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보수주의 운동史 총정리
美 보수주의 운동史 총정리
  • 황성준 편집위원
  • 승인 2014.06.03 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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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 내쉬의 <미국에서의 보수주의 지식인 운동>을 읽고
 

박근혜호(號)가 좌초 위기에 처해 있다. 2012년 대선 승리 이후 50%가 넘은 지지율을 계속 유지하면서 박근혜호는 순조롭게 항해하는 것처럼 보였다. 야당진영은 ‘새정치민주연합’으로 새간판을 달았으나 국민적 호응은 낮았다.

이 간판이 가을까지 갈 수 있을까라는 의구심을 품은 사람이 많을 정도였다. 이른바 민중진영의 상황도 열악해 보였다. 통합진보당은 이석기 사건으로 해체 위기에 놓이게 됐으며 작년 철도파업 실패 이후 좌익 노동운동은 쇠퇴하는 것처럼 보였다. 공공노조를 중심으로 춘투를 감행, 상황을 반전시켜 보려 했지만 이도 여의치 않았다.

이러한 상황은 하루아침에 완전히 뒤바뀌어 버렸다. 지난 4월 16일 세월호 참사 발생 이후 조금 과장하자면 대한민국의 기능은 사실상 정지해 버렸다. 각종 행사는 모두 취소됐으며 상거래 활동이 위축돼 내수가 줄어들고 있다는 보도마저 나왔다.

필자의 경우 종편TV에 출연할 때 담당 PD로부터 “절대로 미소를 띠어선 안 됩니다”라는 경고를 받기도 했다. 온 나라가 국상(國喪) 분위기였다. 물론 이 상황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외국인도 있었다. 한 일본인은 “전 국민이 하나 되는 모습이 매우 인상적이다”며 “요즘 일본 사회에서는 어림도 없는 일”이라고 부러워했다.

세월호, 이상한 결말

이 인사는 이른바 ‘극우파’로 분류되는 인물인데 “좌익의 선동이 우려된다”는 필자의 말에 대해 “좌익이든 우익이든 젊은이들이 거대담론을 가지고 행동하는 한국이 부럽다”며 “거세된 일본 젊은이들은 사회 문제에 일절 관심이 없다”고 한탄하는 것이었다. 반면 한 유럽인은 “광우병에 이은 이번 촛불에서 ‘파시즘적 집단 히스테리’를 보았다”고 이야기했다.

유럽 사회주의자를 자처하는 이 유럽인은 실명은 커녕 국적도 밝히지 말아 달라고 거듭 부탁했다. 이런 말을 꺼냈다가 한국인들에게 혼난 경험을 생각하면 지금도 몸서리쳐진다는 것이었다.

지금 박근혜호는 위기에 처해 있다. 박근혜 정부는 이번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완전히 발가벗었다. 박근혜 대통령 본인의 사퇴를 제외하면 야당과 소위 진보진영이 요구하는 모든 것을 들어줬다. 총리만 사퇴한 것이 아니다. 국정원장과 국가안보실장도 사임했다.

국정원장의 경우 이른바 ‘국정원 댓글 사건’ 이후 계속되는 정치적 공세 속에서도 버텨 왔는데 이번에는 물러나야만 했다. 이렇게 발가벗었음에도 불구, 6·4 지방선거에서 패배할 경우 박근혜 정부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식물정부로 전락하게 된다. 박근혜 정부가 추진하려는 ‘비정상화의 정상화’ 개혁이 물 건너감은 물론이다. 다만 희망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많은 국민들이 다시 이성적으로 판단하기 시작하고 있으며 박근혜 정부 위기론으로 인한 보수층의 재결집이 이뤄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 지점에서 박근혜 정권의 위기는 단순히 한 정치인이나 그 파벌 혹은 특정 정당의 위기가 아니라 대한민국 전체의 위기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상기시키고 싶다.

이러한 세월호 정국 속에서 조지 내쉬(George Nash)의 <미국에서의 보수주의 지식인 운동>(The Conservative Intellectual Movement In America)을 다시 읽어 봤다. 이 책은 미국 보수주의 운동을 이해하기 위한 교과서로 사용되는 책이다. 이 책을 다시 꺼내 든 이유는 이번 세월호 정국에서 드러난 한국 보수주의 운동의 허약성 때문이다.

지난 MB정권 시절 광우병 사태와 이번 세월호 사건이 보여주듯 대중을 촉발시킬 수 있는 특정 계기만 주어지면 언제든지 정권을 흔들 수 있다는 좌익진영의 확신을 다시 한 번 확인시켜 줬다. 이념과 조직으로 무장된 한국 좌익세력은 대중투쟁의 모티브만 있으면 언제든지 정권을 뒤흔들 수 있는 힘과 능력을 지니고 있다.

이번 세월호 사태도 이러한 한국 좌익세력의 조직적 선전·선동과 동원 하에서 진행됐음을 알 수 있다. 세월호 사건이 발생하자마자 좌익진영 내부에서는 세월호 투쟁 지침서가 나돌았다.

필자가 지난 4월 24일에 입수한(따라서 최소한 그 이전에 작성돼 배포된) 좌익진영 문건에 따르면 “세월호 투쟁은 반박근혜 투쟁으로 발전시켜야”하며 “이번 계기를 통해 최소한 박근혜 정부를 무력화시켜야”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리고 ‘노란리본달기’ 등 구체적인 투쟁 형태와 동원계획을 상세히 서술하고 있음은 물론이다.

이번 세월호 정국이 발생한 원인이 좌익진영의 공작 때문만은 아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좌익진영의 기동성과 동원력이 없었다면 적어도 대규모 반박근혜 투쟁으로 전화되지는 않았다는 점이다.

이러한 사실은 서울광장에서 열린 세월호 추모 시위 현장에만 가봐도 알 수 있다. 집결된 시위대, 특히 집회 주최자들의 면면을 보면 광우병 사태나 그 밖의 좌익 대중집회와 거의 다른 점이 없었다.

보수진영이 허약한 이유

보수진영의 허약성은 두 가지 측면으로 나타난다. 첫째는 이념적 기반의 취약성이다. 반(反)좌익이란 의미에서의 보수는 광범위하게 존재하나 이념운동세력으로서의 보수주의는 그 존재 자체가 희미한 상태다.

또 현재 한국의 보수는 이념적 세력이 아니라 기득권층의 보존세력으로 인식돼 있다. 그렇기 때문에 대중을 추동시킬 사회문제가 발생할 때 보수는 무기력한 모습을 보여줄 뿐만 아니라 대중의 공적(公敵)으로 인식되기 쉬운 것이다.

둘째는 세대 문제이다. 한국 보수는 젊은 층으로부터 소외, 아니 격리돼 있다. 이 문제와 관련, “원래 젊은이들은 진보적이기 마련이며 철들면 보수화된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이런 측면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과거 노무현 정권 시절 20∼30대가 진보이고, 50대 이상이 보수이며, 40대가 낀 세대라고 했다. 그런데 2012년 대선 당시 진보는 20∼40대로 확장됐다.

박근혜 대통령이 당선된 것은 50대 이후 세대의 강력한 결집 현상 덕분이었다. 그런데 최근 세월호 정국과 관련된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이른바 ‘4말5초’ 세대의 보수로부터의 대거 이탈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이른바 진보세력이 50대 초반까지 확산되고 있는 것이다.

이는 과거 386세대가 50대 초반으로 진입하기 시작한 것과 무관하지 않다. 반면 40대 이하는 여전히 진보에 장악돼 있다. 청년세대의 영혼과 두뇌를 빼앗겨 버린 이념이나 운동에 그 무슨 희망이 있을까?

 

미국 보수주의 운동사 7단계

미국 보수주의에 대해 알기 원하는 사람이 단 1권의 책을 추천해 달라고 하면 내쉬의 <미국에서의 보수주의 지식인 운동>을 권한다. 문제는 아직 번역본이 없다는 사실이다.

물론 이 책에도 약점이 있다. 우선 지식인 운동에 초점을 맞추다 보니 대중 정치운동에 대한 소개가 미흡하다는 점이다. 그리고 1980년 레이건 집권까지만 서술돼 있다는 점이다.

그러나 1945년 이후 미국 보수주의 운동의 태동과 발전, 그리고 내부의 지적 논의와 논쟁 등에 대해서는 이 책이 교과서 역할을 한다는 점에는 이의가 없다. 이 책을 중심으로 이 책에 결여된 대중정치운동 내용을 곁들여 미국 보수주의 운동사를 7단계로 나누어 정리해 봤다.

제1단계는 미국 보수주의 운동의 뿌리가 되는 3가지 운동 흐름의 등장이다. 미국 보수주의 운동은 1932년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의 집권 이후 미국의 좌경화 현상에 대한 반발, 2차 세계대전을 통해 드러난 ‘근대’(Modern)에 대한 회의, 그리고 2차 세계대전 이후의 공산주의 팽창으로 서구 문명 자체가 위기에 처해 있다는 의식으로부터 태동됐다.

첫 번째 흐름은 뉴딜에 대한 ‘리버테리안의 반란’(the Revolt of Libertarians)이다. 뉴딜 이후 국가가 비대화되면서 개인의 자유가 축소되고 경제 및 사생활 영역에 대한 국가의 개입이 강화되면서 이에 대한 반발이 일어났다.

경제적 자유와 개인주의를 강조하는 이 흐름은 ‘리버테리아니즘’(libertarianism) 혹은 ‘고전적 자유주의’(classical liberalism)로 불리게 됐다. 두 번째 흐름은 ‘전통주의적 보수주의’ 혹은 ‘버크적 보수주의’(Burkean Conservatism)이다. 이들의 문제 제기는 2차 세계대전으로 드러난 ‘근대’(modern)에 대한 회의와 독일 나치즘과 러시아 볼셰비즘을 낳은 대중사회에 대한 비판이었다.

19세기 말만 하더라도 서구세계는 이성과 합리에 의한 서구사회의 무한한 발전에 대해 신뢰를 보였다. 그러나 그러한 ‘진보’와 ‘민주주의’에 대한 무조건적 열망은 나치즘과 볼셰비즘이라는 참혹한 형태로 나타났다.

이에 대한 철학적 반성이 시작됐으며 이러한 지적 작업은 그동안 “무식하고 완고한 꼴통”과 동의어로 사용되던 보수주의를 지적(知的) 운동의 한 흐름으로 격상시켰다. 세 번째 흐름은 반공주의였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소련 공산주의의 팽창으로 말미암아 서구문명 자체가 위기에 처하게 됐다고 인식하는 지식인들이 반공·반소운동을 전개하게 된다. 반공주의는 고립주의(isolationism)에 빠져 있던 미국 보수진영을 세계적 규모에서의 반공투쟁에 나서게 만들었다.

두 번째 단계는 <내셔널리뷰>의 창간(1955)과 퓨전이즘(fusionism)의 등장이다. 미국 보수주의의 원형이 되는 3가지 흐름은 각개 약진하다가 1955년 <내셔널리뷰>란 지적 저수지에 결합, 단일한 대오를 꾸리게 된다. 경제적 자유주의, 철학적 보수주의, 반공주의 등 3가지 흐름을 퓨전(fusion)한 미국 현대 보수주의가 탄생된 것이다.

이 과정에서 좌우 편향과의 투쟁도 전개된다. 음모론에 입각한 극단적 반공주의 세력인 로버트 웰치(Riobert Welch)의 존 버치 (John Birch) 협회 그룹은 우편향으로, 신과 종교를 전면 부인한 경제적 자유주의자 아인 랜드(Ayn Rand)는 좌편향으로 각각 간주, 미국 현대 보수주의 운동의 중심에서 배제되게 된다.

세 번째 단계는 1960년 ‘자유를 위한 젊은 미국인들’(YAF, Young Americans for Freedom)이란 대학생 조직의 결성이다. 미국 현대 보수주의 운동은 YAF를 기반으로 확산됐으며 미국 젊은이들의 두뇌와 영혼을 획득해 나갈 수 있었다.

이 조직이 발표한 ‘샤론 성명’(Sharon Statement)은 ‘보수주의 선언’으로 불릴 정도로 미국 보수주의 운동의 기념비적 문헌이 된다. 여기서 강조하고 싶은 사실은 바로 이 YAF를 중심으로 성장한 청년 보수주의자들이 훗날 미국 ‘레이건 혁명’의 주역이 됐다는 사실이다.

네 번째 단계는 정치세력화였다. 1964년 미국 대통령 경선에서 보수주의자 베리 골드워터를 공화당 후보로 당선시키면서 보수주의 세력이 미국 공화당의 중심세력으로 떠오르게 된다. 비록 본선에서는 대패했지만 골드워터 선거운동을 통해 미국 현대보수주의 운동이 ‘현실정치세력’으로 전환된 것이다.

다섯 번째 단계는 ‘대중화’였다. 이전까지만 하더라도 미국 보수주의 운동은 소수 지식인 운동 성격을 벗어나지 못했다. 그런데 1960년대에서 1970년대 초반 대대적 대중운동이 전개된다.

이들 운동은 과거 소수 지식인 운동과 구별되기 위해 ‘뉴라이트’(New Right · 노무현 정권 말에 존재했던 한국의 뉴라이트와는 이름만 같을 뿐 전혀 다른 흐름)로 불렸는데 사회적 이슈와 대중적 열기를 보수주의 운동으로 접목시키기 시작했다. 이들은 스스로를 ‘급진파’(radical)로 불렀으며 반(反)기득권(anti-establishment) 운동을 전개했다.

여전히 ‘1단계’인 한국 보수주의 운동

여섯 번째 단계는 1970년대 중·후반의 네오콘(신보수주의)과 사회적 보수주의(Social Conservative)의 합류이다. 좌익 출신 전향자 그룹이라 할 수 있는 네오콘은 그동안 보수주의 진영이 취약성을 보였던 ‘문화전쟁’에서 탁월한 역량을 발휘했으며 사회적 보수주의는 기독교를 중심으로 한 ‘종교적 보수주의’ 세력을 보수주의 운동에 묶어세우는 데 큰 역할을 했다.

기존의 보수주의 3대 흐름과 새로 합류한 네오콘과 사회적 보수주의를 합쳐 미국 현대 보수주의의 5개 군단으로 부르기도 한다.

마지막 일곱 번째 단계가 1980년 보수주의자 레이건 정부의 탄생이다. 좌익과 리버럴에 대한 반발로 시작된 미국 보수주의 흐름은 1950년대 하나의 ‘이념’으로 정립됐으며 1960년대 학생운동 기반을 마련하고 ‘정치세력화’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1970년대 ‘대중적 확산’이 이뤄지고, 새로운 보수주의 흐름으로부터의 수혈을 통해 더 성장, 1980년대 마침내 레이건 보수주의 혁명이라는 꽃을 피워내게 된 것이다.

한국 보수주의 운동은 어느 단계에 있는가? 아직 1단계에 머물러 있다고 한다면 지나친 자학일까?

황성준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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