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문기] 아들 내외가 회고하는 이승만과 프란체스카
[방문기] 아들 내외가 회고하는 이승만과 프란체스카
  • 김범수  미래한국 편집위원
  • 승인 2023.05.31 03:2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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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동맹 70주년을 맞아 미국을 국빈 방문하는 윤석열 대통령 일행이 미국으로 출국한 날인 지난달 4월 24일, 이승만 건국대통령의 사저였던 종로 이화장을 방문해 이 전 대통령의 아들인 이인수 박사와 며느리 조혜자 사모를 만났다. 

근 70년 전인 1954년 이승만 전 대통령의 최초의 국빈 방미 장면이 떠올랐다. 아이젠하워 미 대통령과 상하원 의원들을 쩔쩔매게 만들고 주요 언론과의 심층 인터뷰와 대학 순회 연설 등을 통해 미국 국민들과 직접 소통하며 설득하고자 했던 건국 대통령. 

이인수 박사와 조혜자 사모는 차담을 나누며 이 전 대통령과 프란체스카 여사와의 일화를 회고했다. 때로는 눈시울을 붉히며… 이날 조혜자 사모가 소회한 몇 가지 일화를 소개한다.

   

이승만 대통령의 아들 내외인 이인수 박사와 조혜자 사모
이승만 대통령의 아들 내외인 이인수 박사와 조혜자 사모

최초의 국빈 방미와 한미 정상회담

그때 정상회담 당시 아버님(이승만 대통령)을 수행했던 분이 이런 말을 해줬어요. 1954년 7월에 워싱턴에 가셔서 회담이 시작됐는데 아버님은 그 자리에 일부러 늦게 가셨다고 해요. 그 전에 아이젠하워 대통령이 우리보고 일본과 수교를 하라고 했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아버님은 나는 그놈들하고 상종하지 않겠다고 했다는 거죠. 미 대통령도 당연히 화가 났고. 

그 다음에 참모들이 어떻게 애써서 다시 두 사람을 만나게 했는데 시작하려고 그러니까 아버님이 시계를 보면서 내가 지금 프레스클럽에서 기자회견을 해야 된다고 하면서 나가 버리신 거지. 그리고 아버님은 백악관을 나오면서 아이젠하워 대통령을 향해 ‘이런 고얀놈’이라고 했다는 거예요. 

왜냐하면 그때는 나이로도 그렇고 스펙으로도 그렇고, 그 당시 시대적인 배경이 전 세계 지도자 가운데 이승만 대통령처럼 스펙과 실력이 좋은 사람이 없었어요. 워싱턴의 미국 사람들도 어느 정도 다 알고 있고 인정을 해줬던 거지.

* … * 

이승만 대통령이 독재자라고 말들을 하는데 시대적인 나라 형편이 많이 좌우하는 것 같아요. 미국에서는 만약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이 도중에 안 죽었으면 16년 집권이에요. 메르켈은 최근에 16년 했고 아데나워가 14년 했고 박정희 대통령이 18년, 이승만 대통령이 12년을 했어요.

 그때 우리는 전쟁을 수행하는 때였거든. 미국에서는 루스벨트 대통령이 대공항과 세계대전을 겪으니까 오래할 수밖에 없었던 거구요. 그러니까 3·15 부정선거만 아니었으면 이승만 대통령이 지금과 같이 안좋은 평가를 받지는 않았을 거예요.

서울 종로구 이화동에 위치한 이승만 건국대통령의 사저 이화장
서울 종로구 이화동에 위치한 이승만 건국대통령의 사저 이화장

* … * 

올리버 박사(이승만 대통령 외교 고문)가 그러는데 세상에 프란체스카 여사 같은 열녀는 없다는 거예요. 그래서 내가 왜요 하고 물었더니 아버님하고 어머님하고 (1960년 당시) 창경원 입구를 지나 어딘가로 가시는데 총소리가 났다는 거예요. 그 순간에 어머님이 아버님 머리를 이렇게 숙이면서 자신의 몸으로 아버님을 덮은 거예요. 총알이 조금만 낮게 날아왔으면 어머니가 직통으로 맞을 수 있었던 거죠.

* … * 

어머님하고 아버님이 처음으로 만나신 장소가 스위스에 있는 호텔 리시였죠. 아버님이 독립운동 시절에 갔던 곳. 저도 중앙일보에서 스위스 통신원으로 있었잖아요. 

예전에 아버님이 돌아가신 이후에 바로 여기 이 자리에 독일에서 유명한 짜이퉁(신문) 사장이 와서 어머님하고 인터뷰를 했어요. 어머님은 가능한 인터뷰를 안하시려고 하는데 자꾸 물어봐요, 당신 남편 모습 중에서 제일 많이 생각나는 모습이 어떤 모습이냐고. 어머님은 손으로 이 방 한쪽을 가리키면서 아버님이 엎드려 기도하는 모습이라고 대답했어요.

아버님이 자신의 자리에서 얼마나 힘든 생활을 하셨는지 힘들 때마다 매일 여기에 엎드려서 하나님께 기도했다는 거예요. 여기가 바로 그 기도자리예요. 

* … * 

어머님이 아버님을 따라 처음으로 하와이에 도착할 때였어요. 사람들은 이승만 박사님이 데려오는 어머니가 파란눈을 가진 외국인이라는 소식을 듣고 화가 나서 마중을 나오지 않기로 했대요. 그런데 배가 부두에 도착할 시간이 되니까 나 혼자 나가면 누가 알까, 나는 봐야 되겠다 해서 한 사람 한 사람이 숨어서 나오기 시작했는데 결국 부두를 완전히 덮어버린 거예요. 

그래서 이날 어머님 아버님이 와서 큰 잔치가 벌어졌어요. 하와이 사상 최고의 가장 큰 잔치가 벌어졌는데 어머님이 어느 한국 집으로 초대를 받아 가셨는데 부엌에 가만히 보니까 고추장이 놓여 있었다고 해요. 저게 무슨 맛일까 하고 새끼 손가락으로 살짝 집어서 그 맛을 봤대요. 그랬더니 세상에 혓바닥에서 불이 나는 것 같아 그렇게 아주 혼나셨대요.

* … * 

지금 우리가 바라는 거는 이승만 대통령 기념관이 잘 건립되는 거예요. 현재 정부에서 진행하고 있는 것으로 알아요. 그리고 아버님 비석을 바로 다시 세워드려야죠. 어머님 묘를 합장하면서 세웠던 비석이 ‘대한민국 건국 대통령 내외’이었는데 이후 정권이 바뀌면서 ‘건국’이란 표현이 논란이 되면서 땅에 묻어야 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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