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상급식은 국민의 ‘권리’가 될 수 없다
무상급식은 국민의 ‘권리’가 될 수 없다
  • 미래한국
  • 승인 2011.08.18 0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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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래 교수의 세설직론

김정래 편집위원·부산교대 교수

서울특별시장이 발의한 무상급식 여부에 대한 주민투표가 실시됩니다. 무상급식의 폐해에 관해서는 여러 경로를 통해 개진한 바 있으므로 논점만 간추려 먼저 소개하고 무상급식 전면실시가 권리로 성립하지 않는다는 점을 살펴보겠습니다. 정책적 측면에서 재정부담가중, 비효율성, 비현실성(특히 서울의 경우 조리장 시설 확보 문제 등), 국가독점으로 경쟁체제 마비, 급식의 질 저하, 위탁급식 업체의 도산, 기업 급식 노하우 실종 등 무수히 많은 문제가 야기됩니다. 게다가 학교급식은 초중등교육법 제20조에 규정한 학교장의 책무성에 비춰 교육책무성 대상이 아닙니다. 결국 무상급식은 국가기구의 비대화, 교육전문성의 무력화라는 비극을 초래합니다.

 

아울러 법리적으로 복지정책 면에서 학교급식은 영국의 국가의료서비스(NHS: National Health Service)처럼 사회서비스 차원에서 무상으로 추진하자는 것입니다. 그러나 NHS를 실시하는 영국에서조차 극빈 계층을 제외한 아동들의 학교급식은 수익자 부담 원칙입니다. 모든 복지정책을 무상 서비스로 했을 경우, 그에 따르는 비효율성과 비가역성을 염두에 둘 필요가 있습니다. 따라서 학교급식 문제는 공적 부조에 초점을 맞춰 잔여적 복지(residual welfare)로 유연하게 학교급식 정책을 모색해야 합니다.

또한 위헌 소지를 지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무상급식 전면 실시는 헌법 전문(前文)에 규정한 ‘자유민주적 질서’를 부정해 결과적으로 우리나라를 사회주의화 내지는 전체주의화합니다. 또 헌법에 천명된 국민의 자유와 권리인 기본권의 핵심인 선택권과 행복추구권(제10조)을 침해합니다. 개개인의 식생활을 국가가 관장하는 결과이므로 선택권을 박탈하고, 행복추구권을 침해하는 것입니다. 또한 급식제도의 선택을 원천적으로 봉쇄함으로써 주민자치의 원리에도 어긋날 뿐만 아니라 급식산업의 강제적 국유화를 초래합니다.

무상급식 전면 시행은 사회주의의 실시

이제 권리의 측면에서 무상급식이 성립하지 않는 논거를 살펴보겠습니다. 무엇보다도 권리는 근본적으로 청구대상인 상대방을 전제해야 합니다. 이 점에서 전면 무상급식은 권리의 범주 어디에도 설 곳이 없습니다. 권리는 타인에 대한 청구행위의 적극성 여부에 따라 적극적 권리(positive rights)와 소극적 권리(negative rights)로 구분됩니다.

적극적 권리는 타인이 어떤 적극적인 행동을 취할 것을 청구할 때 성립하는 권리이며, 반면 소극적 권리는 타인이 어떤 행동을 하지 말 것을 청구할 때 성립하는 권리입니다. 또한 권리 주체의 입장에서 능동적 권리(active rights)와 수동적 권리(passive rights)로 구분되는 바, 전자는 자신이 하고 싶은 것, 하고 싶지 않은 것을 원하는 대로 할 수 있는 권리이며, 후자는 타인으로부터 어떤 재화나 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권리입니다. 문제는 두 번째 구분한 능동적 권리와 수동적 권리는 소극적 권리의 경우에만 성립한다는 사실입니다.

즉 이를 적극적 권리에 적용하면 그것은 권리의 본질을 심하게 왜곡합니다. 무상급식 전면 실시는 소극적 권리에 해당하는 사안을 적극적 권리로 부당하게 치환해 놓은 오류를 범하는 것입니다. 이를 이해하기 쉽게 표를 통해 보겠습니다. 
표에서 (※)로 표시된 Ⅲ, Ⅳ 영역의 권리는 난센스입니다. 그리고 Ⅲ 영역이 무상급식 주장에 해당합니다. 무상급식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보는 권리는 무엇이든지 청구하면 권리가 성립한다고 보는 것입니다. 그러나 Ⅲ 영역의 권리는 성립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Ⅲ, Ⅳ 영역의 권리는 청구관계에 의해 성립하는 권리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참고로 Ⅳ 영역의 권리는 자격이나 법령에 의해 주어진 특권(privilege)이나 권한(power)을 가리킬 때만 성립합니다.

 

무상급식 위해 세금 걷으면 개인의 자유와 재산권 침해돼

청구관계에서 볼 때, 무상급식처럼 세금을 거둬 즉 결과적으로 특정인의 자유와 재산권을 제한해 국가 재원을 마련하고자 한다면 자유와 재산권을 제한하는 이유가 분명해야 합니다. 권리의 차원에서 개인의 재산권 제한은 ‘위해(危害) 원리(harm principle)’에 의해 정당화됩니다. 그러나 위해 원리는 개인의 자유와 재산권을 제한하는 경우 그것을 정당화하는 데 있어서 몇 가지 근본적이고도 중요한 제한점이 있습니다.

첫째, 위해 원리에 의해 제한되는 개인의 자유와 재산권은 타인의 자유와 재산권을 침해를 막는 데만 적용돼야 합니다. 무슨 말인가 하면, 위해 원리를 명분으로 한 경우라도, 특정 개인의 자유와 재산권의 제한이 타인의 자유와 재산권 침해가 아니라 타인에게 이익을 주는 경우여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이를 무시하게 되면, 자유와 재산권을 침해하게 됩니다. 만약 무상급식 전면 실시를 위해 이 원리를 무시하고 타인의 재산권 제한하는 증세 등을 통해 타인에게 혜택을 준다는 발상이 통하게 되면 자유민주주의의 근간인 사유재산제도를 붕괴시키는 결과를 초래합니다.

둘째, 위해 원리는 타인에게 위해를 주지 않는 경우에 정당화된다고 하더라도, 타인이 입을 것으로 판단되는 피해가 심각한 피해가 아닌 경우, 즉 경미한 경우에는 적용돼서는 안 된다는 점입니다. 이를테면 특정집단의 아이들이 골프를 배우기 위해 교육세를 더 징수해야 한다는 것은 이 점에서 정당화되지 않습니다. 이 경우는 불요불급(不要不急)하지 않은 아이들에게까지 무상급식을 전면 적용되는 것이 정당화될 수 없는 경우와 동일합니다.

셋째, 위해 원리와 복지정책은 필요한 재화가 공급되지 않았을 경우 커다란 위해가 되는 경우에만 적용돼야 합니다. ‘필요(needs)’라는 개념은 개인의 선호나 취향, 그리고 불요불급한 선택 사항에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결핍으로 인한 치명성(detrimental)이 있고, 대체 불가능(non-substitution)한 경우를 지칭하는 개념입니다. 이 점에서 기본적인 영양공급은 필요의 충족이지만 점심 메뉴로 자장면과 햄버거 중 선택은 필요의 개념이 아니라 개인의 선호문제에 해당됩니다.

무엇보다도 무상급식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인권’, ‘도덕권(moral rights)’, ‘자연권’ 등을 내세워 청구행위 자체가 권리로 성립한다고 보는 듯합니다. 보다 근본적으로, 이들은 청구(claim)와 권리의 차이를 구분하지 못합니다. 청구행위는 명백하고 구체적인 내용을 토대로 해서 청구인간의 사건(case)을 전제로 상호 불만과 갈등을 야기하고, 청구내용도 정도(degree)를 달리 할 경우에 성립합니다. 그러나 권리는 그렇지 않습니다. 청구한다고 성립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 점에서 보면, 전면무상급식 주장은 정당화된 ‘권리’로 성립한 것이 아니라, 청구행위 수준에 머물러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아래의 논점에서 알 수 있듯이, 청구행위로서도 불충분한 점이 많습니다. 전면무상급식 주장은 ‘권리’로 성립하지 않음은 물론 ‘청구’ 행위로도 성립하지 않습니다.

무상급식은 보편적 권리로 해석될 수 없어

그러면 청구행위로서 난점을 간략하게 살펴보겠습니다. 무상급식을 특정의 사람들이 국가를 상대로 청구하는 행위로 보더라도, 그 의무이행자가 명백히 존재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 수혜받을 재화만을 청구하면, 복지재를 부담해야 하는 개인의 자유와 재산권을 제한하는 행위가 정당화되지 않습니다.
청구권은 청구하는 데 따른 의무이행자를 상정하는 대인(對人)청구가 있고, 권리 청구와 의무이행이 동일인인 경우가 있습니다. 후자를 설명하자면, 시민으로서 납세의 의무를 다했기 때문에 치안, 방범이라는 안전과 재산피해 보상을 권리로서 국가기관에게 청구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어떤 경우를 보더라도 무상급식은 대인청구 행위가 아니라, 상대방이 없는 대물(對物)청구에 가깝습니다.

아쉽게도 무상급식의 경우가 대물청구라 하더라도, 그대로 권리로 성립하지 못하고, 선언적 의미(manifesto sense)만을 갖습니다. 그러나 선언적 의미가 설득력을 갖는 경우는 독재치하나 많은 사람들이 고문과 기아와 같은 치명적인 위해의 상태처럼 매우 특수한 경우입니다. 예컨대, 소말리아 난민의 급식 청구권, 이슬람근본주의 치하에서 학대받는 여성의 권리가 이에 해당합니다. 그렇지 않고 대물청구를 할 경우 누구든지 굶지 않을 권리가 있다고 식생활의 모든 것을 국가가 책임지고 공급하라는 선언적 의미의 청원에 불과합니다.

이를 수용하기 어려운 점을 두 가지만 지적하겠습니다. 하나는 청구행위는 청구자와 청구내용이 구체적이고 현실적(actual)으로 명시된 경우에만 적합하다는 점입니다. 더욱이 청구행위는 가상 상황까지 포함해서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앞으로 일어날 가상 상황을 상정해 청구할 수는 없다는 것으로, 전면 무상급식은 아이들이 무상으로 급식을 지원 받지 않으면 아이들이 빠지게 될 위험한 상황을 명백하게 명시하지 못 한다는 점입니다.

다른 하나는 권리의 보편성(universality)을 그릇 해석한 점입니다. 전면무상급식을 주장하는 이들의 권리설은 ‘자격설(right as title)’에 가깝습니다. 자격설은 보편적 권리를 설명하는 데 매우 적합한 학설인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자격으로서 권리’가 곧 ‘청구권(claim-rights)’ 을 성립시키지 않습니다. 따라서 모든 사람이 생존할 또는 굶지 않을 권리를 갖는다고 해서 모든 사람이 무상급식을 받을 권리가 있다는 말은 성립하지 않습니다.

견강부회(牽强附會)격으로 공산주의 이론에다 꿰맞춘 주장을 빼곤, 어느 권리이론에 비춰 봐도 보편성을 주장할 수 있는 권리는 개인의 생명, 자유, 재산권, 사생활 보호권에 한정됩니다. 그리고 이를 제한할 수 있는 근거는 앞서 살펴본 위해 원리입니다. 이 논점을 부정하면, 그것은 자유민주주의의 핵심인 사유재산을 부정하는 사회주의, 전체주의 국가로 바꾸자는 것입니다.

또, 전면 무상급식은 절대적 권리(absolute right)로도 성립하지 않습니다. 절대적 권리의 자세한 설명을 지면상 하기는 불가능하지만, ‘절대적 권리’는 권리소유자가 그것을 아무 제한 없는 무한 상황에서 자의적으로 모든 재화와 서비스를 청구하고 획득할 수 있음을 가리키지 않습니다. 절대적 권리를 설명할 때 언급되는 미국 수정 헌법 제1조는 “헌법이 천명한 기본적 권리를 행사하는 데 아무런 제약이 없다”라는 의미가 아니라 “헌법이 천명한 기본적 권리를 제한하는 입법과 법원의 의무부과가 자의적으로 행해질 수 없다”는 의미로 해석돼야 합니다. 따라서 절대적 권리를 근거로 해서 무상급식 전면추진 입법이나 사법적 판단은 ‘절대적 권리’의 의미를 곡해하고 남용하는 것입니다. 

저소득층 안전망 확충 도모하는 복지정책 돼야

사실이 이런 데도 어떤 권리를 절대적 권리로 주장하면 어떤 형태의 권리이든지 간에 그것은 국기(國基), 헌정질서, 그리고 법질서를 교란시키게 됩니다. 그래서 무상급식을 전면실시하자는 것은 자유민주주의를 근간으로 하는 대한민국 국기와 헌정질서를 흔드는 일이고, 이에 따른 입법은 당연히 위헌 소지를 담게 돼 국기(國紀)를 혼란시킵니다. 무상급식 대신에 저소득층의 안전망 확충을 도모하는 복지정책이 요구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끝으로 전면 무상급식의 명분으로 “아이들을 차별하지 않기 위해”라는 주장도 역시 허구임을 지적하면서 마무리하겠습니다. 무상급식은 평등권 실현과 무관함에도 무상급식 전면 실시를 주장하는 일들은 급식비를 내는 아이들과 내지 않는 아이들을 교육적 상황, 즉 학교 내 교실에서 차별하지 않아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이 주장은 교사의 전문성을 무시하는 처사입니다. 급식비 납입 여부는 학생들의 사생활 보호 차원에서 전문직으로서 교사가 얼마든지 비밀리에 추진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교사가 전문직이라는 것을 부정하는 꼴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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