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인한 달 4월을 보내며
잔인한 달 4월을 보내며
  • 미래한국
  • 승인 2014.04.23 0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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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의각의 세상보기
 

2014년 4월은 우리 국민 모두에게 슬픔과 눈물을 남긴 어이없는 달로 남게 됐다. 인재(人災)로 302명의 꽃다운 생명들이 여객선 ‘세월호’와 함께 진도 앞바다에서 4월 16일 아침 우리 곁을 떠나갔다. 온 국민은 안타깝고 애타는 마음으로 구조가 이뤄지기를 기원하며 관련 구조요원들을 격려하며 어려운 구조 환경을 몇 날 동안 지켜봤다.

그리고 모두 잃은 생명들을 애도하며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 없었다. 사건 발생 초두, 긴급대응에서 실수를 범한 것으로 보이는 선장과 뒤집어진 선체의 침몰 구조 작업 과정 중에 빚어진 혼선 등에 관해 언론과 여론은 차분히 기다리기보다 비판하기에 급급했다.

물론 제일 중요한 과실은 수많은 생명을 객실 안에 머물게 하고 자기들만 먼저 대피 탈출한 여객선의 운전대를 잡았던 선장과 항해사를 포함한 선박직 승무원들에게 돌리지 않을 수 없다. 따라서 구조작업이 진행되고 있고 선체 안에서 탈출하지 못한 승객의 생사 여부에 촉각을 세우고 있는 동안에도 그들에 대한 책임 추궁의 여론이 비등했다.

준비와 훈련, 책임감 없는 행동이 불행을 가져와

선장과 승무원들의 업무자세와 정신상태는 그들에게 전적으로 의존할 수밖에 없는 승선한 전체 여객의 생명과 관계가 있다. 그래서 선장과 승무원은 훈련과 경험이 풍부한 정신이 바로 잡힌 영육간 건강하고 책임 있는 인격체여야 한다.

그들은 그들의 운행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모든 승객의 안전을 책임져야 하기 때문에 일순간도 방심하거나 긴장감을 놓아서는 안 된다. 뿐만 아니라 그들의 선박이나 기체는 수시로 철저히 점검해 불의의 고장에 늘 대비해야 한다.

그런데 이번 사고로 보아 여객선을 운전한 선장도 제대로 준비된 사람으로 보이지 않고 여객선 자체도 점검이 철저히 돼 있지 않았던 것으로 의심된다. 승객을 객실에 남겨둔 채 아무 조치 없이 먼저 탈출한 무책임한 선장과 선원들은 마치 위기가 닥쳐올 때 자기네들만 살겠다고 양떼들을 버리고 달아나는 목자나 부패한 정치지도자들과 다를 바 없다.

이번 사고는 국가와 정부와 국민 모두가 타산지석(他山之石)으로 삼아야 한다. 국가의 경영권이 혼자만 살겠다고 하는 준비되지 못한 자에게 주어지면 모두 파선당할 수 있다는 교훈을 이번 사고로 깊이 깨닫고 배워야 한다.

우리 사회에는 준비가 제대로 되지 않은 사람들이 인맥과 로비를 통해 중요 직책을 차지해 사명감도 없이 아무렇게나 일하는 사람들이 많아서 얼마나 아찔하고 불안하고 위험한지 모른다.

우리는 자신의 능력과 한계를 스스로 생각함이 없이 사적 욕망과 목적만을 위해 정부와 사회의 중요 자리를 탐해온 사람들이 국민 전체에게 미친 악영향을 역사 속에서 수없이 경험해 왔다. 그러면서도 오늘 우리는 여전히 역사의 전철(前轍)을 되풀이하고 있지는 않은가?

능력도 자격도 없는 자들이 온갖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 중책을 맡아 운전을 잘못하거나 역사 진행을 그르치는 일을 막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유권자인 국민이 똑똑해져야 한다.

자격 없는 정치인, 법관, 공직자, 종교인, 의료인, 기술자, 가짜 국가유공자들이 활보하는 사회를 보고도 모른 체해서는 안 된다. 우리 사회에는 무자격자가 자격자 행세를 하고, 진짜 자격자는 몸 둘 바를 몰라 하며 뒤로 물러서 있는 예가 비일비재하다.

한 예로, 1960년 4.19 학생운동 당시 변두리에 서서 구경만 하던 사람들이 인맥이나 뒷거래를 통해 50여년이 지난 요즘 4.19 유공자 명단에 자기 이름을 버젓이 올리고 명함을 만들어 유공자 행세를 하며 다니는 경우들이 다수 있다고 들었다. 이런 요지경 속의 한국 사회를 생각하면 그저 입맛이 떫다.

1960년 당시 부정선거와 불의에 항거해 죽어간 185명의 젊은이들과 부상당한 2000여 명을 유공자로 추대해 국가적으로 대접하는 것만으로 다른 참가자들은 감사해야 할 필요충분조건이다.

그러나 정의와 정치가 정도를 이탈해 온 이 나라에서 정치적으로 민심수습차원에서 4.19, 5.18 등 여러 가지 구실의 국가 유공자대상자 선정제도를 정략적으로 만들어 국가 유공자가 되겠다는 어중이떠중이들을 매년 비공개 경쟁적 형식을 갖추기는 하지만 실제로는 밀실에서 선정해 진짜보다 가짜들이 유공자 자격을 얻어 행세할 수 있는 길을 만들어 놓았다.

알곡들은 왜소해져 보이지 않고 가라지들만이 무성한 이 사회의 모습은 마치 수많은 국내외 가짜 박사학위 보유인구가 늘어 오히려 진짜들이 학위 소유를 내세우기를 부끄럽게 만들고 있는 사회 현실과 유사하다.

자격 미달자들과 가라지들이 인맥과 학연, 지연 고리를 통해 사회의 지배계층으로 올라서서 배타적 카르텔을 끼리끼리 형성해 패거리를 만들고 국정 운영을 주도하게 되면 그 사회는 휘청거리다가 종국에는 암초에 부닥쳐 좌초돼 국민을 슬프게 하며 역사의 눈물을 흘리게 만든다. 여객선의 운전키를 잡은 자가 진짜 실력 있는 조종사가 아닐 때 사고로 수많은 승객을 희생시키는 일도 그런 단면의 반사현상이다.

우리는 대형사고가 발생할 때마다 정책 당국이 대국민 사과문을 발표해 앞으로는 이런 일이 재발되지 않도록 하겠다는 약속을 수없이 되풀이하는 것을 듣고 살아 왔다. 그러나 사후 약방문(事後藥方文) 처리식 약속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 역사(歷史)가 되풀이돼 국민 모두는 식상해 있다.

괄목한 경제성장 자랑하나 생활자세는 여전히 후진적 모습

달리기 경주에서 전속력으로 뛰는 것도 중요하다. 그러나 도중에 궤도에서 이탈하거나 넘어지지 않고 안전하게 목적지에 도달하는 것도 매우 중요하다. 아무리 좋은 집을 빨리 짓기 위해 사력을 다한다고 해도 그 집이 사상누각(砂上樓閣)이 되면 소용이 없다.

괄목할 경제성장을 자랑하나 생활 자세는 여전히 후진성을 면하지 못하면 그것은 수치일 뿐 자랑이 될 수 없다. 이번 세월호 침몰로 인한 많은 인명 손실은 우리 모두에게 잔인한 4월의 눈물이 돼 돌아왔다.

“4월은 가장 잔인한 달, 라일락꽃을 죽은 땅에서 피우며 추억의 욕망을 뒤섞고 봄비로 활기 없는 뿌리를 일깨운다”라는 엘리어트(Thomas Stearns Eliot, 1888-1965)의 詩를 읊조리면서 금년 4월은 우리에게 또 다시 잔인한 달이 됐음을 잊지 않으려 한다.

‘세월호’가 침몰한 사고 소식이 전해진 4월 16일은 우리 국민 모두의 안타까운 눈물과 함께 모든 백성(그리스도인)들이 온 세상을 구원하시기 위해 대속물이 되셔서 십자가를 지셨던 예수님의 고난을 생각하며 자신의 죄에 대한 회개를 하는 고난주간 중의 한 날이었다.

그 기간 중에 발생한 그 엄청나고도 어처구니없는 사건은 마치 책임감 없는 지도자로 인해서 공동체가 얼마나 추락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하나의 사례로 분명히 보였다. 또한 일반 사회의 정의와 진리 그리고 책임 부재의 대가가 어떤 것인지를 인식하는 계기가 됐다. 이 4월의 고통스러운 안타까운 눈물이 우리 역사에서 되풀이되는 일 없도록 해야 할 것이다.

황의각 편집고문
고려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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