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주의자의 ‘How to Win’
보수주의자의 ‘How to Win’
  • 황성준 편집위원
  • 승인 2013.10.22 0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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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 리처드슨의 <대립적 정치학>(Confrontational Politics)을 읽고
 

지난 9월 워싱턴 DC 근교에 위치한 보수주의 운동가 훈련기관인 ‘리더십인스티튜트’(Leadership Institute, 이하 LI)에서 교육을 받고 왔다. 대부분의 보수주의 교육기관이 보수주의 이론과 이념을 보급·확산시키는 곳인 반면에 LI는 이미 보수주의 이념으로 무장한 활동가들에게 ‘이기는 방법’(how to win)을 교육시키는 곳이다.

이곳 교재 중의 하나가 빌 리처드슨(Bill Richardson)의 <대립적 정치학> (Confrontational Politics)이다. 빌 리처드슨은 미국의 대표적 보수주의의 한 사람으로서 캘리포니아주(州) 상원의원을 여러 차례 역임한 사람이다.

리처드슨은 “많은 보수주의 운동가들이 옳은 이념에도 불구, 현실 정치에 대한 몰이해와 전략·전술의 부재로 인해 리버럴과 좌익에게 밀리는 경우가 많았다”고 지적하면서 “정치 전투는 결국 수(number)와 효율성에 의해 결정된다”는 냉엄한 현실에 주목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정치전투는 수와 효율성이 결정

속류 마키아벨리식의 정치공학일 것이라는 당초 예상과는 달리 이 책의 서두는 인본주의(humanism)에 대한 비판으로 시작된다. 리처드슨은 인본주의를 ‘나이를 먹지 않는 무신론’(ageless atheism)의 한 형태로서 신에 도전하는 바벨탑을 쌓으려는 시도로 규정한다.

흔히 인본주의자들은 자신들의 이론적 토대가 ‘과학적’이라고 주장하며 유신론의 비과학성을 공격한다. 그러나 만약 신(神)이 존재하지 않고 인간이 단순히 진화의 산물이라면 ‘인간의 존엄성’을 입증할 ‘과학적 근거’는 그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결국 인본주의자들은 그냥 “인간이 존엄하다”고 믿는 ‘신이 없는 인본주의 종교’로 도피하든지, 아니면 인간의 존엄성 자체를 부정하면서 ‘공리주의적’ 혹은 ‘실증주의적’으로 인간의 존재를 규정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즉 ‘다수의 행복’이란 ‘합리적 판단’을 기준으로 ‘암적 존재’로 규정한 인간들을 대량 학살하더라도 죄의식을 느낄 필요가 없는 철학적 근거가 마련되는 것이다. 이러한 철학적 기반 하에서 나치의 유대인 대량학살과 공산주의자들의 ‘계급적 적’에 대한 청산이 진행될 수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인본주의자들의 도덕적 기준은 상대적일 수밖에 없으며 이들의 ‘양심’ 또한 상대적이라는 점을 명심할 것을 강조하고 있다. 이러한 사실을 정확히 이해해야만 좌익과 리버럴의 전략·전술의 본질을 이해할 수 있다.

보수주의자들이 좌익 혹은 리버럴과의 정치투쟁에서 밀리는 이유는 보수주의자들에게 대립 자체를 회피하려는 속성이 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흔히 ‘타협’이 미덕으로 제기되는데 진정한 타협이란 양자가 모두 일정 부분을 양보한다는 전제 하에서 이뤄지는 것이다.

그러나 좌익들의 ‘타협전술’은 좌익들은 전혀 양보하지 않은 상태에서 보수주의자들에게만 양보를 강요하는 것을 의미한다. 즉 좌익이 100을 달라고 한다. 보수주의자가 이를 거부하니 그럼 50에서 타협하자고 한다. 이에 보수주의자는 50만 뺏기는 것도 다행이라며 ‘타협’한다. 즉 좌익은 50을 벌고 보수주의자는 50을 잃었는데 타협으로 표현된 것이다.

사자와 양이 함께 뛰노는 세상은 하나님의 나라에서만 가능한 일이며 현실에서는 사자가 이미 양을 한 마리 잡아먹어서 배가 부른 상황에서만 가능하다. 이 ‘타협된 평화’는 사자 배가 고파지면 반드시 무너지게 돼 있다. 이러한 좌익의 ‘살라미 전술’에 당하지 말 것을 당부하고 있다.

 

직업 운동가를 육성해야

대부분의 대중은 정치에 무관심하다. 이러한 사실에 실망할 필요는 없다. 사람은 다양하며 신이 부여한 저마다 다른 재능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내가 저 사람보다 정치적 감각이 뛰어나지만 저 사람이 나보다 예술적으로 뛰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우열은 존재하지 않는다. 단지 다르고 다양할 뿐이다.

그렇기에 운동은 정치적 감각이 있는 약 5%의 정치적 선진 부분을 조직하는 것으로 시작해야 한다. 좌익은 조직 기반을 ‘계급’에서 찾는다. 그러나 보수주의자들은 ‘계급의 실재성’을 믿지 않는다. 세계는 양분돼 있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이슈로 나뉘어 있다. 좌익적 자본가와 보수적 노동자란 존재는 예외적 현상이 아니라 다양한 형태 중의 하나일 뿐이다.

따라서 보수주의자들은 ‘이슈 중심’(issue-oriented)으로 조직해야 한다. 흔히 실수하는 것이 ‘추상적 개념’ 혹은 ‘백화점식 이슈’를 중심으로 조직하려는 태도이다. 이보다는 ‘원 이슈(one-issue) 조직’이 훨씬 효과적이다. ‘핫 버튼(hot button) 이슈’를 중심으로 조직하고 이를 기반으로 느슨한 형태의 연대틀로 구축하는 것이 대중성을 상실하지 않으면서도 원칙을 타협하지 않는 조직론의 기초이다.

또 대중운동과 대중정치는 추상적 개념보다는 인물을 중심으로 형성된다는 현실을 망각하면 안 된다. 대부분의 기독교인들이 신(神)의 모습을 발견하는 것은 추상적 개념이 아닌, 예수님이라는 육화된 형태에서이다. 따라서 상징적 인물을 의식적으로 양성해 낼 필요가 있다.

좌익에 비해 열세에 있는 부분 중의 하나가 ‘직업 운동가’의 부족이다. 좌익과 리버럴 정치인들의 대부분은 직업 정치인들이다. 그러나 보수 정치인들은 다른 영역에서 성공한 뒤 정치로 입문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다 보니 정치적으로 나이브한 경우가 적지 않다. 보수주의 이념의 속성상, 좌익처럼 직업 운동가를 대량 배출할 수는 없다. 그러나 기본 골간을 형성하는 직업적 운동가 없이 운동은 불가능하다.

마지막으로 낙관주의적 태도를 보일 것을 요구하고 있다. 보수주의자는 ‘비관주의적 철학’을 가졌을 공산이 크다. 그러나 비관주의적 태도로서는 대중운동을 전개할 수 없다. 내면적 철학과는 달리 외형적으로는 항상 낙관적이고 긍정적인 태도를 보일 필요가 있다. 이 점의 중요성은 처칠과 레이건의 사례가 너무나 잘 보여준다.

황성준 편집위원·동원대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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