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소 고발이 난무하는 기독교
고소 고발이 난무하는 기독교
  • 미래한국
  • 승인 2011.06.10 1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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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미의 문화공감

 
‘A녀엔 옷 벗기고 성관계 시도…B녀엔 성기 노출…’
 

워낙 흉악한 성범죄가 많아 이 정도 제목으론 놀라지 않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실제로 벌어진 게 아니잖아, 이러면서. 하지만 제목 아래 박힌 교회명과 목사 이름을 발견하면 표정이 달라질 게 뻔하다. 목사가 사임하면서 문제가 일단락된 줄 알았건만, 모 교회의 사건이 다시 불거지는 양상이다.

그 교회 교인이라는 X씨가 성추행 관련 글을 인터넷에 계속 올리자 교회는 ‘허위 사실’이라며 X씨를 고소했고, 주간신문이 X씨를 인터뷰한 뒤 선정적인 제목을 달아 보도한 것이다. 기사 속에 ‘마치 삼류 에로소설을 연상시킬 만큼 충격적이었다. 오죽하면 듣고서도 믿을 수 없을 정도였다’는 내용이 있었는데 실제로 낯이 뜨거워 읽을 수가 없었다.

X씨는 사건 당사자가 아니다. 그는 인터뷰에서 “교회 권력을 상대로 힘든 싸움을 시작한 것은 사실을 인정하고 회개하길 바라는 마음에서 였다. 나는 추호도 치부를 까발리거나 파멸시킬 목적이 없다. 그냥 인정하고 회개하라는 것이다”라며 ‘A녀’와 ‘B녀’가 피해를 입은 확실한 증거물이 자신에게 있다고 주장했다.

X씨가 어떤 방식의 ‘인정’을 원하는지 모르지만 ‘치부를 까발리거나 파멸시킬 목적이 없었다’는 발언과 달리 인터뷰로 인해 치부가 더욱 ‘까발려지고’ 있다.
요즘 사회가 기독교를 비판하고 공격한다는 볼멘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린다. 하지만 교회 내부의 문제가 고소 고발로 이어지면서 그런 말을 하기 힘들어졌다. 사회가 비판하고 공격할 빌미를 교회 스스로가 제공하고 있는데 누구를 탓한단 말인가.

일단 고소를 하면 ‘허위 사실’일지라도 ‘기정 사실’처럼 알려지고 나중에 ‘허위 사실’이라는 판정이 나도 ‘기정 사실’처럼 알려진 것을 되돌리기는 힘들다. 고소를 하면 바로 선정적인 기사가 큼지막하게 나오지만, 나중에 ‘허위 사실’이라는 것이 밝혀져도 짤막하게 보도하거나 아예 취급하지 않기 때문이다.
최근에 여러 교회가 송사에 휘말렸다. 대개 교인이 목사를 고발했고, 혐의는 예외 없이 돈 문제거나 여자 문제였다. 사실이든 아니든 도덕성이 생명인 목사가 돈과 여자와 연루됐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요즘 교회를 향한 사회의 눈길이 곱지 않다.

왜 교회가 고소 고발 사건에 자꾸 휘말리는 걸까. 그 원인으로 사이비 세력이 침투해 문제를 일으킨다는 설이 있다. 또 다른 원인은 정치적 견해가 다른 불순세력들이 교회를 공격한다는 설이다. 그런 경우도 있겠지만, 대개는 교회 내부 문제가 소란의 시발점이다.
얼마 전 짧은 기간에 비약적 성장을 한 강북제일교회의 황형택 목사가 전격 사임을 했다. 필자가 기독교 차세대 리더를 취재하면서 여러 경로로 의견을 취합했을 때 황형택 목사는 실력으로나 인격적으로나 동료 목사들에게 두루 인정받고 있었다. 많은 분이 황 목사를 취재하라고 추천했다. 그런데 몇몇 교인이 재정문제로 황 목사를 법정에 고발하겠다고 나섰고 황 목사는 신문에다 사임의 변을 밝히고 떠났다.

황 목사는 “옳고 그름을 떠나서 대형교회가 수많은 논란의 중심에 있는데 나까지 교회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를 주고 싶지 않다”는 의지에서 사임을 한다고 밝혔다. 황 목사의 경우, 관행에 따라 집행해온 재정에 대한 이견 때문에 일부 교인이 고발을 준비해왔다고 한다. 황 목사를 지지하는 교인들은 차라리 법정까지 가자고 했지만 황 목사는 “어떤 일이 있어도 교회 문제는 교회 내에서 해결해야 한다는 것이 소신”임을 주장했다. 7,000명의 교인이 떠나지 말라는 서명을 했지만 현재 사임한 상태이다.

어쨌든 고소까지는 가지 않았지만, 황 목사의 사임에는 “고소하겠다”는 일부 교인의 의지가 작용했다. 개혁을 부르짖는 단체들이 단골로 들고 나오는 카드가 바로 “고소하겠다”는 통보이다. 시한을 정해서 “이러이러한 실천을 하시오. 그러지 않을 경우 그간의 여러 사안을 모아 검찰에 고발하겠소”라고 교회에 통보를 하는 경우가 왕왕 있다. 대다수의 교회 구성원들이 합의한 일도 개혁을 부르짖는 강경한 극소수, 그것도 외부인사 앞에서 무용지물이 될 때가 많다. 

이쯤 되면 ‘고소’를 ‘교회 문제 해결사’로 임명해도 되지 않을까? 고소가 ‘무기’이자 ‘전가의 보도’가 된 건 아닌지 곰곰이 따져볼 문제이다.
고소를 당하면 이리저리 불려 다녀야 하고, 순식간에 그 사실이 인터넷으로 번져나가니 웬만한 강심장이 아니면 견디기 힘들다. 특히 자존심 강하고 실력 있는 젊은 목사라면 ‘그런 수난을 겪느니, 교인들을 상처받게 하느니, 나 하나 그만두면 된다’고 결정해버리기 쉽다. 앞으로 ‘고소’라는 무기가 악용될 소지가 다분하다는 생각은 과연 기우일까?

신약성경 고린도전서 6장에 “왜 교회에서 일어난 일을 세상에서 해결하려고 하느냐, 성도 사이에서 일어난 일을 해결해줄 만큼의 지혜로운 사람이 교회 내에 없느냐, 신도와 신도가 소송을 하는 것도 잘못되었는데 하물며 그것을 믿지 않는 사람들 앞에서 한다니 말이 되느냐”는 말씀에 이어 “소송을 제기하는 것은 실패를 뜻한다. 차라리 불의를 당해주고 속아주라”고 권하는 내용이 나온다. 하지만 요즘 다들 이 말씀에 관심이 없는 것 같다.

재판이라는 것은 승소한다 하더라도 ‘상처뿐인 영광’이 되기 십상이다. 고통스러운 심문과정을 거쳐야 하고, 항소가 이어지면 시간을 맥없이 흘려보내야 한다. 이리저리 불려 다니면서 진을 다 뺀 다음 승소해봐야 다친 마음으로 재기하기가 쉽지 않다.
한기총 전임 회장과 신임 회장도 현재 법정 다툼 중이다. 재판부에서 신구 회장에게 화해를 권했지만 신임 회장이 명예회복을 위해 화해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교계 어른이 화해 대신 법원의 판결에 따르겠다는 굳은 의지를 다진 것이다.

문제가 생기면 하나님 앞에 바로 무릎 꿇기보다, 일단 고소를 한 뒤 재판에서 이기게 해달라고 떼쓰는 사람이 늘어날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요즘 교회에서는 고소 고발이라는 단어가 낯설지 않다. 사건이 발생하면 고소부터 하는 것이 교회 문화로 정착되는 일은 결코 일어나지 않길 바랄 따름이다.

본지 편집위원·소설가 www.rootlee.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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