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라시아 끝에서 ‘코리아’를 말하다
유라시아 끝에서 ‘코리아’를 말하다
  • 김범수 편집인
  • 승인 2014.07.23 1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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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또니오 노브르 포르투갈 대사
 

한국 땅에 처음으로 발을 디딘 서양인은 누구였을까? 1604년 한 포르투갈인은 배를 타고 일본으로 향하던 중 폭풍우를 만나 동해안으로 밀려들어왔고 이후 코리아란 나라가 최초로 세계지도 상에 나타나게 됐다. 우리가 날마다 먹는 빨간 김치가 탄생하게 된 것도 포르투갈 상인이 한반도에 고추를 처음으로 소개하면서부터다. 지난 7일 만난 안또니오 낀떼이루 노브르(Antonio Quinteiro Nobre) 주한 포르투갈 대사가 자랑스럽게 들려준 이야기다.

포르투갈 특유의 정열적 대화 방식일까. 노브르 대사는 17세기 때부터 존재해 온 한국과 포르투갈의 관계와 향후 양국관계 발전의 필요성에 대해 질문이 필요 없을 정도로 열정적으로, 쉼 없이 설명했다.

- 한국과 포르투갈의 교류 역사가 긴 것으로 압니다. 양국관계의 역사에 대해 설명해 주세요.

한국과 포르투갈 양국의 관계는 17세기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한국에 온 첫 서양인이 포르투갈 사람이었다는 사실을 알고 계신가요? 공식문서와 역사적 자료에 따르면 1604년 주앙 멘데스(Joao Mendes)라는 포르투갈 상인이 일본으로 향하던 중 폭풍우를 만나 처음으로 한반도 땅 동해안에 발을 디뎠습니다. 한국을 처음으로 세계에 소개한 것도 포르투갈인입니다. 1614년 포르투갈 지도제작자인 마뉴엘 고딩뉴(Manuel Godinho)가 한반도를 그려 넣고 그 오른쪽에 위치한 바다를 한국 해(Mar Coria)라고 명시하여 한국의 위치를 서양에 알리게 되었습니다.

- 포르투갈이 동해를 지도에 ‘한국해’라고 표기했다는 점이 흥미롭습니다. 다른 에피소드는 없습니까.

제가 항상 농담으로 한국 사람들에게 ‘한국의 김치가 왜 빨간색인 줄 아십니까’라고 물어보곤 합니다. 포르투갈이 고추를 한국에 들여왔습니다. 포르투갈 배가 한국에 입항하기 전에 브라질, 남아메리카를 지나오다가 남아메리카에서 고추를 구입했거든요 그때 구입한 고추를 한국에 가져오게 되었던 겁니다.

아마 포르투갈인들이 고추를 한국에 들여오지 않았더라면 한국은 하얀색 김치밖에 없었을 거고 1000가지가 넘는 김치 종류가 탄생하지 못 했을 수도 있었겠죠. 빨간 김치를 먹을 때마다 ‘포르투갈 덕분이구나’라고 생각해 주세요.(웃음)

한-포르투갈, 최초 정상회담 개최

- 지도를 보면 한국은 유라시아 대륙의 가장 동쪽 끝에, 포르투갈은 가장 서쪽 끝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공식적으로 양국의 수교는 언제 시작됐고 현재 어떻게 교류가 이뤄지고 있는지요.

한국과 포르투갈은 1961년 4월 1일 수교를 맺었습니다. 주한 포르투갈 대사관은 이후 1988년 6월에 설립됐습니다. 양국의 역사가 벌써 53년을 헤아리는 거죠. 특히 2014년은 한국과 포르투갈의 관계가 대단히 활발한 해입니다. 지난 4월에는 루이 마셰뜨 포르투갈 외교부 장관이 한국을 방문해 양국의 외교 현안을 비롯한 통상 협력 방안을 논의했습니다. 포르투갈 농림부 장관도 지난 4일 한국을 방문했고요.

그리고 무엇보다 카바고 실바 포르투갈 대통령이 다음주 7월 19일부터 21일까지 한국을 최초로 공식 방문하게 됩니다(※ 본 인터뷰는 7월 7일 이뤄졌다). 실바 대통령을 포함해 외교부 장관, 경제부 차관, 교육부 차관, 75명 안팎의 경제사절단, 20명 이상의 기업인, 그리고 15명의 기자들도 함께 방한합니다. 이번 방문 동안 한국-포르투갈 양국 간 투자, 무역, 재생에너지, 정보통신기술, 관광 분야에서 협력 확대 방안에 대해서 논의할 것입니다. 이번 방한에서 가장 중요한 논제는 재생에너지, 관광 산업 확대, 문화 교류 확장입니다.

- 포르투갈 정상의 첫 방한인 만큼 의미가 큰데요. 한국 대통령도 포르투갈을 방문한 적이 없나요?

그렇습니다. 외교수립 50여 년간 양국 대통령이 서로의 나라를 공식적으로 방문한 적이 없다는 사실은 좀 의외일 겁니다. 박근혜 대통령은 한나라당 국회의원이던 2011년 한국-포르투갈 수교 50주년을 맞이해 이명박 대통령의 특사 자격으로 포르투갈을 방문해 카바코 실바 대통령을 만났습니다.

그 전에는 1993년 10월 당시 포르투갈 대통령이었던 마리오 소아레스 대통령이 대전 엑스포에 참석하면서 한국을 비공식적으로 찾은 적은 있습니다. 하지만 양국 정상이 공식방문을 한 적은 그동안 없었어요. 한국과 포르투갈은 좋은 친구이지만 멀리 떨어져 있어 서로를 잘 모릅니다.

- 양국 국민들이 서로에 대해 잘 모르는 것이 사실인 것 같습니다. 포르투갈을 대표하는 문화, 전통은 무엇인가요. 투우와 와인 등이 먼저 떠오르긴 하는데요.

세 개의 ‘F’로 요약해서 설명할 수 있습니다. Football(축구), Fatima(성지), Fado(전통 가요)죠. 아시다시피 포르투갈은 축구로 유명합니다. 레알 마드리드의 호날두 선수가 대표적 포르투갈 선수죠. 또한 포르투갈 인구의 80퍼센트는 가톨릭입니다. 한국에서 가톨릭 신자가 많이 있는데 많은 한국인들이 포르투갈을 방문하는 이유 중 하나가 파티마 성지를 보기 위해서입니다.
마지막으로 파두는 포르투갈의 전통 가요입니다. 파두와 한국의 판소리는 비슷한 점이 있는데요. 한국에서는 판소리가 한국인의 ‘한’을 표현한다고 합니다만 포르투갈에도 한국의 ‘한’과 비슷한 정서가 있습니다. 포르투갈 사람들은 사우다드(Saudade)라고 표현하는데요. 식민지 시절 포르투갈 사람들의 독립에 대한 열망, 현실에 대한 절망, 슬픔을 표현합니다. 이런 정서를 모티브로 한 음악이 바로 파두입니다. ‘숙명’을 뜻하는 라틴어(fatum)에서 유래되었다고 하시면 이해가 더 잘 되실 겁니다.

포르투갈의 3F - Football, Fatima, Fado

- 포르투갈에서 한국에 대한 이미지는 어떤가요.

포르투갈에서 한국을 어떻게 보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예를 하나 알려드릴게요. 포르투갈 사람들은 삼성과 현대가 한국 브랜드라고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LG의 슬로건(Life is Good)을 보고는 LG가 미국 브랜드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종종 있습니다.

물론 포르투갈 사람들만 한국에 대해 잘못된 정보와 인식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간혹 한국인들은 포르투갈이 스페인의 한 지방이라고 생각하는 걸 본 적이 있는데요. 엉뚱한 오해들을 해결하기 위해서라도 한국과 포르투갈의 교류는 더 확대돼야 합니다. 저를 비롯한 양국 외교관들은 서로 협력해 양국의 경제, 문화 교류를 활성화시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 포르투갈 젊은이들도 한류에 관심이 있나요?

포르투갈 젊은이들 사이에서 K-Pop의 열기가 뜨겁습니다. 얼마 전 18살, 19살 포르투갈 소녀들이 한국에서 한국어를 배우고 싶은데 정보가 없다며 대사관에 찾아온 적이 있습니다. 두 학생은 준비가 된 상황이 아니어서 대사관에 도움을 요청했고 학생들이 서울대에서 한국어를 배울 수 있도록 도와줬죠.

“김정남이 포르투갈 국적 보유? 근거 없는 낭설일 뿐”

문화는 젊은이들이 다른 국가를 알기 위한 가장 효과적인 수단이라고 생각합니다. 국제적인 시각을 지닌 미래의 정치인, 사업가, 교육자를 발굴하기 위해서는 젊은이들이 다른 나라의 문화와 언어를 배우는 것을 적극 장려해야 합니다.

- 양국의 교류 확대를 위해 어떤 일들을 하고 계신가요.

제가 한국에 와서 가장 보람 있게 하고 있는 일 중에 하나는 중학교 고등학교를 방문해 포르투갈과 유럽을 알리는 것입니다. 유럽연합국은 28개의 국가로 구성돼 있는데 포르투갈도 유럽연합의 회원국입니다.

현재 유럽연합에서는 한국에 주재하는 회원국 대사관과 21명의 주한 유럽대사들이 서울지역 고등학교를 방문해 학생들을 대상으로 유럽연합과 자국을 홍보하는 프로젝트, ‘EU, 학교에 가다(EU Goes to Schools)’를 실시하고 있습니다. 이 프로젝트를 통해 한국 학생들은 EU와 유럽 국가에 대한 지식을 습득할 수 있고 현직 외교관들의 생생한 현장 경험을 들을 수 있죠. 저를 만난 학생들은 저와 포르투갈 사람들을 절대 잊어버리지 않을 것입니다. (웃음) 주한 포르투갈 대사로서 제가 할 일은 바로 효과적으로 포르투갈을 한국 사람들에게 널리 알리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EU, 학교에 가다’에 참여하는 건 저에게 무엇보다 큰 보람입니다.

- 북한 대사직도 겸임하고 계신데요. 포르투갈은 유럽국가 중 북한과 비교적 가까운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압니다. 최근에는 김정은의 형 김정남이 포르투갈 국적을 소지하고 있다는 루머가 있기도 했는데 알고 계신가요?

북한 대사직을 겸임하면서 1년에 여러 번 북한을 방문합니다. 평양은 서울에서 굉장히 가까움에도 불구하고 중국을 거쳐 돌아가야 한다는 불편함이 있죠. 포르투갈과 북한은 1975년에 외교관계를 수립했습니다. 당시 포르투갈은 공산주의적 색깔을 띠고 있었고 당시 국제 정세는 공산주의 성향을 지닌 국가를 배척하는 경향이 있었는데요. 포르투갈의 외교활동도 제약이 있었습니다만 당시 북한은 포르투갈과 외교관계를 맺는데 아무 거리낌이 없었습니다. 김정남 얘기는 저도 들은 적이 있는데 김정남은 포르투갈 국적을 소지하고 있지 않습니다. 그가 포르투갈의 식민지였던 마카오에서 생활을 한 적이 있어 그런 루머가 생긴 것 같군요. 말도 안 되는 이야기입니다.

“나는 한국인, 외교관 생활 행복해”

- 대사님 개인에 대한 소개 말씀도 듣고 싶은데요. 직업 외교관 출신이시지요?

30년간 직업 외교관으로 근무한 뒤 대사로서 처음으로 일하는 나라가 한국입니다. 주한 포르투갈 대사로 서울에 오기 전에는 직업 외교관으로 바르셀로나, 핀란드, 마카오, 베이징에서 근무했죠.

바르셀로나에서는 총영사로 근무했습니다. 한국에서 근무한 지는 2년 됐고요. 처음 대사로서 근무하게 된 국가가 한국이라는 점이 제게는 의미가 큽니다. 포르투갈과 한국은 유사한 점들이 많아 마음이 잘 통한다고 생각하거든요. 두 나라 모두 자유선거를 통해 민주주의를 기반으로 하고 있고 법 앞에서는 만인이 평등하다는 가치를 존중합니다. 양국이 유라시아 대륙 반대쪽에 위치하고 있지만 이런 가치를 공유한다는 데 큰 의미가 있습니다.

- 한국에서의 생활은 만족하신가요?

외교관이라는 직업은 장점이 많습니다. 넓은 세계를 무대로 해서 직업 활동을 한다는 것, 여러 나라에 살면서 그 나라의 실상을 직접 경험하고 느낄 수 있다는 점 등이 가장 큰 장점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외교관이 어느 나라에 산다고 해서 그 나라를 모두 다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그 외교관은 언제든 자신이 체류하고 있는 나라를 떠나야 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유럽과 동양 모든 곳에서 일해 본 결과 느낀 점이 있다면 내가 일하는 곳에 동화될 줄 알아야 한다는 겁니다. 계속 보금자리를 옮겨 다니는 게 쉬운 일은 아니지만 그게 내 직업이라면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살고 있는 곳의 문화와 정서에 스스로를 노출시켜 적응을 해야 합니다.

저는 포르투갈 사람이지만 스페인, 핀란드, 마카오, 중국 사람들의 특성을 이해하고 제 자신도 그들 중에 한 명이라고 생각합니다. 한국에서의 생활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하고요. 저 자신이 한국인이 돼야 한국을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 마지막으로 포르투갈을 방문하고 싶은 한국인들에게 한 말씀 해주세요.

포르투갈에 놀러 오세요! 리스본을 비롯한 다양한 포르투갈 지역을 방문하는 걸 추천합니다. 포르투갈은 작은 나라이지만 다양한 문화와 볼거리들이 있습니다. 대서양에 인접한 서부지역은 다양한 해산물로 유명하죠. 포르투갈의 남쪽지역은 아프리카 대륙과 지중해와 가까워 다양한 문화를 즐길 수 있다는 것도 큰 장점입니다. 내륙은 스페인과 국경을 맞대고 있어 유럽의 정취를 느낄 수 있고요. 이 모든 곳들을 봐야 포르투갈을 경험했다고 말할 수 있을 거예요.


인터뷰/김범수 편집위원 www.kimbumsoo.net
정리/양희경 인턴기자 hkyang13@gmail.com
사진/이승재 기자 fotolsj@futurekorea.co.kr 

본 기사는 시사주간지 <미래한국>의 고유 콘텐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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