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권이 튼튼해야 국민이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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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래한국
  • 승인 2012.07.26 0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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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 보댕 著 <국가론>
박경귀 한국정책평가연구원 원장

정치사상에 관한 고전 읽기의 가장 큰 고충 중의 하나는, 기술된 정치사상의 내용 그 자체보다, 그러한 사상을 잉태시킨 당대의 정치사회상과 시대정신, 사상가의 인생역정을 추적하고 파악하는 일이다.

장 보댕(Jean Bodin, 1529~1596)의 <국가론(Les six livers de la·publique)>(직역하면 ‘국가에 관한 6권의 책’)를 탄생시킨 사회상에 대한 이해 부족은 그의 사상의 몰이해로 이어지기 십상이다. 그의 <국가론>은 근대 주권론을 확립함으로써 토마스 홉스와 장 자크 루소, 존 로크에 막대한 영향을 끼쳤지만, 반면 미래의 왕권신수설(divine right of kings)을 기반으로 한 절대왕정의 예찬자들에게 청사진을 준 것으로 낙인돼 있기도 하다.

분열과 혼란의 사회상 반영

장 보댕이 <국가론>(1576년)을 저술한 16세기 중반의 프랑스는 로마가톨릭 세력과 신교도(위그노, Huguenots) 세력 간의 갈등과 반목이 극심했고, 급기야 내전으로 증폭돼 국가의 존립이 위협받고 있는 상황이었다. 종교개혁의 광풍이 이른바 8차례에 걸친 위그노 전쟁(Huguenots Wars, 1562~1598)으로 이어졌고, 전통 가톨릭을 옹호한 국왕 및 귀족의 탄압에 대항해 신교도를 옹호한 칼뱅파 남부 지방 귀족과 장인들이 서로를 이단시하며 폭력으로 맞서는 형국이었다.

이런 갈등과 반목은 어린 나이로 왕위에 올랐던 샤를 9세의 시기에 더욱 극성이었다. 최고의 절정을 이룬 사건은 샤를 9세의 통치를 섭정하면서 프랑스의 실권을 누리던 샤를의 어머니 카트린 드 메디치(Catherine de Medicis)에 의해 주도된 ‘성 바르톨로메오(St. Bartholomew)의 축제일의 대학살’이다. 가톨릭 귀족 세력을 부추겨 신교도 3천여명을 참혹하게 학살한 참극이었다.

장 보댕의 <국가론>은 이런 현실의 격변을 이해하고 수용할 수 있는 이론적 토대를 제공하려한 시대적 필요의 산물로 볼 수 있다. 종교적 이해와 세속적 권력의 쟁투로 분열되고 혼란한 사회가 바로서고, 국가의 통치권이 강력하게 확립되기를 희구하던 사회적 열망들에 대한 지성적 반응이 어떤 방식으로든 표출돼야 할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사회의 행복은 공공선의 실현에 달려

그는 <국가론>의 첫머리에서부터 ‘국가란 다수의 가족과 그들의 공유물로 이루어진, 주권에 의한 정당한 통치(droit gouvernement)이다’라고 개념 정의를 명확히 하고 국가가 달성해야 할 목적과 수단에 대해 논의한다. 그는 국가를 ‘풍요롭고 행복하게 살기 위해 모인 인간들의 사회’라고 본 고대인들의 정의에 동의하지 않았다. 행복 추구 그 자체보다 중요한 것은 국가의 존립이고, 특히 ‘가족, 주권, 국가의 공공선’이 긴요하다고 보았다.

장 보댕은 백성의 삶을 유지하고 보호하기 위해 필수품을 공급하는 것과 같은 가장 기본적인 일들이 먼저 행해져야 하며, 그런 과정에서 도덕과 이성이 지향되며, 국가가 그 목적을 달성해내는 만큼 백성의 행복도 따라서 증진된다고 보았다. 개인들의 행복을 담보하는 지속가능한 삶을 위해 훌륭한 질서를 갖춘 국가가 절실함을 부각시키고 있다. 결국 그는 가족의 집합체, 즉 사회의 행복은 확고한 주권에 의한 국가의 공공선의 실현에서 찾아질 수 있다고 강조함으로써 철저한 현실주의자의 면모를 보인다.

이는 프랑스가 영국과의 백년전쟁(1337~1453년)의 상처가 채 아물기도 전에 위그노 전쟁으로 기초적인 국가의 권위와 기능이 무너져버리고 갈기갈기 찢긴 백성들의 일상을 보면서, 그가 희구했던 국가가 지향해야 할 ‘정당한 통치’의 모습이 아니었을까? 장 보댕이 아리스토텔레스류의 정치적 이상론을 배격하고 냉정한 현실론을 전개하는 이유도 같은 맥락으로 이해된다.

국가의 목적인 ‘정당한 통치’를 위해 주권자는 국가라는 공적인 인격의 대변자여야 한다. 그는 “한 군주에게 주어진 조건적이며 의무를 수반하는 주권은 주권이 아니며, 절대 권력도 아니다”라며, 주권자인 군주를 신 이외에는 어떠한 책임도 지지 않는 절대적 명령권을 가진 존재로 규정한다. 즉 주권군주는 자신이 제정한 법에 종속되지 않으며, 오직 신법(神法)과 자연법에만 복종해야 한다는 것이다(이런 점이 왕권신수설의 주장자들이 주장하는 ‘신성한 왕권(divine kingship)’의 존립 근거로 차용하는 대목이기도 하다).

보댕은 어떤 정체이든 주권자에게 절대적 권력이 주어질 때만 정당한 통치가 가능하다고 생각한 것 같다. 결국 주권 분할의 불가능성을 신봉한 그의 인식 속에 혼합정체나 권력의 분할에 의한 대의제적 구조는 용인될 수 없었던 듯하다. 하지만 주권군주가 스스로 정한 현실법 위에 군림한다면, 군주의 폭압과 횡포를 어떻게 제어할 수 있을까? 보댕은 이에 대한 담보를 자연법에서 찾는다. 법을 제정하는 것은 군주이지만, 그 법의 근원은 자연법에 근거하는 것이므로 자연의 도리인 자연법의 구속에서는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것이다.

초월적 존재인 국가의 개념을 발굴

보댕이 그린 주권군주의 모습은 실정법에 구애받지 않고 그 누구로부터도 명령을 받지 않는 초월적 인격체인 동시에 자연적 도리와 도덕적 규범에 의해 자기 규율을 받는 인격체인 셈이다. 군주로부터 초월적 존재로서의 <국가>의 개념을 발굴해 낸 장 보댕의 사유의 가치는 실로 크다.

보댕은 <국가론>을 통해 영국이 대헌장(Magna Carta, 1215)의 정신에 따라 군주의 권력을 분할하고 실질적 입법권을 의회에 양도해 분권적 국가통치체제를 구축해 나가고 있던 것과 달리, 국가의 지방적 분화와 귀족의 권력 분점에 따른 오랜 동안의 혼란과 분열, 내전에 시달리던 프랑스에 요구되던, 중앙집권적 왕권 강화에 대한 이론적 해법을 제기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어쨌든 보댕이 절대주의(absolutism)의 사상적 계보의 시원에 있지만, 전통적 봉건군주의 통치권력 속에 혼재돼 모호했던 <국가의 주권>을 캐내고 분리시켜 그 실체의 속성을 규정하고 정립함으로써 초기 근대(early modern) 국가의 주권 이론을 확립하는 데 기여한 것만은 분명하다. 결국 보댕은 교황의 막강한 영향력 아래 신학의 체계 속에 종속됐던 국왕을 자연법의 영역으로 한 발짝 벗어나오게 함으로써, 70여년 후에 토마스 홉스가 신과 완전히 결별된 사회계약의 결과로서의 ‘인공인간(artificial man)’인 <리바이어던(Leviathan)>을 창조할 수 있도록 예비했다고 볼 수 있다. 이런 점에서 그의 주권사상은 근대성(modernity)의 분기를 이룬 계기가 됐다고 평가할 수 있다.

아울러 주권의 소재가 군주에서 국민으로 바뀌었을 뿐 국가의 존립과 공공선을 최우선의 가치로 주장한 그의 사상은 국가의 ‘정당한 통치’를 부정하고 폄훼하는 사람들이 활개치는 요즘 현실에 더 되새겨볼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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