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경귀의 고전 읽기: 장 자크 루소 著『인간불평등기원론』
박경귀의 고전 읽기: 장 자크 루소 著『인간불평등기원론』
  • 미래한국
  • 승인 2012.09.06 1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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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유제를 혐오하고 절대적 평등을 추구하다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사회적 담론과 지성의 성찰은 그 시대의 누적된 문제와 욕구, 또는 필요를 대변해 낸다. 인간은 평등한가, 불평등한가, 불평등하다면 그 원인은 무엇이고, 언제 어떤 시대적 양태로부터 연유할까?

장 자크 루소 또한, <인간불평등기원론>에서 인류 역사상 수많은 사람들이 고민하던 불평등의 문제에 대한 심오한 통찰을 통해 17~18세기 절대왕정을 구가하면서 상류층과 하류층의 간극의 확대로 곪아가던 앙시앙 레짐(ancien regime)에 대한 파열음의 전조를 보여주었다.

루이 14세의 전제정치

1688년 명예혁명을 통해 군주위에 법률을 세운 영국과 달리 프랑스는 루이 14세 이래, 절대왕정이 더욱 공고해져 왕족, 귀족, 승려 등 지배계층의 사치스런 생활이 지속됐고, 오스트리아 왕위계승 전쟁, 영국과의 전쟁의 패배로 백성들의 삶은 곤궁하고 피폐해진 상태였다. 이렇듯 불평등한 현실을 극명하게 나타내고 있던 시대였던 만큼 백성의 불만을 해소할 새로운 사상의 출현에 대한 기대가 싹트고 있지 않았을까.

루소는 이런 누적된 사회적 모순과 자신의 빈한했던 삶의 체험 속에서 인간의 본성과 사회 작동 원리를 발굴해 냈다. 바로 사람 사이에 ‘불평등’을 만드는 근본적 원인과 전개양식을 통찰해 낸 것이다. 그는 ‘불평등’을 두 가지로 구분했다. ‘자연적·신체적 불평등’과 ‘사회적·정치적 불평등’이다. 하지만 ‘불평등’을 바라보는 그의 시선은 각기 온도가 다르다.

연령, 건강, 체력의 차이, 정신 또는 영혼의 질적 차이가 만들어내는 자연적·신체적 불평등에 대해선 아무런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 반면, ‘사회적·정치적 불평등’의 기원을 냉정하게 추적한다. 루소는 생존의 본성에만 충실한 원시인의 생활과 습성을 설명하면서, 자연 상태의 인간에겐 타인을 제어하고자 하는 욕망이나 적대적 행위도 없다고 말한다.

모든 동물적 본성과 가장 유사하면서도 인간은 자유로운 능력에 근거해 자연의 행동에 협력한다는 점도 다르다. ‘연민’의 감정 또한 인간과 동물을 확연하게 구분 짓게 하는 요소이다. 인간은 이런 연민의 정을 바탕으로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는 황금률을 체득하게 된다. 이런 자연 상태에 대한 평화로운 인식은 ‘만인과 만인의 투쟁’으로 본 홉스의 관점과 예리하게 대립한다.

연민과 평화 추구의 원시 인간

이런 평화로운 원초적 인간형에 비극이 시작된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인간의 ‘자기 개선능력(perfectibilite)’ 때문이다. 자연의 건강한 상태에서 동물적 삶에 의존하던 인간은 이성과 사색을 통해 자기 개선능력을 발휘하면서 복잡한 욕구를 만들어내게 됐다는 것이다. 욕망의 인식은 결핍의 자각으로 환원된다. 욕구와 결핍의 충족을 위한 여러 악덕이 생겨나는 건 당연한 일이다.

결국 루소는 자연 상태에서 찾을 수 없던 불평등의 기원과 진보를 인간 정신과 기술의 연속적인 발전 과정에서 찾으려 했다. 그 분기(分岐)를 이루는 것은 두 가지이다. 첫째 ‘사유(私有)’의 관념이다. 자기 생존과 보존을 위한 배려에서 시작된 인간의 감정은 다른 동물에 대한 인간의 우월성을 자각시켜 동물과의 투쟁에서 우위를 확보한다. 나아가 이성(異性)에 대해 인식하고, 인간 사이의 자유로운 협동의 이익을 자각하면서 가족을 형성하고 정착하게 된다. 루소는 남편과 아내, 자식을 공통된 주거에 결합하게 한 상황을 ‘사유재산’을 도입한 최초의 혁명으로 본다.

가족과 사유제 부정적 인식

루소에게 ‘사유제’의 관념은 인간의 불행과 불평등의 뿌리로 인식된다. 사유의 도입으로 노동이 필요해지고, ‘한 사람을 위해 두 사람분의 저축을 갖는 일이 효과적이라는 것을 알게’되면서 온순하고 자연적인 연민의 정이 풍부하던 원시인의 덕목과 평등한 관계는 사라지게 됐다는 것이다.

두 번째 불평등의 기원이 된 것은 야금(冶金)과 농업의 발명이 만들어낸 기술이다. 쇠를 제련해 농기구를 만들고 농업 생산력을 획기적으로 향상시키는 농업혁명이 재산의 과다에 따른 강자와 약자, 지배자와 피지배자, 빈곤한 자와 부유한 자 사이의 불평등을 만들어냈다는 것이다.

이런 불평등을 시정해 서로의 권리와 의무를 행하는 규칙으로서 사회와 법률이 자연스럽게 요구됐다는 것이다. 이에 자연법을 대치한 시민법의 준수를 약속해 줄 보증인으로서 보다 강력한 공동체가 정치체의 형태로 나타난다.

하지만 자신들의 재산과 이익을 지켜 주기로 암묵적 계약을 한 정치체가 오히려 합법적 권력으로서 불평등을 조장하고, 지배와 복종의 관계를 공고하게 한다. 결국 자연 상태에서 사회 상태를 만들어낸 인간이 스스로 불평등의 폐해를 확대하고 영속시키게 됐다는 것이다. 루소는 평등을 담보해내야 할 정치체제가 전제화됨으로써 불평등을 만드는 사회적 구조로 고착된 점을 강력하게 비판한 것이다.

하지만 루소가 전개한 불평등의 기원에 대한 논의가 오로지 원시 자연인의 상태에 대한 낭만적 전제에서 착수하고 있다는 점에서 문명과 진보에 대해 신뢰하던 당대의 계몽사상가들의 거센 비판을 받았다. 심지어 볼테르는 “부자들이 가난한 자에게 약탈당하는 것을 보고 싶어 하는 거지의 철학”이라고 반박했다. 나아가 루소의 글을 읽다 보면 “네 발로 걷고 싶어진다”고 조롱했다.

사실 루소의 사유에 비판의 여지가 적지 않다. ‘자연적·신체적 불평등’이 ‘사회적·정치적 불평등’의 선행요인이 될 수 있음에도 이 둘의 연계가 만들어내는 일정 부분의 필연적 불평등을 도외시한 것은 선뜻 이해하기 어렵다.

사회주의 사상에 영감

또한 존 로크가 ‘사적 소유’를 사회계약 이전에 자연법적 질서에 따라 성립된 자연적 제도로 이해한 데 반해, 루소는 자연법적 질서를 해체시킨 주범으로 인식했다는 점에서 도발적이다. 어쨌든 ‘사유’의 개념을 잉태시킨 ‘가족’에 대한 루소의 곱지 않은 시선과, 시민법의 주체가 된 국가체계, 즉 당시 프랑스 절대왕정체제를 불평등을 심화시키는 전제정치로 본 인식은 결과적으로 자유·평등·박애의 가치를 내건 프랑스 혁명(1789년)을 부르는 전주곡이 됐다.

다만, 인간 본성의 발현과정에서 나온 ‘소유’의 관념을 생래적으로 불평등의 근원이 되는 것으로 과장되게 인식한 루소의 오류는 그가 의도하지 않았지만, 프롤레타리아 계급 혁명을 통해 계급과 국가체제를 타파하려던 사회주의 사상가들에게 변형된 영감을 불어넣었다는 점에서, 인류사적으로 부정적 영향을 끼쳤다고 볼 수 있다.

불평등의 기원을 통찰한 루소의 번민은 여전히 우리에게도 숙명적 과제이다. (미래한국)

박경귀 한국정책평가연구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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