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6월 25일, 팝의 황제 마이클 잭슨이 사망했을 때 대중들의 이목은 자연스럽게 사인(死因)에 집중됐다. 1958년 생. 동갑내기 팝스타 마돈나가 아직까지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음을 감안한다면 마이클 잭슨의 죽음은 충격적인 것이었다. 유명인들의 자살이 잇따르고 있던 당시 상황과 다소 불안했던 그의 행적을 떠올리면서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자살을 의심했다.
하지만 조사 결과 드러난 마이클 잭슨의 사인은 단번에 이해하기에는 복잡한 것이었다. 직접 사인은 심장마비. 하지만 ‘정맥주사 투입으로 인한 급성 프로포폴 중독’에 의한 심장마비라는 설명이 뒤따랐다. 이 과정에서 대다수의 대중들은 ‘프로포폴’이라는 고유명사를 처음으로 알게 됐다.
수술시 전신마취나 중환자를 진정시킬 때 사용하는 약물이라는 점, 정맥에 주사하기 때문에 호흡마취에 비해 마취가 간단하고 장시간 효력이 유지된다는 점 등이 알려졌지만 일련의 사실들은 일반인들이 이해하기에는 진입장벽이 높았다. 단지 그가 사망했다는 사실만이 중요할 뿐이었다.
하지만 잭슨의 죽음에는 프로포폴과 관련된 뒷이야기가 좀 더 길게 이어진다. 대표적인 것이 마이클 잭슨의 주치의 콘래드 머레이가 과실치사로 징역 4년의 유죄 판결을 받았고 약의 조제자격을 박탈당했다는 점이다. 이것은 마이클 잭슨의 죽음에 주치의 역시 매우 과중한 책임이 있다는 점을 법원이 인정했다는 뜻이다.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그리고 프로포폴은 대체 어떤 약물인가?
‘우유빛깔’ 죽음의 수면제
일관되게 결백을 주장한 콘래드 머레이는 스스로가 마이클 잭슨과 매우 가까운 관계였으며 그를 살해할 어떤 동기도 없었다는 점을 지속적으로 강조했다. 단지 불면증에 시달리고 있는 잭슨을 위해 수면제를 처방한 것이 사고를 불러왔다는 주장이다. 머레이가 그에게 마지막으로 투여한 약물은 생전에 마이클 잭슨이 ‘우유(milk)’라고 불렀던 약물, 프로포폴이었다.
프로포폴은 한눈에 봐도 우유처럼 생겨서 이 약물을 왜 ‘우유주사’라고 부르는지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 미국에서도 ‘기억상실증 우유(milk of amnesia)’라고 하면 은어로 프로포폴을 지칭하는 것이다. 2010년까지만 해도 한국에서 성형수술이나 수면내시경 등 일반진료 목적으로 수면마취가 필요할 때 투약 1위로 꼽히던 약물이다.
시술 중 프로포폴을 맞아본 사람들은 한결같이 ‘개운하고 편안하다’는 말로 주사 후의 느낌을 표현한다. 잠드는 순간의 달콤한 느낌이 뚜렷한 쾌감으로 다가온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잠에서 깬 후의 피로회복 효과 역시 탁월해서 한때는 ‘소 한 마리 분의 영양소가 들어있다’는 속설까지 돌았을 정도다.
주사 한 방으로 확실한 피로회복을 할 수 있다면야 마다할 이유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프로포폴에는 피로회복이라는 순기능에 비할 수 없는 치명적인 부작용이 도사리고 있다. 중독성이 있고, 점점 주사량을 늘려야만 효능을 볼 수 있으며, 과량을 주사하면 호흡정지로 죽음에 이르게 된다. 프로포폴은 우유빛깔의 순수한 외형과는 완전히 상반된 속성을 지닌 ‘마약’인 것이다.
마이클 잭슨의 죽음 후 약 2년간 프로포폴은 한국에서도 뜨거운 화제에 올랐다. 세간에 알려지지 않았을 뿐 이 약물이 한국에도 이미 상당히 깊게 전파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밤샘촬영이 많은 연예인이나 생활이 불안정한 유흥업소 종사자들 중에서 프로포폴에 중독되어 정상적인 생활이 불가능한 사례가 속속 발견되기 시작했다.
2009년 한 해 동안 프로포폴을 투약하기 위해 주사를 꽂은 상태로 사망한 사람이 1명, 자살자 1명, 변사 2명 등 총 4명의 사망자가 발생했다. 마이클 잭슨이 사망하기 2개월 전에는 프로포폴을 과다 투약한 한국의 20대 연예인지망생이 사망하는 사건이 일어나기도 했다.
2010년 식품의약품안전청이 발표한 ‘프로포폴 남용실태 조사 및 관리방안 연구’ 자료에 따르면 프로포폴 사용과 관련된 유해사례가 전국적으로 평균 매년 5건 정도 발생했는데 2008년 이후부터는 이 수치가 10건 이상으로 급증했다. 일부 언론들은 프로포폴에 중독된 연예인의 이니셜을 거론하며 말초적인 정보들을 생산했다.
하지만 프로포폴과 관련된 사건을 일반적인 ‘마약사건’으로 보기에는 구조가 특이하다. 프로포폴은 평범한 시민들과도 매우 가까운 거리, 그러니까 병원의 약품 보관창고마다 빼곡히 들어차 있다는 점에서 매우 ‘보편화’되어 있기 때문이다. 의사의 재량에 따라 누구나 접할 수 있는 마약이라는 점에서 프로포폴의 파괴력은 두드러진다.
의사와의 유착관계가 사태 확산시켜
결국 프로포폴과 관련된 사태의 심각성을 이해하려면 의사와의 유착관계를 이해해야 한다. 이 점을 직접적으로 보여준 것이 바로 지난 7월 30일 발생한 ‘산부인과 사체유기 사건’이었다.
룸살롱 접대부에게 ‘우유주사’를 놓아주기로 하고 병원에 불렀던 강남 ㅎ산부인과 의사는 우유주사 대신 미다졸람과 베카론 등 13종의 마취제를 섞어서 주사했다가 그녀를 죽음에 이르게 했다. 당황한 그는 부인에게 전화를 걸어 사체를 유기했다가 검거, 결국 의사와 부인 모두 검찰에 기소되었다.
사건 당일 의사와 접대여성이 나눈 문자를 보면 이 두 사람은 이미 예전부터 알고 지내던 관계였음이 드러난다. 다시 말해 그들에게 있어 프로포폴은 관계를 이어주는 하나의 ‘거래 매개체’였다. 단, 시세 40만 원정도로 알려진 프로포폴의 대가로 현금 대신 성관계가 오갔다는 점이 달랐을 뿐이다. 결국 프로포폴이 의사로 하여금 ‘마약 공급책’이 될 수 있는 하나의 옵션을 제공한 셈이다.
프로포폴 문제에서 의료업계 종사자들이 늘 갑(甲)의 위치에 서는 것은 아니다. 그들 스스로가 중독되는 사례도 있다. 2000년부터 2011년까지 발생한 프로포폴 관련 사망자 36명 중 13명이 의사‧간호사 등 업계종사자들이다.
2009년에는 한 병원의 원장이 진료실에서 스스로 약물을 투여한 뒤 사망한 사례가 있었는데 집에서 주사를 맞은 채 쓰러진 간호과장, 병원에서 쓰러진 간호사 등 숨진 의료진 모두에게서 프로포폴이 검출된 사례도 있었다. 프로포폴이 얼마나 위험한 약물인지, 그러면서도 얼마나 가까이 있는지를 알려준 사건이었다.
상황이 심각하게 돌아가고 있었음에도 당국의 대응은 느렸다. 2009년까지만 해도 프로포폴은 향정신성 의약품 관리대상에서 제외돼 있었다. 식품의약품안전청은 2011년 2월이 되어서야 프로포폴을 임시마약류로 지정했다. 이 시간차를 이용해서 강남 일대부터 우후죽순으로 생겨난 ‘수면클리닉’, ‘수면센터’ 등에서는 프로포폴이 꾸준히 ‘거래’되었다.
마약류로 지정하고 엄격히 단속한다고 해서 “죽는 것밖에는 끊을 길이 없다”고 말하며 프로포폴을 얻기 위해 사채에 절도까지 서슴지 않는 프로포폴 중독자들의 상태가 당장 개선되는 것은 아니다. 단순하고 강압적인 단속은 도리어 프로포폴의 가격만 올려놓는 역효과를 파생시킬 수도 있다.
허나 치명적인 위해를 가할 수 있는 정보가 있을 때 그것을 최대한 널리 알리려는 노력은 필요하다.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한 시술에도 널리 이용되는 프로포폴이 어느 정도의 마약성분을 포함하는지를 정확히 알려야 한다는 의미다. 실질적으로 마약이나 다름없는 이 마취제와의 어려운 싸움 역시 결국 이 약물의 위협을 널리 알리고 실체를 공유하는 것에서부터 출발해야 할 것이다. (미래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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