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의 강점 활용하면 유리천장은 없다"
"여성의 강점 활용하면 유리천장은 없다"
  • 이원우
  • 승인 2012.12.07 16: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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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人 4色 여성리더 좌담회 개최
 

참석자: 김상임 (주)코칭경영원 전문코치
/ 김형미 서울시 영양사협회 회장
/ 최소현 디자인 컨설팅 그룹 ‘퍼셉션’ 대표
/ 하지원 (사)에코맘코리아 대표

사회: 황성준 본지 편집위원

여성리더를 수식하는 단어들은 많다. 알파걸, 슈퍼우먼, 워킹맘….

하나같이 자신감 넘치는 뉘앙스의 말들이지만 현실 속 여성리더들의 삶은 투쟁의 연속이다. 그녀들의 일상은 자신감보다는 피로감으로 점철되기 일쑤다. 건국 이래 처음으로 여성후보가 대통령 당선 가시권에 들어온 초유의 장면을 목격하고 있음에도 대한민국 여성들의 삶은 여전히 험난하고 고단하다.

이에 <미래한국>은 대한민국 곳곳을 누비며 활약하고 있는 여성리더 4인을 초청해 작은 좌담회를 개최했다. 중소기업의 리더십을 지도하는 김상임 전문코치, 서울시 영양사협회 김형미 회장, 디자인 컨설팅 그룹 ‘퍼셉션’ 최소현 대표, 서울 시의원 출신의 하지원 에코맘코리아 대표가 한 자리에 만나 여성리더로서의 고충과 가능성에 대해 허심탄회하게 털어놓았다.

- 귀한 시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일단 자기소개부터 해주시면 어떨까요.

   김상임 전문코치

김상임: 저는 '많은 사람들과 행복한 삶을 살고자 하는 사람'입니다. 삼성그룹에 입사해 25년 동안 기업에서 열정적인 삶을 살았어요. 임원까지 달면서 신나게 회사생활을 하다가 작년에 나왔습니다.

그런데 밖에 나와서 세상을 보니 제가 알던 세상만 있는 건 아니더군요. 많은 사람들이 행복하지 않다는 걸 알게 됐고, 그때부터 행복을 나누기 위한 코치의 역할을 하고 있어요. 중소기업들을 포함해서 제가 대기업에서 쌓은 경험을 필요로 하는 분들께 코칭을 해 드리고 있습니다. 

최소현: 이 자리에선 제가 최연소네요. 올해로 서른여덟이니까 3040세대의 중간쯤에 해당될 텐데요. 서울대 미대를 졸업하고 나서 대기업을 잠깐 거쳐 벤처기업에서 몇 년 일하다가 사업을 시작한 지는 이제 만 10년이 됐어요.

디자인 컨설팅이란 게 아직까지 생소할 수 있지만 작은 기업부터 큰 기업까지 디자인은 매우 중요해요. 전략적인 디자인 뿐 아니라 기저귀나 크리넥스 제품에 들어가는 일상적 디자인까지 총괄적으로 다루고 있습니다. 딸 둘과 아들 하나를 두고 있는 워킹맘이기도 하네요.

하지원: 저는 직업이 많이 바뀐 편이에요. 학교를 졸업한 직후에는 대학에서 강의를 하다가 ISO인증 국제심사위원이 되면서 중소기업 컨설팅 업무를 병행하게 됐습니다. 그러다 생각지도 않게 서울시의원이 되면서 환경수자원위원회에서 4년간 활동했어요.

그때 환경은 정책으로만이 아니라 모두가 함께 실행해야 된다는 걸 깨달았고 모두가 할 수 있는 운동을 해야겠다고 결심했어요. 지금은 대한민국의 라이프 스타일을 에코로 바꾸는 에코맘코리아 대표이자 세종대 환경에너지연구소 부소장으로 재직 중입니다.

김형미: 저도 나름대로 스페셜리스트로서 일을 해 왔네요. 졸업하고 병원에서 계속 30년을 있었으니까요. 지금은 아이들이 다 자랐지만 한때는 워킹맘 생활도 했고요. 한국은 IT쪽으로는 선진국인데 식문화는 아직 많이 낙후돼 있어요. 그 격랑 속에서 여성으로 살면서 여러 가지 경험을 쌓아왔네요. 지금은 서울시 영양사협회 회장으로 재직하고 있습니다.

- 사회생활과 가정생활을 양립시키면서 가장 큰 문제는 역시 육아일 텐데요. 한때 여성리더는 ‘독신여성’이라는 이미지가 있었습니다만 여기 계신 분들은 다들 자녀가 있으시네요. 육아문제에 어떻게 대처하셨습니까?

                   하지원 (주)에코맘코리아 대표

하지원: 육아가 가장 큰 숙제라는 말에 전적으로 공감해요. 한다고 하는데도 늘 미안하고 안타까운 게 육아문제네요. 그래도 저는 “여자라서 그렇다”는 소리 안 들으려고 많이 노력하기는 했어요.

아이 임신하고 “위험하니 누워 있으라”는 얘기를 들었는데도 계속 강의하다가 강의실에서 기절한 적도 있네요. 출산 전날까지 일을 했을 정도니까요.

그렇게 노력해도 제가 일을 하니까 행여 아이가 외로울까 늘 걱정이 돼요. 지금도 아이 혼자 문 따고 들어올 일은 없도록 늘 신경을 써요. 주말은 아이와 있으려고 노력하고, 서울 바깥에서 주말 출장이 있을 땐 아이를 불러서 둘만의 시간을 갖기도 해요.

결국은 ‘노력’이네요. 대화하려는 노력을 반복하다 보니까 바쁜 엄마에게 불만이 많던 아이도 점점 제 입장을 이해해 주게 되고, 심지어 어떤 부분은 자랑스럽게도 생각해 주기도 해요.

김상임: 육아라는 테마에 저는 ‘협상’이라는 관점으로 접근하고 싶은데요. 제 경우엔 첫째 아이는 시어머니 도움을 받았어요. 둘째 아이 낳고는 도저히 안 되겠어서 사표를 냈더니 회사에서 잡더라고요. 일단 애를 놓고 와 보라는 거예요. 그래서 시어머니를 붙잡고 협상을 했죠. “제가 시어머니 인생을 책임져 드리겠습니다. 대신 저 좀 도와주세요.”

저는 아직도 시어머니를 모시고 살고 있어요. 제가 약속드린 거고 저도 도움 많이 받았으니까 불만은 전혀 없고요. 저는 이 얘기를 후배들한테도 많이 해요. 모든 걸 다 잘 할 수 없다는 거죠.

김형미: 최고령인 제가 육아에는 가장 해탈했을지도 모르겠네요. (웃음) 육아문제로 고민하는 수많은 후배들을 봐 왔지만, 육아문제로 고민하는 워킹맘들을 보면 육아와 집안일에 대한 집착이 강한 경우가 많아요. 그래놓고 보통은 첫 애를 낳으면서 나가떨어지죠.

중요한 건 우선순위의 배분이고, 사회생활을 하기로 결심했으면 그걸 중심에 놓고 가정생활에 대한 우선순위를 배분해야 해요. 이것도 잘하고 저것도 잘하려 하면 결국 다 망치게 되거든요.

- 예전에 우리가 ‘바람직한 여성상’이라고 하면 가장 먼저 신사임당을 떠올렸는데요. 요즘엔 슈퍼우먼들이 인기입니다. 여러분들은 후배들이 어떤 여성으로 성장하길 바라시나요.

하지원: 제가 여성들에게 아쉬운 점이 있다면 우직한 끈기가 다소 부족하고 손해 보려 하지 않는다는 점이에요. 작은 계산이 지금은 이익인 것 같지만 결국은 훨씬 더 큰 손해라는 걸 알아줬으면 해요.

오히려 지금 작게 손해 보는 것에 담대해졌으면 좋겠어요. 넉넉한 마음은 넉넉한 성과와 넉넉한 네트워크로 연결됩니다. 결국 모든 일은 사람이 하는 것이니까, ‘누구나 떠올리면 함께 일하고 싶은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김상임: 저는 스스로 어떤 리더가 되고 싶은지를 물어보라고 요청하고 싶어요. 리더는 결국 조직이나 단체에서 구성원들을 독려해서 성과를 내는 역할이거든요. 근데 많은 여성리더들이 ‘지휘자’가 아닌 ‘연주자’로 녹아 들어가 버려요. 그리고 결국 그 연주자 역할에 빠져버리곤 하죠.

훌륭한 지휘자들은 눈을 감고서도 단원들과 교감할 수 있다고 하는데요. 스스로가 교감할 수 있는 리더십을 갖고 있는지, 매순간 철저하게 자문(self-questioning)했으면 해요.

최소현: 팔로어가 아니라 리더이기를 선택한 여성이라면 세 가지를 요청하고 싶은데요. 스스로에게 ‘자존심’ 아닌 ‘자존감’이 높은 사람이었음 좋겠어요. 스스로를 존중하자는 거죠. 두 번째는 배려심 있는 사람이었으면 해요. 모성을 가졌기 때문에 가능한 것들을 살리자는 거죠. 세 번째는 동기부여입니다. 앞의 두 가지 조건을 골고루 갖췄다면 좀 더 효율적으로 팀원들을 동기부여시킬 수 있을 거예요.

- 세상이 변했다고는 하지만 아직도 많은 비율의 여성들은 전업주부의 길을 갑니다. 사회생활을 하시는 입장에서 전업주부들에 대한 생각은 어떠신가요? (일동 한숨)

김상임: 전업주부들에 대해서 제가 정말로 할 말이 많은데요. 제가 작년에 퇴임하고 나서 여성가족부와 함께 경력단절 여성들을 다시 사회로 끌어내는 문제를 가지고 강의를 했던 적이 있어요. 이 분들이 정말로 무한한 잠재능력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죠.

근데 문제는 도대체 뭘 해야 될지를 모르더라고요. 저는 우수인력 활용 차원에서 정부가 전향적으로 뭔가를 시작해야 된다고 봐요. 4,50대라고 해 봐야 인생에서 정오예요. 인생 2모작이라는 말도 있잖아요? 지금까지 애들 위해 살았지만, 아이들이 다 자란 뒤에는 목적을 잃어버린 여성들이 너무나 많아요. 국가 차원에서 경력단절 여성들이 사회로 나올 수 있도록 지원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강력히 주장하고 싶어요.

최소현: 저도 현재 12살, 9살 아이가 있다 보니 전업주부 학부형들을 많이 만나게 되는데요. 같은 얘깁니다. 일하고 싶은데 통 모르겠다는 거죠. 고학력을 썩히고 있는 여성이 참 많아요. 자존감은 점점 낮아지는데, 이 보상심리가 결국 아이들한테 향하면 서로 스트레스를 받기도 하고요.

최근엔 디자이너로서 전업주부를 위한 명함을 만들어 볼까 하는 생각도 했어요. 누구 엄마 누구 아내로서가 아니라 본인의 이름과 정체성으로 살 수 있도록 말이죠.

    김형미 서울시영양사협회 회장

김형미: 제가 봤을 땐 아직 우리나라에서 여성들이 사회생활을 계속 한다는 인식을 주지 않는 것 같아요. 심지어 대학에서조차도요. 대학 교육의 목적을 모르겠다는 거죠.

많은 여성들이 대학에 진학해서 오히려 정체성을 잃어버립니다. 적어도 대학은 직업의식에 대한 명확한 교육을 해야 하고, 졸업한 뒤 사회에 어떤 영향력을 줄 것인지를 고민하게 해 줘야 해요.

정체성이 없는 상태로 사회에 나온 학생들이 무작정 어려운 일을 피하려고 해서 문제가 되는 경우도 정말 많아요. 어차피 원해서 온 일이 아니기 때문에 싫은 건 안 하겠다는 거죠.

사회에 뼈를 묻겠다는 생각이 보편화된 남자들과 달리 여성들의 경우엔 ‘올인’할 준비가 안 된 경우도 많고요. 이게 최 대표님이 말씀하신 ‘교육열’의 문제와 결부되면 헬리콥터맘의 문제가 발생합니다. 직무가 마음에 안 들면 엄마들한테서 전화가 걸려오는 시대가 됐어요.

- 대화를 나눌수록 ‘여성문제’의 스펙트럼이 정말 넓다는 생각이 드네요. 이제 마지막 질문입니다. 어떻게 보면 가장 널리 알려진 여성문제일 텐데요. 여성은 ‘약자’인가요? 유리천장은 존재합니까?

하지원: 저는 직원들과 함께 일하면서 사람의 장점과 단점이라는 게 그렇게 차이가 없다는 걸 느꼈어요. 직원들이 부족해 보이고 맘에 안 드는 부분도 많았지만, 뭐든지 예쁘게 봐 주려고 노력하고 이해하고 격려할 때 어느 순간 정말 예쁘게 변하더라고요.

여성이 약자인지에 대한 부분도 마찬가지가 아닐까요? 저는 여성리더에게 가장 중요한 덕목은 배려, 소통, 사랑이라고 봐요. 이런 부분에 충실하다 보면 부드러운 카리스마와 섬김의 리더십이 나오게 되는데, 이건 여성들에게 훨씬 더 유리한 부분이거든요.

자꾸 약자나 유리천장이라는 패러다임에 매몰되지 말고 사소한 것 하나에도 감사하는 습관을 들이면 감사한 일만 생긴다는 게 진실인 것 같아요.

   최소현 (주)퍼셉션 대표

최소현: 저는 후배들한테 건강하란 얘기를 참 많이 해요. 여성들의 문제 중 하나는 본인이 힘든 줄도 모르고 뭘 자꾸 한다는 거거든요. 섬세함이 분명 여성의 강점이지만 이런 차원에서는 약점으로 변하기도 하죠.

그런데 자꾸 무리를 하다 보면 남자와 여자는 태생적으로 체력조건이 다르기 때문에 여성들이 나가떨어지는 경우가 많아요. 욕심이 많으면 그만큼 건강해야 하는 거고, 체력적으로 밀리면서 유리천장이 어떻고 말하면 안 된다는 거죠. 그런 문제가 해결된다면 반드시 약자라고 볼 수는 없다고 생각해요. 여성만의 강점도 정말 많으니까요.

김상임: 남자가 다수인 조직에서 여성들은 한 번만 실수를 하면 집중이 확 되는 경향이 있어요. 이런 부분은 여자라서 난처한 부분이죠.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건 ‘마인드’의 문제 같아요. 그냥 대강 취직해서 살겠다는 게 아니라 자기가 가장이 될 수도 있다는 전제로 치열하게 목표를 정립하면 아무리 조직이 터프해도 견뎌냅니다.

제가 여성후배들에게 자주 하는 말이 하나 있어요. “네가 여성이라는 걸 너무 강조하지 마라.” 성과를 내기만 하면 회사는 반드시 알아봐 주고, 길게 보면 성별은 아무 문제도 아니에요. 유리천장의 존재 여부를 궁금해 하기 전에 여성들이 스스로에게 물었으면 좋겠어요. ‘자기를 설레게 하는 꿈이 있는가?’ 비전이 명확하면 어떤 문제도 해결이 가능합니다.

김형미: 성공한 여성리더들을 보면 완벽주의자인 경우가 많은데요. 이것도 지나치면 독이 되기도 합니다. 저는 일단 후배들에게 “중간에 그만두지는 말라”고 많이 얘기했어요. 여자라서 한직으로 밀려나는 일이 있더라도 일단 버티면서 기다리라는 거죠.

시간이 지날수록 여성이 유리한 점이 많다는 걸 후배들이 꼭 염두에 뒀으면 좋겠어요. 여성이 약자인 건 맞지만 전세를 역전할 수 있는 방법은 늘 있는 법이고, 그 방법이 잘 발현되면 여성도 충분히 강자로 거듭날 수 있습니다. (미래한국)

정리.사진 / 이원우 기자 m_bishop@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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