도 앞장 서

“그동안 교회들이 NGO를 후원하는 것에 그쳤는데 월드휴먼브리지는 교회가 세상 속으로 들어가서 NGO의 이름으로 일을 하는 새로운 방식입니다. NGO를 설립하면 정부나 지방자치단체와 협조가 잘 되고 기업 후원도 받기가 쉽습니다. 교회 일이 아닌 하나님의 일을 하면 좋겠다는 의미에서 시작했고 10여개의 지부가 생겼습니다. 참여하는 교회들도 월드휴먼브리지 이름을 사용하여 독자적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처음에 다들 안 된다고 말렸지만 여러 교회가 연합해서 잘 하고 있습니다. 재단을 만들 때 교회에서 자금을 많이 출연하면 교인들이 소유권을 주장할 우려가 있습니다. 그래서 3000만원으로 시작했고 올해 50억 원의 후원금을 운용하고 있습니다.”

MMP는 미자립교회 돕기 활동이다. 교인이 10~50명 정도인 작은 교회 20곳을 선정해 각각의 교회에 매달 100만원씩 2년간 돕는다. 현재 2기가 진행 중이다. 단순히 물질적인 지원만 하는 것이 아니라 실질적이고 직접적인 도움을 준다. 작은 교회들에 만나교회 프로그램 20여개를 이식했고 지난 10년 간 설교한 내용을 다 오픈했다. 김병삼 목사가 두 달에 한 번씩 작은 교회 담임목사를 만나 코칭을 하고, 교인들이 정기적으로 작은 교회를 방문해 제자훈련, 성가대, 여름성경학교 등의 사역을 돕는다. 김 목사는 앞으로 작은 교회를 돌며 일일부흥회를 할 예정이다.

“모집할 때마다 150개 교회가 신청을 했는데 20개씩만 뽑은 건 우리 교회가 실제로 가서 도울 수 있는 여력이 그 정도였기 때문입니다. 작은 교회들이 원서를 제출하면 평신도들이 교회 실사를 하고 프레젠테이션까지 다 한 다음 뽑습니다. 우리의 꿈은 MMP로 성장한 교회들이 다른 교회를 섬기는 것입니다. 주일에 우리 교인들이 작은 교회에 가서 예배드리고 그쪽에서 우리 교회로 오기도 합니다. 작은 교회 목사님들에게 우리 교인들이 가면 잘 설득해서 그쪽 교인으로 만들라고 했습니다.”

1기에 후원받은 교회 가운데 70%가 자립을 했다. 성남, 수지 같이 가까운 곳을 비롯해 안동, 태백, 여수 등 전국적으로 연결돼 있다.

올해 만 50세인 김병삼 목사는 트위터와 페이스북 등의 SNS에서 2만여 명과 소통하고 있다. 만나교회는 미디어 관련 풀타임 직원이 13명이 이를 정도로 미디어 선교에 관심을 기울이고 이 인력이 최상의 예배 환경을 만들기 위해 애쓴다. 매주 1만여 명이 출석하고 인터넷에 접속해 예배드리는 사람이 평균 2만여 명에 이른다. 교회 가운데 가장 먼저 스마트폰 서비스를 시작한 만나교회는 팟캐스트, 유튜브 등을 통한 선교 활동에도 힘을 쏟고 있다.

김병삼 목사는 올 연말 마지막 주일에 10년 비전 발표회를 한 뒤 교인들이 가장 좋아하고 자랑스러워하는 월드휴먼브리지와 MMP 활동을 더 열심히 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글 / 이근미 선임기자 www.rootlee.com
사진/정연호 객원기자 mychunsha@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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