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퓰리즘과 평등사상
포퓰리즘과 평등사상
  • 미래한국
  • 승인 2011.06.19 1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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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래 교수의 세설직론

김정래 편집위원·부산교대 교수

‘모든 인간은 평등하다’는 만민평등관이 깊게 자리 잡은 단초는 르네상스 이후 형성된 계몽의 맥락과 종교적 교훈입니다. 그러나 실제로 인간은 평등하지 않습니다. 태어나면서부터 평등하지 않고, 살아가면서도 평등하지 않습니다. 신장, 체중, 지능, 재산, 능력 등에서 여러 가지 측면에서 개개인이 동일하지 않기 때문에 인간은 불평등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이 평등하다는 주장이 지속적으로 제기되는 것은 불평등하기 때문에 ‘평등해야 한다’는 규범의 역설 때문입니다. 즉 ‘평등’은 사실 차원에서 참이 아니라 ‘인간은 평등하게 대우받아야 한다’는 당위 차원에서 수용되는 개념입니다.

 
인간은 평등하지 않다

규범으로서 평등은 인간사회가 존속하는 한 영구적으로 제기되는 화두입니다. 인간은 평등한 대우를 받아야 한다는 관점을 대표하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인간존엄성(human dignity)의 차원에서 평등입니다. 이른바 보편적 가치를 모든 개인에게 똑같이 부여하는 것입니다. 대표적인 예가 보통선거권(universal suffrage)의 부여입니다. 다른 하나는 사회통제원리로서 평등입니다. 삼권분립처럼 정치적 권력 분산(separation of power)을 통해 권력집중을 막아 평등이 주권재민의 이념에 기여하는 경우입니다.

이러한 순기능에도 불구하고, ‘평등’은 사회적으로 그리고 정책적으로 여러 가지 부작용과 폐해를 낳고 있습니다. 특히 ‘평등’이 ‘공정하게 대우해야 한다’는 분배 정의의 원리로 작용,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할 때 그렇습니다.

평등으로 야기되는 문제점을 제대로 파악하기 위해 ‘평등’의 개념 속성부터 보겠습니다.
‘평등’을 이해하는 두 가지 개념 속성은 동일성(sameness)과 공정성(fairness)입니다. 동일성은 인간을 같게 취급해야 한다는 주장의 근거입니다. 그러나 이미 언급했듯이 인간은 실제로 어떤 면에서도 동일하지 않습니다. ‘동일성’은 규범적 측면에서 ‘똑같이’ 취급해야 한다는 주장을 대변합니다. 칸트의 정언명령(categorical imperative)에서 도출되는 보편성 원리가 이에 해당합니다. 반면 공정성은 동일성의 단점과 한계를 극복하고자 한 개념입니다. 똑같지 않으니 다르게 취급하지만, 다르게 취급할 근거를 제공하는 것이 ‘공정성’입니다. 아리스토텔레스 이래로 ‘같은 것은 같게, 다른 것은 다르게’ 취급해야 한다는 입장이 이에 해당합니다.

동일성과 공정성은 모두 분배 정의의 원리로 작용합니다. 그러나 어떤 경우에도 ‘인간이기 때문에 똑같다’는 말에 집착하면 평등의 원리는 더 이상의 실천적 지침을 제공해 주지 않습니다. 이에 대한 해결방법은 차별적 의미에서 ‘평등’을 이해하는 것입니다. 무슨 말인가 하면, ‘인간이기 때문에 똑같다’는 동일성 차원이 아니라 ‘다른 점이 있으면 달리 대해야 한다’는 차별적 규범으로 이해해야 합니다.

여기서 ‘다른 점’은 곧 ‘차이’이고, ‘달리 대해야 하는 것’이 ‘차별’입니다. 따라서 ‘평등’은 다른 점이 없다면 동등하게 대하고, 다른 점이 있다면 ‘차이’에 비춰 ‘차별’해야 한다는 실천적 원리입니다. 이를테면, 연령과 법적 제재 여부 등 일정한 자격에 비춰 모든 대한민국 국민은 동등한 투표권을 갖습니다. 반면에 직업능력이나 기여도에 따라 개인 간의 차이가 있기 때문에 임금 계약이나 임금 책정은 차별적이어야 합니다.

그러면 평등 문제를 기회균등(equal opportunity)에 적용해 보겠습니다. 흔히 기회균등은 최소(minimal) 기회균등, 전형적(conventional) 기회균등, 급진적(radical) 기회균등으로 나눕니다. 최소기회균등은 동일성의 원리를 기회균등에 그대로 적용한 것으로 볼 수 있는데 인종, 성별, 출신지역 등에 관계없이 동등한 기회를 부여하는 으로서 법률이나 권리문헌에서 선언적 의미의 기회균등이 이에 해당합니다.

평등’은 사회적으로 그리고 정책적으로 여러 가지 부작용과
폐해를 낳고 있습니다. 특히‘평등’이‘공정하게 대우해야 한다’는
분배 정의의 원리로 작용,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할 때 그렇습니다.

 

기회균등의 문제

전형적 기회균등은 사회적 배경이 아니라 개인의 장점과 공과에 따라 성패가 나오도록 기회를 부여하는 것을 가리킵니다. 자유주의자들이 지지하는 기회균등이 이것입니다. 이 두 가지는 개인의 선택과 무관한 결정론적 요소가 개입되어서는 안 된다는 원리를 강조합니다. 반면에 급진적 기회균등은 이 두 가지 기회균등이 실질적인 평등(effective equality)을 보장하지 않으므로 동등한 결과(same outcome)가 나오도록 해야 합니다.

예를 들면, 1960년대 미국의 민주당 정부가 채택한 ‘약자보호정책’ 또는 ‘차별철폐정책’으로 번역되는 ‘Affirmative Action’이 이에 해당합니다. 보다 구체적으로, 대학입시에서 수학능력에 관계없이 흑인이나 소수민족, 그리고 여성의 일정 비율 이상을 입학시켜야 동등한 기회를 ‘제공’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원리는 평등의 원리가 아니라 모종의 조치를 가해야 한다는 강제적 교정 원리입니다. 좌파 노선이 ‘기회균등’이라는 말 자체를 선호하지 않으면서 이 원리를 지지하는 것은 강압적 수단을 써서라도 동등한 결과를 가져와야 한다는 그릇된 신념 때문입니다.

교육학에서 기회균등의 문제는 유명한 콜맨 보고서(Coleman Report) 이후 오랜 세월 동안 중요한 학문적 쟁점이 되었습니다. 기회균등의 법률의 선언적 의미와 전형적인 기회균등의 의미로는 저소득층의 기회균등을 보장하지 못한다는 급진적 기회균등의 실증적 증거를 제공합니다. 이에 관한 자세한 논의는 생략하고, 평등의 차원에서 ‘기회균등을 보장한다’는 의미에서 일부 교육학자들은 이를 ‘보장적 평등’이라고 부릅니다. 또 전형적인 기회균등을 ‘허용적 평등’이라고 명명해 대비시킵니다. 그러나 이러한 명칭은 개념적으로 적합하지 않습니다. 사실적인 의미에서 똑같지 않은 개인들을 평등하게 허용한다든지 보장한다든지 하는 말 자체가 어불성설(語不成說)입니다. 또 평등에 대해 ‘허용’, ‘보장’이라는 말을 사용하는 것 자체가 국가의 간섭이나 제3자의 개입을 불러오는 평등의 의미와는 무관한 교정 원리입니다.

‘공정’이나 ‘정의’의 이념에 적합한 것처럼 보이지만, 급진적 기회균등의 원리는 개인의 장점이나 공과는 물론 성취의지마저 말살하게 되고 교육경쟁력 자체를 저하시키는 결정적인 원인을 제공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회균등의 전형적 의미를 밀어제치고 급진적 기회균등에 뭇사람들의 관심이 쏠리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정책 원리로서 채택할 규범의 자리에 다시 ‘인간이기 때문에 똑같다’는 사실을 부당하게 대입했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하자면, ‘차이 있으면 차별해야 한다’는 원리를 무시하고 ‘인간이기에 똑같다’는 값싼 감상(感傷)에 빠지거나 아니면 인간이 보편적으로 평등하다는 종교적 가르침을 부당하게 치환하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되면 정책의 적합성 문제를 온전하게 다룰 수가 없습니다.
동일성을 적용할 수 없는 경우 ‘차이 있으면 차별해야 된다’는 평등의 원리를 무시하고 벌어지는 현안 몇 가지를 살펴보겠습니다.

 
군복무 가산점은 남성의 기회 손실 보상하는 것

군복무가산점제는 찬·반 양론이 팽팽한 오래된 사회적 쟁점입니다. 최근 군복무가산점제를 부활하고 수용해야 한다는 의견이 80%에 가깝다는 여론조사 결과가 나왔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 문제를 다시 거론하는 이유는 지지 여론 때문이 아닙니다. 남녀가 동등하다는 것은 인간의 보편성의 측면에서만 수용되는 평등원리입니다. 남녀가 하는 일에서, 특히 기여하는 영역에서 차이가 있다면 이에 따른 차별은 마땅히 수용해야 합니다. ‘인간이기에 다 똑 같다’는 원리를 남성과 여성에게 기계적으로 적용해 군복무가산점제를 부정하는 논거로 삼는 것은 적합하지 않습니다.

군복무가산점제도가 사회적으로 수용돼야 하는 이유는 남성이 여성에 비해 군복무를 통해 기여한 차이, 또는 군복무로 발생한 기회 손실로 인해 채용, 선발, 임금계약에 있어서 차별이 정당화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군복무가산점제를 부당한 성차별이라고 몰아세워서는 안 됩니다. 문제를 바꿔놓고 보겠습니다. 만약 어떤 직책에 필요한 능력과 재능을 가진 여성이 남성에 비해 월등히 많다고 한다면, 당연히 여성 인력을 많이 채용해야 합니다.

근 20년 전 명문 K대학의 신임 H 총장은 향후 국내 박사보다 해외 박사를 우대해 신임교수로 선발하겠다고 해 당시 유학생들에게 회자된 적이 있습니다. 유학생들이 환영할 것 같지만 반응은 정반대였습니다. 평등의 원리에 위배되는 정책이기 때문입니다. 해외 박사건 국내박사건, 여성이건 남성이건, 모교 출신이건 타교 출신이건 상관없이 선발하고자 하는 해당전공에 가장 뛰어난 업적을 낸 인물이 채용돼야 합니다. ‘차이’를 유발하는 요인 이외의 요인을 근거로 ‘차별’해서는 안 됩니다.

한동안 KAIST의 징벌적 수업료 부과가 상당한 논란을 불러 일으켰습니다. 우선 이 문제에 대한 여론의 조명이 잘못 됐습니다. 징벌적 수업료 부과는 학업 성취에 따라 ‘차별’한 것이어서 권장할 만하지만, 모든 학생에게 전액 장학금을 지급한 제도는 애초부터 잘못된 것입니다. 일정기간 의무 복무를 전제로 해 교육비 전액 국가지원을 하는 사관학교처럼 예외는 있습니다만, 국가가 필요한 영재를 육성한다고 전원 전액 장학금 지급 방식이 정당화되지 않습니다. 당초 등록금 납부를 원칙으로 하고 일정 수준 이상 또는 일정 비율 이상의 학업 성적 학생에게 전액 장학금을 지급하는 원칙을 두었어야 했습니다.

반값 등록금 제안은 무상급식과 마찬가지로‘평등’원리와는 하등
상관이 없는 사안입니다. ‘차이에 대한 합당한 차별’에 관계없이 등록
금을 깎아주자는 발상이‘평등’이념은 고사하고 공정하지도 정의롭지
도 못한 결과를 야기합니다.

반값 등록금은 평등하지도 공정하지도 않다

다만 하위 70% 이하 저소득층 학생의 경우 전액 장학금을 지급하되 일정 기준 이상의 성취를 내지 못하면 제재를 하고, 또 이들 저소득층 학생 중에서 우수한 성적을 내는 학생들에게는 생활비 보조 등의 파격적인 혜택을 부여했어야 합니다. 그래야 ‘차이’에 대한 ‘차별’이 정당화됩니다. 그렇지 못했기 때문에 수월성 추구에 혼신을 기울여 제법 성과를 일궈낸 고령의 총장의 노력에 찬사는 커녕 오히려 온갖 부당한 비난에 시달려야 했던 것입니다.

다음으로 최근 다시 불거지고 있는 대학 반값 등록금 제안은 무상급식과 마찬가지로 ‘평등’ 원리와는 하등 상관이 없는 사안입니다. ‘차이에 대한 합당한 차별’에 관계없이 등록금을 깎아주자는 발상이 ‘평등’ 이념은 고사하고 공정하지도 정의롭지도 못한 결과를 야기합니다.

애당초 반값등록금 공약(公約)은 대통령 선거에서 나오지 말았어야 할 잘못된 공약(空約)입니다. 당시 좌파 정권에 심한 염증을 느낀 유권자가 현 정권을 탄생시킨 것이지 세종시 원안고수나 반값등록금 공약을 지지하기 때문에 선택한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현 집권층은 자각조차 못합니다. 연이은 재보선 패배로 내년 총선과 대선을 겨냥한 집권 여당이 정치적 속셈으로 대통령 공약 사항이라는 명분으로 이 조치를 고집한다면 집권당은 스스로를 ‘민주당 2중대’로 자처하는 꼴입니다.

끝으로 모든 학생에게 등록금을 반으로 탕감(蕩減)해 주는 이 제안이 내포하고 있는 심각한 문제점 다섯 가지만 들겠습니다. 첫째, 국가재정 면에서 심각한 문제를 야기합니다. 국가재정 부실화와 담세 증가는 물론 정책 우선순위 부여에 혼선을 가져옵니다. 둘째, 국민정서 면에서 해로운 조치입니다. 특히 자립심을 고양해야 할 젊은이들에게 기생심리, 공짜심리, 무임승차심리를 부추기는 부도덕한 조치입니다. 셋째, 국가정체성 면에서 우리나라가 전체주의의 나락에 빠지게 됩니다.

교육행정기구의 비대화로 구조조정이나 공기업 민영화는 커녕 ‘큰 정부’로 다시 회귀하게 됩니다. 넷째, 대학의 자율이 크게 훼손됩니다. 대학재정의 국가의존도 심화는 말할 것도 없거니와 대학입시, 선발, 교육과정 등에서 국가 간섭이 따라 옵니다. 대학의 건학이념이나 교육특성은 실종됩니다. 다섯째, 교육경쟁력이 약화됩니다. 반값등록금 지원으로 부실대학에조차 교육성과나 여건에 관계없이 재정지원을 한다는 것입니다. 대학부실을 고착화시킴은 물론 부실인력의 양산이 명약관화(明若觀火)합니다. 이 상황에서 교육경쟁력을 언급조차 할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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