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치는 결국 힘이다
가치는 결국 힘이다
  • 미래한국
  • 승인 2014.02.04 0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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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강호의 역사이야기 - 우드로 윌슨 90주기에 부쳐
 

“이 위대하고 평화로운 국민을 전쟁으로, 모든 전쟁 가운데 가장 무시무시하고 비참한 전쟁으로 이끌고 들어가는 것은 두려운 일입니다. 그러나 정의가 평화보다 더 귀중합니다.” (1917년 4월 2일의 우드로 윌슨의 참전 촉구 의회 연설)

1차 세계대전 발발 며칠 후인 1914년 8월 영국의 작가 웰즈(H.G. Wells)가 한 권의 책을 출간했다. 제목은 <전쟁을 끝내기 위한 전쟁(The war to end war)>. 독일 군국주의를 패퇴시키는 것만이 전쟁의 종식을 가져올 것이라 주장하며 영국의 對 독일 개전을 적극 옹호하는 내용이었다.

그러나 이후 역사가 보여주듯 1차 세계대전은 결코 “모든 전쟁을 끝내기 위한 전쟁”은 되지 못했다. 누군가 서구문명 스스로의 자살이라고까지 개탄했음에도 종전21년 뒤 다시 2차 세계대전이 일어났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적어도 미국의 1차 세계대전 참전을 결단했던 우드로 윌슨(Woodrow Wilson)의 입장에선 확실히 그런 전쟁이기는 했다. 그에게 있어 미국의 이 전쟁은 ‘민주주의와 자유를 위한 전쟁’이었다. 그것이 정의이며 세계 평화는 그러한 정의의 토대 위에 세워져야 한다는 것이 그의 믿음이었다.

우드로 윌슨(1856~1924)

미국 역사의 한 획

미국의 28대 대통령 우드로 윌슨, 1856년 12월 28일 태어나 1924년 2월 3일 운명을 달리 했다. 올 2월 3일은 그의 90주기다. “정의는 평화보다 더 소중하다”고 말한 그의 연설 나흘 뒤 미국은 전쟁결의안을 통과시키고 ‘세계대전’에 뛰어들었다. 미국 역사의 한 획이었다.

이전까지 미국은 ‘세계’, 더 정확히는 ‘구세계’인 유럽과는 늘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고자 했다. 이집트에서 벗어나 가나안에서 마침내 자신의 새로운 역사를 시작한 이스라엘의 자손들처럼 미국인들도 새로운 땅에서 자신들만의 ‘신세계’를 개척하고 있는 터였다. 그래서 “유럽은 유럽, 아메리카는 아메리카”였다. 이른바 먼로주의로 불리는 이 고립주의 원칙이 윌슨의 참전 결단으로 마침내 종언을 고하게 됐다.

전조가 있기는 했다. 25대 대통령인 테오도어 루즈벨트(Theodore Roosevelt)다. 그는 먼로주의를 재해석, ‘강한 미국’을 추구하며 국제 문제에도 적극 개입했다. 프랑스와 독일 간의 모로코 분쟁을 해결하고 러일 전쟁 종식에도 중심 역할을 했다. 하지만 아직 유럽에 뛰어든 것은 아니었다.

윌슨은 그 한계를 넘어 미국이 유럽의 한복판으로 들어서게 했다. 아직 익숙지 않은 선택이었지만 그것은 숙명이었다. 당시 유럽의 대전은 이미 스스로의 힘만으로는 종식시킬 수 없는 상태로 참혹한 소모전을 되풀이하고 있었다. 오직 새로운 힘의 개입만이 서구문명의 자멸을 멈출 수가 있었다. 자신의 모태를 외면할 수 없는 한 개입은 불가피했다.

미군이 유럽 전선에 본격 투입되면서 전황은 급격하게 연합군 쪽으로 기울었다. 그리고 1918년 9월 26일 아르곤 숲 전투에 100만 명이 넘는 미군이 나서자 독일군은 10월말 결국 국경 안쪽으로 후퇴했다. 자국의 영토가 미군에 의해 직접 침공 당할 상황이었다. 독일은 휴전을 결심했고 1918년 11월 11일 1차 세계대전은 마침내 막을 내렸다. 유럽의 전쟁을 미국이 마무리 지은 것이다.

이것이 함축하는 바는 심원했다. 세계 국가로서의 미국의 전면화는 2차 세계대전 후였지만 그 첫발은 1차 세계대전이었다. 대전을 거치며 미국과 유럽은 이제 국제정치적으로 더 이상 분리된 세계일 수 없게 된 상태였다. 그리고 전후 유럽 평화의 과제는 미국의 손에 맡겨진 것과 다름없었다. 이제 미국은 원튼 원치 않든 유럽에서 주도적 역할을 해야 했다.

집착이 실패를 부르다

윌슨은 그 역할을 기꺼이 자임했다. 윌슨은 1918년 1월 8일 미국의 전쟁 목표로 ‘14개조’의 평화원칙을 천명했다. 우리 역사와도 무관치 않은 민족자결주의 원칙 등 윌슨의 이상주의적인 국제정치 구상이 담겨 있었다. 그중 가장 중요한, 적어도 윌슨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 것은 국제연맹의 창설이었다. 미국 유럽 모두에서 대중적으로도 반향은 컸다. 그러나 윌슨의 구상은 결국 성공하지 못했다.

연합국들은 베르사유 조약에서 국제연맹 구상은 받아들였으나 패전국 독일에 대한 가혹한 배상에선 물러서지 않았다.이것은 결국 또 다른 대전의 불씨가 됐다. 하지만 윌슨은 국제연맹 구상의 실현에 몰두해 그 위험을 소홀히 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윌슨은 자국인 미국에서 국제연맹 비준에 실패했다. 주창자이며 가장 중요한 당사국이어야 할 미국이 국제연맹을 외면하게 되면서 국제연맹은 출범 단계에서부터 이미 껍데기만 남은 것이나 다름없게 됐다.

제1차 세계대전 참전을 선언하는 우드로 윌슨

원인은 물론 복합적이었다. 그러나 가장 큰 책임은 윌슨 자신에게 있었다. 폴 존슨은 <모던타임스>에서 다음과 같이 지적하고 있다.

"유럽 강대국들이 평화유지를 위한 항구적인 협약에 미국을 끌어 들이는 수단으로 국제연맹 창설을 간절히 바랐고, 윌슨도 같은 견해를 공유하고 있었으며, 그것이 좌절된 것은 오로지 공화당의 고립주의 때문이라는 생각은 역사적 신화일 뿐이다. 사실은 그렇지 않다."

전쟁이 끝난 뒤에는 언제나 두 가지 모순된 감정이 사람들을 사로잡는다. 평화에 대한 갈망뿐 아니라 복수심 또한 강렬하게 대두되기 마련이다. 따라서 그 상반된 감정을 현실적으로 조율해 내는 ‘정치’가 필수적이다. 그러나 윌슨은 조약 협상을 위한 현실 정치적 조율에 염증을 느끼고 ‘연맹 구상’에만 더 집착했다.

분명 가치가 있는 구상이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기구의 창설이 아니라 평화체제의 구축이었다. 국제기구는 평화유지를 위한 수단이었다. 그러나 윌슨에겐 이제 국제연맹이라는 기구 자체가 목적이 돼 버렸다.

윌슨이 생각한 규약도 현실성에 문제가 있었다. “과거사와 상관없이 (독일을 포함해) 모든 열강이 속해 있고, 공과에 상관없이 모든 국경선을 보장해주는 전 세계적인 조직”이 윌슨의 구상이었다. 그러나 유럽의 연합국 측 지도자들과 전문가들은 하나같이 그것은 난센스라고 여겼다. 그런데 윌슨은 그에 더해 국제연맹의 결정을 집행하기 위해 주요 가맹국이 전쟁에 나설 의무를 지는 것까지 생각했다.

참혹한 대전을 겨우 끝낸 직후였다. 전승국들이 특히 프랑스가 독일에 대해 복수심에 불타고 있기는 했으나 또 다른 측면에선 염전(厭戰) 분위기가 휩쓸고 있던 상황이었다. 거의 현실성이 없는 생각이었다. 그보다는 차라리 독일 등을 철저히 무력화시키는 게 훨씬 현실적이라 느껴지고 있었다. 프랑스 등은 실제로 그렇게 했다.

미 공화당의 상원 지도자였던 헨리 캐벗로지(Henry Cabot Lodge)는 그 점을 보고 있었다. 그는 고립주의자가 아니었다. 그는 오히려 매우 유럽친화적이었다. 로지는 다만 미국의 국제연맹 가입 승인을 위해선 “미국의 군사적 개입이 요구되는 위기 상황과 관련해선 의회에 평가할 수 있는 권한이 주어져야만 한다”고 주장했다.

윌슨의 원안은 상원 비준에서 완패하고 말았다. 그러나 아직 수정안은 통과될 가능성이 있었다. 만약 로지의 수정안이 통과됐다면 미국이 국제연맹에 남아 있게 되면서 연맹이 좀 더 역할을 할 수 있었을 터였다. 독일의 불만을 어느 정도는 그 틀 안에서 달래는 게 가능했을 것이라는 얘기다.

그러나 윌슨은 로지의 수정안 통과를 본인이 앞장서서 저지하고 말았다. 폴 존슨의 표현을 빌자면 “자신이 낳은 맏이를 제 손으로 죽이는 꼴”이었다. 이 실수가 새로운 대전이라는 재앙으로 되돌아왔다.

이상과 가치는 중요하다

수정안을 살렸어야 했다. 그러나 윌슨은 어느 순간부터 일종의 원리주의자처럼 행동했다. 그는 평화체제의 구축이 아니라 그것을 위한 수단에 불과한 기구에 집착했다. 본말의 전도였다. 마치 북핵 폐기 자체가 아니라 6자회담이라는 다자기구 틀에 집착하다 20년을 허송한 것과도 같은 어리석음이었다.

윌슨의 실패는 국제정치에서 이상주의적 접근의 한계를 드러낸 사례로 종종 인용된다. 실제로 그것은 향후 현실주의적 관점이 대두하게 되는 계기이기도 했다.

그러나 조심스러운 평가가 필요하다. 접근 방식의 실패이지 가치 자체의 실패로 보아선 안 되기 때문이다. 이상은, 그게 어떤 차원의 무엇이든, 결코 현실에서 완벽하게 구현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국내적이든 국제적 차원이든 가치를 배제한 질서는 장기적인 생명력을 가질 수 없다.

질서의 생명력은 위선적이든 아니면 진심에서든 언제나 ‘정의로움’을 자양으로 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인간이 전적으로 선한 존재라서가 아니라 악함을 품고 있는 한계의 존재이기에 오히려 더 그렇다.

가치지향을 상실하고 “힘이 곧 정의”라는 관점이 위력을 갖는 순간 ‘히틀러’가 나온다. 괴물은 구호만으로 제압할 수 있는 게 아니다. 힘이 필요하다. 그러나 괴물을 억누를 수 있는 힘을 동원하기 위해선 가치라는 명분이 필요하다.

인간은 분명 욕망의 존재며 힘의 관계에서 벗어날 수 없다. 그러나 또 다른 한편 인간은 ‘의미’를 살아가는 존재다. 개인이든 국가든 의미를 부여받지 못하면 그 생명력은 작동을 정지한다. 개인이든 국가든 허무주의는 폭주와 자살을 부르기 마련이다.

백악관 집무실의 우드로 윌슨

우리의 가치가 힘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섣부른 개입주의는 분명 무익할 뿐만 아니라 위험하다. 그러나 고립주의가 안전을 보장하지는 않는다. 세계는 물론 스스로를 위해서도 그렇다는 걸 미국은 2차 세계대전을 거치며 분명하게 체험했다.

히틀러가 유럽에서 마음 놓고 전쟁을 벌인 것은 미국의 참전이 쉽지 않을 것이라는 판단과 무관치 않았다. 일본도 마찬가지였다. 일본은 진주만을 폭격하면서도 미국이 결국에는 강화에 동의할 것이라 믿고 있었다. 국제정치 무대는 무정부의 세계며 도처가 지뢰밭이다. 그래서 몽상은 참화를 부른다.

그러나 힘의 균형만을 믿는 것도 어리석은 것이다. 평화를 위해서라며 끝없는 타협을 되풀이하다 보면 결국에는 안방까지 유린되는 것 또한 현실이기 때문이다. 도발과 침탈에는 단호히 맞서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때 중요한 것이 내적으로는 자기정당성이며 외적으로는 명분이다. 견지하고 추구하는 이상과 가치가 그것을 가능하게 한다. 그래서 역설적이게도 현실주의적 관점에서도 윌슨주의는 유효성을 잃지 않는다.

만약 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이 트루먼 독트린 없이 소련과 타협으로만 일관했다면 무엇보다도 우리 대한민국이 없었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악의 제국’을 외치며 소련과 사회주의권을 붕괴시킨 레이건의 냉전 승리도 없었을 것이다.

이러한 역사적 경험은 지금의 우리 대한민국에도 현실적 교훈이다. 우리의 가장 큰 힘은 대한민국의 오늘이 있게 한 자유민주적 가치 자체다. 그것이 한미동맹이라는 가치동맹을 가능하게 했으며 그 덕분에 우리는 이 위험한 우범지대에서 안보를 지탱하고 발전을 이룩할 수 있었다. 통일을 이룩하는 힘도 당연히 그에 있다.

윌슨은 90여 년 전 참전을 결단하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우리가 지금 대항하여 싸우려는 악들은 평범한 것이 아니라 인간 삶의 뿌리를 절단하려는 惡입니다. (…) 하느님께서 우리를 도우시나니, 우리에게 다른 길은 없습니다.”

지금 우리도 그와 같은 적과 맞서 있다. 싸워 이기는 수밖에 없다. 다른 길은 없다.

이강호 편집위원
역사비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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