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일이면 그는 자주색 조끼를 입고 집을 나선다
수요일이면 그는 자주색 조끼를 입고 집을 나선다
  • 이상민 기자
  • 승인 2014.02.12 09:0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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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 미국 시니어들의 활발한 자원봉사활동 취재기
병원에서 자주색 조끼를 입고 자원봉사하는 시니어들

조지아 커밍에 거주하는 행크 씨는 36년 간 미 연방공무원으로 활동하다 2년 전 은퇴했다.

올해 69세인 그는 은퇴 후 주어진 ‘자유 시간’을 어떻게 잘 보낼 것인지 생각했다. 골프 치는 것도 하루 이틀이고 남을 돕는 것이 보람이 있겠다는 결론을 내리면서 평소 교회 등에서 해왔던 자원봉사를 하기로 했다.

은퇴 후 첫 자원봉사는 저소득 노인들에게 무료로 밥을 갖다주는 곳에서 시작됐다. 그는 1주일에 하루 4시간씩 그곳을 방문해 샌드위치를 포장해서 봉투에 넣는 일을 했다. 한 달 뒤 한 대학병원에서 자원봉사 자리가 났다는 연락을 받았고 그는 병원에서 자원봉사를 했다.

환자 옷을 개는 일이 첫번째 일이었고 그 뒤 병원 내 목사들을 돕는 부서로 옮겨 환자들이 기도를 받고 싶다고 연락이 오면 목사에 연결해주는 일을 했다. 1주일에 하루 4시간씩 3개월 간 이 자원봉사를 했다.

이사를 가게 되면서 병원까지 거리가 멀어 그는 집 근처에 있는 다른 병원에 자원봉사 신청을 했다. 몇 주 후 연락이 왔고 장 씨는 간단한 훈련을 받은 후 자주색 조끼를 받았다. 자원봉사자들이 병원에서 입는 유니폼이다. 그는 이제 수요일 아침이면 자주색 조끼를 입고 집을 나서 병원으로 가고 있다.

은퇴 후 삶의 낙이 된 자원봉사

아침 8시부터 4시간 동안 병원 응급실 접수처에서 환자들에게 휠체어를 갖다 주고 환자 팔목에 이름표를 묶어주는 등의 보조 활동을 하는 것이 그의 임무다.

이 병원에는 행크 씨와 같이 자주색 조끼를 입고 자원봉사활동을 하는 시니어들이 150여명이나 된다. 2007년부터 병원에서 자원봉사활동을 해왔다는 60세의 신디 다비는 조끼에 4000시간 자원봉사를 했다는 배지를 달고 있었다.

그녀의 자원봉사 장소는 환자들이 수술하는 동안 가족들이 기다리는 대기실.

“수술이 끝날 때까지 마음을 졸이며 앉아 있는 가족들에게 따뜻한 위로의 말과 물 한잔을 건네는 것이 얼마나 큰 격려가 되는지 모릅니다.”

그녀는 자신의 어머니가 병원에서 수술을 받았을 때 다른 자원봉사자들이 자신에게 그렇게 했던 것이 너무 좋아 자기도 병원에서 자원봉사를 해야겠다고 다짐했다고 한다.

“다른 사람을 도울 때 만족감이 큽니다. 사실 남을 도우면서 제가 더 도움을 많이 받습니다.”

경찰 보조로 자원봉사하는 시니어

3개월 전부터 병원 자원봉사를 시작한 75세의 게리 스미스(Gary Smith)의 임무는 골프차 운전이다. 주차장에서 병원 현관까지 환자와 그 가족들을 골프차에 태워서 오는 것이다. 왜 자원봉사를 하느냐고 물었다.

“집에서 나와 활동적으로 살고 싶습니다. 다른 사람을 도우면 마음이 따뜻해집니다. 보람이 크죠.”

그는 1주일에 3일 각각 4시간씩 병원 주차장에서 현관까지 골프차를 운전하고 있다.

미국에서 시니어(Senior)들은 도움을 받는 수혜자로 머물지 않고 도움을 주는 자원봉사자로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그동안 살아오면서 쌓아온 경험과 시간을 지역사회를 위해 사용하는 봉사자로 움직이고 있는 것이다.

존 F. 케네디 대통령은 시니어 봉사단(Senior Corps)을 조직해 55세 이상의 시니어들이 지역사회를 위한 봉사활동을 하도록 했다. 당시 평화봉사단(Peace Corps)도 함께 만들어져 수많은 미국 청년들이 한국 등 개발도상국에 가서 영어를 가르치는 등 자원봉사를 하도록 했다.

시니어 봉사단에서는 시니어들이 청소년과 젊은이들의 멘토 역할을 하는 양조부모 프로그램, 어려움에 있는 다른 시니어들에게 친구가 돼 쇼핑, 간단한 심부름 등을 도와주는 시니어 친구 프로그램, 자신의 재능과 시간을 드려 봉사활동을 하는 은퇴시니어 자원봉사 등을 하고 있다.

이 가운데 가장 각광을 받는 것은 은퇴시니어 자원봉사(Retired and Senior Volunteer Program, RSVP)다. 현재 미 전역에서 50만명의 시니어들이 이 RSVP 프로그램을 통해 자원봉사를 하고 있다.

자원봉사의 내용은 다양하다. 병원 봉사, 노인센터 봉사, 독거노인 방문, 음악 연주, 건강 교육, 뜨개질, 서류정리, 다른 노인 쇼핑과 의사방문 보조 , 어린이 교육, 멘토링, 개인과외, 모의 인터뷰, 비영리단체 활동 보조 등 여러 가지다.

시니어들이 자원봉사를 하는 가장 큰 이유는 보람과 재미다.

다양한 자원봉사 프로그램

지난해 안전운전 클래스 강사로 1000시간을 자원봉사해 대통령 봉사상을 수상한 77세의 제리 터크-모건은 자신이 자원봉사를 한 이유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재미 있으니까요. 집에 혼자 있는 것보다 훨씬 낫지요. 사람들도 만나고 도우니 얼마나 좋아요?”

그녀는 젊어서부터 자원봉사를 해왔다며 이런 것이 후손들에게 영향을 미쳤다고 말했다.

“아들은 지금 경찰관입니다. 제가 지역사회에서 자원봉사를 한 것이 계기가 돼 경찰이 됐지요. 제 손자는 대학생인데 학교에서 친구들과 봉사활동을 하고 있죠. 제가 기회만 있으면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자원봉사를 해야 한다고 말한 것 때문이라고 합니다.”

자원봉사는 시니어들의 건강에도 좋은 것으로 알려졌다. 카네기 멜론대 연구에 따르면 1년에 최소 200시간 이상 자원봉사한 사람은 고혈압 위험률이 40% 가량 감소한다. 51세에서 91세까지 성인 1100명을 대상으로 한 이 연구에 따르면 자원봉사를 한 사람이 하지 않은 사람보다 고혈압으로 발전될 가능성이 훨씬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지금 행크 씨는 본인만 자원봉사하는 것이 아니라 이제는 다른 시니어들이 자원봉사에 참여할 수 있도록 안내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되기 때문입니다.”

애틀란타=이상민 기자 proactive09@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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