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이브엔케이 공동기획
"이젠 통일에 대한 인식을 바꾸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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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젠 통일에 대한 인식을 바꾸자"
  • 미래한국
  • 승인 2011.05.10 0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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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봉 독일통일정보연구소 대표

박상봉  독일통일정보연구소 대표
전 통일교육원 원장
서울장신대 외래교수

인류 역사는 분단국에게 통일을 선사했다. 예멘, 베트남에 이어 영원히 평화적으로 공존할 것 같았던 독일도 통일을 이루었다. 유럽 뿐 아니라 전 세계가 독일 통일에 동조하지 않았음에도 통일을 이루었다. 일본의 지진과 쓰나미를 인간의 힘으로 막아내지 못했듯이 도도히 흐르는 역사의 물줄기를 인간의 힘으로 역행할 수 없다. 인간은 역사에 순응할 뿐이다. 우리가 다가올 통일을 맞이할 준비를 해야 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하지만 통일이라는 역사적 물줄기가 한반도로 몰려닥쳐도 우리 사회 전반에 뿌리내린 통일에 대한 왜곡된 인식을 바로 잡기가 매우 어렵다. 통일에 대한 인식도 너무 안이하다. 분단의 심각성에도 둔감하다. 탈북자가 끊이지 않고 여성 탈북자들은 인신매매의 대상이 돼 단돈 몇 푼에 팔려가기도 한다. 독일, 영국, 프랑스 등 모든 유럽 국가에서도 탈북자들을 보호하고 있다. 통일을 역사적 선물로 인식할 때라야 이 모든 문제들의 실마리를 풀어갈 수 있다.

이 과정에서 북한 장마당의 역할은 지대했다. 북한의 장마당은 배급제가 와해되며 스스로 생겨났다. 배급을 주지 않으니 어쩔 수 없이 무엇인가 내다 팔아야 살 수 있다. 순한 양에서 여우로 둔갑한 주민들이 장마당을 통제하려는 늑대(군부)에 힘을 모아 반발한다. 온순한 양들이 굶주림의 세월을 이겨내기 위해 여우가 된 것이다.

북한 장마당의 역할

이제 장마당은 평양 시민을 제외한 북한주민들이 생존할 수 있는 장소가 됐다. 장마당에서는 생필품 만이 아니라 중국을 통해 유입된 각종 상품들이 유통되고 있다. 심지어 대한적십자사가 지원한 쌀 포대도 장마당에서 눈에 띈다. 김정일은 활성화되는 장마당을 축소시키기 위해 작년 11월 느닷없이 화폐개혁을 단행했다. 장마당의 세력이 확대되자 시장의 돈을 회수해 이를 위축시키려는 의도였다. 하지만 북한의 의도는 실패했고 이에 대한 책임을 노동당 재정부장 박남기에게 전가시켜 처형했다.

이렇듯 무리하게 화폐개혁을 단행한 것은 장마당의 기능이 단순히 상품 거래의 차원을 넘어서기 때문이다. 장마당의 사람들 사이에 구전되는 다른 세상에 대한 정보가 교환되기 때문이다. 중국의 성장과 자유 대한민국에 대한 정보가 비교적 쉽게 전파되기 마련이다. 최근 북한이 남한에서 보내는 삐라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폐쇄 체제를 유지해온 김정일 정권으로서는 감당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이런 상황 속에서 김정일은 건강상의 이유로 29세 약관 김정은에게 권력을 세습하려는 무리수를 감행하고 있다.

세계적인 학자나 대북 전문가들은 김정은으로 이어지는 3대 세습의 성공 여부에 한결같이 회의적이다. 이 사실은 우리에게 언제 불거질지 모르는 북한 급변사태에 여유가 있을 때 준비하라는 지적이다. 그럼에도 우리 사회가 인식하고 있는 통일은 안이하다 못해 무관심하다.

물론 우리 사회는 외형적으로는 통일 문제에 매우 적극적으로 대하는 것 같다. 거의 매일 어디에선가 통일 관련 강의나 세미나가 있다. 일간지에는 하루도 빠짐없이 대북 관련 보도가 지면을 장식한다. 하지만 그 내용에는 통일에 대해 진솔한 고백이 빠져 있고 기존의 논의들이 재생산되고 있는 것으로만 보인다.
통일에 대한 절박함이 묻어나지 않으며 진정 통일을 준비하는 자세가 엿보이지 않는다.

최근에는 통일비용이 부각되며 통일에 대한 자신감 마저 점점 잃어가고 있어 유감이다. 기관에 따라서 통일비용을 78조에서 3천조까지 예상하고 있다. 수십 배의 차이가 난다는 것은 통일비용이라는 개념 자체도 제대로 정립되지 않았음을 의미한다. 독일은 정부가 공식적으로 통일비용을 거론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통일로 인한 비용은 미래에 이익을 더해 되돌아 오는 투자로 보아야 한다는 의견이 상당수이기 때문이다.

독일 통일은 ‘흡수통일’이 아니었다

우리나라 언론은 국민의 알권리를 내세우고 있지만 그 보도 내용에 대해서는 오류와 왜곡이 지나치다. 대표적인 것은 독일 통일을 ‘흡수통일’로 규정하고 통일의 각종 부작용과 문제점만을 보도하고 있다. 마치 동독이 흡수돼 서독으로부터 무시를 당하고 있다는 식이다. ‘구더기 무서워 장 못담그랴’는 속담처럼 구더기 이야기만 반복하고 있다. 서독 정부가 예상 밖의 통일을 감당하며 이루어낸 ‘장’ 이야기는 모르는 것인지 의도적으로 회피하는 것인지 갈피를 잡을 수 없다.

흡수통일에서 흡수(Absorption)라는 개념은 독일의 좌파 언론들이 통일 후 나타나는 어려움과 갈등을 흡수라는 개념으로 비판한 데서 비롯됐고 우리 언론들이 이 개념을 일방적으로 받아들여 흡수통일을 부정적인 개념으로 연결시켰다. 하지만 굳이 흡수통일을 정의한다면 서독과 동독이 정치적으로 자유민주주의 경제적으로 자본주의 시장경제를 통일독일의 체제로 결정했다는 의미이다.

실제로 독일 통일은 동독 인민회의에서 채택된 것으로 경제적 풍요로움을 이루어낸 서독의 체제에 동독이 편입되는 것이 좋다는 대의원들의 자발적인 선택에 따른 것이다. 이 사실은 1989년 10월 2일 독일 통일 전야제 행사에도 그대로 반영됐다. 동독 최초 자유선거를 통해 총리직에 선출된 로타 드메지어 총리는 “이별은 슬픔을 의미하지만 오늘 동독과의 이별은 희망이요 기쁨이다”라는 감동적인 연설도 독일 통일이 서독의 일방적인 요구에 의한 것이 아님을 대변하고 있다.

이것이 독일 통일의 본질임에도 불구하고 우리 사회의 전반적인 인식은 과거 언론이나 일부 학자들의 왜곡된 보도로 혼란을 겪고 있다. 2011년 초 이명박 대통령은 통일부 업무보고 자리에서 ‘흡수통일’이 아니라 평화적 통일을 지향할 것을 주문했다. 이 표현대로라면 흡수통일은 평화적 통일이 아니다. 하지만 독일의 공식적인 통일은 동독 최고인민회의에서 결정된 ‘편입’(Beitritt)에 따른 통일이다. 독일은 1990년 8월 23일 동독의 인민회의의 ‘편입’ 결정에 따라 통일을 이루었다. 이렇게 능동적이고 자율적인 편입을 통한 통일을 흡수통일이라며 비하했던 그룹은 극소수 좌파 언론과 구동독 지배자들이었다.

이렇게 잘못 쓰이는 말을 소위 전문가들이 20년이나 재탕, 삼탕 하고도 부끄러운 줄 모른다. 과거 정권에서는 공식적으로 ‘흡수통일 불가’를 선언하기도 했다. 급기야 이명박 대통령도 이들의 반열에 섰다. 아니 대다수 국민들이 사이비 전문가들로 인해 동조자들이 됐다고 해야 옳다.

우리나라 대북 인식에 대한 유감

세상이 변했다. 이제 대북정책 전반을 새롭게 점검해야 한다. 작년 천안함 폭침과 무자비한 연평도 포격으로 해군과 민간인이 사망했다. 북한의 궁극적인 목적은 연방제라는 과도기를 거쳐 남한을 북한에 포함시키려는 전략이다. 이를 위해 모든 협박과 회유를 동원하고 있다. 적지 않은 남한 내 동조자들도 이에 동의하고 있다. 이제 이런 왜곡된 통일인식으로부터 해방돼야 한다.

작년 3월의 천안함 사태와 11월의 연평도 도발에도 올바르게 대응하지 못했던 이유는 대북인식과 함께 통일인식이 왜곡됐기 때문이다. 수백만 명을 굶겨죽어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 나라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할아버지 권력을 손자가 물려 받아도 반대할 수 없는 나라가 어떻게 가능한지? 밖에 걸린 초상화가 비 맞는다고 생쇼를 하는 인민이 어떻게 생겨난 것인지? 이런 질문에 올바른 답을 찾으려 고민만 했어도 그렇듯 허무하게 당하지 않았을 것이다.

우리의 해답찾기가 실패한 이유는 무엇보다도 대북 화해협력정책에 있다. 동족 북한에 따뜻한 햇볕을 쐰다면 개혁 개방의 길로 나올 것이라는 유아적인 발상 때문이다. 햇볕정책은 이솝우화에서 비롯됐다. 이솝우화는 어린 아이를 위한 동화다. 길을 걷는 나그네와 북한 체제를 동일시 했다. 핵, 미사일을 개발하고 기쁨조에게 나체 춤을 명령하는 김정일을 소박한 나그네로 비유했다는 것 자체가 넌센스다. 세계 정세는 물론이고 한반도를 둘러싼 주변 정세의 ABC도 모르는 유아 같다고나 할까.

하루 아침에 전기와 물 공급을 끊고 베를린 봉쇄를 단행한 소련과 동독에 맞서 ‘공중다리(Air Bridge)’ 전략으로 대응해 위기의 베를린을 구했던 클레이 장군의 성숙한 지혜가 그립다. 공중다리로 총 28만 횟수의 비행이 이루어졌다. 거의 1년 동안 2분에 한 대꼴로 베를린 주민들에게 필요한 물자를 공급했다. 결국 소련과 동독은 베를린 봉쇄 11달만에 풀었다.

케네디의 베를린 연설

1963년 베를린 장벽이 생긴 지 2년 만에 미국의 존 F. 케네디가 베를린을 찾았다. 케네디의 베를린 연설은 세계적 명문이다. Ich bin ein Berliner(나는 베를린 시민입니다)라는 제목이 붙은 이 연설은 통독 20년을 맞은 지금까지 용기와 희망의 상징이었다. 감동적인 연설은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고 용기를 준다.

케네디는 “이 세상에는 자유세계와 공산세계 간의 가장 큰 이슈가 무엇인지 정말 모르는 사람들도 있고, 모르는 체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들을 베를린에 오게 합시다. 세상에는 공산주의가 미래의 대세가 될 것이라고 말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그들도 베를린에 오게 합시다. 유럽이나 다른 곳에서 공산주의자들과 손잡고 일할 수 있다고 말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그들도 베를린으로 데려 옵시다. 공산주의는 나쁜 제도지만, 경제적 성장을 가능하게 하는 제도라고 말하는 이들도 일부 있는 모양인데, 그들도 베를린으로 오게 합시다.”

자유를 지키기란 어려운 것이고, 민주주의가 완벽한 것도 아니다. 그러나 우리는 적어도 담과 철조망을 높이 쌓아 사람들을 가두지는 않는다. 사람들을 격리하고 사회를 폐쇄적으로 운영해야 할 시기는 지났다. 국경 없이 흘러드는 정보의 힘은 IT 시대를 맞아 더욱 강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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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LlgCAqyri 2014-12-30 11:2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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