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참사에서 6·4 지방선거까지
세월호 참사에서 6·4 지방선거까지
  • 미래한국
  • 승인 2014.06.13 0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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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강호의 역사이야기
 

4월 16일 세월호 침몰 사건 이후 한 달여, 이 나라의 모든 부문은 세월호와 함께 침몰해 갔다. 전 언론이 매일 매시간 보도를 쏟아낸 가운데 정치가 스톱하고 급기야 경제도 가라앉기 시작했다. 아무도 감히 들뜬 행태를 보일 분위기가 아니었다. 필자도 ‘회사’의 예정된 주요 행사를 다 취소하고 무기 연기했다.

그러는 사이 ‘세월호’ 주변에서 갖가지 얄궂은 소동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세월호에 갇힌 어느 학생의 것이라는 “어서 구해달라”는 내용의 SNS가 나돌았다. 장난이었다. 민간 잠수사라는 어떤 여자가 별별 주장을 내세우며 언론에 나서고 현장을 휘저었다. 농락이었다.

어느 민간 잠수회사가 ‘다이빙 벨’ 시스템이 어쩌니 하며 나섰다. 그러다 슬그머니 철수했다. “1억 원을 주면 실종자를 꺼내주겠다”는 브로커도 등장했다. 알고 보니 이 브로커가 다이빙 벨 투입을 부추기고 다녔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그러나 시중에는 유언비어가 나돌기 시작했다.

‘다이빙 벨’ 시스템에 기회를 주지 않고 정부가 강제로 쫓아냈다는 얘기였다. 그러자 언론들이 질타를 쏟아내고 야당들이 나섰다. 통합진보당이 오랜만에 때를 만났듯 활약을 했다. 또 다른 유언비어도 돌았다. 세월호 참사가 국정원의 음모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언론은 그런 혼선들을 바로잡는 보도를 하기는커녕 그 와중에도 온갖 오보를 쏟아냈다.

세월호 루머와 언론, 선동 정치

6·4 지방선거가 하루하루 다가오고 있었다. 그러나 아무도 감히 선거운동을 할 엄두를 내지 못했다. 결국 새누리당을 비롯 모든 정당들이 선거운동의 중단을 선언했다. 그러나 그게 ‘정치’의 자숙은 아니었다. 드디어 ‘이 나라 특유의 정치’가 본격화되기 시작했다. 선거운동은 중단됐지만 ‘정치공세’는 더 날을 세우기 시작했다.

이 나라에선 모든 민감한 이슈는 언제나 쉬이 정치화되곤 했다. 무엇이든 사건 사고만 있으면 ‘기회’를 노리며 정치적 사안으로 만들고자 하는 세력들이 있기 때문이다. 이번에도 예외는 아니었다. 정부의 대응이 무능하다는 공격이 일더니 마침내 시위가 시작됐다.
언론들은 해수부의 비리를 파헤친다 어쩐다 하며 열을 올렸다. 해경을 질타하는 보도도 쏟아냈다. 사고를 낸 ‘청해진해운’이라는 회사의 주인이 어느 사이비 종교집단과 연계돼 있다는 보도도 나왔다. 전 언론들이 경쟁적으로 온갖 보도로 도배를 하고 있었다. 조중동도 한겨레化하고 있었다. 자극적 보도를 삼가야 한다는 재난보도 지침 따윈 이미 휴지조각이었다.

그러는 동안에도 물론 정부 당국은 구조 활동을 하느라 안간힘을 다하고 있었다. 그러나 성과가 없었다. 박근혜 대통령은 사고 첫날 곧바로 현장으로 달려가 구조 활동을 독려했었다. 그러나 대통령의 독려에도 불구하고 마찬가지였다. 60%를 넘기며 고공행진을 계속했던 박 대통령의 지지도가 급락하기 시작했다. 5월 19일 박 대통령은 대국민 담화를 발표했다. 국민에 대한 사과와 함께 ‘국가개조’를 천명했다.

대통령은 국가개조의 일환으로 “안행부와 해수부를 대수술하고 해경을 해체하겠다“고 선언했다. 그리고는 눈물을 쏟았다. 그러나 또 일부에선 이를 놓고도 험구를 쏘아댔다. 조선일보도 “눈물에도 불구하고 박 대통령의 아이섀도가 번지지 않은 까닭은?”이라는 제목의 역사에 남을 ‘품격 있는’ 가십 하나를 올렸다.

총리가 사퇴한 데 이어 간첩사건 조작 시비의 고비도 넘겼던 남재준 국정원장도 결국 사퇴했다. 고위인사들이 줄줄이 사퇴하고 대대적인 인사 개편이 예고됐다. 남 국정원장의 사퇴에 대해선 이른바 ‘진보’는 특별히 더 환호작약했다.

사망 실종자 가족들의 참담함 위에서 도처의 온갖 영역에서 그렇게 갖은 소동이 난무했다. 세월호 참사 이후 한 달여, 한국은 그렇게 흘러가고 굴러갔다. 그리고 드디어 6·4 지방선거, 사고 이후 내내 목청을 돋우고 거리를 휩쓸며 시위를 하던 자들도 선거 결과에 몰입했다. 모든 언론의 전면도 선거 관련 소식이 장식했다. 그렇게 하여 세월호 뉴스는 전면에서 퇴장했다. 세월호 희생자 가족들의 피눈물도 이렇게 하여 지금 이 순간만큼은 잠시 잊혀져 있다. 어쩌면 그렇게 영영 잊혀져 갈지도 모른다.

 

해운회사가 사고 내면 정부 개편?

6·4 지방선거 단체장 선거에서 가장 일찌감치 사실상 당선을 선언한 곳은 세종시였다. 미니 선거구였지만 행정부가 있는 공무원 도시라는 점에서 상징성이 큰 곳이었다. 그런데 이곳에서 새누리당은 압도적인 차로 패배하고 말았다. 언론들은 이른바 ‘관피아’ 척결론에 대한 반발이 아닐까 라는 분석을 내놓았다. 일리가 없는 얘기가 아니다. 한 고위공무원은 필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해운회사가 사고를 냈는데 정부조직을 개편합니까?” 불편한 기분을 엿보기에는 충분한 말이다.

‘관료 마피아’ 문제가 없는 건 분명 아니다. 그러나 그와는 별도로 순 선거공학적인 측면에서 과연 관피아 문제의 제기가 6·4 선거에서 여당에 도움이 됐을지는 의문이다. 그리고 고시선발 인원의 축소, 국장급부터 신분보장 폐지 등까지 거론했다. 이런 것들은 직업 공무원의 자존심을 건드리는 것일 수도 있는 매우 민감한 얘기다. 그런데 ‘100만 공무원’이다. 그 가족까지 염두에 둔다면 그 숫적 비중은 더 커진다. 여기에 관련 공공기관 종사자들까지 더하면 영향의 범위는 거의 기하급수로 늘어난다.

만약 세종시의 선거결과가 공무원 사회의 반감이 반영된 것이라면 그것은 단지 그 지역만의 문제일 수 없다. 전 지역에 걸쳐 여당의 표를 일정 정도씩 잠식했을 수도 있는 것이다. 물론 관피아 척결론에 공감하고 박수를 보낸 쪽의 수가 그보다 훨씬 많다면 감수할 이유가 충분하다. 하지만 과연 그렇게 광범한 공감과 반향이 있었을지 의문이다. 그런 점에서 ‘관피아’ 이슈는 아무래도 현명한 선택은 아니었다.

정치 마피아가 더 문제다

반드시 척결해야 할 문제라면 당장의 선거에서 유불리에 연연하진 말아야 한다. 문제는 과연 그런가이다. 규제개혁 문제에서부터 그 행태에 이르기까지 관료 사회를 둘러싼 문제점이 그간 누누이 지적돼 온 바 있다. 그 상당 정도는 논란의 여지없이 바로 잡아야 할 것들이다. 그러나 그런 ‘이익 마피아’를 따질 경우 최악의 마피아는 사실은 관료 마피아가 아니라 정치 마피아다.

모모한 국회의원들이 걸핏하면 제왕적 대통령제를 바꾸는 개헌을 해야 되니 어쩌니 떠들곤 한다. 그러나 오늘날 이 나라의 그런 진짜 제왕적 존재는 의원님들이시다. 의원 하나가 정부의 업무를 마비시키는 건 일도 아니다.

문제는 제왕적 정치인과 공무원 노조

박근혜 정권이 들어 정부에서 요청한 입법안이 제대로 통과된 게 하나도 없다. 그러면서 자신들은 의원입법이랍시고 온갖 쓰레기 같은 법을 양산한다. 그래서 행정부처에서도 필요한 법안이 있을 때 의원들에게 로비를 해서 청부입법을 시도한다. 청문회가 있을 때면 완전히 난장을 벌인다. 대통령의 인사안이 제대로 통과된 적이 없다. 행정부처에 압력을 가해 인사에서부터 예산에 이르기까지 온갖 이권에 다 개입한다. 어느 부처의 국장급 고위관료는 이렇게 말한다. “국장 정도는 국회에선 사람도 아닙니다.” 관피아가 아무리 문제라 해도 금배지 마피아만큼은 아니다.

민주주의는 소중한 제도다. 그러나 그것이 제대로 순기능을 발휘하려면 그 담당자들의 양식이 전제가 돼야 한다. 히틀러와 나치스가 민주주의가 없어서 등장한 게 아니다. 반대로 히틀러는 철저히 민주적 과정을 밟아 집권을 했다. 민주주의란 그런 것이다. 질 낮은 부류들의 손에 들어가면 얼마든지 나라를 진흙탕에 빠뜨리고 파국으로 몰아넣을 수도 있는 게 민주주의다.

국가의 제도와 권력은 정당성과 안정성 두 가지 모두를 필요로 한다. 그래야 국가의 계속성이 유지될 수 있다. 민주주의는 Legitimacy(정당성, 정통성, 합법성)를 부여하는 역할을 한다. 하지만 민주주의는 언제나 출렁거리기 마련이다. 그런 요동에도 불구하고 국가의 안정성과 계속성을 지탱하는 게 바로 직업 관료제도다. 뒤집어 말하자면 안정된 직업 관료제도가 민주주의가 안심하고 작동될 수 있도록 뒷받침하는 것이다.

오늘날, 그리고 대한민국도 민주주의 없이 레지티머시를 상상할 수 없다. 그러나 민주주의는 주어졌다고 하루아침에 제 역할을 하는 게 아니라 지속적으로 성숙해 가는 것이다. 한국의 민주주의는 어리다. 아무리 길게 잡아도 1948년 건국 이후부터며, 1987년 민주화 이후부터라면 이제 겨우 27살이다. 그 20여 년, 감격으로 시작했지만 온갖 우여곡절과 파행의 얼룩 또한 적지 않다. 지금도 그렇다. 한편으로는 민주화의 그늘에서 이 자유민주체제 자체를 유린하려는 독초가 자라났고, 또 한편으로는 ‘정치 건달’들이 민주를 빙자해 활개치고 있다.

한국의 민주주의에는 아직 신사가 없다. 외형적으로는 틀을 갖췄지만 내부를 들여다보면 조잡함과 저열함으로 가득 차 있는 ‘양아치 데모크라시’다. 이런 상황에서 관료 마피아를 척결한다며 직업 관료제의 안정을 흔드는 게 과연 현명한 것인가?

어떤 제도 어떤 분야이든 무결한 것은 없다. 우리의 관료제도 마찬가지다. 적폐 또한 수없이 쌓여 있다. 예전에는 훌륭히 순기능을 발휘했지만 이제는 역기능이 돼 버린 것도 있다. 신분보장이 어느 순간 철밥통이 돼 버린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현재 우리의 관료사회에서 가장 시급히 척결해야 할 문제 하나를 꼽으라면 그것은 단연 ‘공무원 노조’ 문제다. 어느 조직이든 다 마찬가지지만 관료조직은 특히 기강이 중요하다.

국가의 안정성과 계속성의 기둥이기 때문이다. 관료조직의 기강이 흔들린다는 건 국가 자체의 불안과 다름없다. 그런데 ‘공무원 노조’의 등장 이후 그 기강이 근원에서 흔들려 있다. 이를 바로잡아야 한다. 또 한 가지 중요한 것이 정치적 중립의 보다 확실한 보장이다. 대통령의 정치적 지휘마저 배제해야 한다는 뜻이 아니다. ‘양아치 데모크라시’의 입김을 차단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기강을 바로 잡고 정치적 입김을 배제한 이후라야 이른바 관피아 척결도 할 수 있다. 만약 수순이 바뀌면 저항만 초래할 뿐 개혁은 전혀 성공할 수 없다.

고시제도는 장점이 더 많다

고시제도의 폐해를 지적하며 개방형 임용을 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그러나 개방형 임용제라고 폐해가 없을 수 없다. 공무원의 임면과 승진을 정치의 당파적 적실에 따라 행하는 엽관제(獵官制) 요소는 이미 일부는 도입돼 있는 셈이다. 그러나 이것을 명시적으로 전면화하는 것은 매우 위험하다. 민간기업 등에서 발탁한다면 민관유착을 더 강화할 수도 있다.

더욱이 만약 그 권한이 좌익의 손에 들어간다면 커다란 정치적 위험을 낳게 된다. 중앙정부에서 엽관제를 시행한다면 지방자치단체도 마찬가지가 된다. 야당의 손에 들어가 있는 지자체는 지금도 자치단체장의 인사에 휘둘리고 있다. 그런데 만약 엽관제가 전면화되면 그 정도가 더 심해질 것이다.

박원순이 그것을 빌미로 서울시 공무원을 완전히 물갈이해서 장악하고, 야당이 장악한 구청들 모두가 그렇게 한다고 생각해 보라. 서울은 완전히 적색 공화국이 되고 만다. 이런 자들에게 정권이 넘어간다면 그것은 그대로 대한민국의 적화다.

한국과 중국은 과거제도의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다. 중국은 2000여 년 전 한나라 때 처음 관리를 채용할 시험을 치르게 하는 과거를 시행했으며 6세기 경 수나라 때부터 본격적으로 시행해서 나중에 청나라 때까지 계속됐다. 우리 역사에서 과거가 처음 도입된 것은 788년 신라 원성왕 때가 효시였지만 골품제로 인해 한계가 있었다. 이후 고려 광종 때인 958년 과거를 본격 시행했으며 조선에 들어서는 과거가 완전히 국가의 근간 제도가 됐다.

과거제도의 취지는 인재등용을 혈연과 정치적 편파성을 탈피해 능력 위주로 공정하게 하자는 데 있었다. 물론 폐해도 없지 않았다. 과거 시험 위주가 되면서 학문의 발달이 오히려 저해되기도 했다. 인재들이 모두 과거에만 몰두해서 사회의 역동적 발전을 해한 것도 문제였다. 논자에 따라선 과거제도가 없었던 서양이 중국을 압도하고, 마찬가지였던 일본이 과거의 나라 조선을 집어삼킨 것을 들어 그 장점에 의문을 표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것은 긴 시야로 보면 매우 위대한 문명적 제도였다.

한나라는 과거제도를 도입해서 서양에서는 1700여 년 뒤에나 갖추게 되는 근대적 국가제도를 이미 갖췄다. 볼테르는 중국의 과거제도를 찬양하며 프랑스 앙시앵 레짐의 신분제를 공격했다. 일본은 과거제도가 없었지만 메이지 유신으로 근대화를 하면서 고시제도를 가장 중요한 근간 제도로 삼았다. 고시제도의 가치를 섣불리 폄훼해선 안 된다.

정치인 총리로 관료를 장악하라

박 대통령의 국가개조 구상이 시대적 요청인 것은 맞다. 그간 숨 가쁘게 달려오면서 시대에 뒤떨어진 요소나 쌓여온 적폐를 한 번도 제대로 정리정돈하지 못한 게 사실이다. 분명 일대 쇄신이 필요하다. 그러나 그렇게 중대한 사안인 만큼 신중하고 치밀해야 한다.
성급한 자들의 섣부른 아이디어는 항상 경계해야 한다. 빠른 성과보다는 견실함을 중시해야 한다. 무엇보다도 관료에 대한 확고한 장악에 신경을 써야 한다. 관료를 개혁하기 위해선 흔들기 이전에 장악이 먼저라야 한다. 그렇지 못하면 저항을 부른다. 관료들의 저항은 조용하지만 완강하며 그것은 야당의 떠들썩한 정치공세보다 더 큰 부담을 초래할 수 있다.

관료개혁을 하겠다면 관료 출신들을 지나치게 중용하는 인사 스타일도 바꿀 필요가 있다.

특히 총리의 경우는 더 이상 법조나 관료 출신이 아니라 정치인 출신에서 발탁할 필요가 있다. 야당 의원들의 공세에 흔들리지 않는 정치적 뱃심을 갖추고 관료들을 정치적 입김으로부터 보호할 수 있는 인물이어야 한다. 그래야 그들을 확실히 장악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강호 편집위원·역사비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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