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열을 나눌 때 가장 중요한 것은 기준의 엄정성이다. 주관적인 판단에 의존하는 순위 선정은 공허할 따름이다. 자기 나라 이외의 지방에서 살아보지 않은 국민들에게 물어본 설문조사를 근거로 부탄이 ‘행복지수 1위 국가’라 한들 그곳으로 이민을 떠나는 사람은 없다.
- 경영컨설팅 전문기관인 한국능률협회컨설팅(KMAC)은 2008년부터 ‘가장 일하기 좋은 기업’을 발표하고 있다. 오늘은 2012년의 조사결과가 발표된 날로, 한국인들은 어떤 회사가 가장 일하기 좋은 기업인지를 궁금해 했다. 제조업 부문에서는 삼성전자가, 서비스업 부문에서는 SK텔레콤이 1위를 차지했다.
- 그런데 선정절차가 재미있다. KMAC은 지난 3월1일-6월12일간 산업계 근무자와 HR전문가 4,204명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를 해서 결과를 취합했다. 피조사자들은 가장 일하기 좋은 기업이 어디라고 ‘생각’하는지를 응답한 셈이다. 개개인의 생각도 4천개쯤 모이면 객관적인 데이터가 되는 걸까? “사실과 진실이 반드시 일치하진 않는다”고 말했던 것은 미국의 작가 윌리엄 포크너였다.
- 직관적으로 생각해 봐도 삼성전자와 SK텔레콤이 그리 한가로운 직장은 아님이 분명하다. 삼성전자는 현재 애플과 피 말리는 소송전을 벌이고 있다. SK그룹 역시 경제민주화 붐에 휩쓸려 연일 공정거래위원회와 정치권의 공격대상이 되고 있다. 오늘 1위로 손꼽힌 기업들에서 근무 중인 이들의 내심이 얼마나 행복할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부러워 할 대상을 찾는 한국인들의 심리는 ‘일하기 싫은 심리’와 어느 정도 관계가 있을 것이다. 지금 한국인들은 별로 일하고 싶지 않다. 19일 발표된 서울시의 조사결과에 따르면 서울 시민의 46%가 일보다는 여가가 소중하다고 답했다.
- 연령별로 보면 10대부터 30대까지의 경우 절반이 넘는 응답자가 여가를 택했다. 일하기 좋은 기업보다 더 좋은 게 있다면 ‘아예 일하지 않아도 되는 상황’일 것이다. 그래서 누가 더 편하게 돈을 벌고 있는지가 궁금해지는 건지도 모른다.
- 하지만 행복은 누군가 던져주는 봉급이 아니라 본인이 열정을 쏟으며 흘리는 땀방울에서부터 시작된다. 이 단순한 진실을 말해주는 사람은 턱없이 적다. 사실은 서열을 궁금해 할 필요조차 없는 것이다. 뜻이 맞는 사람들과 마음껏 일할 수 있는 곳을 찾을 수 있다면 그 곳이 어디든 가장 일하기 좋은 회사다. (미래한국)
외부게재시 개인은 출처와 링크를 밝혀주시고, 언론사는 전문게재의 경우 본사와 협의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