빗나간 분노, 어색한 월가 시위
빗나간 분노, 어색한 월가 시위
  • 미래한국
  • 승인 2011.10.24 14: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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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인 김범수
역사(歷史)가 크고 작은 사건들로 구성된 거대한 시대적 흐름이라면, 그 흐름의 방향을 결정하는 건 자연발생적이며 필연적인 것일까, 아니면 인위적이고 우연적인 것일까. 역사가들의 오래된 질문에 대한 가장 근접한 정답은 아마도 중간쯤에 위치할 것이다.

최근 뉴욕에서 벌어지고 있는 ‘월가를 점령하라’ 시위는 거대 금융산업의 불합리한 수익배분구조를 지적하고 있다는 점에서 일견 설득력을 얻는다. JP모건, 시티은행, 체이스, 메릴린린치 등 미국의 주요 8개 금융기관 CEO들의 평균 연봉은 2007년의 경우 약 330억원(2,740만 달러)였고, 50위권 헤지펀드 및 사모펀드 매니저들의 평균연봉은 자그마치 7,080억원(5억8,800만 달러)에 달했다. 각각 일반직원들 평균 연봉의 344배에서 최대 1만9,000배에 달하는 ‘숫자’로서 실로 엄청난 규모다.

더욱이 이러한 막대한 연봉을 지급해온 금융기관 일부가 2008년 금융위기 당시 부실로 파산하는 대신 국민의 세금으로 이뤄진 연방정부의 구제금융을 지원받아 회생했다는 사실이 현재 높은 실업률로 허덕이고 있는 미국 국민들, 특히 청년들을 분노케 하고 있다. ‘1% 가진자’에 대한 ‘99%의 목소리’ 주장이 과거 좌파 유혈혁명가들의 선정적 구호와 일견 다르게 다가오는 이유다. 

그런데 월가 시위를 둘러싼 역사의 자연발생적 필연성은 이쯤까지인 것 같다. 우선 시위대들의 타깃이 부동산 거품을 몰고 온 서브프라임 융자와 구제금융 등 일련의 잘못된 경제정책을 펼쳐온 주범 워싱턴 당국자들이 아니라 뉴욕의 금융재벌들에게 향하고 있다는 사실이 어색하기만 하다.

시위방식도 ‘금융 5적(賊) 선정’과 일부의 ‘폭력혁명’ 구호 등 점차 과격하고 마녀사냥식으로 변질되고 있다. 이번 시위가 평소 반기업 반소비 활동을 주창해온 한 상업좌파 잡지의 마케팅 구호로부터 우연히 촉발됐다는 점도 흥미롭다.

더구나 월가 시위가 세계 주요도시로 확산되면서 각종 인위적 정치색이 덧칠되고 있다. 스페인과 이탈리아 등 유럽국가들은 불합리한 노동시장과 산업경쟁력 저하, 포퓰리즘으로 인한 국가재정 파탄 등 정부의 정책적 실패를 미국과 국제자본의 문제로 돌리는 절호의 기회로 활용하고 있다. 미국 정치권의 경우 민주당과 공화당이 내년 대선을 앞두고 정치적 손익을 계산하느라 분주한 모습이다.   

물론 유행에 민감한 우리나라에도 월가 시위가 ‘수입’됐다. 짝퉁 ‘여의도 점령’ 시위로서다. KB금융, 기업은행 등 주요 금융기관 수장의 연봉이 미국 기관 CEO 연봉의 1~4%에 불과해 근본적 환경이 다름에도 불구하고, 안그래도 반미라면 눈귀가 번쩍 열리는 전문 좌파 ‘시민활동가’들에겐 지나칠 수 없는 호재일 것이다. 우리나라의 좌파활동이 자연발생적이 아니라 종북세력에 의한 인위적 요소가 지배적이라는 건 비극이다.

시장경제와 금융자본주의의 원리는 남보다 많이 갖고 누리고자 하는 인간의 욕구실현 본능이다. 이를 무시했던 공산주의 사회주의의 역사적 실험은 실패했다. 우리에겐 월가보다 나은 기회가 있다. 우리의 욕구와 본성을 인정하고 가꿔나가는 동시에 신앙과 양심에 기반한 노블레스 오블리주 정신을 나로부터 실천해 나가야 하겠다. (미래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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