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념 없는 기자들에 멍드는 세상
개념 없는 기자들에 멍드는 세상
  • 미래한국
  • 승인 2011.07.22 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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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미의 문화공감

 

존경받기란 낙타가 바늘구멍에 들어가는 것보다 힘든 시대가 됐다. 대통령은 조롱의 대상이고, 선생은 학생에게 두들겨 맞고, 성직자들은 법정투쟁 하느라 바쁘다. 존경받아야 할 직업군들이 이 지경이니 다른 직업군은 소음만 안 나면 다행이다.

무슨 일이든 즉각 테스트가 이루어지는 세상이다. TV 프로그램은 방영 뒤 곧바로 시청률이 나오고 기업체나 관공서에서 강의를 하면 청중들이 그 자리에서 평점을 매긴다. 학기가 끝나면 학생들이 교수들의 강의를 평가해 교수 재임용에 영향을 미친다.기자들은 어떤가. 기사가 나오자마자 ‘소설 그만 써라, 이따위를 기사라고 썼나, 이런 건 당장 내리라’ 등등 마치 데스크처럼 질타하는 댓글로 테스트를 받는다. 편집권의 독립 따위는 안중에도 없고 언론의 비판 기능을 도무지 인정 못하겠다는 이들의 댓글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

그런가하면 기자가 잘못 쓴 걸 예리하게 꼬집는 똑똑한 독자들도 있다. 때로 잘 쓴 기사에 대해 박수를 보내기도 한다. 배용준 단독 취재를 두 번 하면서 배용준 팬카페를 몇 년 동안 관찰한 적이 있는데, 팬들이 각 신문사의 연예담당 기자들의 성향을 다 파악하고 있었다. 어떤 사안이 터졌을 때 “000 기자 이번에도 이렇게 쓸 거 같아”라는 팬의 예측이 적중하는 걸 보고 깜짝 놀란 적도 있다.

가끔은 기사의 주인공이 격한 감정을 토로하기도 한다. 최근에 배우 김민준이 자신에 관한 기사에 불만을 품고 트위터에 욕설이 섞인 글을 남겼다가 사과했다. 한 매체가 보도한 ‘서브 남주 윤계상-김민준, 독고진 안 부럽다’라는 기사 때문이었다. 드라마 ‘로맨스타운’ 속 자신의 배역을 ‘서브 남주’라고 표현한 것이 불쾌했던 것이다. 김민준은 ‘단역 조연이 어디 있나. 신마다 컷마다 목숨 걸고 촬영하는 연기자들의 그레이드를 매길 자격이 있나’라고 반문했다. ‘연기파 배우라는 말도 기자들이 만들었지 아마? 연기자들은 다 연기한다. 연기가 뛰어난 연기자를 연기파 배우로 부르는 정체성 없는 신조어를 만들었다’는 글도 남겼다.

 김민준이 이번에 ‘서브 남주’라는 신조어를 비판했더라면 어땠을까. ‘서브 남주’, 무슨 뜻인지 금방 알아챈 사람이 많지 않을 것이다. ‘조연급 남자주인공’이라는 의미인 것 같은데, ‘언어파괴의 선봉에 선 기자’라고 비판했더라면 김민준이 굳이 사과하지 않아도 됐을 것이다. 채팅 언어가 국어 파괴를 부추긴다는 기사가 나온 뒤 얼마 안가 국적불명의 단어가 제목에 버젓이 등장하는 웃지 못할 일이 종종 벌어지고 있다.

한마디로 기자들도 정신 바짝 차리고 일해야 한다는 얘기다. 취재원들에게 단골로 듣는 불만이 있다. 가장 많은 불만은 자신이 한 말을 앞뒤 자르고 필요한 부분만 뽑아서 ‘매체 입맛에 맞게’ 사용한다는 점이다. 잘못된 정보가 계속 되풀이돼 나온다는 것도 취재원들의 불만이다. 예를 들어 취재원의 출신학교가 한 번 잘못 나오면 그 다음부터 계속 잘못 보도된다는 것이다. 기자가 인터넷에서 자료를 수집하다보면 그런 일이 벌어지게 된다. 자신이 생각한 것과 전혀 다른 방향의 기사가 나와 조직에서 곤란을 당했다고 말하는 취재원도 있었다.

기자는 이래저래 껄끄러운 직업인인 듯하다. 하지만 기자와 취재원은 공생하면서 세상에 알 거리와 볼 거리를 더 풍성하게 만들어야 할 존재들이다.  
불만을 토로하는 취재원에게 “취재에 임하기 전 준비를 잘하라”는 것 외에 들려줄 말이 없다. 무작정 기자를 만날 것이 아니라 취재원도 매체와 기자의 성향, 기사 취지를 파악하고 취재에 응해야 한다. 기자와 긴장관계를 유지하며 자신을 효율적으로 알리기 위해 애써야 하는 것이다.

예전에 한 시사월간지 기자가 문인들을 릴레이 인터뷰한 적이 있다. 문인들을 개별적으로 만나 여러 질문을 하는 가운데 “박정희 대통령을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항목이 있었는데 제대로 답변한 문인이 많지 않았다. 그 기자는 작가가 당황하는 모습까지 자세히 묘사해 보도했다. 여자 문인에게 “성형수술 할 생각이 없느냐”는 질문도 했는데 기사가 나간 뒤 취재 대상이 아니었던 모 시인이 일간지에 그 기사에 대한 불쾌감을 논했다. ‘감히 문인들에게 그런 질문을 할 수 있는가’하는 내용의 글이었다.

당시 그 기자의 인물탐구 기사가 매달 인기리에 연재되고 있었는데 취재원들에게 난처한 질문을 던진 뒤 그 반응을 가감 없이 기록하는 것으로 유명했다. 문인들이 기자를 만나기 전에 그런 점을 파악했더라면 ‘성형수술 운운’ 할 때 넉살좋게 답할 수 있었을 것이다. 시사월간지이니 ‘박정희 대통령 건’은 충분히 예측 가능한 질문이라는 게 내 생각이다.
많은 단체가 보도자료를 보내고 홍보대행사를 기용해 자신들의 업적을 알리느라 애쓴다. 언론은 새로운 뉴스를 전하기도 하지만 비판 기능을 분명히 갖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어떤 의도에서 취재가 진행되는지, 어떤 성향의 기자인지 살펴보는 지혜가 필요하다.

기자는 이래저래 인기 없는 직업인에 속한다. 결혼정보회사에서 실시하는 인기 직업조사에 기자는 상위권에 낀 적이 없다. 결혼정보회사 사장에게 물어봤을 때 ‘따지고 까다롭다’는 인식 때문일 거라고 했다. 특히 여자 기자는 똑똑하고 피곤할 거라는 선입견 때문에 더욱 인기가 없다고 했다.
그런데도 기자가 넘쳐나는 세상이다. 사실 기자와 취재원을 구분하던 시대는 이미 지났다. 자고나면 생기는 게 인터넷 매체인 데다 시민기자 제도를 운영하는 인터넷 매체도 있다. 1인 블로그가 활성화돼 여기저기서 기사가 마구 생산되고 있으며 유투브를 활용해 스스로 화제를 생산하는 개인들도 많다. ‘따지고 까다롭고 똑똑하고 피곤한’ 사람이 많아져서 우리 사회가 시끄러운지도 모르겠다.

언론 홍수 속에서도 제대로 비판하고 바른 여론을 형성하는 정론지는 분명히 존재한다. 정확한 취재와 예리한 분석으로 사회를 바꾸는 이들이 오늘도 열심히 달리고 있어 우리 사회는 희망이 있다.
배우 김민준이 트위터에 곧바로 사과의 글을 올린 건 기자와 각을 세워봐야 좋을 게 없다는 생각에서 였을 것이다. 사안을 판단해 남을 비판하는 기자도, 기자를 통해 세상에 알려지는 취재원도, 상대방 입장에 서서 생각해 보는 지혜가 필요하다. 원성이 크더라도 옳은 건 옳다고 얘기하는 기자와 자신에게 불리하더라도 맞는 말이라면 수용하는 취재원이 만들어가는 바른 세상을 기대해본다.

본지 편집위원·소설가 www.rootle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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