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한반도 게임의 법칙
2013 한반도 게임의 법칙
  • 미래한국
  • 승인 2013.07.23 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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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실히 중국은 쉬운 상대는 아니었다! 한중정상회담이 있기 전 국내 많은 언론들이 고무적인 추측을 쏟아냈다. 미중정상회담에서 중국이 보인 북한에 대한 전례 없는 강경한 태도는 그런 기대를 갖게 하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결과는 적어도 기대만큼은 아니었다.

공식적으로는 이번 한중정상회담도 성공적이다. 하지만 내용을 보면 중국의 입장은 기존에서 달라진 게 없다. 한국은 ‘북한의 비핵화’를 말했지만 중국은 ‘한반도의 비핵화’를 말했다. 그리고 중국은 철지난 6자회담 재개를 또 들고 나왔다.

한반도 비핵화에는 한국의 자위적 핵무장은 물론 미국의 전술핵 재배치에 대한 반대까지 당연히 포함돼 있다. 확실한 대북압박 공조 약속은 더 받아내지 못하고 대화를 주문받고 왔다. 환대에 들떠선 안 된다는 게 야박한 평가만은 아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관점을 좀 달리해 살피면 긍정적으로 볼 대목이 있다. 한국이 한중관계에서 천시와 인화의 기회를 맞았다는 것이다. 맹자가 말하고 제갈량이 논한 이래 천시(天時) 지리(地利) 인화(人和) 세 가지는 중국문화권에선 전통적으로 성패의 기본 요소로 꼽혀왔다.

우선 한국은 어쨌든 중국 한복판에서 ‘북한의 비핵화’를 명시적으로 선언했음을 보자. 이건 중국의 양해 없이 가능한 게 아니다. 그 점은 북한의 신경질적 반응이 역설적으로 증명한다. 북한은 “남한이 주변국에 대북 핵 공조 청탁을 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그 주변국에는 당연히 중국이 포함된다.

천시와 인화, 그리고 지리

시진핑은 박근혜 대통령을 라오펑유(老朋友)라고 부르며 극진하게 환대했다. 이런 인상적인 접대가 박 대통령은 물론 한국민의 감성까지 겨냥한 서비스임은 말할 필요가 없다. 전통적으로 중국은 주변국들을 그렇게 구워삶는 데 꽤 능란했다. 중국의 라오펑유(老朋友), 오랜 친구가 박 대통령만인 것도 아니다.

꽤 많은 외국 지도자들이 그런 호칭을 얻었다. 카스트로, 호치민은 물론 닉슨, 부시도 있다. 김일성도 당연히 그중 하나다. 하지만 그럼에도 중국의 ‘제스처’를 굳이 인색하게만 볼 필요는 없다. 김정은은 아직 ‘알현’의 기회조차 갖지 못한 것 아닌가!

중국은 여전히 북한의 후견국가요, 시진핑은 6·25를 항미원조전쟁이라고 한 당사자다. 그럼에도 중국이 이렇게 한국을 미소로 맞은 데는 당연히 목적이 있다. 한국을 적극 회유코자 함임을 굳이 논할 필요가 없다.

그런데 그에 못지않게 중요한 게 북한에 대한 메시지다. 경제적으로 조정기에 들어간 중국은 지금 연착륙을 위한 여유가 필요한 시점이다. 그런데 북한이 너무 멀리 나갔다. 중국은 대외적 환경의 안정을 위해 북한의 더 이상의 오버는 확실히 제동을 걸어야 하는 상황이다. 이것은 말하자면 우리의 찬스 즉 천시다.

여기에 때마침 박 대통령의 강점이 더해졌다. 박 대통령은 당 대표 시절 아직은 권좌가 분명치 않던 시진핑이 한국을 방문했을 때 2시간여의 단독 대좌로 후대했다. 한국의 차기 통치자로 유력한 인물의 대접은 시진핑의 체면을 살려주기에 충분했다. 인화의 조건을 확보한 셈이다.

박 대통령 자신의 배경도 후광효과였다. 등소평이 모델로 삼았던 박정희의 딸이자 동아시아 최초의 여성 통치자라는 점도 호소력이다.

좋은 의미에서든 나쁜 의미에서든 공주였던 면모가 이번에는 여왕 같은 품위로 발휘됐다. 희소성에다 품격을 갖춘 저명함에 대한 대중적 각광, 중국 인민이라고 예외일 리 없다. 이 역시 인화의 강점을 더했다.

중국이 필요로 하는 기회가 바로 우리의 기회다. 외교도 결국 사람이 하는 것이니 인적 요소가 무시될 이유도 없다. 그러나 여기까지다.

천시와 인화가 있지만 남은 한 가지 지리(地利)는 여전히 우리에게 없다. 지리는 나머지 두 요소와 성격이 다르다. 천시와 인화는 움직이는 것이지만 지리는 고정요인이다. 국제정치학적 개념으로 치환하자면 지리는 바로 지정학이다. 지정학적 조건은 변하는 게 아니다.

한미동맹과 북중관계

지정학적인 측면에서 한반도는 중국의 뒤통수를 겨냥한 망치요, 모택동의 표현을 빌자면 순망치한(脣亡齒寒)이다. 중국이 북한을 포기할 수 있는 한 가지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이건 가격이 매우 세다. 한국이 통째로 반미친중으로 중국 품에 안기는 것이다. 그러나 그건 우리에게도 미국에게도 선택 가능한 얘기가 아니다.

한미동맹이 한국에 매우 중요하다는 것은 사실 중국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그 중요한 한미관계가 마냥 좋았던 것은 아니다. 김대중-노무현 정권 당시 한미관계가 매우 불편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좌파적이고 친북적인 노선이 갈등을 빚지 않을 리가 없었다. 그런데 반대의 경우에도 결코 순탄하지 않았다. 이승만은 건국 이전 미군정 때부터 미국과 수시로 충돌했다. 박정희 시대도 마찬가지였다.

특히 1970년대 한미관계는 심각할 정도로 어긋나 있었다. 통상 유신으로 상징되는 박정희 정권의 비민주성 때문이었다고들 하지만 그런 해석은 反유신진영의 자기정당화일 수는 있어도 객관적이진 않다. 좌파들의 선전논리로 볼 때도 자가당착이다. 미제(美帝)가 자상하게 신식민지의 민주주의를 보살필 리가 있나?

어려움의 시작은 1969년 닉슨 독트린이었다. 그것은 “미국은 앞으로 베트남전쟁과 같은 군사적 개입을 피할 것이며, 아시아 제국(諸國)과의 조약상 약속은 지키지만, 강대국의 핵에 의한 위협의 경우를 제외하고는 내란이나 침략에 대해 아시아 각국이 스스로 협력해 그에 대처해야 할 것”을 선언하고 있었다.

그때나 지금이나 한미동맹은 한국의 안보에 가장 중요한 생명선이다. 게다가 당시는 여전히 북한의 국력이 앞서 있던 시절이었다. 그런데 한국이 알아서 하라니!

1971년 한국에서 야당 후보가 예비군 폐지를 부르짖던 대선이 있던 해 키신저가 북경을 방문했다. 1972년 2월에는 닉슨이 북경에 모습을 드러냈다. 1971년 중화학공업화 선언, 1972년 10월 유신, 이듬해 1973년 1월 31일 중화학공업화 개시라는 연속적 흐름은 그런 조건 속에서 나온 것이었다.

그나마 닉슨 때의 미국은 10월 유신을 양해하는 분위기였다. 그러나 1977년 카터 정권이 들어서면서 한미관계는 급격히 악화됐다. 카터는 인권외교를 내세우며 미군철수 카드까지 들고 나왔다. 고난의 시기였다. 1970년대 닉슨은 독트린으로, 카터는 인권외교로 한국을 어렵게 했다. 그러나 카터 때 갈등이 절정으로 치달은 상황에서도 한국과 미국의 동맹이 와해되지는 않았다.

일본이라는 변수

북한에 있어 이와 비견할 상황이 1992년 한중수교일 것이다. 미중수교에 이어 베트남이 적화되고 전 세계에서 사회주의권이 차례로 무너지고 있던 시점이었다. 그런 때 중국이 한국과 수교를 했다. 하지만 미중수교에도 불구하고 한미동맹은 여전했듯이 북중관계도 마찬가지였다.

지금 시진핑의 중국은 김정은의 북한에 대해 노골적으로 불만을 표하고 있다. 그러나 박정희를 그토록 경원시하던 카터의 미국이 한국을 포기하지 못했듯 중국도 북한을 버릴 수 없다. 지정학적 숙명이다.

이러한 지리(地利)의 한계를 타개하는 게 인화다. 내적 단결로서의 인화는 당연하고 다른 측면에서 보자면 인화는 앞서 본 것처럼 곧 외교다. 때를 맞춘 외교는 지정학을 움직인다. 고정된 조건에서도 틈을 찾고 더 넓게는 또 다른 지리를 동원하는 게 외교다. 원교근공(遠交近攻)이 그러하고 이이제이(以夷制夷)도 마찬가지다.

한국의 입장에서 일본의 행태는 적잖이 불편하다. 기회만 있으면 한국의 국민감정을 들쑤시는 게 버릇이냐고 묻고 싶어진다. 위안부 문제, 독도 문제 등으로 끊임없이 우리의 속을 긁어대는데, 아베 정권 들어 그 강도가 더해지고 있다. 아베노믹스는 경제적인 측면에서도 우리를 매우 힘들게 하고 있다.

반면 시진핑의 인상적 환대는 의전의 측면에서 우리 민족 국가가 중국에서 그 정도의 대접을 받은 적이 있나 싶은 생각도 들게 했다. 중국은 가까이 오고 일본은 멀어지는 듯한 분위기다. 그런데 그러면 괜찮은 것인가?

한중정상회담 뒤 일본에선 한중의 접근이 일본의 외교적 고립을 가속화하는 것 아니냐는 말이 나오고 있다. 그러나 그것은 표면적인 것이고 일본의 전략적 내심은 좀 더 복잡하다. 일본도 미국과의 동맹이 중요하다. 그런데 한국의 전략적 가치가 점증하면서 일본의 비중이 상대적으로 낮아지고 있다.

일본의 입장에선 편한 상황일 수 없다. 따라서 일본의 내심은 한중의 접근을 우려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바라는 바일 수 있다. 미국에 대한 일본의 전략적 가치를 올리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최근 일본의 한국에 대한 일련의 도발적 언사는 국내용 측면도 있지만 한국이 일본과 멀어지면서 중국에 더 접근하라는 주문일 수 있다.

박 대통령은 7월 10일 언론인 간담회에서 일본에 대해 강한 유감을 표명했다. 그러나 신중해야 한다. 한국이 중국과는 가까워지면서 일본과는 멀어지게 되면 한미일 관계에서 일본의 공간만 커진다. 중국에 대한 한국의 가장 강력한 카드는 언제나 미국이다.

미국이야말로 한국에 있어 강력한 원교근공적 뒷배다. 미국에 있어 한국의 비중 약화는 당연히 중국에 대한 한국의 가치 저하로 귀결된다. 게다가 기분 나쁜 이웃 일본도 중국에 대한 한국의 뒷심이다. 미일이 한국의 백그라운드가 돼 있기에 중국이 한국을 무시 못하는 것이다.

이런 뒷심이 약화되면 한국의 대중 접근은 중국의 영향력만 커지게 만드는 결과를 낳게 된다. 그렇게 되면 중국이 북한을 지렛대로 우리를 압박할 여지가 더 커지고 그것이 북한의 우리에 대한 도발 강화로 이어지게 됨은 불문가지다.

이해관계의 근본 헤아려야

중국은 한반도만의 지정학적 조건에선 북한을 포기 못한다. 그러나 중국의 핵심이해지역은 한반도만이 아니다. 해양으로는 대만, 센카쿠 열도, 남사군도 등에 내륙으로는 신장, 티베트, 몽골 또한 숙제다. 북한이 그러한 여타 전략적 이해지역과의 저울질에서 상대적 가치가 떨어지게 될 때가 우리의 기회다.

일본은 그런 점에서 우리의 대중 지렛대의 가치가 충분하다. 대만의 존재는 일본에 있어서도 절대적으로 전략적 가치가 있다. 센카쿠는 당연히 일본의 대중 전선이다.

일본이 이 지점에서 중국과 강력하게 대치하게 되면 한반도로 쏠리는 중국의 힘은 약화된다. 반대로 한일의 갈등이 심화되면 중국은 대일 대치에서 여유를 갖게 되고 그 힘을 한반도로 더 쏟을 수 있게 된다.

한반도의 게임의 법칙은 간단치 않으면서도 단순한 측면이 있다. 이해관계의 근본을 헤아리면 된다. 그러나 감정적 요인에 흔들리면 난마가 된다. 냉철함이 필요하다.

이강호 편집위원·역사비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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