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층분석] 우크라이나 사태로 춤추는 전기·가스 요금
[심층분석] 우크라이나 사태로 춤추는 전기·가스 요금
  • 전경웅 미래한국 객원기자
  • 승인 2022.03.07 09:5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조만간 침공할 것이라는 관측이 계속 나오고 있다. 이런 가운데 미국은 우크라이나가 아닌 유럽 국가들을 위해 천연가스 공급선 확보에 열을 올리고 있다. 문제는 이런 노력과 더불어 우크라이나 사태 자체가 국내 도시가스와 전기 요금에 상당한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것이다.

블룸버그 통신은 지난 2월 2일(이하 현지시간) “미국 정부가 중국, 일본, 인도 등과 천연가스 공급 문제를 놓고 협의했다”고 보도했다. 미국이 중국, 일본, 인도에 요청한 내용은 “현재 수입 중인 천연가스 물량 가운데 일부를 유럽 공급용으로 양보해 달라”는 것이다. 미국의 이런 노력은 지난 1월 25일에도 전해졌다.

당시 뉴욕타임스는 “미국 정부가 우크라이나 갈등 과정에서 러시아가 유럽에 대한 가스공급을 중단하는 상황에 대비해 에너지 공급대책 마련에 착수했다”고 미국 정부 고위당국자를 인용해 보도했다.

이 당국자는 “중동, 북아프리카, 아시아 지역 업체들과 논의 중인데 (유럽의) 잠재적 부족량 상당 부분을 대체할 수 있을 만큼 (액화천연가스가) 확보됐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다른 곳에서도 물량을 확보하기 위해 노력 중”이라며 미국이나 사우디아라비아 등에서 액화천연가스(LNG)를 수출하는 방법도 포함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이때 미국 측이 접촉한 대상국은 카타르 등 천연가스 생산국이었다.

그러나 카타르 입장에서는 무턱대고 미국의 요청을 들어줄 수 없었다. 세계적인 천연가스 소비국인 일본과 한국 등이 이미 대량으로 입도선매를 해놓은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미국은 천연가스 공급국뿐만 아니라 소비국과도 협상을 시작한 것이었다.

‘에너데이터’ 연감에 따르면 천연가스는 2020년 기준 전 세계 에너지 공급 자원의 24%를 차지했다. 천연가스 소비 1위는 미국으로 8710억㎥였고, 2위는 러시아 4840억㎥, 3위는 중국 3260억㎥, 4위 이란 2210억㎥, 5위 캐나다 1170억㎥, 6위 일본 1000억㎥ 순이다. 한국은 한해 530억㎥의 천연가스를 소비하고 있다.

통계를 보면 천연가스 상위 소비국 6개국 가운데 서방진영은 캐나다, 일본뿐이다. 7~12위 소비국은 독일, 영국, 이탈리아 등 우크라이나 사태로 천연가스 공급 부족 사태에 빠질 수 있는 나라이거나 사우디아라비아, 멕시코, 아랍에미리트(UAE) 등 천연가스 생산국이자 소비국이다.

특히 멕시코는 미국이 천연가스 공급을 중단하면 전력난에 빠질 정도로 여력이 없다.

서유럽 각국은 러시아산 천연가스에 의존하는 비중이 높다.
서유럽 각국은 러시아산 천연가스에 의존하는 비중이 높다.

美, 유럽 공급용 천연가스 확보 위해 생산국·소비국과 협상

미국의 요청에 일본은 신속하게 응답을 했다. 한국은 아직 공식 반응을 내놓지 않고 있다. 요미우리신문은 지난 4일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할 경우에 대비해 일본 정부가 천연가스를 유럽에 빌려주는 방안을 검토하기 시작했다”고 보도했다.

하기우도 경제산업부 장관은 “일본은 천연가스 수입국”이라면서도 “관계부처와 협력해 우크라이나 정세를 주시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국은 “미국과 아직 구체적인 논의는 없었다”는 입장이다. 머니투데이에 따르면 산업통상자원부 당국자는 지난 4일 “미국 측의 공식적인 접촉은 아직 없다. 조만간 접촉이 있을지는 확신하기 어려우나 아직까지는 우리 부에 연락이 없다”며 “하지만 천연가스 일부를 유럽으로 보내달라는 것 같은데 우리도 겨울 수급 상황이 빠듯해 쉽지 않다”고 말했다.

이 당국자는 “천연가스는 석유와 달리 비축분이 많지 않고, 비축이라는 것도 우리가 겨우내 계속 써야 하기 때문에 누구에게 줄 여유가 없다”며 미국의 요청을 거절할 가능성을 내비쳤다.

전 세계가 우크라이나 사태로 인해 천연가스 공급망에 문제가 생길 것이라고 내다보는 이유는 유럽과 러시아의 천연가스 수급구조 때문이다. 게다가 우크라이나는 러시아가 EU에 공급하는 천연가스 파이프라인이 위치한 곳이다.

에너데이터 연감에 따르면 유럽연합(EU)은 지난해 러시아로부터 1280억㎥의 천연가스를 수입했다. 연간 천연가스 소비량의 40%다. 이 가운데 3분의 1은 우크라이나를 거치는 가스관을 통해 유럽으로 공급된다.

그런데 우크라이나 사태가 불거지기 시작한 뒤 러시아가 이 가스관의 공급량을 줄이면서 현재 유럽 천연가스 재고량은 사상 최저 수준이다.

러시아 국영 타스통신은 지난 1월 24일 러시아 최대 에너지기업이자 세계 최대 천연가스 업체 가스프롬이 “유럽의 지하 천연가스 저장소(UGS)에 있는 재고량이 역대 최저 수준”이라고 밝혔다고 전했다.

가스프롬은 “1월 22일 기준 유럽 천연가스 재고량은 133억㎡로 지난해 같은 때보다 26% 감소했으며, 지난 20년 이래 최저치를 기록한 2002년 1월의 114억5000만㎥ 이후로 가장 낮은 재고량”이라고 전했다.

가스프롬은 “우크라이나 지하저장소의 재고량 또한 22일 기준 121억㎥로 최저 수준을 기록했다”고 밝혔다. 지난해 같은 기간과 비교해 44% 감소한 수준이다.

외신들은 우크라이나와 유럽의 천연가스 재고량 감소를 두고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사태 이후 유럽에 공급하는 가스관 일부를 잠갔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실제로 러시아는 지난해 12월 21일 독일에 천연가스를 공급하는 육상수송관 ‘야말-유럽 파이프라인’ 가동을 중단했다. 이때 천연가스 가격은 한때 1MWh당 180유로(약 24만3600원)까지 폭등했다.

가스프롬은 자국 내 가스 공급량은 반대로 늘린 것으로 나타났다. 가스프롬은 “올해 1월부터 천연가스 생산량을 늘렸으며 국내 공급량도 늘렸다”고 밝혔다. 1월 1~15일 사이 천연가스 생산량은 231억㎥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2.1% 증가했으며, 국내 공급량도 6억㎥(3.7%) 증가했다고 가스프롬은 밝혔다.

이런 움직임을 파악한 미국은 지난 1월 하순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면 EU 가스공급에 심각한 문제가 생길 수 있다고 보고 천연가스 물량 확보에 나섰다.

영국 파이낸셜 타임스는 지난 1월 22일 “러시아가 유럽에 대한 가스 공급을 중단하는 상황에 대비해 미국이 액화천연가스 최대 수출국인 카타르 등과 협의를 진행 중”이라고 보도했다. 카타르는 생산한 LNG의 상당량을 한국과 일본에 수출하고 있다.

미국은 또한 러시아가 천연가스를 EU를 압박하는 무기로 삼을 경우 러시아 경제에 부정적인 영향을 줄 것이라고 주장했다. 근거로 러시아 재무부 자료를 내세웠다. 이 자료에 따르면 러시아의 지난해 원유와 천연가스 수출액은 9조1000억 루블(약 138조4110억 원)로 연초 계획보다 51.3% 많았다.

미국 정부 당국자는 뉴욕타임스와의 통화에서 “러시아가 천연가스나 원유 공급을 무기로 삼기로 결정하면 결국 러시아 경제에 부정적 결과가 뒤따를 것”이라고 주장했다. 로이터통신도 “러시아의 지난해 정부 예산 가운데 36%가 원유와 천연가스 수출에서 나왔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전문가들의 견해는 다르다. 미국 터프츠대 에이미 마이어스 자페 교수는 호주 더 컨버세이션과의 인터뷰에서 “러시아 중앙은행의 외환보유액이 최근 6000억 달러(약 719조7000억 원)를 돌파했다”고 지적하며 “러시아는 이런 외환보유고를 서방의 새로운 제재 등에 대응하기 위해 사용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다른 전문가들 또한 러시아가 지난해 천연가스와 원유 가격 급등으로 얻은 재정적 여유를 서방에 대응하는 무기로 사용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우크라이나 국경에 집결한 러시아군.
우크라이나 국경에 집결한 러시아군.

美 “천연가스 무기로 삼으면 러 경제 부정적 영향”

러시아에는 ‘중국’이라는 대안도 있다. 프랑스24 등 외신들은 지난 5일 “베이징 동계올림픽 개회식 참석차 베이징을 찾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회담을 갖고 연간 100억㎥ 규모의 천연가스 공급계약을 체결했다”고 보도했다. 드미트리 페스코프 크렘린궁 대변인은 공급계약기간이 25년이라고 밝혔다.

러시아 가스프롬 또한 “연간 100억㎥의 러시아 천연가스를 극동가스관을 통해 중국에 공급하는 계약을 중국석유천연가스공사(CNPC)와 체결했다”고 밝혔다. 가스프롬은 앞서 CNPC와 연간 380억㎥의 천연가스를 2025년까지 중국에 공급하는 계약을 체결한 바 있다.

즉 러시아는 앞으로 중국에 480억㎥의 천연가스를 수출하게 되는 것이다. EU 수출물량 1280억㎥의 절반도 안 되는 양이지만 우크라이나 침공 시 서방 진영의 제재에 맞서기에는 충분한 물량이라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중국의 연간 천연가스 소비량이 급속히 증가하고 있는 점도 러시아에는 고무적이다. 에너지경제연구원에 따르면, 중국의 2019년 천연가스 소비량은 3060억㎥로 전년 대비 8.6% 증가했고, 2020년 소비량은 3240억㎥로 전년보다 5.5% 증가했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중국의 천연가스 소비량 증가는 계속 이어질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고 있다.

이처럼 우크라이나 사태로 러시아가 EU에 대한 천연가스 공급 중단과 미국과 EU 측의 노력이 맞물리면서 세계 천연가스 공급망에 상당한 변화가 일어날 수 있다. 특히 한국과 일본처럼 대부분의 천연가스를 중동에서 수입하는 나라는 한동안 공급 부족을 겪게 될 수도 있다.

일각에서는 “곧 봄이 올 것이므로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인한 천연가스 시장의 요동이 국내에 별 영향을 주지 못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실제 우리 국민 대부분은 도시가스를 난방용으로 사용하는 겨울철에만 천연가스 소비가 대폭 증가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따라서 봄이 완연한 3월 하순부터는 도시가스 수요가 크지 않을 것이고 따라서 국내 수급에도 문제가 없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그러나 국내 천연가스 수요를 들여다보면 간단한 문제가 아님을 알 수 있다. 산업통상자원부 통계에 따르면 2020년 기준 우리나라의 액화천연가스(LNG) 수입량은 3998만2000톤(1톤=약 1263㎥), 소비량은 3236만7000톤이다.

이 가운데 도시가스용이 1824만7000톤, 산업·발전용이 1412만 톤이다. 도시가스용으로 쓰는 천연가스 가운데는 가정과 자영업자들이 조리용으로 사용하는 수요도 적지 않다.

산업·발전용 천연가스 소비는 연중 내내 있다. 즉 국내 천연가스 소비량의 절반 이상이 계절적 요인에 좌우되지 않는 현실에서 천연가스 수급 불안정은 가격 인상 압력을 가중시킨다.

문제는 여기서 끝이 아니다. 문재인 정부는 지난해 말에 올해 4월과 5월부터 각각 전기요금과 도시가스요금을 인상하겠다는 예고했다. 지난해 12월 27일 한국전력은 “2022년 4월 이후 전기요금을 ㎾h(킬로와트시)당 11.8원 올린다”고 밝혔다.

인상 폭은 10.6%다. 한국전력은 발전용 자원의 가격 상승으로 인해 발전원가가 대폭 상승했다고 이유를 댔다.

한국도시가스공사 또한 지난해 12월 27일 “내년 5월과 7월, 10월 도시가스 요금을 인상할 것”이라고 밝혔다. 5월에는 1MJ(메가줄)당 1.23원 인상하고, 7월에는 1.9원, 10월에는 2.3원 인상한다고 밝혔다.

한국도시가스공사도 요금인상 이유를 “원자재가 상승에 따른 가격인상 압박을 더 이상 견디기 어려워서”라고 밝혔다. 한국경제신문은 “2만8450원인 월평균 가스 요금은 5월에 2460원, 7월에 1340원, 10월에 800원 늘어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우리 정부는 우크라이나 사태 대응 TF 회의에서 “우크라이나 사태가 발생해도 단기간 동안은 우리나라에 큰 영향이 없다”고 내다봤다. 그러나 만약 외신과 전문가들의 전망처럼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동부(돈바스)지역 합병을 시도할 경우 우크라이나 사태는 2014년 2월부터 2015년 말까지 지속됐던 크림반도 사태보다 더 길어질 수 있다.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정책’으로 원전 대신 천연가스 발전이 대폭 증가한 현재 상황에서 천연가스 공급망의 요동이 6개월 이상 이어지면 한국전력과 한국도시가스공사의 ‘가격인상 압박’이 지금보다 훨씬 커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본 기사는 시사주간지 <미래한국>의 고유 콘텐츠입니다.
외부게재시 개인은 출처와 링크를 밝혀주시고, 언론사는 전문게재의 경우 본사와 협의 바랍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