쾌락과 이성의 조화가 행복한 삶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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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래한국
  • 승인 2012.12.20 1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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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귀의 고전읽기: 키케로 著 <최고선악론>
박경귀 한국정책평가연구원 원장

키케로는 로마 역사상 최고의 변론가, 연설가, 정치인의 한 사람으로 꼽힌다. 그는 애국심이 투철한 전형적인 로마인의 심성을 가진 것으로 평가될 만큼 그의 실천적 지식인의 측면이 널리 알려졌지만, 그가 고민하던 철학은 상대적으로 덜 조명됐다.

이는 키케로의 사상적 깊이의 부족함에 기인하기보다 그리스 철학자들의 상대적 위대성 때문이다. 키케로가 플라톤이나 아리스토텔레스와 같은 그리스 철학의 거성과 같은 사유의 독창성과 깊이를 보여주지는 못하지만 그가 저술한 <최고선악론>과 <의무론>을 읽고나면 그리스 철학에 빛이 가려진 로마의 뛰어난 사상가의 면모를 충분히 엿볼 수 있다.

그리스 철학자들이 고민했던 핵심주제는 ‘최고선’과 ‘어떻게 살 것인가’였다. 소크라테스는 참된 지혜를 찾기 위해 끊임없이 자신의 무지와 싸웠고, 플라톤은 이상적 국가와 조화를 이루는 개인적 삶의 방향과 덕(arete)에 대해 고민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개인의 탁월성을 바탕으로 한 중용을 강조했다.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은 각각 많은 제자들에게 전수되면서 다양한 학파를 형성하게 된다.

키케로의 <최고선악론>은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사후 헬레니즘 시대에 만개된 그리스의 서로 다른 철학파인 에피쿠로스파와 스토아파의 삶의 관점에 대해 각기 다른 입장을 가진 철학자들의 논쟁을 키케로 입장에서 비판적으로 소화하며 대안적 담론을 보여주고 있다.

키케로는 쾌락을 최고선으로 여기는 에피쿠로스파 사람들은 모든 판단의 기준을 이성이 아니라 감각에 의존하게 될 가능성이 많고 필연적으로 가장 감미로운 것이 최상의 쾌락이라고 여기게 될 수밖에 없다며 쾌락주의의 맹점을 공박한다.

키케로가 에피쿠로스파의 사상에 더욱 비판적이었던 이유는 개인의 안락을 도모하고 공동체의 책무에 소홀한 이들의 경향이 로마 시민의 적극적 정치 참여 및 전쟁 수행 등 공공적 책무 수행을 권장하던 로마의 이상에 중대한 위협이 된다고 여겼기 때문이 아닐까?

키케로는 스토아파의 주장도 비판했다. 본성에 따른 도덕적 삶만이 최고선이라고 규정한다면 건강에 관한 관심, 가사에 관련한 근면함, 국가의 통치, 상거래 질서, 생활의 의무들을 제외시키게 되고 결국 도덕성도 소멸하고 마는 오류를 범하게 된다고 말한다. 스토아파가 지나치게 이성을 중시하고 일상적 감성과 욕망에 대한 금욕주의를 강조한 이상적 측면을 지적한 것이다.

키케로는 에피쿠로스파가 감성을 중시한 데 반해 스토아파가 이성을 강조했던 각각의 주장을 모두 포괄하고자 했다. 인간은 정신과 육체로 구성됐으므로 정신은 감각에 의해 지도되고, 마음에 인간의 본성 전체가 종속되고 있어 실제로 정신과 육체의 덕에 의해서 채워진 대로 인생이 추구된다는 것이다.

이성과 감각의 상호작용, 즉 육체의 건전함과 마음의 완전한 이성에 의해 누적되는 덕이 최고선에 근접하게 된다는 것이다.

키케로의 절충적 철학은 행복한 삶의 방식에 대한 로마인들의 실용적 관점을 충분히 대변하고 있다. 특히 최고선에 대한 대안적 담론을 보여주는 대화편에 참여하고 있는 사람들이 인생의 경험이 일천한 로마의 청년들이었다는 점도 인상적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무엇이 선이며, 악인가, 어떻게 사는 것이 행복한 삶인가 하는 인생의 궁극적 목적에 대해 회의하고 고민하지 않는 현대인들의 얄팍한 삶이 씁쓸하게 대비된다.

우리의 일상의 모습은 삶의 'How'에만 매몰된 것은 아닌가? 삶의 ‘Why'를 상실한 우리에게 삶의 목적(telos)과 지향을 되새기게 해주는 고전읽기의 또 다른 매력을 다시 생각한다. (미래한국)

박경귀 한국정책평가연구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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