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민주주의의 통치 기틀을 만들다
자유민주주의의 통치 기틀을 만들다
  • 미래한국
  • 승인 2012.08.07 0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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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로크 著 <통치론>
박경귀 한국정책평가연구원 원장

인류가 인간답게 살 수 있는 문명사회를 이루어 나가는 데 가장 큰 영향을 끼친 단 한 권의 고전을 꼽으라면 필자는 주저하지 않고 존 로크(John Locke, 1632~1704)의 <통치론(Two Treatises of Government)>을 들겠다.

왜냐하면 존 로크의 <통치론>이 오늘날 우리가 누리는 자유민주주의 국가의 형성과 통치의 근원적 원리를 최초로 종합적으로 개념화했기 때문이다. 더구나 그의 혁신적 사상이 단순히 상아탑 속의 정치사상에 머문 게 아니라, 영국의 입헌민주주의는 물론 프랑스 혁명과 미국의 독립선언에 영향을 미치는 등 세계사의 분수령이 되는 사건과 변혁에 직접적이고 막대한 영향을 미쳤기 때문이다.

존 로크는 <통치론>에서 자연법의 지배, 인간이성의 합리성, 다수에 의한 지배, 개인의 자유의 신성함, 사유재산의 절대성, 사회계약에 의한 정부의 형성, 불의(不義)한 통치에 대한 저항권 인정 등 자유민주주의의 정치질서를 구성하는 핵심 개념과 원리를 정초했다.

지금 우리가 당연하게 누리는 자유, 그리고 그 자유를 담보할 수 있는 정치구조에 대해 가장 체계적이고 현실적인 틀을 만들어준 것이다. 이런 차원에서 보면 실질적이든 형식적이든 존 로크에 빚을 지지 않은 현대국가는 어디에도 없다.

국가 형성과 운영의 설계도

존 로크가 이 책을 발간한 것은 1689년이지만, 로크의 사상은 그가 나중에 휘그당의 창시자가 되는 애슐리 경(卿)(뒷날 섀프츠베리 백작 1세)과 만나게 된 1666년 이후 다양한 정치 역정을 그와 함께 하면서, 자유롭고 정의로운 국가의 양태를 만들어내기 위한 철학적 고뇌를 통해서 잉태 숙성되고 체계화됐다고 볼 수 있다. 더구나 이 모든 것은 자신뿐 아니라 같은 정파의 많은 사람들의 생명을 건 투쟁의 과정과 함께 했다는 점에서 그 가치를 되새길 필요가 있다.

로크의 <통치론>은 자유로운 사회를 향한 국가 형성과 운영의 전략적 설계도이다. 이를 위해 그는 먼저 자연 상태에서 어떻게 정치사회 또는 시민사회가 만들어지는지, 정치사회를 작동시키는 수탁자인 국가는 어떤 체계로 구성돼야 하며, 운용 방식은 어떠해야 하는지를 제시했다.

홉스가 ‘자연 상태’를 힘과 폭력에 의한 만인(萬人) 간의 투쟁 상태로 전제했던 데 반해, 로크는 자연 상태에서도 인간은 이성적이고 평화로운 존재였던 것으로 보고자 했다. 자연 상태를 완전한 자유의 상태로 보고, 인간 이성이 작용하는 자연법을 가정한 것이다. 하지만 이런 자연 상태 역시, 영원한 평화가 당연히 보장되는 것이 아닌 잠재적인 전쟁상태이므로, 이런 불완전한 자연 상태를 벗어나 공동의 질서유지를 위해 사람들 간의 ‘동의(consent)’에 의해 ‘사회 상태’로 전환된다는 것이다. 여기서 홉스에 이어 로크, 루소로 체계화되는 '사회계약'의 관념이 나온다.

로크는 사회계약에 토대한 정치사회의 운영원리로 다수결의 원리, 입법권, 집행(행정)권, 연합(외교)권을 든다. 이런 원리들은 현대 국가들의 대의민주주의와 법치의 원리로 정착되는 데 지대한 영향을 주었다. 특히 존 로크는 사회 상태에서 모든 구성원의 만장일치가 불가능하다며 다수결의 원리를 최상의 동의방식으로 제시한다.

로크가 확립한 또 하나의 핵심 개념은 ‘모든 개인들의 사적 소유권(property)’이다. 왕권신수설에 따라 나라의 모든 영토는 왕의 절대적 소유권이던 상황에서 사적 소유권 주장은 반역적이고 혁명적 발상이다. 그는 개인의 ‘노동’을 통해 자연물의 사적 지배권이 생성된다고 보았다. 나아가 로크는 ‘소유권’을 자연물과 재산 등 소유물에 국한하는 소극적 개념에서, 한 사람의 인격이나 몸을 말하는 인신(person)까지 넓혀서 인간의 자유와 생명을 포괄하는 적극적 개념으로 확대했다.

사적 소유권으로 자본주의 토대

로크의 이런 도발적 사상이 바로 그를 ‘자유주의(liberalism) 사상의 아버지’로 부르게 하는 근거가 되고, 시장경제와 자본주의의 토대를 이루면서, 다른 한 측면에선 후대의 사회주의자들에 의해 ‘노동가치설’을 옹호하는 사상으로 발전되기도 했다. 로크의 소유권 사상은 자유로운 개인의 권리와 평등의 원칙을 바탕으로 한다는 점에서 자유주의 원리의 핵심을 이룬다. 이런 사적 소유의 자유를 중시하는 사상은 훗날 애덤 스미스가 자유주의 경제학을 창시하는 데 밑거름이 되기도 했다.

존 로크는 사람들이 자연 상태에서 자발적 동의를 거쳐 사회 상태로 들어가는 근본 목적은 소유권을 보전하기 위해서라고 보았다. 따라서 국가가 통치를 수탁한 상황에서도 국민의 소유물을 보전하지 못하거나, 자의적인 권력으로 탈취하거나 노예상태로 만들려고 할 경우 국민과 국가 간에 전쟁 상태에 들어갈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이는 사회계약의 파기 상태에 다름 아니기 때문이다. 바로 정부의 해체를 옹호하는 저항권을 인정하는 것이다.

그렇다고 존 로크의 저항권이 정부에 대한 모든 반란을 무조건 정당화하는 것은 아니다. 다수의 신탁자(국민)가 사회계약에 따른 신탁을 철회하거나 정치공동체의 상당 부분이 저항을 할 경우에 한해 저항권을 용인하는 것이다. 존 로크의 저항권 이론은 1688년의 영국의 명예혁명이나 1789년의 프랑스 혁명을 정당화하는 데 기여한다.

로크의 정치사상은 현대 정치 이론 및 정치 현실에 막대한 영향을 미쳤다. 로크는 오늘날 전 세계의 보편적 정치질서를 대변하는 자유민주주의의 전통을 확립시켜준 사람이기 때문이다. 존 로크가 <통치론>에서 제기한 다양한 자유주의 사상을 접하면서, 17세기부터 이런 정치사상을 태동시키고 발전시켜 온 토대를 바탕으로 자유민주주의의 체제를 보다 충실하게 구현하고 있는 서구와 견주어, 우리나라를 비롯한 동양의 경우 20세기 초까지도 봉건적 국가체제를 유지하면서, 고루한 유교적 사상에 억압받고 순치(順治)돼온 현실이 안타깝게 대비된다.

<통치론> 위정자의 텍스트

동양에서 존 로크와 같은 자유주의 사상가를 배출하지 못한 유교사상의 한계는 자유주의적 사회통념과 전통을 만들어 내는 토양이 되지 못했고, 오늘날까지 자유민주주의 체제의 착근을 어렵게 하는 요소 가운데 하나임은 분명하다.

존 로크의 <통치론>은 우리가 당연하게 누리는 자유의 원초적 의미를 파악해 보고, 자유민주주의 체제의 소중함을 재인식하기 위해서라도, 우리의 사고와 행태가 희미하고 느슨해질 때마다 언제든지 다시 펼쳐들어야 할 첫 번째 고전이다. 특히 국민주권의 사상적 논거와 자유민주주의 정치체계의 작동원리를 체득해야 할 위정자에게 입문적 텍스트가 됨은 물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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