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은 더 강해져야 한다
대한민국은 더 강해져야 한다
  • 미래한국
  • 승인 2012.10.11 0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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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초에 신은 인간에게 “생육하고 번성하라”고 축복했다. 신의 이 축복은 인간에겐 곧 소명이기도 했다. 성경 창세기의 이 구절은 결국 인간의 존재적 본성과 숙명에 대한 역설적 승인이다. 인간을 포함한 살아 있는 모든 존재는 생육하고 번성하기 위해 분투한다. 그런데 그 분투는 필연적으로 갈등과 아픔을 동반하다. 하지만 비난하지 못한다. 신이 축복의 이름으로 부여한 소명이기 때문이다.

생존과 번영은 그와 다른 이야기가 아니다. 개인이든 집단이든 국가든, 모든 존재는 생존과 번영을 위해 노력하고 싸운다. 이는 인간의 전 역사를 관통하는 일관된 가장 중요하며 영원한 주제다. 역사는 결국 인간과 그 집단의 생존과 번영을 위한 투쟁의 발자취다.

박정희 시대의 생존과 번영

“역사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나름 의미 있는 허다한 답들이 있어 왔다. 역사가들은 그 각각의 관점에 따라 역사를 해석하고 논평해 왔다. 하지만 세계를 살아왔고 또 살아가야 할 당사자의 입장에선 역사란 해석과 논평 이전에 피와 땀과 눈물의 기록이다. 무엇을 위한? 생존과 번영이다. 살아남고 또 조금이라도 더 잘살기 위한 몸부림의 처절한 흔적들, 이것이 역사다.

흔히 역사에서 먼저 주목을 끄는 것은 거대 제국들의 화려한 기록이다. 하지만 역사는 반드시 화려해야만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니다. 고난을 극복해온 치열함의 기록은 그대로 강인함의 웅변이다. 유대인의 2천년에 걸친 디아스포라의 역사는 초라함의 기록이 아니라 위대한 여정이다.

우리도 그렇다. 장구한 세월을 견고히 버텨온 역사였지만 영광의 발자취보다는 고난의 기록이 더 눈에 띈다. 특히 근대로 접어드는 길목에선 국권을 완전히 상실하는 초유의 굴욕을 겪어야 했다. 그리고 새로이 건국을 하자마자 전쟁의 참화에 휩쓸렸다. 대한민국은 그 고난을 뚫고 일어섰다. 서유럽을 제외한 유라시아 대륙 전체가 붉게 채색됐음에도 버텨내고, 폐허밖에 남지 않은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에서 세계 10위권 경제대국으로 일어섰다.

그 선두에 박정희가 있었다. 그의 시대, “우리도 한번 잘살아 보세”라는 기원과 “민족중흥”의 각오로 달렸다. 그런데 대한민국의 성취는 어느덧 그의 소망을 훌쩍 넘어섰다. 국가적 가난의 질곡을 끊었고 약소국의 자격지심을 떨쳐냈다. 뿐만 아니라 이제는 사실상의 선진국으로 진입했다. 그의 시대는 실로 우리 역사상 가장 위대한 전진의 시대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시비하는 자들이 있다. 하지만 살아남고 조금이라도 더 잘살기 위한 처절한 몸부림이었다. 그 분투가 우아하게 양탄자를 걸으며 이루어질 수 있는가? 당연히 아픔과 곡절이 있기 마련이다. 역사상 그 어떤 위대한 성취도 명예의 훈장만을 달고 있는 경우는 없다. 모든 전장이 그러하듯 역사의 전장도 상흔을 남기기 마련이다. 하지만 흉터를 이유로 전사를 욕하는 법은 없다.

한국은 이제 더 이상 작은 나라가 아니다. 국토 기준으로는 작지만 인구 기준으로 보면 남한 5천만 명만으로 결코 적은 게 아니다. 만약 EU 소속이라면 총 27개 가맹국 가운데 독일 프랑스 영국 이탈리아 다음의 5번째의 대국이다.

경제력은 더 돋보인다. 총 GDP 기준으로 세계 15위, EU 기준으로는 스페인 다음의 6위다. 그런데 그 앞 순위 스페인, 이탈리아는 EU의 화근이 돼 있는 PIGS 국가군의 하나이니 실제로는 독일 프랑스 영국 다음의 4번째 자리를 차지하기에 부족함이 없다. 더욱이 경제적 활력으로 보면 프랑스 영국을 능가하고 있으니 만약 한국이 EU 소속이라면 독일과 함께 EU의 견인차 노릇을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불편한 장소, 엄중한 상황의 한반도

그런데 이런 성취를 이룩한 나라지만 동아시아의 원래 자리에서 헤아리면 한국의 입지는 여전히 간단치 않다. 한반도 관련 4대 강국들 미국, 중국, 일본, 러시아 등은 그냥 강국들이 아니다. 미국 중국 일본은 그대로 GDP 세계 1, 2, 3위를 차지한다. 러시아도 예전 소련의 위세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여전히 GDP 세계 9위다. 게다가 간단치 않은 군사강국이다.

북한의 후견세력 중국은 그 이상 가는 막강한 군사대국이다. 일본은 교전이 제한돼 있는 평화헌법 국가라고 하지만 결코 ‘평화스럽지만은 않은’ 잠재적 군사능력을 갖추고 있다. 초강대국 미국이 다행히 우리의 강력한 동맹이라는 것이 유일한 위안이다.

불편한 장소다. 하지만 숙명이다. 개인은 몰라도 나라는 짐 싸들고 이사를 갈 수는 없다. 좋든 싫든 우리는 이곳에서 버텨야 한다. 대한민국은 지금까지의 성취의 과정에서도 그랬듯이 이 불편한 곳에서 계속 살아남아야 하며 또 번영을 이어가야 한다.

지금 우리를 둘러싼 대치 상황은 매우 엄중하고 팽팽하다. 우선 끊임없이 우리를 괴롭혀온 북한이 있다. 경제적으로는 오늘내일 할 만큼 보잘 것 없지만 핵무장을 하고 있는 상태다. 그 뒤에는 또 중국의 야욕이 있다. 그런데 이에 함께 대처해야 할 한미일의 결속에 문제가 발생했다.

독도문제에서 드러났듯 일본과 우리의 갈등이 간단치 않다. 미국이 아니라면 문제가 어떻게 비화할지 알 수 없는 상태다. 한편 중국은 센카쿠 문제를 기화로 군비에 더욱 박차를 가하고 있다. 지금 당장은 아니지만 우리의 이어도를 노려온 중국이 언제든 그 힘을 우리 쪽에 돌릴 수 있다. 한미동맹은 이런 점에서 우리의 생명선이다. 한미동맹이 굳건하면 일본도 더 이상 오버할 수 없다. 중국의 준동을 견제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힘도 한미동맹이다.

하지만 한미동맹만으로 이 모든 복합적 상황에 대처할 수 있다는 믿는 것은 안이하다. 결국 우리 스스로의 힘을 더욱 배가해야 한다. 다음의 언급은 이와 관련해 매우 예언적이다.

중단 없는 전진만이 유일한 길

“시련의 징조는 한반도를 둘러 싼 주변 국가들의 새로운 움직임 속에서 이미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중공은 점증하는 국제적 비중을 배경으로 그 영향력을 강화해나가고 있으며… 심상치 않은 변화의 물결이 우리들 주변에 일어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변화는… 그릇 판단하기 쉬운 소지를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우리의 국가안보에 일대 시련을 던져주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언젠가 한번은 겪어야 할 하나의 시련이며 이 정도의 시련은 우리의 자주적인 노력으로 능히 극복할 수 있어야 하고 또 그렇게 할 수 있다고 굳게 믿습니다.

문제는 우리의 힘 즉 국력에 달려 있는 것입니다. 중단 없는 전진을 거듭하는 것만이 시련 극복의 첩경이며 민족의 활로입니다.”

누구의 말인가? 바로 1971년 박정희 대통령의 신년사의 한 대목이다. 지금으로부터 41년 전이다. 하지만 “중단 없는 전진”은 오늘의 시점에서도 결코 유효함을 잃지 않는다. 대한민국은 더 강해져야 한다. 우리는 아직은 멈출 수가 없다.(미래한국)

이강호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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