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권에 휘둘린 의회정치
운동권에 휘둘린 의회정치
  • 민경우  민경우수학교육연구소 소장, 대안연대 상임대표
  • 승인 2024.01.09 15: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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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년 광주를 거치며 학생운동권의 급진화가 시작된다. 맑스레닌주의와 주체사상이 도입된 것이다. 우여곡절 끝에 87년 6월항쟁이 끝나고 마침 소련·사회주의권이 붕괴되었다. 북한 또한 체제경쟁에서 실패한 초라한 모습으로 남았다. 상황은 명백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87년 6월의 거리에서 혁명 사상을 무장하고 싸웠던 청년 거의 전부가 자신들이 불과 한 두 해 전에 거품을 물고 주장했던 사상이 틀렸음을 회의·부정·반성하지 않았다.

90년대 그들은 20~30대 나이로 대학원에 진학하고 학원 강사나 교사가 되었고 사법시험을 통해 법조인의 길을 걷기 시작한다. 2000년대 초반 386의 리더들이 정치권에 진출하기 시작한다. 이들은 김대중-노무현 정권의 후견 아래 성공적으로 정치권에 진입했다. 특별히 유리했던 것은 2004년 노무현 탄핵, 2009년 노무현 대통령의 죽음 등을 계기로 진보 우위의 정세가 열렸다는 점이다. 이들은 순조롭게 다선 의원이 되었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요구 촛불시위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요구 촛불시위

2010년대를 전후하여 다시금 급진주의의 시대가 열렸다. 2013년 세월호, 2016년 박근혜 대통령 탄핵 등을 배경으로 이른바 촛불민주주의가 대두된다. 이 촛불민주주의를 배경으로 전통적인 학생운동권은 아니지만 운동권 흉내를 내는 이미지·미디어 정치인들이 대거 등장하기 시작한다. 박주민, 김남국, 김용민 등이 그런 인물이다. 넓게 보면 이재명 민주당 대표도 여기에 속한다. 
2000년대 민주주의를 이해하기 위해 주사파를 대표하는 인물 중 하나인 윤민석을 소개할 필요가 있다. 윤민석은 89년 전대협 진군가에서 “일어섰다 우리 청년학생들, 민족의 해방을 위해”라고 썼다. 전대협은 학생들이 학업을 포기하고 투쟁하는 이유를 “민족의 해방”을 위해서라고 설명한다. 80년대 후반 90년대 초반 불렸던 거의 모든 노래가 그러하다. 

그런데 촛불 국면에서 윤민석은 교묘하게 말을 갈아 탄다. 그는 노래에서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대한민국의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라고 말한다. 식민지 민족해방투쟁을 주장했던 청년들이 2000년대 거리 민주주의 국면에서 헌법의 수호자라며 입장을 바꾼 것이다. 

양자는 양립할 수 없다. 그러한 변신이 가능했던 것은 민족해방투쟁의 관점에서 2000년대 거리 민주주의를 변형했기 때문이다. 민족해방투쟁의 관점이 유지된 것은 첫째, 세상을 선과 악, 선한 민중과 악한 기득권자의 대립으로 보는 점 둘째, 악한 기득권자는 뿌리가 친일파로 모든 악의 근원이라는 점 셋째, 양자의 대결은 거대한 대중항쟁을 통해 해결된다는 점 등이다. 

민주당 국회의원 중 70명 정도가 운동권 

이를 위해 민주주의와 헌법을 부분적으로 차용했다. 민주주의는 궁극의 주권을 국민에 두면서도 권력 분립, 대의제 민주주의와 같은 제도와 장치를 둔다. 2000년대 촛불민주주의가 헌법을 중시하는 이유는 거리대중, 대중항쟁에 사용하기 위함으로 이 맥락이 80년대 중반 민족해방운동의 거리항쟁과 내용적으로 유사하기 때문이다. 

80년대 중후반 민족해방운동의 관점에서 거리에서 싸웠던 청년들은 90년대 초반 사회주의 몰락에도 자신의 생각을 유지했고 2000년대 촛불민주주의 과정에서 교묘히 자신의 주장을 변형시켜 80년대 학생 시절의 주장을 관철시켰다. 2000년대 촛불민주주의의 상당 부분은 2000년대 첨단 과학기술 시대에 맞는 현대적인 민주주의가 아니라 80년대 급진주의의 내용적 계승이다. 

이 흐름을 타고 새로운 유형의 정치인들이 대거 발탁되기 시작했다. 21대 국회의원에서 민주당 국회의원 중 70명 정도가 운동권이다. 이들의 특징 중 결정적인 두 가지는 문사철(문학, 역사, 철학) 출신과 호남이 많다는 사실이다. 구체적으로 이인영 고대 국문과 84, 우상호 연대 국문과 81, 박홍근 경희대 국문과 등이다. 

70명 중 문사철 출신이 18명이고 정외 5명, 사회·사회복지 5~6명 신문방송 5명으로 보통 문과계열이라 보는 전공 출신이 33~34명 정도이다. 무려 절반 정도가 넓은 의미의 문사철이다. 여기에 상경 10명, 법·행정 10명이고 이과는 8명 정도이다. 문사철 또는 넓은 의미의 문과대 출신들이 비정상적으로 많다. 

이는 민주화운동 그리고 민주화의 특징과 관련이 있다. 학생운동권은 자신의 생각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주로 역사와 철학을 동원하고 수리계량적인 방법보다는 감성에 호소하는 전략을 구사했다. 민주화운동의 이런 특징 때문에 문학, 역사, 철학 등 이른바 문사철 분야가 학생운동을 과잉대표하게 된 것이다. 80년대 학생운동이 영미 계열의 민주주의보다는 맑스레닌주의나 주체사상과 연관을 가진 것도 같은 맥락이다. 

참고로 2015년 삼성전자 임원을 분석하면 ‘서울대 공대를 졸업하고 미국 대학 석사 혹은 박사 학위를 취득한 50세 남성 엔지니어’이다. 이와 대비해 21대 민주당 국회의원 중 운동권 출신들은 중상위권 대학의 문과 출신의 국내파들이다.

호남 엘리트들의 특권 의식도 문제

2000년대 한국은 해외무대로 진출하면서 세계적인 지위를 획득한 반면 국내적으로 정치적 갈등과 대결이 격화되면서 사회적 갈등이 심화되었다. 문제는 양자가 괴리되면서 세계적인 지위를 획득하는 과정에서 의미 있는 사회적 성취를 거둔 사람들이 중용된 것이 아니라 국내 정치적 갈등에서 나름의 역할을 한 사람들이 발탁되었다. 

단적으로 기업, 문화 영역 등에서 경이적인 업적을 챙긴 사람들은 국회에 진출하지 못한 반면 큰 규모의 거리시위 국면에서 미디어, 언변, 이미지 등에서 역할을 한 사람들이 정치인으로 부상한 것이다. 그런 면에서 2000년대 정치투쟁은 정의와 진실과 같은 아름다운 말로 포장되어 있지만 대부분 현실과 괴리된 내용이었다. 

두 번째 결정적인 특징은 호남 출신이 많다는 점이다. 호남 26명, 서울 8명, 경기 8명, 인천 1명, 충청 10명, 영남 9명, 강원 4명, 제주 3명으로 호남 출신이 무려 37%이다. 호남 출신이 산술적으로 많은 것보다 중요한 것은 그들이 했던 역할이다. 문재인 정권 출범 이후 호남 출신들은 정권을 지키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2020년 8월 진행된 검찰 인사에서 당시 추미애 법무부 장관은 검찰의 4대 요직에 모두 호남 출신들을 임명한다. 

- 서울중앙지검장 이성윤 전북 고창 / 검찰국장 심재철 전북 완주 / 대검찰청 반부패강력부장 신성식 전남 순천 / 대검찰청 공공수사부장 이정현 전남 나주이다. 

호남 출신의 엘리트들이 민감한 권력기구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데 동원되었다. 문재인 정권 하에서 핵심 권력기구에 호남 출신이 동원될 수밖에 없었던 것도 운동권 출신의 사상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문재인 정권이 촛불을 배경으로 들어섰기 때문에 얼마든지 탕평책을 쓸 수 있었다.

그러나 문재인 정권의 DNA에는 이 세상은 기득권 집단이 호시탐탐 위협하고 있고 이를 제압해야 궁극적인 평화가 도래할 수 있다는 생각이 지배하고 있었다. 이를 배경으로 자신들은 옳고 상대방은 틀리다는 선악 개념을 갖고 있었다. 이로부터 국정원-검찰 문제 등에서 배타적이고 대결적인 자세를 취했고 이를 실현하기 위해 호남 출신 운동권 엘리트들의 협조가 필요했던 것이다. 

2009년 노무현 대통령 사망, 2013년 촛불, 2016년 박근혜 대통령 탄핵을 배경으로 문재인 정권이 들어서고 21대 국회가 성립되었다. 21대 국회에서 민주당 의원 상당수가 운동권 출신이었다. 한편 같은 시기 한국의 대기업은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하고 한국의 문화산업은 세계를 휩쓸었다. 

압도적인 다수 대중의 지지를 받고 들어선 만큼 문재인 대통령과 21대 국회의 운동권 출신의 민주당은 어느 때보다 선택의 폭이 컸다. 그럼에도 정권교체에 실패하고 이재명 민주당과 함께 심각한 진통과 내홍을 겪고 있는 것은 궁극적으로 문재인 정권과 민주당 운동권 출신에 남아 있는 80년대 운동권 급진주의 때문이다. 친북·친중적 세계관, 소득주도성장, 최저임금제 등 낭만적인 경제이론, 검경 갈등 등 권력기관에 대한 태도 모두 70~80년대 운동권 급진주의의 직접적 연장이다. 

이재명 체포동의안 가결 이후 정세가 요동치고 있다. 이재명 체포동의안 가결 이후 벌어지고 있는 상황도 여전히 운동권 급진주의가 강하게 온존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2024년 4월 총선은 운동권 문제를 해결할 마지막 시험대가 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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