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더의 부재가 그리스의 쇠망을 불렀다
리더의 부재가 그리스의 쇠망을 불렀다
  • 미래한국
  • 승인 2012.10.11 09: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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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귀의 고전읽기: 크세노폰 著 <헬레니카>
 

크세노폰의 <헬레니카(Hellenika)>는 투키디데스가 완성하지 못한 <펠로폰네소스 전쟁사>의 전쟁 말기인 기원전 411년부터 362년까지 49년간의 그리스의 역사를 담고 있는 소중한 사료이자, 당대의 정치경제적 상황을 현실감 있게 묘사한 고전이다.

당시는 그리스 도시국가 사이에 전쟁이 끊이지 않던 전국시대(戰國時代)였다. 페르시아와의 전쟁에서 단결된 모습을 보여줬던 그리스 도시국가들이 정작 승전으로 공동의 적이 사라지자 아테네와 스파르타의 패권 경쟁으로 인해 혼란과 무질서로 빠져들었다.

동맹의 맹주 자리를 놓지 않으려는 두 패권 국가의 경쟁이 가열되는 와중에, 그 틈새에서 균형자 역할을 해보려 한 코린트의 부상, 제3의 패권 국가로 등장하려던 테베의 반스파르타 연합전선은 그리스 세계의 크고 작은 도시국가들의 합종연횡(合從連衡)을 촉진시켰다.

게다가 페르시아는 그리스 세계의 혼란을 교묘하게 이용해 때로 아테네, 때로 스파르타와 연합해 자국과 인접한 소아시아 도시 국가들은 물론 그리스 본토 국가들 사이에 반목과 분열을 부추겼다.

그리스 세계의 혼란은 정치체제의 불안정에도 기인했다. 한계를 드러낸 아테네식 민주정과, 스파르타식 2인 왕정, 10~30명이 공동통치하는 과두정 등의 정체가 어느 것 하나 안정적으로 작동하지 못하면서, 패권 국가들이 동맹 국가들에 각기 자신들이 선호하는 정파를 지원하는 과정에서 정치적, 외교적, 군사적 대립을 격화시켰다.

이 상황에서 동맹은 국제적 평화보다 자국의 이익에 따라 언제든지 깰 수 있는 취약한 것이었고, 정파적 이익에 따라 서슴없이 적국과 손을 잡는 정치인들의 배신은 일상화됐다. 스파르타 편에 서서 군사전략을 자문한 알키비아데스의 배신이 아테네의 굴복을 재촉한 것이 대표적인 예이다.

반면에 스파르타의 경우 리산드로스나 아게실라오스 같은 걸출한 인물이 군사적, 정치적 역량을 발휘해 패권과 영향력을 유지할 수 있었다.

이 책이 주는 인상적인 교훈 두 가지만 들어보자. 기원전 406년 아테네 선단이 스파르타에 크게 승리했음에도, 군중심리에 휩쓸린 민중이 당시 일부 난파한 아테네 선원을 심한 풍랑으로 구하지 못한 해군 장군 6명을 민회 판결로 적법한 절차 없이 사형에 처한 일은 우민(愚民) 정치의 표본으로 기억할 만하다.

어제의 동맹이 오늘의 적이 되는 일이 비일비재했던 당시 주변국들의 잦은 배신과 위협으로 곤경에 빠져도 한번 맺은 스파르타와의 동맹을 끝까지 신실하게 지키며 국가를 보존했던 플레이우스의 돋보이는 행적은 저자의 칭송을 받을 만하다.

테베의 침략으로 스파르타가 존망의 위기에 빠졌을 때 아테네와 스파르타의 연합을 설득해 이끌어냈던 플레이우스 인 프로클레스의 연설도 인상적이다. 그는 스파르타와 아테네가 이민족 페르시아와 맞서 싸워 그리스 세계를 구한 혈맹임을 상기시키며, 궁지에 몰린 스파르타를 도움으로써 영원한 우방으로 만들 수 있다며, 과거의 나쁜 일을 기억하지 말고 아테네가 받은 은혜를 은혜로 갚는 것이 올바른 처사라고 역설했다. 마치 한미동맹과 북중동맹 등 한반도를 둘러싼 패권 국가 사이에 끼어 있는 한국의 생존전략을 시사해주는 듯하다. (미래한국)

박경귀 한국정책평가연구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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