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해양수도, 부산의 심장이 다시 뛴다 
[르포] 해양수도, 부산의 심장이 다시 뛴다 
  • 고성혁  미래한국 기자 
  • 승인 2023.01.10 0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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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30 월드엑스포 유치 현장 

정조 20년(1797년 음력 9월 6일) 경상도 관찰사 이형원이 다급하게 조정에 보고를 올렸다. 

“이상한 나라의 배 한 척이 표류하여 동래 용당포(지금의 부산 신선대) 앞바다에 닿았습니다. 그 사람들은 모두 코가 높고 눈이 파랬습니다. 그들에게 국호와 표류하여 닿게 된 연유를 한나라, 청나라, 왜국, 몽고의 언어로 물어보았으나 모두 알지도 이해하지도 못했습니다. 붓을 주어 글로 써 보라고 하였더니 글자의 모습이 구름이 낀 산과 같았고 그림을 그려도 알 수가 없었습니다.”

서역의 배가 동래포에 모습을 보이자 당시 삼도통제사 윤득규는 브로우턴 함장의 프로비던스 함에 승선해서 이들을 만났다. 그 내용을 조정에 장계로 올렸다. 

신선대에서 본 부산항 전경.
신선대에서 본 부산항 전경.

“싣고 있는 화물에 유리병, 천리경, 나침반, 구멍이 없는 은전이 있고 모두 서양산이었습니다. 언어와 말소리는 하나도 알아들을 수 없었고, 오직 낭가사기(浪加沙其)라는 네 글자만 알 수 있었는데, 이는 일본말로 나가사키(長崎)를 말하는 것 같습니다. 대마도 근처를 가리키면서 입으로 바람 부는 시늉을 하는 것으로 보아 순풍을 기다린다는 뜻으로 이해됩니다. 그들이 원하는 대로 바람을 기다렸다 보내도록 명하였습니다.”

그 눈이 파란 이방인은 다름 아닌 영국 해군 프로비던스함의 윌리엄 로버트 브라우턴(William Robert Broughton·1762~1821) 함장이었다. 프로비던스함은 오키나와 열도 해역을 탐사하고 지금의 부산까지 오게 된 것이다. 정박지를 물색하다 해안의 불빛을 발견한 이들은 1797년 10월 13일 일몰 후 동래 용당포에 닿았다. 브라우턴 함장은 당시의 상황을 자신의 항해일기에 자세히 기록해 놓았다.

이른 아침 낯선 우리 배를 보기 위해 호기심에 찬 남자, 여자, 어린이들을 가득 실은 작은 배들이 우리 배를 둘러쌌다. 그들은 누볐거나 이중천으로 된 흰 무명천의 헐렁한 상의와 바지를 입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 중 일부는 크고 헐렁한 두루마기를 입고 있었다. 여자들은 속바지 위에 짧은 치마를 입고 있었고, 남녀 모두가 흰 무명 버선과 볏짚으로 만든 짚신을 신고 있었다. 남자들은 머리카락을 정수리에 묶어 상투를 틀었고 여자들은 머리카락을 꼬고 땋아서 머리 위에 올려놓았다.

우리 배에서 가까운 남쪽에 있는 산(신선대)으로 올라가 방위각을 재기 위하여 뭍으로 나갔다. 정상에서 우리가 볼 수 있는 시야는 매우 넓었고, 항구의 모든 부분을 명확히 볼 수 있었다. 이 산의 강한 자력(磁力)으로 인해 나침반의 바늘이 정확한 방향을 가리키지 못하고 항상 북쪽이 아닌 동쪽을 가리키므로 방위각 측정은 소용이 없었다. 나는 가파르며 튀어나온 이 산이 우리 나침반 바늘에 영향을 주었기 때문에 지도상에 이 산의 이름을 ‘자석의 머리’라고 표기했다. 

브로우턴 함장의 일기에는 조선이라는 이름을 영어로 ‘chosan’이라 했고, 우리말의 숫자나, 기본 단어를 우리말 발음 그대로 기록했다. 이 내용은 1804년 런던에서 책으로 출간됐다. ‘브라우턴 함장의 항해일기’는 1797년 부산 사람들의 모습을 서양에 알린 값진 기록이다. 신선대 정상에는 브로우턴 함장의 일기 내용을 새긴 ‘한·영 교류 기념비’와 함께 양국 국기가 게양되어 있다.

2001년 영국 앤드류 왕자가 방한 당시 부산 신선대에서 기념비 제막식을 거행했다. 기념비가 세워진 곳은 1797년 브로우턴 함장이 부산항을 정밀하게 측량했던 바로 그 지점이다. 조선과 대영제국의 관계로 친다면 아마도 거문도 점령 사건이 가장 유명할 것이다. 1885년 4월부터 2년간 영국 군함 6척과 상선 두척이 러시아 남진을 견제하고자 거문도를 점령한 사건이다. 그런데 그보다 88년 앞선 1797년 영국 군함이 부산을 측량하고 간 것이다. 정조 때인데 영국이 이미 극동의 부산까지 와서 정밀 측량하고 갔다는 것이 놀랍다.

200여 년 전 영국 브로우턴 함장은 부산이라는 천혜의 항구를 직감하고 측량까지 했다. 바로 그곳은 지금 세계적 항구가 되었다. 신선대 바로 밑에는 신선대 컨테이너 전용부두가 들어섰다. 부산항은 컨테이너 처리량을 기준으로 보면 세계 7위다. 1위 중국 상하이. 2위 싱가포르, 그다음은 중국 선전, 광저우, 칭따오가 6위다. LA 롱비치 항이 9위, 홍콩이 10위다. 유럽의 로테르담이 11위로 유럽의 관문 항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부산시가 계획하고 있는 2030 부산 월드엑스포 개최 예정지. / 부산시
부산시가 계획하고 있는 2030 부산 월드엑스포 개최 예정지. / 부산시

세계 7위 컨테이너 물동량 부산항

8,90년대 아시아에서 가장 큰 물동량은 일본 도쿄, 오사카, 고베 항이었다. 30년이 흐른 지금 일본의 주요 항구를 제치고 부산이 그 역할을 이어받았다고 볼 수 있다. 과거에는 홍콩-고베, 도쿄-LA로 이어지던 아시아-미주 무역항로가 지금은 상하이-부산-LA로 ‘배턴 터치’한 셈이다. 부산항은 명실상부한 대한민국의 관문항(GATE-PORT)이다. 국내 기준으로 컨테이너 물동량 순위는 부산-인천-광양, 평택항 순서다. 부산항의 위치는 환적항으로서 최적이다. 싱가포르, 베트남, 대만, 상하이에서 미국 LA로 이어지는 북태평양 항로에 부산은 바로 그 노선상에 위치해 있기 때문이다. 

한국전쟁과 경제부흥기 부산은 대한민국 생명의 목줄이었다. 유엔군과 미군의 전쟁 물자는 모두 부산으로 들어왔다. 7,80년대 대한민국 경제성장기 수출의 최일선 항구 역시 부산항이었다. 부산의 성장과 변화는 곧바로 대한민국의 성장과 변화다. 자갈치시장과 국제시장, 영도의 선박수리소는 부산의 과거를 그대로 안고 있다. 광안리 해변을 가로지르는 광안대교를 통해 해운대로 건너가면 부산의 미래를 보게 된다. 해운대 신시가지 조성과 마천루 숲은 부산의 외형을 완전히 바꿨다. 홍콩의 야경과 같은 멋진 모습을 부산 해운대에서 볼 수 있다. 

부산은 대한민국 제2의 도시가 아니라 대한민국 ‘해양수도’다. 그에 걸맞은 부산으로 거듭 발전하는 것은 대한민국 미래와 직결된다. 21세기 부산시대를 여는 길목에 정부와 부산시는  ‘월드 엑스포 2030’ 개최에 출사표를 던졌다. 작년 6월 23일 유명희 범정부 유치기획단장(통상교섭본부장)과 박형준 부산시장은 프랑스 파리 국제박람회기구(BIE) 사무국을 방문해 ‘2030년 부산 월드엑스포 유치 신청서’를 제출했다. 정부와 부산시가 설정한 2030 부산 월드엑스포 주제는 ‘세계의 대전환, 더 나은 미래를 향한 항해’(Transforming our world, Navigating toward a better future)이다. 부산엑스포 유치위원회는 2030 부산엑스포 개최 기간을 2030년 5월 1일부터 10월 31일까지로 계획 중이다.

현재 부산의 2030 월드엑스포 유치 경쟁 도시는 우크라이나 오데사, 사우디아라비아 리야드,  이탈리아 로마 등이다. 정부와 부산시는 유치 성공에 자신을 하고 있다. 오는 2030년 월드엑스포 개최지 최종 선정은 2023년 11월 국제박람회기구 회원국 투표를 통해 결정된다. 월드엑스포는 월드컵, 올림픽과 함께 세계 3대 국제 이벤트 중 하나로 꼽히는 행사다. 특히 월드엑스포는 개최 기간이 6개월간 지속된다는 점에서 차원이 다른 행사다. 

신선대 정상 부근에는 1797년 영국 브로우턴 함장이 부산항을 측량한 곳에 기념비와 한·영 양국의국기가 세워져 있다.
신선대 정상 부근에는 1797년 영국 브로우턴 함장이 부산항을 측량한 곳에 기념비와 한·영 양국의국기가 세워져 있다.

혹자는 과거 1993년 대전엑스포, 2012년 여수엑스포도 열었는데 또 부산엑스포냐고 반문할 수 있다. 그러나 과거 두 번의 엑스포와 부산 월드엑스포는 성격 자체가 다르다. 1993 대전엑스포나 2012 여수엑스포는 특정한 주제로 월드엑스포가 개최되는 5년 사이에 열리는 간이 엑스포다. 월드엑스포는 주제나 전시 규모에 제한이 없다. 개최국은 부지만 제공하고 참가국이 자비로 전시관을 설치한다. 반면 여수엑스포 같은 ‘인정엑스포’는 개최국이 참가국의 부지와 각국 전시관을 모두 건설해서 제공한다. 부산이 개최지로 최종 선정될 경우 우리나라로서는 처음으로 월드엑스포를 개최하게 되는 셈이다.

국제박람회기구는 1988년 다양한 양식의 엑스포를 월드엑스포/인정엑스포로 구분하고, 1996년에는 개최연도와 전시규모 등에 관한 규약을 추가로 개정했다. 2000 하노버 엑스포 이후부터는 현재와 같은 기준으로 연도의 끝자리가 ‘0’ 또는 ‘5’로 끝나는 해, 5년을 주기로 월드엑스포를 개최하고 있으며, 5년 간의 월드엑스포 사이에는 제한된 규모로 인정엑스포가 열리고 있다.

부산시는 2030 부산엑스포의 전시장을 부산 동구 북항 재개발 2단계 지역의 644만㎡ 규모 부지에 마련할 예정이다. 200여 개국이 참가해 전시관을 꾸리고 약 3480만 명의 관람객이 방문할 것으로 예상된다. 2030 부산 월드엑스포 유치에 성공할 경우 앞선 대전이나 여수 엑수포와는 달리 국책사업으로 추진한다. 산업연구원은 2030년 엑스포가 생산 유발 효과가 43조 원에 달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외지인들이 부산에서 운전한다는 것은 정말 지옥과 같다. 도로 자체가 매우 복잡하다. 길 한번 잘 못 들면 터널을 지나 전혀 엉뚱한 곳까지 가야 한다. 항구도시라는 특징과 함께 산이 유별나게 많은 부산은 도로 건설에 많은 제약이 있다. 

항만을 중심으로 철도와 기본 도로가 먼저 건설된 부산에서 추가로 도로를 건설하려면 고가도로나 바다를 가로지르는 다리를 놓아야 한다. 현재도 부산의 동서를 가로지르는 고가도로와 광안대교가 부산 동서를 잇는 동맥 역할을 한다. 산복도로는 태생적으로 확장이 불가능하다. 

부산의 영원한 숙제, 남해벨트 연결 철도사업

2030 월드엑스포를 유치하는 부산시는 교통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느냐가 엑스포 성공의 가늠자가 될 듯 싶다. 올림픽이나 월드컵 등 국제적 행사를 개최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교통과 숙박이다. 기자는 최근 부산을 방문해 구석구석 다닌 바 있다. 운전을 하면서 내비게이션을 켜고 정신 바짝 차리고 운전하는데도 엉뚱한 방향으로 길을 잘 못 들어선 적이 여러 차례 있었다. 내국인도 힘든 부산시내 운전을 과연 외국인이 할 수 있을까? 거의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월드엑스포가 아니더라도 부산의 배후 광역교통망 확충은 숙제 중의 숙제다. 우리나라 경제가 잘 되려면 부산이 잘 되어야 한다. 부산에서 창원마산, 사천, 광양, 여수로 이어지는 남해벨트는 대한민국 산업의 엔진이다. 그런데 이 산업도시들간의 연결성은 별로다. 남해고속도로를 제외하면 사실 각각의 개별도시에 불과하다. 

기본적으로 부산은 경부선의 출발점으로 서울과의 연결성에 치중되어 있다. 특히 철도가 그렇다. 기존 경부선과 KTX 고속철도는 부산과 서울을 잇는 노선이다. 문제는 남해벨트를 잇는 철도는 사실상 없다는 것이다. 부산을 시작으로 창원, 사천, 광양, 여수로 이어지는 남해벨트는 우리나라 기반산업의 거점들이다. 이들 거점 도시들을 연결하는 철도는 사실 없다. 도로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바다를 사이에 두고 마주 보고 있는 일본의 후쿠오카를 부산의 롤 모델로 삼을 만하다. 후쿠오카를 중심으로 나가사키와 고쿠라 그리고 혼슈로 철도망이 매우 잘 되어 있다. 일본의 한신공업지대와 기타큐슈 공업지대는 도로와 철도가 균형 있게 구축되어 있다. 2030 부산 월드엑스포의 성공을 위해, 그리고 남해벨트의 산업 거점도시와의 연결성과 활성화를 위해 남해안 철도 확충과 활성화는 매우 시급하다. 

윤석열 정부는 지방의 균형발전를 매우 중요한 아젠다로 삼고 있다. 부산을 중심으로 한 남해벨트는 지방이라는 범주가 아니라 대한민국 해양수도권이라는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 부산을 중심으로 남해벨트가 활성화 되고 발전해야 한다. 남해벨트는 대한민국 제조업의 근간을 이룬다. 남해벨트 기간산업 도시들을 연결하는 철도사업은 부산 월드엑스포와 함께 추진해야할 국책 과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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