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하준은 선동적 정치평론가
장하준은 선동적 정치평론가
  • 미래한국
  • 승인 2011.02.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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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동 편집위원 (나라정책연구원장)

케임브리지대학의 장하준 교수는 몇 가지 공격할 대상을 설정해 적대적으로 비판하고 반대로 몇 가지 대상에 대해서는 일방적으로 옹호하는 단순 논법을 펼친다. 그의 비판 대상은 자유시장과 신자유주의, 잘사는 사람과 나라, 그리고 금융인이나 기업주주다.

반면 그의 옹호 대상은 정부 및 정부에 의한 복지와 규제, 못사는 사람과 나라 등이다. 따라서 장 교수의 <그들이 말하지 않은 23가지>의 모든 논지 전개와 사실 인용은 위의 비판 대상에 대한 공격과 옹호 대상에 대한 수비에 맞춰진 것으로 경제 분석이라기보다는 정치평론에 가깝다.

장 교수는 자유시장(free market)이란 환상과 신화일 뿐이라고 비난하고 나아가 자유시장정책으로 성공한 나라도 없고 제대로 작동한 적도 없다며 자유시장을 공격한다. 그러나 모든 개념과 체제가 그렇듯 시장이란 이념형(ideal type)이다. 시장도  당연히 역사적, 상황적 변화를 거쳐 진화되고 수정되는 것임에도, 그 과정은 부정한 채 시장경제에 나타난 현상적 문제만을 공격하면서 시장을 비판하고 있다.


자기 논리에 맞는 사례만 선별적 나열

그리고 놀랍게도 그 대안으론 정부를 제시하고 있다. 정부는 유권자가 결정하는 것이고 시장은 소비자가 결정하는 것인데, 일상적 소비자는 불완전하고 가끔씩 투표로 결정되거나 경우에 따라선 자의적으로 구성되는 정부가 더 완전하다는 얘기이다. 시장과 정부의 성격과 상호관계에 대한 몰이해라고 밖에 말하기 힘들다.

특히 장 교수는 정부주도적 성장을 말할 때는 국가주도경제의 역사 전체를 말하지 않고 항상 성공적 예-Hamilton, List, 중국, 인도, 한국-만을 선택적으로 추출해 자기 논지를 설명한다.

경제적 관점으로 본다면 정부도 시장의 부분이자 보완재일 뿐이다. 그런데 시장과 정부를 배타적인 것으로만 보는 이분법적 사고가 투영돼 있고 상호관계에 대한 이해는 아예 배제돼 있다.

더구나 정부에 대한 과신 속에 정부 및 관료체제의 능력은 판단하지 않고 아프리카나 모든 개발도상국에서 정부가 나서면 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것은 무책임한 것이고 실제 수많은 실패 사례에는 눈감는 것이다.

정부 중심의 과거 중국경제의 파괴 사실은 빼고 장 교수의 주장과 달리 시장경제로 성장한 칠레는 ‘저성장’이라 왜곡하고 스웨덴이 정부 비중이 너무 커 시장 몫을 확대하는 지난 20년의 노력은 감추고 있다. 자신의 논지 전개를 위해 성공한 특수 예만 들고 있을 뿐 실패한 보편적 예들은 전부 빼는 설명 방식이다. 그게 경제학인가?

그의 책 전체에서 나타나는 논리 오류의 출발은 역사에서 국가-정부, 권력-가 만들어낸 구속과 억압이나 반자유주의가 만든 퇴보는 일체 고려하지 않고 시장을 비판하는 데서 오는 것이며 다른 한편으론 특정 시기, 특정 국가의 ‘성공한 정부’를 전제해 놓고서 ‘큰 정부’를 옹호하는 데서 오는 것이다.

특히 장하준은 제조업과 큰 정부를 옹호하고, 특히 유치산업론과 산업정책에 대한 일관된 확신을 펼치면서 정부주도적 산업보호를 옹호하지만 산업보호나 규제로 인한 정부주도정책의 실패 사례가 성공 사례보다 훨씬 많은 것은 말하지 않는다.

더 근본적인 것은 장 교수가 시장경제를 정확히 이해하는지 의심스럽다. 왜냐하면 자유시장을 비판하는 그의 논지는 자신 스스로 제기한 바대로 자본주의 역사가 ‘시장의 경계를 둘러싼 투쟁’이며 시장이란 ‘규칙과 제도의 합’이란 자기 논지와도 상충되고 있기 때문이다.

인류가 만들어온 시장제도의 진화와 발전 과정을 전혀 이해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분명한 것은 시장경제는 끊임없이 진화하는 것이고 그 과정에서 시장은 오히려 정부를 활용하고 이용하는 것이지 정부가 시장을 대체하거나 시장에 우선할 수는 없는 것이다.

정부를 강조하는 과정에서 그의 논리는 명령경제와 민주주의와 시장의 요구를 반영하며 만들어 내는 정부계획도 구분 못하는 수준에 있다. 민주주의와 시장의 요구를 반영하지 않고 정부가 어떻게 알아서 한다는 것인지 알 수 없다. 정부가 신(神)인가. 정부의 계획 자체가 시장의 연장선에 있는 상호관계란 것을 모른다는 말인가.


장하준이 ‘뜬’ 이유

결론적으로 장하준은 계급적 시각에 서서 주류에 대한 비아냥을 하고 있을 뿐이다. 그는 돈 많은 사람에 대한 경멸과 가난한 사람과 나라에 대한 옹호를 논지의 중심에 놓고 있다.

또한 주류경제학을 비판한다며 이기심이 경제발전의 원동력은 아니라며 도덕, 신뢰 등을 말하고 있으나 그것은 정치는 국민 지지와 표만 고려하는 것이 아니라 도덕과 신뢰를 고려한다는 표현과 마찬가지로 경제나 정치 현상의 부분 영역을 말하는 것일 뿐이지 아무 의미 없는 견해다.

그런데도 그가 계속 강조하는 것은 경제나 정치의 영역을 윤리의 영역과 혼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니면 자기의 도덕을 강조하고 자랑하고 싶어 한 결과다. 이기(利己)의 실현이란 바로 남이 필요로 하는 것을 제공하는 이타(利他)를 위한 행동과 과정 없이는 불가능한 세상의 기본원리를 잊고 있는 듯하다.

특히 가난한 노동자를 옹호하며 가난 내지 소득 격차의 이유를 생산성 차이가 아닌 ‘시스템 차이’나 ‘사회 전체의 능력’의 차이라고 하는 것은 무지한 동어반복일 뿐이다.

물론 장하준의 논지 중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동의할 수 있는 것도 있다. 단기적 경영 성과제나 단기적 주주가치 극대화 전략이 빚어내는 문제, 투기적 금융세력에 대한 규제 강화 등이다.

개발도상국이 제조업 기반 없이 금융이나 서비스 중심 경제로 가는 조기 탈산업화에 대한 우려 등에도 동의한다. 그러나 시장과 정부는 반드시 개선 방안을 찾아 나간다. 그런 것이 시장경제요, 정부나 국제기구의 정책 혹은 G20 같은 시도다. 


그러나 몇 가지의 동의에도 불구하고 전반적으로 그의 경제학적 기반은 의심 스럽다. 특히 경제사에 취약하다. 가난을 옹호하고 부와 시장을 비판하기 위해 이것저것 막 갖다 붙이고 있다. 시장경제 시스템을 가혹히 비판하면서 대신 조직력과 향상된 정치제도로 극복해야 한다는 기이한 주장을 펴기도 한다.

그것은 나뭇가지-혹은 삽-로 땅을 파기보다는 자본과 기술축적의 결과인 ‘포클레인’을 갖다 땅을 파면 생산성이 높아진다는 말만큼 당연한 말인데도 시장경제로부터 ‘조직 내지 제도’를 따로 분리시켜 놓고 격리된 ‘시장’만 비판하는 것은 근대경제사와 경제체제론을 무시한 궤변이다.

그렇기에 장 교수는 못사는 나라의 문제나 열심히 일한 나라 노동자의 임금이 잘사는 나라의 임금보다 적은 현상을 국가시스템인 조직, 제도, 기반시설의 미비문제라고 돌리고 있다.

결론적으로 장 교수의 글은 정치적 목적의 모자이크다. 목적을 정해놓고 필요한 것만 오려다 갖다 붙이는 논리다. 문제가 있는 현상은 더 개선시켜 극복하려는 방향을 취하기보다는 일자리를 빼앗는다고 기계를 파괴한 러다이트(Luddite) 운동적 기질이 장 교수에게서 보인다.

그런 의미에서 <그들이 말하지 않은 23가지>는 경제학자의 연구 결과라기보다는 보편 경제원리와 기존 체제에 대한 감정적 비난을 위한 선동적 정치평론이다. 또 그래서 뜨는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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