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 무상급식 투표가 남긴 것
서울시 무상급식 투표가 남긴 것
  • 미래한국
  • 승인 2011.08.30 0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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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인 노트 / 편집인 김범수

진인사(盡人事)했고 대천명(待天命)했으며 천명(天命)이 공개됐다. 주민투표 불발이라는 ‘하늘의 뜻’을 통해 현재 대한민국 국민과 정치권의 수준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법적으로 따지면 33.3% 미만의 투표율로 인한 개표 무산으로 서울시나 서울시교육청 안(案) 모두가 무효화됐지만, 투표거부운동을 펼친 서울시교육청과 야권의 전면적 무상급식안이 시민들의 선택을 받은 것으로 사실상 해석됨으로써 조만간 서울의 80만 초중등 학생들은 소득에 관계없이 국가(市)로부터 연 4,000억원 짜리 점심을 공짜로 얻어먹게 됐다. 

이번 무상급식 투표는 모든 진영이 후회 없는 일대 전력전(全力戰)을 펼친 기회였다. 그리고 결과는 정확했다. 우선 오세훈 시장이 자신이 지닌 정치력과 야망, 정치철학 등 모든 것을 남김 없이 보여줬다. 그는 민주당이 80% 이상을 장악한 서울시의회에서 식물시장으로 남기보다, 야권의 전면적 무상급식안을 계급주의적이고 망국적인 복지 포퓰리즘으로 규정하고 주민투표라는 승부수를 던짐으로써 反포퓰리즘의 선봉에 섰다. 투표율을 높이기 위해 대선 불출마와 시장직 연계라는 연이은 선언으로 박근혜 전 대표에 구애하고 한나라당 지도부를 압박했으며, 패배 뒤에는 사흘만에 시장직에서 전격 사퇴함으로써 결연함의 절정을 보여줬다.   

오 시장의 패인으로 ‘전면적 또는 단계적 무상급식의 대결’이 아닌 ‘무상급식 찬성 대 반대’라는 좀 더 명료한 전략을 택하지 못한 점, 처음부터 좀 더 자세를 낮추고 색깔을 분명히 해 보수층을 파고들지 못한 점, 한나라당과 엇박자를 극복하지 못한 점 등이 지적되기도 하지만 그것은 결과론적 해석일 뿐이다.

박근혜 전 대표도 최선을 다했다. 끝내 오세훈 시장과 거리를 둔 것을 두고 책임론이 제기되기도 하지만 현 시점에서 박 전 대표에게 궁극적으로 요구되는 건 내년 대선의 승리와 좌파정권의 집권 저지이다. 지난 6월 여론조사에서 국민 대다수가 박근혜 전 대표의 집권을 ‘정권재창출’이 아닌 ‘정권교체’라고 답변한 것과, 집권을 위해선 중간 부동층의 표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점 등을 고려할 때 ‘태생적 보수’인 박 전 대표의 근래 중간자적 행보가 미덥지 않은 것만은 아니다.

민주당 등 야권도 전력을 다했다. 정말 참 잘 싸웠다. 오죽 잘 싸웠으면 서울시민들을 유치원생이나 초등생 수준으로 여기고 우롱하는 ‘나쁜 투표’ ‘착한 거부’라는 발칙한 선거구호를 내세워 일견 승리했다. 정말 ‘나쁜’ 사람들이지만 정치인로서 하나로 똘똘 뭉쳐 그들의 집권을 위해 한 발 전진했다는 점만은 인정해줘야 할 것 같다. 

문제는 역시 한나라당이다. 마지막까지 우왕좌왕하다 오 시장의 배수진에 떠밀려 마지못해 투표전에 참여했고, 각 의원들은 표결에 따른 당내 자신의 입지 계산과 내년 총선에서의  공천여부 및 지역표심이 최대 관심거리였을 뿐이다. 

서울시민 4명 중 1명(25.7%)에 해당하는 215만8,000여명이 이번 주민투표에 참여했다. 투표법상 최소 투표율에 못미쳐 개표를 못했지만 이번 투표가 정책투표가 아니라 정쟁으로 변질된 ‘공개투표’였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평일날 그만한 숫자의 시민들이 투표장을 찾았다는 것은 성숙한 민주주의와 시민의식을 보여준 사건이었다. 아직 대한민국에는 희망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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