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자각 참배하며 바라본 능봉위로 황금빛 햇살은 밝게 쏟아지고…
정자각 참배하며 바라본 능봉위로 황금빛 햇살은 밝게 쏟아지고…
  • 미래한국
  • 승인 2010.01.1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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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우익의 국토기행] 어엿비 여겨 주시옵소서 여주 영릉(英陵)
▲ 영릉

미래한국이 338호부터 매거진 판형으로 바뀌면서 기존의 신문 형태로 게재된 기사 중 호평을 받았던 내용을 발췌해 <다시보는 미래한국>으로 소개한다. <Beautiful Korea 류우익의 국토기행><역사를 움직인 기도><시대를 보는 눈> 그리고 특색 있는 기사를 다룬다.

임금님, 우리 임금님, 이렇게 부르면 어쩐지 임금님께서 저의 모자람과 어리석음을 어엿비 여겨주실 것만 같아서 그리하오니, 부디 허물치 말고 윤허해 주시옵소서. 모처럼 임금님 계신 곳을 찾아왔사옵니다.

예전에는 한양에서 왕릉을 성밖 백 리 안으로만 모셨다지요. 제관들이 하루에 다녀오려면 궁에서 너무 멀어서는 안 되니까요. 산사람 생각해서 죽은 사람 대접하기는 예나 지금이나 매일반 아니옵니까. 조문객이 죽은 이보다 산 사람을 생각해서 서러워한다는 말이 그토록 야속하더니만, 나이가 들어 보니 꼭 아니라고만 우기기가 어렵사옵니다.

사실을 말씀드리자면, 저도 요새 보고 듣는 세상사가 하도 뒤숭숭해서 우선 제맘 좀 추스러볼 셈으로 여길 찾아왔사옵니다.

영릉에 참배하면 마음이 편해지는 것은 미려한 풍광이나 이른바 지기(地氣) 때문만은 아니옵니다. 산소에서 마음 편할 궁리를 하다니 참으로 황공한 말씀이옵니다. 저 같은 서생이 맘 내키면 당일로 임금님을 알현할 수 있다는 것은 참으로 성은이 망극한 일이옵니다.

임금님을 뵙고 싶다는 생각이 들자마자 연구실을 나서서 단숨에 경부고속도로로 올랐습니다. 잠시 후 신갈에서 영동고속도로로 들어서니 상습 정체구역으로 이름난 이 길이 시침 뚝 떼고 ‘잘빠집디다’. 어느 어전이라고 이런 저속한 표현을 쓰다니 송구하옵니다.

산등성이에 우쭐대고 서있는 광고판이 아까부터 눈에 자꾸 걸리더니, 이젠 아주 ‘세종 ××’라고 임금님의 묘호(廟號)를 딴 회사까지 나섰네요. 참으로 황송하옵니다. 무지한 것들을 그저 어엿비 여겨 주시옵소서.

여주 나들목까지 불과 한 시간 남짓이네요. 시가지 초입에서 오른편 차창으로 ‘명성왕후생가’표지판이 지나갑니다. 외세에 맞서 국권을 지키기 위해 개혁과 개방을 추진하리만큼 명철했던 중전. 백년이 넘도록 민비라 낮춰 불리다가 비로소 왕후의 지위를 되찾기는 했지만, 아직도 하고픈 말씀이 너무도 많을 마지막 왕후를 생각하니 그냥 지나치기가 참으로 송구하옵니다.

그러나 임금님을 뵈러 가는 길이니 어쩝니까? 신륵사 쪽으로 가는 길을 힐끔 쳐다보고 왼편으로 돌아서니, 세종대왕릉 입구. 사위가 단아하고 입구가 정결합니다. 감히 내리지 않고 붕붕거리며 들어서니 자동차도 몸둘 바를 모르옵니다. 나무라지 마시고 어엿비 여겨 주시옵소서.

영릉(英陵). 조선조 제 4대 임금 세종대왕과 소헌왕후 심씨의 합장릉이라, 우리 역사상 가장 위대한 임금님, 세계 최고의 성군 내외분께서 계신 곳이옵니다. 세상에 어느 임금이 백성의 말에 꼭 맞는 글을 발명해 냈습니까? 소리나는 대로 쓰고, 쓰여 있는 대로 읽고, 읽는 대로 말하는 그런 글을 말입니다. 붓으로 써서 아름답고, 연필과 볼펜으로도 쉽게 쓰고, 그림처럼 아름답고, 배우기 쉽고, 빨리 읽고(速讀), 그리고 컴퓨터 언어로도 잘 쓸 수 있는 글이 당신께서 창제하신 훈민정음, 곧 한글입니다.

세계 문화를 공부할수록, 한글이 세계에서 가장 훌륭한 문자라는 믿음은 더욱 굳어집니다. 문자가 있어 지식이 축적되고 문화가 발달할 수 있었다면, 한글이 없는 한국문화의 발전을 생각할 수 없음이옵니다. 우리가 나라를 빼앗겼다가도 민족문화를 그토록 빨리 회복할 수 있었던 것은 한글이 있어 가능했습니다. 그런데 왜 국보 1호가 한글이 아닌지요. 저희가 실은 으뜸가는 보물이 무엇인지 조차 모를 만큼 미련한 백성이옵니다. 그저 어엿비 여겨 주시옵소서.

   
 
  ▲ 능 위쪽에서 내려다본 전경  
 

능역을 들어서면 바른편에 임금님의 동상이 옆모습으로 서 계신데 뒤편 푸른 숲과 잘 어울립니다. 더 좋은 자리에서 바로 보고 계셨더라면 더 좋았을 텐데. 검은 대리석으로 된 훈민정음비와 능역정화비를 화강암으로 받쳐올린 모양은 요샛말로 하자면 아무래도 좀 그랬습니다.

옹졸한 소견으로는 굳이 두 개의 비석 위에 올려놓을 양이면 능역정화비는 뒤로 가고 그 자리가 이런 글로 시작되었으면 어떨까 했사옵니다. “이 부텨 百億世界에 化身하야 敎化ㅎ.샤미”. 아니면 이건 어떻사옵니까? “浿東六龍이ㄴ.ㄹ.샤 일마다 失福이시니”. 세종전 현판 서체가 낯익어 물어보니 75년 영릉보수 정화사업을 하면서 훈민문의 것과 함께 박정희 대통령이 쓴 것이라 하옵니다.

오호라. 홍살문의 살대는 법도의 곧고 바름을 의미하고 나라의 위엄을 상징한답니다. 그런데 왜 시멘트 기둥인지에 대해서는 문화유산 해설사의 감기든 목소리가 아주 잠겨버립니다. 제관은 양측 낮은 길을 택하여 동입서출(東入西出)하는 법이라고 일러주었지만 사진을 찍는다는 핑계로 몇 번씩이나 혼백과 임금만이 다니는 가운데 높은 길, 즉 신도(神道)를 범하였습니다.

 

수라간과 수복방은 좀 작다 싶었고 노송에 둘러싸여 기품을 더하는 영릉비는 오랫동안 발길을 붙잡습니다. 정자각에 엎드려 참배하면서 열린 문 사이로 바라본 능봉 위로 황금빛 햇살이 밝게도 쏟아지고 있었사옵니다.

문인석, 무인석은 비었으되 사람보다 충직한 석양, 석호와 석마가 밤낮으로 능을 지키고 있고 이끼 낀 혼유석이 또한 세월을 지키고 있으니 임금님 편히 쉬시옵소서.

임금님, 대마도를 정벌하고 육진을 개척하신 우리 임금님. 아악을 정리하시고 과학 기술을 진흥시키시며 불후의 명저들을 짓고 펴내셨지요. 집현전에 학자들을 모아 학문을 창달하셨더니, 돌아 가신 지 550년이 지나서야 비로소 지식산업의 시대랍니다.

수학여행 온 노랑머리 아이들이 무엄하게도 깔깔대며 능역을 휘젓습니다. 저 아이들이 요즘 괴상한 한글을 쓴다는데 어찌하오리까.

딱하기로는 우리말, 우리글보다 영어만 잘하면 된다는 어른들이 더하고, 답답하기로는 명문대학을 없애겠다고 덤비는 자들이 그보다 더하지요. 언젠가 정신들 날이 올 테니, 어엿비 여겨 주시옵소서.

임금님께서 승하하신 연배에 이르러서도 지리지(地理志) 하나 변변하게 못쓰고 이런 넋두리나 하고 다니는 백면서생을 어엿비 여겨 주시옵소서. 내년 5월 15일 숭모제 때 다시 오겠습니다.

   
 
  ▲ 세종전 앞에 세종 당시 발명한 과학기구들이 전시돼 있다.  
 

그땐 꽃도 많이 피어 있을 것이고, 세종로 1번지에는 임금님처럼 백성을 어엿비 여기는 바르고 현명한 주인이 뽑혀 있을 줄로 아옵니다. 그런 날이 오면 남한강 백사장에서 세월이 흘러온 역사를 듣거나, 세계 최고의 도자기 완상법을 익혀 보지요.

머지 않은 곳에 고구마 재배단지가 있는데, 밤같이 달고 맛있다고 밤고구마라고 부르옵니다. 고구마 말이 났으니 말씀입니다 마는, 요새 고약한 일이 생기면 사헌부 관리들이 캐어들어 가기를 두려워한답니다. 잘못하다가 고구마처럼 뭐가 주렁주렁 달려 나올까봐 겁이 난다는 겁니다.

“신륵사는 안 들르십니까?” 동행한 제자가 묻습니다. 인근에 새로 고향을 마련한 지기를 찾아 진상미로 지은 쌀밥에 한잔 술을 청할 수도 있겠지만, 임금님, 이 청량한 영릉의 기운을 그냥 간직하고 돌아가려 하옵니다. 부디 어엿비 여겨 주시옵소서. 

사진/이승재 기자 fotolsj@futurekore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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