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수 오동도(梧桐島), 봉황이 깃들어 용꿈을 꾸다
여수 오동도(梧桐島), 봉황이 깃들어 용꿈을 꾸다
  • 미래한국
  • 승인 2010.01.0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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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우익의 국토기행] Beautiful Korea
미래한국이 338호부터 매거진 판형으로 바뀌면서 기존의 신문 형태로 게재된 기사 중 호평을 받았던 내용을 발췌해 <다시보는 미래한국>으로 소개한다. <Beautiful Korea 류우익의 국토기행><역사를 움직인 기도><시대를 보는 눈> 그리고 특색 있는 기사를 다룬다. 

다시 보는 미래한국 / 미래한국 25호 (2002.12.1.)

“덕(德)을랑 뒷배(後盃)로 받자옵고, 
복(福)을랑 앞배(前盃)로 받고자 하오니, 
덕이여 복이여 나아오십시오. 
아으 동동다리.”

하느님은 천지를 만드실 때 인간의 생각으로는 도저히 미치지 못할 많은 것들을 고려하고 정성을 다하였다. 그 중에서도 한반도의 남해안을 빚을 때에는 컨디션이 썩 좋고 기분이 최고조였던 게 틀림없다.

무소불위로 창조의 상상을 펼치고 자유자재로 형상화하여 땅과 물의 조화를 참으로 오묘하게도 그려냈다. 온갖 기상천외한 모양의 반도가 육지를 이어내 산을 맺고 그침 없이 바다를 파고드는가 하면, 크고 작은 만은 쉼 없이 곶과 해벽을 깎아 다듬고 백사장과 개펄을 번갈아 펼쳤다.

그리고 다시 수천의 섬을 띄워 파도를 잠재우고 포근한 해무 속으로 새와 물고기들을 불러모았다. 그 섬세하고 치밀함이 그야말로 비단에 수를 놓아서도 형용하기 어렵고, 그 다양한 형상의 어우러짐이 짝을 찾기 어렵다.

여수는 그 남해 바다의 한복판을 차지한 아름다운 곳이다. 한려해상국립공원과 다도해해상국립공원으로 둘러싸인 여수는 말 그대로 바다와 땅이 모두 만세절경의 공원이다.

기차나 자동차나 시간거리로 보면 서울에서 가장 먼 곳, 여수가 지금 세상을 앞서 갈 큰 꿈을 키우고 있다. 2010년 세계박람회를 유치하기 위해 막바지 안간힘을 기울이고 있는 여수를 찾은 날은 날씨도 참 푹했다.

그러고 보니 1월 평균 기온을 영상으로 유지시켜 단감이랑 유자를 자라게 한 배려까지도 그저 고마울 따름이다. 오는 12월 3일은 올림픽과 월드컵을 능가하는 세계 최대의 잔치를 누가 유치할 것인지가 결판나는 날이다. 인구 30만의 지방 도시 여수가 부에노스아이레스, 바르샤바, 멕시코시티, 모스크바, 상해 등 세계적 거대도시들과 맞붙어 겨루고 있다.

박람회는 나라마다 문물을 내어 모아놓고 문명이 나아가는 길을 밝혀 보이는 세계의 축제로, 1851년 런던박람회가 그 시초이다. 우리나라는 1893년 시카고 박람회에 처음 참가하여 나전칠기 등을 전시하였고, 1962년 시애틀 박람회 이후로는 꼬박꼬박 참가하였다. 1993년 대전엑스포도 잘 했지만, 이번에 여수가 유치하려는 것은 국제박람회사무국(BIE)의 공인박람회다. 조직위는 오동잎 모양을 닮았다는 여수 앞 바다의 작은 섬, 오동도에 야무진 홍보관을 마련하였다.

 

여수의 지세가 봉황이 옴츠린 모양인데, 봉황이 오동을 먹고산다는 전설이 있다니, 오동도에서 ‘새로운 공동체를 위한 바다와 땅의 만남’을 주선하는 봉황의 용꿈이 영글고 있는 것은 우연이 아닐 꺼다.

빤히 내다보이는 신항지역 400여 만평에 박람회장을 차리고, 그 안팎에 2조4,000억 원을 투입하면, 그 해 5월에서 10월까지 3천만명의 관람객이 몰려온단다. 그렇게 되면 23만 명의 고용창출에다, 생산 유발효과가 16조8,000억 원이요, 부가가치 유발효과가 7조8,000억 원이나 된다니, 사후에 해양관광도시로 거듭날 것까지 셈하지 않더라도 그저 굉장할 뿐이다.

진부한 말이지만 국위선양이라는 말이 이럴 땐 실감난다. 멀리 갯가에 버려졌던 땅, 역사의 상처에 가슴앓이를 해온 사람들이 이런 놀라운 발상을 해낸 것이 너무나 장하다.

결국 상해와 자웅을 겨루게 될 것이라지만, 아무래도 여수가 일을 내고야 말 것 같은 예감이 든다. 그 날은 진정 우리 역사의 잔칫날이 될 것이다.

여수는 이야기가 많은 땅이다. 지천으로 널려 있는 조개더미와 고인돌에 덮인 석기시대의 사연, 비파형 동검과 옥돌 장식이 무더기로 출토된 청동기의 영화, 그리고 한나라 동전보따리가 사갔을 명품들을 상상하는 일은 역사가에게만 맡겨둘 일만이 아니다.

하멜을 잡아 문초한 후 이곳에 가두었는데 탈출했단다. 표류한 이방인의 얘기를 들어보고 딱히 여겨 먹이고 재워 넌지시 놓아준 걸 그렇게 말하는지도 모르지. 대마도 사람들에게까지 고기잡이를 허락했던 곳이니까. ‘여수에서 돈 자랑을 마라’고 했던 시절 목포와 부산을 잇던 연락선도 여수항에 하고많은 인연을 남겼다.

그러나 아무리 들어도 여수 이야기의 압권은 충무공의 노량해전이다. 곳곳에 남은 전라좌수영성의 유허와 항일유적의 호국충절이 도시를 채우고 있다. 최초의 사액 사당 충민사, 고소대의 대첩비와 타루비, 한국 최대 목조건물인 진남관, 의승수군의 흥국사, 모두가 若無湖南 是無國家를 되새기게 하는 유적이다.

여수시와 수산청의 배려로 향토사학자 한 분과 배를 타고 여수항에서 광양만으로 묘도를 한바퀴 도는 호강을 했다. 섬진강 하구와 광양만을 감조할 수 있는 전략적 요충, 소서행장의 군대를 가두어 놓고 지켰던 서량 물목에 서니, 세계 해전사에서 가장 빛나는 결전의 현장이 여기다.

묘도에서 바라보는 광양만은 분주하다. 높은 굴뚝과 덩치 큰 저장고가 즐비한 왼편이 석유화학으로 산업화를 이끈 여수국가산업단지고, 세계 최첨단에 최대생산능력을 지닌 광양제철은 오른 편이다. 가운데, 만을 휘어잡은 너른 부지가 동북아의 메가허브포트를 자임하면서 천혜에 지혜를 다하고 나선 광양항이다.

개펄에서 조개 줍다가 물들어오면 급한 김에 아무 배나 먼저 들어오는 배를 탔단다. 그 배가 광양 뿐 아니라 여수, 순천으로 갈 수도 있고 남해, 하동으로 가기도 했다는 말에 웃음이 절로 난다. 여수시가 계획한대로 섬들을 잇고 반도를 연결하는 다리가 놓여지면 ‘용궁 가는 길’은 사통팔달이 된다.

   
 
  ▲ 만성리 검은모래 해수욕장  
 

바라보면 바다요, 돌아 나오면 다시 포구라, 여기도 거기 같고, 거기도 저기 같더니, 이 땅, 이 바다가 이제야 때를 만났구나. 사람들이 몰려와도 음식 걱정은 없다. 농어, 숭어가 철을 지나면 참장어 데침이 일미요, 가을 전어 끝에는 삼치가 따른다. 서대회는 사철 좋고 지금은 굴구이가 별미란다. 김 양식을 여기서 처음 했다지.

청정 가막만에서는 굴, 홍합에 우럭과 돔을 기른다. 돌산교 너머로 드리우는 여수항의 석양이 곱기도 하다. 돌산갓김치 맛이 매큼하게 쏘면서도 부드럽다. 시도 때도 없이 나도는 아들이 늘 걱정인 노모 생각이 나는구나.

낙후한 컨벤션 산업에 부족한 전문인력이 걱정이고, 사후 활용계획이 궁금하지만 암말말고 모처럼 순풍에 봉황이 날개 펴는 걸 지켜보자.

우선 12월 3일 전에 뭐라도 보태면 더 좋고, 내년 봄엔 영취산 진달래 축제에 들렀다가 거문도 뱃노래나 들어보자. 그리고 동백에 맺힌 설움일랑 오동나무로 심자. 벅수들아, 장생포, 동동골 지킨 바다를 활짝 열고, 이제는 세계를 노래하자.

“덕(德)을랑 뒷배(後盃)로 받자옵고, 복(福)을랑 앞배(前盃)로 받고자 하오니, 덕이여 복이여 나아오십시오. 아으 동동다리.”

 

류우익 서울대 교수(지리학)
세계지리학연합회 사무총장·청와대 대통령실장·본지 편집위원(1기)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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