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전한 학교, 정상적인 학교
안전한 학교, 정상적인 학교
  • 미래한국
  • 승인 2012.11.22 09:4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이강호 본지 편집위원

문명다움에는 여러 측면이 있다. 기술적 요소도 있고 종교 같은 정신문화도 뺄 수 없는 요소다. 그런데 문명의 기준을 어떻게 정의하든 절대로 뺄 수 없는 것이 있다. 바로 교육이다.

우리가 어떤 인간 공동체를 문명이라고 칭할 수 있을 때는 세대 전승의 연속성을 가질 경우에 한한다. 아무리 거대한 집단이 그 어떤 정교한 시스템을 구축했다 해도 세대를 넘어 이어지지 않으면 일단 문명이라 칭하지는 않는다. 그렇다면 그 같은 연속성은 어떻게 확보되는가? 교육에 의해서다.

문명과 국가는 교육으로 이어진다

기술이든 종교든 또 다른 그 어떤 문화적 요소든 그 전승은 모두 교육에 의해 이루어진다. 교육은 최초 문명의 발생기부터 인류와 함께 해왔으며 지금도 언제나 인류와 함께 있다. 물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그래서 교육 없이 문명은 없다.

이것은 좁혀서 하나의 국가의 경우에도 그대로 해당된다. 국가는 작은 문명 단위며, 그 연속성도 교육에 의해 보증되는 것이다. 한 국가가 존재해야 할 마땅한 근거, 지탱할 수 있는 노하우, 함께 살아가는 데 있어 지켜야 할 규칙 등 모든 요소는 교육을 통해 이전 세대에서 현 세대로 그리고 또 다음 세대로 이어진다. 그래서 교육이 무너지면 국가도 무너진다. 그런데 지금 우리의 교육이 위기에 처해 있다.

한국의 학교가 현재 얼마나 엉망이 돼 가고 있는지는 예를 드는 게 새삼스럽다. 학생들끼리의 왕따에 폭력 등등은 너무 흔해빠진 일이라 아예 그러려니 하는 상황이다. 그런데 이제는 학생이 선생을 패는 일까지 일어나고 있다.

스승다운 예우는 사치라고 해두자. 군사부일체(君師父一體)는 이미 ‘그 따위’다. 君도 父도 땅바닥에 떨어진 지 오랜데 유독 師만 홀로 뭘 바랄 것인가? 하지만 학생이 선생에게 주먹질까지 하는 판이라면 이건 그나마 남은 알량한 허울마저도 누더기다. 그러니 교사라고 몸가짐에 그 다운 긴장이 있을 리 없다. 그냥 맥 빠진 샐러리맨이다.

그래도 그 정도이기만 하면 그럭저럭은 된다. 교사가 학생을 성추행했다는 해괴한 뉴스가 귓전을 더럽힌다. 대낮에 양아치가 학교에 침입해 어린 학생을 성폭행하는 기막힌 일이 벌어지더니, 이건 또 무슨 어처구니없는 일인가?

공부는 학원에서 하는 것이요, 학교 수업시간은 잠자는 시간이라는 등등은 이젠 탄식거리도 못된다. 학교는 선생에겐 더 이상 보람의 터가 아니요, 학생에겐 더 이상 배움의 터가 아니다. 심지어는 학교가 위험한 곳이 되기도 한다. 개탄의 수준을 넘어섰다. 이쯤 되면 학교는 없다. 아니 학교가 죽었다.

스스로 교육의 신성함을 훼손하다

어느 시대 어느 분야에나 문제점은 있기 마련이며, 발전에는 부산물을 피할 수는 없다고 할 것인가? 하지만 현재 우리 교육 현장에서 벌어지고 있는 상황은 그렇게 초연해도 좋을 단순한 객관적 귀결이 아니다. 거기에는 구체적이고 작위적인 분명한 계기가 있었다. 바로 전교조 문제다.

전교조의 정식 명칭은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이다. 명칭이 그대로 보여주듯 전교조는 교육자가 아니라 교육노동자를 자처했다. 교육자는 ‘스승’이지만 교육노동자는 노동가치설의 적용 대상이다. 교육자는 학생을 ‘가르치는’ 존재지만 교육노동자는 교육수요자에게 자신의 지식을 ‘판매하는’ 존재가 된다.

전교조 사람들은 ‘교직은 성직’이라는 구호의 허울을 벗기자고 했다. 어쨌든 그들이 원하던 대로 허울은 벗겨졌다. 하지만 그들이 제거한 것은 허위의 껍데기가 아니었다. 그것은 교육에 있어 필수적인 신성한 아우라였다.

교육이란 지식의 단순한 전달 이상이다. 그것을 받아들이는 태도와 학습하는 자세에 대한 훈육이 있어야 한다. 문자 그대로 단지 가르칠(敎) 뿐만 아니라 키우는(育) 것까지 포함하는 게 교육이다. 그래서 교육자의 헌신과 피교육자의 신뢰라는 인격적 관계가 요청되게 마련이다. 그 헌신과 신뢰의 관계가 교육을 신성한 행위가 되게 한다.

그들은 이 신성함 자체를 날려버렸다. 가르침의 신성성을 제거한 지식 판매 행위는 이미 학원 강사의 그것과 다를 바 없다. 아니 더 심하게는 교육방송이나 이른바 인강(인터넷 강의)과 다를 게 없다. 하지만 그보다 실력은 모자란다. 당연히 하잘 것 없는 존재로 전락한다. 학생들이 선생의 말을 듣지 않는다고? 스스로 자신을 그런 존재로 만들지 않았나?

이런 상황에서 교육현장에 건강한 긴장이 흐르길 기대할 수는 없다. 교사 스스로 교직은 결코 성직이 아니라는데 학생만 교사를 신성하게 바라볼 까닭이 없다. 존경과 위엄이 사라지고 지식 자체도 기대할 게 없다면 학교의 운명은 뻔하다. 형해화(形骸化) 공동화로 향하다 황폐화로 치닫게 된다.

그들이 신성하게 생각한 게 있기는 했다. 좌익적 이념 교육이었다. 어린 학생을 자신들의 비뚤어진 세계관과 가치관으로 물들이려 했다. 그들은 그것을 ‘민주적 소양’의 교육이라 주장했다. 하지만 채 여물지 않은 미성숙한 정신에 부정적 사고부터 불어넣는 것은 정신적 폭력이나 다름없는 것이다.

이념 교육의 몸통이 교육감 후보라니

그런데 그들은 대한민국의 존재와 사회의 건강한 상식을 의심하게 하는 내용을 불어넣으려 했고, 지금도 그 책동을 멈추지 않고 있다. 그리고 여기에 더해 아직은 자제력과 책임감을 먼저 배워야 할 아이들에게 절제 없는 권리 주장을 선동했다. 아이들의 세계에서 ‘민주화’란 말이 ‘난장판’과 동의어가 돼버린 것도 당연했다.

서울시 교육감 후보에 그 전교조 수뇌부 출신에 종북좌익의 온상 민노총 위원장을 지낸 자가 출마했다. 무엇을 하자는 것인가? 곽노현이라는 상식 이하의 인물이 갖은 어록을 남기며 서울시 교육을 엉망으로 만들었다. 또 되풀이 하겠다는 것인가?

지금 많은 학부모들은 좋은 교육은 나중 문제고 과연 내 자녀의 학교가 안심하고 등교시켜도 되는지부터가 걱정이다. 설익은 좌익이념을 신봉하는 얼치기들은 학생들을 물들이는 데만 혈안이 돼 있고, 교실에서는 고삐 풀린 폭력이 횡행한다.

그런가 하면 양아치, 파렴치들에 의한 범죄가 학교 안팎을 심심찮게 위협하고 있다. 걱정 당연하다. 더 이상 이런 상황을 방치할 수는 없다.

무엇보다도 안심하고 등교시킬 수 있는 안전한 학교가 되게 하는 게 급선무다. 이를 위해 학교 안팎의 위험 요소를 차단하고 학생들에겐 기강과 규율이 좋은 것임을 알도록 해야 한다. 그리고 얼치기 이념 건달들의 준동을 제압해 학교가 건강한 의식 교육의 장이 되도록 해야 한다. 물론 이 모든 일은 좌익 교육감, ‘또 다른 곽노현’이 등장하면 물거품이다. 막아야 한다. (미래한국)  

본 기사는 시사주간지 <미래한국>의 고유 콘텐츠입니다.
외부게재시 개인은 출처와 링크를 밝혀주시고, 언론사는 전문게재의 경우 본사와 협의 바랍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